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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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금년 33살로 결혼한 지 10개월이 되는 신체 건강한 젊은(?) 남자로 S증권 압구정동 지점에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본사 법인 채권 영업팀에 있다가, 지점의 영업 현장으로 나온 것은 3년 전이었고, 이곳 압구정 지점은 서울 내에 있는 지점들 중에서도 가장 실적이 좋은 곳으로, 많은 영업 직원들이 근무를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3년 전에 대리를 갓 달고 지점 근무를 명 받았을 때는 영업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고 앞으로 실적 때문에 시달릴 걱정으로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연찮게 좋은-예탁금을 많이 맡기고 크게 투자를 하는-고객을 많이 확보하게 되어서 첫해부터 고민은커녕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 운이 따랐는데,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IMF이후에 숨어있던 많은 돈이 정부의 주식거래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왔고 난 아주 적당한 시기에 그 혜택을 입었던 것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일이고, 사실 영업 현장 어디나 마찬 가지지만, 이곳도 상당한 현장 영업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주요 고객에게는 일별로 투자 정보를 보내야 하고, 또 큰 돈을 굴리는 '큰 고객들'에게는 예탁금의 유치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렇게 바쁘게 지점 영업에 적응하고 있던 때, 지점장의 소개로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영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됀 그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때 즈음이었다.

"김 대리!"

그날 아침 간단하게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날 부른 박 지점장은 전날의 술 때문이지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예!"

"오늘 오전 11시경에 아주 중요한 손님을 한 분 소개해 줄테니, 김 대리가 한번 잘 관리해 봐요"

무슨 일인지 박 지점장은 이렇듯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고객들을 나와 이 과장에게 가끔씩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이 과장은 그런 면에서 박 지점장에게 상당히 은혜를 입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곤 했다.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나도 정신이 별로 없던 때라 까다로운 고객이라면 별로 썩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점장이 배려한다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니 내 입장에서는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 '감사합니다. 지점장님. 그럼 이따 10시 50분 경에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나서는데, 이 과장이 다가왔다.

"김 대리, 오늘 송 여사 소개 받는다며?"

"송 여사요?'

"그래, 몰랐구나... 아주 대단한 여자지... 후후후"

이 과장의 느물거리는 표정을 대하고 있자니 기분이 어쩐지 찝찝한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대단한 데요?"

"만나 보면 알어... 그럼 수고해..."

'그럼 만나 보면 알지, 내가 바보냐? 만나 보고도 사람을 모르게?... 자식, 되게 느끼하네...'

"김 대리. 내 방으로 좀 와요"

월요일 주간 투자 정보를 정리하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던 나는 지점장의 호출을 받고 서야, 비로소 시간이 11시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영씨. 이거 다 만들었는데 아직 프린터를 뽑지 못했거든... 미안하지만 이것 좀 프린트해서 거래선들한테 좀 팩스로 보내줄래? 내가 지금 중요한 손님을 좀 만나야 해서...미안, 그대신 내가 밥 한번 살께... 부탁해"

하던 일을 지영이 한테 맡기고 서둘러 지점장 방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김 성수입니다"

방을 들어서자 마자 지점장하고 마주하고 있는 여인을 보고, 대뜸 인사부터 하고 자리로 다가 갔다.

"네에,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반가와요. 송혜진입니다"

'헉'...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고 하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곱게 나이를 먹은 미스 코리아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고급 룸 싸롱의 마담 같은 생김새라고 해야 하나...

검은 색의 고급 순모 투피스 정장에 연한 갈색으로 염색을 한 길고 굵은 파마 머리 그리고 고급스러운 진주 목거리와 귀걸이...

한마디로 아주 우아하면서 요염하기도 한 그런 자태를 지닌 여인 이었다.

갑자기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압도된 것처럼...

"여기 김 대리는 아주 실력이 뛰어난 친굽니다. 아마도 송 여사님에게 좋은 행운을 많이 가져다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호호호... 어련 하시겠어요... 지점장님이 추천하시는 분이니...호호호"

이빨이 참 하얗고 가지런했다.

"그렇습니다. 하하하"

둘은 기분이 좋은가 본데, 난 마치 관찰 대상이 된 것 같아 영 기분이 개운치가 않았지만, 어쩌랴... 

"잘 부탁합니다. 김 대리님"

그녀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을 것 같은 하얗고 고운 손을 내밀었다.

"네. 제가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허허. 그렇지. 우리 김 대리가 송 여사님에게 잘 부탁 드려야지... 하하하" 

우리는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몇 마디를 더 주절대다가 같이 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때처럼 주식이 활황인 때는 웬만한 일식 집이나 중식 집들은 증권사 직원과 고객으로 점심 때도 자리가 없는 게 흔한 일이었으므로, 박 지점장은 미리 아주 고급스런 일식 집을 예약을 해놓았었다.

회를 푸짐하게 시키고 백세주도 몇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고, 그 사이 사이에 여러 군데에서 전화가 걸려와 자주 자리를 왔다 갔다 하자, 송 여사는 날 보며 '꽤 인기가 있네요... 이 사람 저 사람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하면서 흉인지 칭찬인지 애매한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고, 지점장은 그저 사람 좋은 표정으로 껄껄 거리며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그녀는 첫 만남을 가졌다.

나이가 42살로 나와 띠 동갑인 그녀는 어떻게 돈을 모으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우리 지점의 '큰 손들' 중의 하나 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처음 한 것이 그녀에 대한 신상 파악이었다. 그 나이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기에는 '의혹'까지 품게 되는 엄청난 돈을 굴리고 있는 여자였다. 현찰만 그 정도이니, 부동산이나 다른 동산들을 합치면 웬만한 재벌들 부럽지 않을 그런 돈이었다.

궁금증이 커져만 갔지만, 딱히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고, 또 지점장한테 물어본다고 미주알 고주알 얘기해 줄 사람도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덮어 버리기로 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내 아침 일과 시작의 첫 전화 상대자가 되었다.

보통의 경우가 그렇지만, 난 그때 그때 눈 여겨볼만한 몇몇 특정회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일관했고 그녀는 가만히 듣다가 몇 마디 물어보는 것으로 끝나는 통화였다. 그렇게 한 2주일쯤 지나서 였던 것 같다.

"김 대리님. 오늘은 어디를 눈여겨 보고 계신가요?"

난 그간의 통화 속에서 그녀의 관심이 어디에 있으며, 내가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 지를 인지하고 있었다.

"네. 거래소는 XX 텔레콤, 코스닥은 XX 컴퓨터를 보고 있습니다"

"그럼 김 대리님이라면 얼마씩 사고 싶으신가요?"

"XX 텔레콤은 0000주, XX 컴퓨터는 00000주를 사고 싶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더니, '좀 큰 금액이군요...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만...' 이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게 그녀와 나의 첫 거래였다.

누군가가 그랬지만, 운7기3 이라고 그녀와 나의 작품은 거의 언제나 30% 이상의 좋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그 덕분에 그녀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 갔다. 물론 그 중에는 아주 가끔씩 손절매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녀나 나나 손절매에서는 아주 냉정한 편이었기에, 우리는 미련없이 손절매를 하곤 했고 사실 그러한 단순한 이유에서 우리는 상당히 수익률이 좋은 거래를 계속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눈이 아주 많이 오는 1월이었다. 퇴근을 앞두고 그 날의 잔고를 맞추고 거래 실적표 작성하느라고 바쁜 와중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가 날 접대해야 할 것 같으니, 퇴근 후에 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차를 보낸다며 차종과 번호를 일러 주면서...

그녀와 자리를 한 곳은 아주 고급스런 한식집이었다. 나도 중요한 거래선과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에 가끔씩 그런 집을 드나든 적이 있기는 했지만, 송 여사가 나를 초대한 수준의 집들은 아니었다. 서울 하늘 아래 이런 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고급 집이었다.

송 여사는 내가 좋아하는 술까지 각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를 시켜 놓았고, 난 그녀의 그러한 자상한 배려에 기분이 흐믓해서 연신 술잔을 비워 댔다.

"나한테는 술 한잔 안 권하네요, 김 대리님은...호호호"

옆에 앉아서 시중을 들고 있는 아가씨의 미모에, 송 여사의 좋은 입담에, 흥이 한껏 고조되서 예의도 지키지 못하고 나만 마셔대던 술이 반 병쯤 남았을 때, 송 여사는 입가에 웃음기를 띄고 잔을 내 밀었다.

"드셔야죠. 암 드셔야죠. 여사님은 제 술 한잔 드실 자격이 있지요"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전 30평생 지금까지 여자한테 술 따러 본 적이 없는 놈입니다. 그건 우리 집안의 내력이지요. 우리 아버님은 천하에 왕자병 원조 이시거든요... 하하하"

"네에..?!"

그녀도, 그리고 옆에 앉아 시중을 들던 아가씨들도 다 입에 손을 대고 웃어 댔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전, 딱 한 여자한테만 술을 따라 주겠다고 내 자신하고 약속을 했지요. 그게 누군지 아십니까?"

잔에 황갈색의 술을 따르며 난 송 여사의 크고 짙은 눈동자를 마주 바라 보았다.

"내 여잡니다. 앞으로 평생을 사랑할 여자...."

어쩌면 그날 난 40 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사하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가 연출하는 그 분위기와 그녀가 정성들여 준비한 그 술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녀에게 한 잔의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한 것은 그녀의 남자보다 큰 배포를 칭찬한 것이었고, 평생을 사랑할 여자에게 따를 술하고는 관계가 없는 얘기 였다고 믿고 싶었다. 단지, 말이 앞뒤 문맥상 이상하게 들린 것 뿐이라고....

그러나, 우스개 소리로 받아 들여도 될 분위기에서 그녀는 시선을 정지시키고 있었다.

거기다가 결정적인 촉매는 내 옆에서 시중을 들던 미스 장이라는 아가씨의 한마디였다.

"어머... 어쩐지... 두 분이 연인 사이셨구나...여사님은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젊고 잘 생기고 체격도 당당하신 젊은 애인이 있으셔서..."

순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송 여사는 아가씨를 꾸짖지도 않았다. 술이 확깨는 순간이었다.

날 뚫어지게 바라보던 송 여사는 받은 술을 한숨에 마시며, '맛 있군요' 라는 말로 화답을 했고, 난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한 잔 더 하시겠어요?' 라며 대답도 듣기 전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 지면서, 깊이 가라 앉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은 잠시 나가있다가 이따 다시 부르면 들어와야 겠어요"

그녀의 부드러운 요구에 아가씨들이 조용히 방을 빠져 나가는 순간, 난 내 세치 혀를 원망하고 있었다. 큰 결례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이 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더 빨리 들었지만, 마땅히 댈 핑계거리도 없는 궁색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다시 날 천천히 쳐다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순간에 고개를 떨구고 바들 바들 떨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녀를 마주 바라다 보며 담배를 물었다.

"김 대리님... 나랑 애인 하고 싶어요?"

"네에?...."

말을 못들은 게 아니었다. 단지 순간적으로 마땅히 할 말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 애인 합시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돈이 많아서 오는 오만함만은 아니었다. 그 만큼 그녀는 여자로서 상당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고, 자기 자신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근데 난 김 대리님의 신상 명세에 대해서 잘 몰라요. 단지 어느 대학을 나왔고 무슨 일을 했으며, 성격이 어떻다는 것 정도밖에..."

"그게 다 아닌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난 그녀에게 맞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요?...호호호...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말이 길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어린 애들도 아니었고, 그런 첫 만남도 아니었다. 나도 갓 서른이지만, 이미 30 대에 들어선 나이었고, 그녀와 난 업무상이었지만, 전화로 수십 시간을 통화해서 상대의 의사 표현 방식이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더욱이 서로 상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수준을 감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가씨들 다시 불러도 되겠지요?"

"왜요? 늙은 애인하고는 술 맛이 없나요?"

그녀의 그런 여유와 자유스러움이 좋았다. 우린 그냥 웃었다. 내가 생각해온 '우리' 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냥 좋았다. 

솔직히 첫 만남에서부터 이런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분이 짜릿한게 그저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녀와 나의 투자는 나날이 승승 장구하고 있었다. 별다른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작전도 동원하지 않는, 그야 말로 정석 투자로 그만큼의 수익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그녀와 난 손발이 잘 맞았다.

“성수씨, 우선주쪽은 어떻게 보세요?”

호칭이 바뀌었고 목소리의 톤이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글쎄요, 전 그 쪽은 뭔가 꺼려 지는군요”

“그래요? 그럼 제가 포기하죠…호호호”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 우선주 파동으로 수익률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 갔을 때도 그녀는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뒷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서 조심스러워 하면, ‘남자가 뭐 그런 것 가지고 의기소침 해지냐’ 며 나를 위로 했고,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나에게 신뢰를 주고 있었다.

연인이 되기로 선언하고서도 사적인 관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이게 뭔 연인인가’ 하고 의아해 할 때 즈음이었다.

“저녁때 뭐해요? 총각이…”

“영화나 한편 볼까 하는데요…”

결국 우리는 ‘같이 보자’ 는 데 합의를 했고, 그야 말로 학수고대하던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여자의 변신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흰색 난방에 파란색 가디건 그리고 청바지. 언뜻언뜻 갈색이 빛나는 긴 웨이브 머리는 흰 머리띠로 질끈 묶고 나타난 그녀를 보고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평소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늘 점잖은 정장을 화려하게 차려 입던 그녀가 그런 수수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화사했다...

얼굴의 주름이야 평소에 피부 관리를 워낙 잘해서인지, 별로 보이지도 않았고 단지 눈 밑만이 다소 나이를 말해주는데, 그것도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아서… 대체적으로 뭐 나보다 2,3살 정도 많아 보인다 해도 지나쳐 보이지 않았다.

전에 두 번 보았을 때는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흔히들 중년의 여인들이 약간의 살집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몸매가 꽤 출중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짐작을 했었는데,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녀의 몸은 상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그러나 그런 수수한 차림에도 그녀에게는 고고함과 우아함이 묻어 나왔다.

아마도 그녀만의 매력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그녀는 내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다. 물론 평소의 그녀의 스타일이라면 아주 좋은 식당에서 분위기를 낼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내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내가 하자는 대로 별 불평 없이 잘 따라 주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갈비 집에서 소주와 함께 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소주를 제법 마시는 편이었고, 그렇게 죽이 맞은 우리는 4병의 소주를 비우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그녀의 그런 편안함이 우리 사이를 짧은 시간 안에 가깝게 만들어 주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서로의 얘기를 많이 했고, 난 그때서야 그녀가 젊었을 때 울산에서 모델 생활을 했다는 것과 어린 나이에 부산의 큰 부자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고 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남자하고는 30도 못 되어 이혼을 했고 이후에 위자료로 받은 거액의 돈으로 주로 부동산과 사채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동산과 사채로 돈을 버는 데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또 운도 많이 따라서 상당한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고 말을 하면서 왠지 어색한 미소를 띄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만큼 그렇게 오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끝내 언급을 하지 않았고, 지금 자기가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돈도 전부 자기의 돈만 있는 게 아니고 일부만이 자기의 돈이며 다른 사람들의 돈을 대신 자기가 관리하고 있다고도 했다.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녀는 동물적으로 투자를 잘 하고 있었고,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재산 관리를 부탁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를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렇듯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다가가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둘만이 만나는 회수가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주로 내가 퇴근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거나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이 둘이 하는 일의 다였지만 그 나름대로 난 즐겁고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멀리서만 바라보던 그녀와 같이 원숙한 매력을 지닌 여인과 같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들해지기 시작했는데, 우연히도 하나의 공통된 취미를 찾아냈고 그 이후에 우리는 주말만 되면 같이 낚시를 다니는데 혈안이 되어 버렸다.

나나 그녀나 둘 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빈둥거리는 낚시는 더없이 좋은 취미거리였다.

낚시를 다니면서 우리가 더욱 기쁘게 느낀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씩 더 밀접해 질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남녀관계가 그렇듯이 둘만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가 깊어져 갔고, 나이의 차이를 넘어서는 이성으로서의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의 신분이 부여해 주는 권위나 도도함 속에 그녀만의 소박함과 진솔함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만나고 같이 둘만의 여행을 다니고 했지만, 그녀와 난 평범한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모습을 갖지는 못했다. 아마도 묘한 관계가 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저 예의를 지키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렇듯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하던 우리의 관계가 좀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비로 인해서 낚시배를 타지 못하게 된 2년 전 이른 봄날 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허름하나마 부둣가에 횟집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스산하고 차가운 밤 기운을 피할 수 있었고, 또 오랜만에 그렇게 둘이서만 소주 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날 따라 그녀는 술을 마시는 속도가 유난히 빨랐고, 평소의 그녀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가 나에게 뭔가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하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성수씨, 우리 애인 맞아?”

혀가 꼬인 목소리였다.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러나 그 눈빛보다 훨씬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은 그 말이었다. ‘애인이 맞냐’ 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더욱이 그녀가 먼저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작지않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서로 애인을 하자고 해놓고서 그저 만나서 멍청하게 영화나 보고 저녁이나 먹고 낚시나 다니고 하는 것이 나 자신도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졌다.

난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술잔만 기울였다.

“성수씨!”

그녀의 억양이 약간 거칠어졌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난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가 움찔하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뭔가 먼저 얘기하기에는 혜진씨가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높은 곳에 있었어요…”

“내 마음을 읽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랬다면, 내가 너무 소극적인 거지요?”

”그만큼 혜진씨는 나한테 과분한 여자라는 얘깁니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 쌀쌀한 날씨에 진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오늘 사고 치자. 성수씨”

그녀는 약간은 흐트러진 자세에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날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내 젊은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잔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쥐자 그녀도 다른 한 손으로 내 손등을 감싸 쥐었다.

따스한 손이었다. 그간의 마음 졸임이 한 순간에 보상 받는 순간이었다.

그래… 어쩌면 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관습이라고 하는 틀에 얽매어 진실을 외면하려 했던 것뿐이었는지도… 물론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을 수 있지만, 여하튼 사랑에 어떤 배경이나 조건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리라… 난 마음속 깊이 그녀를 흠모하고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저 무덤덤한 척 나를 기만했고, 그녀 또한 가슴 졸이게 한 것이었다.

난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그녀에게 미소를 보였다.

“혜진씨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 혜진씨 많이 사랑해요”

가슴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고, 홀가분해졌다. 

진작에 그녀에게 보여 주었어야 할 마음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윽한 눈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술만 마시고 있기에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밤의 바다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그녀는 기대듯이 내 팔짱을 끼고서도 춥다고 오들오들 떨었지만, 난 그녀와 어떤 묵계 후에 그렇게 걷는다는 현실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내 첫사랑을 얘기했을 때, 그녀는 내 얘기를 다 듣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종말은 참 슬퍼요…’ 라고 읊조리던 여자였다.

그렇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40을 넘어선 중년의 여인이 가지고 있기 어려운 그런 순수한 감수성. 내 또래의 여인과 만나고 있다는 착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짐을 풀어놓은 여관이 다가오자 우리의 걸음은 빨라졌고, ‘춥다’ 고 뛰듯이 가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난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방을 취소하지는 않고 그냥 내가 그녀의 방으로 함께 들어갔고, 그녀는 아무런 반대 없이 자연스럽게 허락했다.

젊은 혈기는 긴 여로를 오랫동안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녀를 뒤에서 안아 탄력 있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매만지면서 이미 내 청춘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크고 잘 발달된 엉덩이에 내 물건이 밀착되자 온 몸의 신경세포가 민감하게 반응했고, 난 그녀의 몸을 서서히 안아갔다.

그녀의 입에서 들뜬 신음이 흘러나왔고, 난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그녀의 몸을 더듬어 갔다. 그녀는 몸을 비틀었지만, 내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사타구니 불두덩이는 넓게 두드러져 있었다. 검정 색 면 바지의 단추를 풀자 레이스가 달린 흰색 실크 팬티가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고, 난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팬티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따스했다.

그녀의 음부는 부드럽고 풍성한 털로 무성히 덮여 있었고, 스칠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하는 마찰음이 감미롭게 들렸다. 손을 더 밀어 넣어 밑으로 내려가자 그녀의 이슬 머금은 꽃잎이 날 기다렸다는 듯이 훅하고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성수씨!”

그녀의 목소리는 몸만큼 떨리고 있었다.

“혜진씨”

난 내 조바심을 가장하려고 최대한 천천히 행동했지만, 그렇다고 흥분이 가라앉지는 않았고, 손에는 점점 더 땀이 찼다.

그녀의 잠바와 티를 벗기자 하얀 브라자 밑의 뽀얗고 큰 가슴이 크게 출렁이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브라자를 벗기고 그녀의 가슴에 손을 대자 그녀는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여 마셨고 순식간에 몸이 경직되어 갔다.

그녀의 가슴은 수유를 한 유부녀라고 하기에는 억울할 정도로 탄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가슴을 번갈아 손과 입으로 애무해 나가자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교성은 커져만 갔다.

남은 바지마저 벗겨 버리자 오히려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 왔다.

그녀의 입술은 달고 부드러웠다. 타액은 달콤했고 혀는 입술보다 감미로웠다.

마지막 남은 팬티를 벗기자 그녀의 화려한 육체가 드러났다. 도저히 40대의 여성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뛰어난 몸매였다. 탄력은 좀 떨어졌지만, 168cm의 키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발달되어 있어 왠만한 젊은 애들보다 더 좋은 균형 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뻤다.

침대에서 그녀의 입술을 애무하면서 더듬어 내려간 그녀의 비소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번의 마찰에도 꽃잎이 곱게 벌려졌고, 그녀의 몸은 뜨거워져 갔다.

내 심장은 마구 쿵쾅거리고 있었고, 첫 섹스의 기대와 흥분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아마도 내가 소유할 수 없을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 앞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한 손과 입으로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자 그녀의 입에서 여린 신음이 흘렀고, 내 혀가 그녀의 배꼽을 지나 잘록한 허리를 스치자 그녀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 쥐며 그녀의 꽃잎에 입을 맞추자, 그녀는 바들 바들 떨었고, 내 혀가 그녀의 비소의 깊은 곳을 찾아 들자 큰 교성을 내 질렀다.

“성수씨~, 아하…. 아…. 아…. 좋아요…. 아흑…..”

그녀는 머리카락을 쥐어 뜯듯이 잡으며 고개를 크게 흔들고 있었다.

난 그녀를 벼랑까지 몰고 가고 싶었다.

허벅지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무릎을 이빨로 잘게 깨물자, 그녀는 참을 수 없었는지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안겨 왔다. 입술에서는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나… 못 참겠어요… 그만… 그만… 어후….”

그녀는 내 혀가 그녀의 귀를 애무하자 내 몸을 세게 껴안으며 몸을 비틀었다.

“사랑해요… 혜진씨….”

“저도요… 저도… 성수씨 사랑해요….아… 하…. 성수씨….”

그녀의 몸은 불덩이가 되어 있었고, 음부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넘쳐 흘렀다.

난 그녀를 눕히고 다시 비소를 애무해 갔다.

그녀는 민감한 여인이었다. 동굴이 뜨거운 열기를 담은 애액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달콤했다. 모든 게 달콤했다. 내 혀끝에 느껴지는 그녀의 피부에서 묻어나는 모든 것이 달콤했다. 난 그녀가 나에게 어떤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언제 어느새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깊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나도 몰랐다.

단지 그녀와의 사랑이 날 전율하도록 기쁘게 했고, 내가 그녀를 더욱 기쁘게 해야 한다는 욕심뿐이었다.

난 그녀를 반드시 눕히고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실었다. 내 육중한 몸 때문에 그녀는 ‘으음’ 하며 숨을 내쉬었지만, 몸은 더욱 밀착되어 왔다. 그녀의 두 다리가 조심스럽게 벌어지고 내 물건이 그녀의 꽃잎을 자극하자 그녀는 더운 입김을 몰아 쉬며 입을 맞춰왔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가랑이를 파고 들던 내 물건이 좀처럼 그녀의 입구를 찾지 못하자 그녀가 살며시 잡고 자신의 구멍으로 인도했다.

뜨겁고 질펀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남자와 경험이 없어서인지 맞물려오는 느낌은 좁고 탄력이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허리를 천천히 움직여 구멍을 넓혀가자 그녀의 반응이 조금씩 격렬해져 갔고, 입과 코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츰 신음이 흘렀고 어느새 커다란 교성이 되어 방안을 울렸다.

“성수씨…. 아흑…. 아… 아파… 어욱…. 너무 커….아파요… 살살….네… 살살 해줘요…… 아우….아파요…………………어우우….아학…..아…아…좋아… 아… 어우… 그래요… 그래요….. 아…. 아… 좋아….성수씨…”

그녀는 등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강하게 날 끌어 당겼고, 중년 여인의 뜨거운 몸은 맹렬하게 반응 하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난 그녀의 몸을 때리고 또 때리는 성난 파도와 같았고, 그녀는 그 파도에 몸을 흐느적거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열꽃이 피어난 얼굴은 빨갛게 변해갔고 나중에는 열기와 열정에 차라리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그녀는 그 민감한 만큼 오르가즘을 격정적으로 느끼는 여인이었다. 한번, 두번, 세번… 절정의 오르가즘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켜 갔다. 미치겠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했다. 죽여달라고도 했다. 영원히 해달라고도 했다. 차라리 이렇게 죽고 싶다고도 했다….

나 또한 열락에 빠져서 허덕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의 억제가 차라리 비굴해지는 느낌이 들 때 난 내 모든 것을 그녀의 그 깊은 구멍에 끝없이 흘려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애인이 되기로 한지 3개월 만에 그렇게 뜨겁게 몸을 섞었다. 

난 행복했다. 나이 나 신분의 차이, 뭐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아름답고 황홀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마력이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숨을 고르고는 내 가슴을 파고 들며, ‘고마워요’ 라고 했고, 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사랑해요’ 라고 했다. 온 몸에 환희 같은 기쁨이 번져 나갔다.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 둘의 관계가 깊어 지기는 했지만, 나보다도 그녀가 더 빨리 냉정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그 나이가 되면 그럴 수 있는 자제력이 있는 건지 한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난 답답했다. 그녀를 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먼저 다가가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와 나의 투자는 계속 작지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난 어느 누구의 구좌보다도 그녀의 구좌 관리에 정성을 다 쏟았고, 역시 정성을 들인 만큼의 결실은 거두어 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난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녀가 날 찾기 전까지는 찾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내 마음속의 갈증은 커져만 갔다.

왜? 라는 의구심이 내 가슴에 자꾸 커져 갈 때 불현듯 이 과장이 나에게 했던 뜻 모를 말이 생각난 건 무슨 까닭일까?…..

"그래, 몰랐구나... 아주 대단한 여자지... 후후후"

’아주 대단한 여자’ 하고 했고, 조소의 웃음도 빠뜨리지 않았었다.

혼란스러웠다.

난 서해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뜨겁고 황홀한 밤이었다. 난 진실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있었고 어찌 보면 신분의 차이도 있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 가슴을 파고 들며 ‘사랑해요’ 라고 중얼거렸다. 

머리를 크게 흔들어 봐도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는 계속되었고, 오히려 수익률은 그 이전보다 좋아졌다.

난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그녀에게 떳떳했다.

물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씩 커져 갔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갈증이 커진 어느 날이었다.

“여보세요?”

언제나 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 경쾌하기까지 했다.

“성숩니다”

“아… 성수씨, 잘 지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격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 뭐합니까?”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움으로 어색함을 감추고 있었다.

“후후… 왜요? 저녁 같이 할래요?”

그렇게 해서 근 2개월 만에 난 그녀와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역시 아름다웠고 화사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시면서 우리는 일 얘기와 그간의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많이 궁금했어요…”

난 조급해지고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그런데 왜 연락이 없었단 말인가?

“오늘 시간 괜찮아요?”

그녀가 말 대신 눈을 슬쩍 감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자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오래 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이 뜨거웠고, 날 사랑하는 마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난 그간의 내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았고,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더 화려해졌다. 애무의 농도도 더 진해지고 사랑의 감흥도 더 깊어진 듯 했다.

내가 그녀의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하면, 그녀는 더 오랜 시간을 내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해 주었고, 내가 힘겨운 섹스를 끝내기 위해 사정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날 멈추게 하고 ‘성수씨 아직 이요… 조금만 더 해줄래요?’ 라고 말하며, 빨갛게 홍조를 띄었다. 사랑스러웠다.

그날도 우리는 몇 번씩 오르가즘을 느꼈고, 난 그녀의 질 안에 내 분신들을 깊이 깊이 흘려 보냈다. 뜨겁고 질펀한 섹스였다. 

오래 만의 길고 억센 섹스 후에 지친 몸을 부둥켜 안고 잠이 들었고, 환한 아침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할 때 즈음에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녀는 그간의 무관심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난 그녀의 헌신적인 섹스로 인해 모든 것을 잊었다.

다시 볼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면서 난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게 깊고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일부의 돈을 전환 사채에 투자 할 것과 코스닥 비중을 높일 것을 권유했고, 우리의 선택은 아주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 

그녀와 내가 한 팀이 되서 투자를 한지 겨우 9 개월여 만에 그녀의 자금은 거의 2배로 불어났고, 행복해 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몇 번을 물어왔지만, 난 그저 그녀가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그녀에게 뭔 보답을 요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시장의 중심 축이 거래소에서 코스닥으로 넘어 가면서 시장은 많은 부작용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주가 조작이었다.

거래소 상장 기업들보다 자본금이 적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벤쳐 기업들이 많았기에,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펀드들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작전이 횡횡 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기업의 내재 가치를 몇 배, 몇 십배 상회하는 주가를 형성한 기업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전 정보를 가지고 몇몇 기업에서 적게는 100% 가량, 많게는 500% 가량에 이르는 수익을 올리기도 하는 횡재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감각도 뛰어 났지만, 우리들 속어로 좋은 정보들을 많이 물어 왔고, 난 그녀가 전해준 정보를 분석하고 조합해서 적절히 포지션을 운영하고, 또 일부는 시장에 흘리는 실무 역할을 했다.

벌어 들이는 수익이 점차 기하학적인 단위가 되어가면서, 난 시장에서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우리가 혹시 작전을 구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난 당혹스러웠다. 사실 우리는 일종의 루머를 퍼뜨리는 걸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이라고 올가미를 씌우면 그렇게 매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송 여사님…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전화의 반대 편에서는 그녀의 웃음 소리와 ‘괜찮아요’ 라는 말 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난 우리의 거래 기록들을 다시 확인하고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점장의 호출이 있었고, 대비책을 준비하라는 오더를 받았다. 기분이 참담했다.

난 내 자신의 명예와 회사의 이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는 다른 잘못이 없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자, 지점장이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손을 이끌었고 우리는 송 여사와 첫 대면을 하고 갔던 일식 집으로 향했다. 모든 서비스를 마다하고 방에서 단 둘만이 많은 술을 마셨다.

“난 김 대리가 실력도 있고, 좋은 전주도 잡고 있고 해서 일일이 체크를 안 했었는데…”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됐어? 이 사람아…”

지점장은 처음부터 상황을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있었다.

“지점장님, 전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도 아직 모르겠어요?”

난 약간의 고집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참… 여하튼 일단 상황을 보자구”

사실 더 이상 할 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말을 하고자 한다면 아마 밤을 새고도 모자를 것이고, 안 하려고 한다면 한 마디도 필요 없는 뻔한 얘기였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택시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이미 시침은 1시를 지나고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난 그녀의 청담동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빌라의 입구에서 난 망설였다. 이 시간에 그녀를 찾아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녀는 이 시간에 자고 있을 텐데 어떻게 깨우나… 부터가 문제였다.

난 한참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고, 안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접니다. 김성숩니다”

그녀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얇은 잠옷에 가운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 주며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고 많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결코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녀를 보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넓은 거실의 쇼파 한쪽에 젊은 여자 하나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그녀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님이 계시군요”

“우리 딸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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