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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부 > -그녀와 그들- (7/24)

< 02부 > -그녀와 그들-

멍하니 지난 일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면회대기실이었다. 10분쯤 앉아서 기다리다보니 순서가 되어 면회실로 들어갔다.

유리로 막힌 저쪽 편에는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게 보였다.

형진의 엄마, 정인혜.

올해 44살인 중년 여인. 최대한 꾸민다면 30대로 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어 화장 아래로는 조금씩 주름이 늘어가고 있었고, 옷으로 감춰진 몸에도 조금씩 군살이 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혜는 미인이었다. 선천적으로 하얀 피부, 선명한 눈썹, 지적인 눈, 오똑하고 단정한 콧날, 도톰하면서 빨간 입술...

164 정도의 키에 c컵의 가슴, 잘록한 허리와 부드럽게 벌어지는 골반 라인.

다소 가냘펐던 젊었을 때에 비해 가슴과 허벅지에 살이 좀 붙은 지금이 오히려 더 요염했다.

그녀는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그리고 하늘색 가디건을 걸친 수수한 모습이었다.

검은 머리는 뒤로 묶어 단아한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했지만, 다소 헝클어져 지친 듯 보였다.

인혜는 아름다웠지만 함부로 몸을 굴리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형진이 아는 한 아버지 외의 남자는 모르는 여자였다.

물론 사실은 인혜도 남편 이전에 만났던 남자가 있었고, 5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두어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이 엄마에 대해 가지는 환상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그냥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일 뿐이었다.

아들에게 엄마는 성녀이지만, 사실 그녀들도 성녀가 아니라 욕구를 가진 인간인 것이다.

일반적인 여자들과 비교해보면 인혜는 분명 상당히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여자였다.

돋보이는 외모 때문에 언제나 남자들이 달라붙었지만, 그녀의 기준은 엄격했다.

한번 사랑에 빠지면 한없이 순종적이고 헌신적이었지만, 그런 자신을 알기에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지 않았다.

또 하나뿐인 아들을 혼자 힘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그녀가 자신의 욕구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인혜는 유치원 교사였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여 자격은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전남편과 결혼을 했고 바로 전업주부로 살면서 직업 경력을 전혀 쌓지 못했다.

그랬던 그녀가 유치원 교사 일을 시작한 것은 7년전,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고 난 이후였다.

남편은 거의 폐인이 되었고, 그녀라도 돈을 벌어야했다. 그녀에게 일을 시작하게 해준것은 유치원을 운영하던 대학 선배였다.

남편은 그후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결국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떴고,

남편의 빚은 그의 죽음으로 해결됐지만 여전히 아들 형진의 양육비와 둘의 생활비는 인혜의 몫이었다.

   

"잘 지냈니?"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엄마의 따스한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물기에 젖어있었다. 벌써 한달 동안 거의 매일 면회를 오는 엄마지만 이것만큼은 아직도 바뀌지 않는다.

인혜의 눈은 이미 빨갛게 달아오르며 촉촉히 젖어가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눈을 피하며 형진은 고개를 숙였다.

"응."

한동안 말이 없던 인혜가 입을 연다.

"변호사는 아직 못 구했는데...엄마가 몇군데 알아본 사람들 중에서 어떤 분이 좋은 변호사 아는 분이 있다고 소개시켜준다고 했어.

우리처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 주로 해주시는 분이래. 실력도 좋으신 분이구, 옛날에는 판사도 하셨다고 하고... 그러니까 아마 조만간 선임할 수 있을거야."

"응..."

"보연이라는 아가씨는 아직도 연락이 안되서...못 만나봤는데, 계속 연락해볼께."

"응..."

갑자기 엄마가 말이 없다. 형진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본다.

엄마는 젖은 눈으로 형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형진은 다시 고개를 숙인다.

"....힘든건 없니?"

"괜찮아."

"책 몇권 더 가져왔어. 영치금도 조금 더 넣어줬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사서 쓰구..."

"응."

다시 말이 없다. 잠시 후,

"형진아, 엄마 좀 봐봐."

형진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봤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형진이 말을 믿어.

설령 그게 법적으로 죄라고 해도, 그래서 형진이가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엄마는 형진이 말을 믿어.....알지?"

"응."

면회시간은 10분이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가 들리고, 스피커가 꺼져 더 이상은 말을 해도 저쪽에 들리지가 않는다.

인혜와 형진 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언제나 인혜는 면회실에서 바로 나가지 못한다.  

형진은 잠시 망설이다 몸을 돌려 면회실을 나간다.

그때 문이 열리고 다음 면회자가 들어왔다. 삭발한 머리, 드러난 팔뚝과 목 전체를 휘감은 문신, 전형적인 구치소 수용자의 모습.

그는 왜 이렇게 밍기적대느냐는 듯 찌푸린 표정으로 형진을 한번 내려보고 정면을 본다.

엄마가 아직 있을텐데. 형진도 그쪽을 본다.

역시나 인혜는 아직도 거기 서서 걱정스럽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쪽도 문이 열리면서 이쪽에 서있는 남자랑 비슷한 체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인혜가 놀라서 뒤를 보고 형진에게 눈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그 남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면회실을 나갔다.  

그 남자 역시 고개를 숙이며 괜찮다고 한다.

형진도 나가면서 이쪽에 있는 남자를 본다. 그는 이미 형진의 존재 자체를 잊은 듯 했다. 그의 시선은 인혜에게 꽂혀있었다.

그의 인혜의 육체를, 가슴과 엉덩이를, 하얀 목덜미를 샅샅이 핥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형진은 그걸 느낄수 있었다.

어쨌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그리고 강간. 그것이 검찰이 기소한 김형진의 죄명이었다.

그는 술에 만취해 강민석, 최대현, 양우민 세명의 남자와 그 각각의 연인들인 이소희, 윤미정, 오시은 그리고 자신의 여자친구인 박보연,

이렇게 7명과 함께 당시 부모가 집을 비운 강민석의 집에서 자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형진은 양우민의 여자친구인 오시은을 강민석의 부모의 침실로 끌고가 강간하였으며,

강민석이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부엌으로 가 식칼을 가져와서 강민석을 죽이려 하였고,

이를 본 최대현과 양우민이 말리려 하자 그들에게도 칼로 여러군데 상처를 입혔다.

결국 제압당한 후 경찰에 신고되었으나, 강민석은 여러군데의 자상에 더해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형진은 그 셋이 자신의 여자친구 박보연을 윤간했고 자신은 그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박보연 본인이 자신이 윤간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형진이 오시은을 강간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같이 있었던 8명 중 7명의 진술이 일치하는데 김형진의 진술만이 달랐다.

더욱이 그가 강민석을 칼로 찔러 실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은 형진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형진 본인도 자신이 본것이 사실이 아니라 헛것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인혜는...자신의 아들을 믿고 있었다.

처음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을때 인혜는 어딘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담당 형사로부터 사건 내용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나서 인혜는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신의 희망과 기대가, 꿈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한가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다.

처음 세상에 나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그녀의 젖가슴을 빨던 그 작은 생명에 대해 가지게 된 맹목적인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의 아들은 그녀가 키웠다. 아들에 대해 아들 본인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본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7명의 진술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그녀의 아들이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진술 속에 있는 사람은 그녀가 아는 아들이 맞았다.

비록 사람을 찔렀지만, 그래도 그런 이유로 그랬다면 그것은 내 아들이 맞다.

소심하고 얌전하지만, 화가 나면 전혀 예측할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를 강간하고 그걸 막는 사람을 칼로 죽이려 들 사람은 아니다.

도망을 치면 쳤지 그런 건 상상하기 힘들다.

아들은 누명을 쓰게 생겼다.

왜 박보연이 그런 진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7명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녀는 형진을 믿었다.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르는 아들을 구해야 한다. 그것만이 인혜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그녀는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어머님 잘 만나고 왔나?"

"네, 큰형님..."

7동 10번방. 그곳이 형진의 방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건 것은 그 방의 방장이었다.

전입순서로 정해져야할 방장 자리를 왜인지 들어온지 3주 밖에 안된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장인 이경준이 그에게 굽신댔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황인문. 통칭 큰형님. 50대 중반인 그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특수폭행으로 잡혀와 이곳 강짜방(강력범죄방)에 있지만 그는 주로 기타방에 있는 사기범들과 친한 사업가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이미 그를 알고 있는 듯 했고, 10번방에서도 이경준은 그를 형님으로 모셨다.

들어온지 며칠만에 그는 이 동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안면을 텄고,

며칠이 지나자 그들 모두가 심지어 교도관과 소지(수형자 중 교도관의 잡무를 돕는 사동도우미)들까지 그에게 굽신거렸다.

그는 통이 컸다. 돈을 뿌리다시피 했다. 구치소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힘이 있는 사람들을 돈으로 구워삶았다.

과거에도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그런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뒤를 받쳐줬다는 소문이 퍼졌다.  

출소 후의 인생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일자리를 약속했고, 힘있는 변호사를 붙여주고, 먹을 걸 사주고,

심지어 어떤 조폭에게는 처자식이 살 집을 마련해줬다고도 했다.

단 3주만에 그 동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굽신거렸다.

10번방의 수형자가 8명이 있었지만 황인문과 이경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는 김형진과 김태호 두명의 몫이었고, 그 외 잡무는 나머지 인원이 돌아가면서 했다.

김태호는 김형진과 동갑이었는데 가출 여학생들을 가둬놓고 성매매를 시키다가 잡혀온 녀석이었다.

모두 그를 한냐라고 불렀는데 등에 한냐(일본의 여자 귀신) 문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경준은 사채업자였다. 돈을 갚지 않는 여자를 강간하고 폭행한 혐의로 들어왔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었는데도 10번방에서는 그를 둘째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그런식으로 범한 여자의 수만 족히 50명은 넘는데 처음 걸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 부분에 있어서는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10번방에서 황인문, 이경준에 다음가는 권력자인 오영태. 사람들은 그를 빠따라고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지가 야구빠따 같았다.

빠따는 연쇄 주거침입강간범이었다. 기소된것만 12건인데 본인 말로는 걸리지 않은 것도 수십건이 더 있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4, 50대의 유부녀만 노렸고, 

심지어 젊은 딸과 엄마가 함께 있어도 딸은 건드리지 않고 엄마만 강간하고 딸에겐 그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정숙한 유부녀를 더럽히는게 가장 즐거웠단다.

타겟으로 삼은 여자가 어떻게 사는 여자인지 사전에 감시하고, 만약 헤픈 여자라면 리스트에서 지웠다.

성실한 주부가 확실하다 싶으면 혼자 있을 때를 노려 집에 들어가서 보지와 항문을 모두 그 빠따로 유린한 후에 당당하게 나온다.

그의 리스트에 남아 있던 여자의 수는 백 단위였다고 한다.

형진은 그런 사람들과 살고 있었다.

그는 먹이 사슬의 최하위였다. 황인문 덕에 질서가 유지되어 노골적인 폭력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다.

간접적 폭력은 이미 겪고 있었다. 절대적인 복종의 강요.

그는 큰형님이나 둘째형님이 잘때 부채질을 해주고, 교도관이 오는지 망을 보고, 반성문을 대신 써주고, 등을 긁어주고,

밥을 비벼주고,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속옷과 양말을 빨아주고, 모포와 담요를 털고 개주었다.

한마디로 그 둘은 손끝 하나 하지 않아도 되도록, 둘은 완벽하게 시중을 들었다.

대신 황인문은 그들을 보호해주었고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사주었다.

큰형님 덕에 김형진은 다른 방의 약자들처럼 두들겨 맞지 않았고, 아플때 교도관들이 바로바로 약을 갖다 주었으며, 자지를 빨거나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

다른 방에서 그런 일을 당하던 사람들도 일단 황인문의 보호 아래 들어가고 나면 더이상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복종과 보호의 교환관계. 

다만 그 관계의 최하층에 있는 형진은, 아주 많이 복종하고 아주 적게 보호받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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