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1 / 0198 ----------------------------------------------
츠부미
*
그 집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츠부미는 늘 잠을 잤다. 약에 상한 몸을 회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츠부미는 밥을 먹고 나서는 얼마 움직이지 못하고 늘 잠들었고, 그렇게 쥐 죽은 듯 잠든 츠부미는 열 시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의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던 모모는, 아마 체내에 들어갔던 좋지 않은 약물을 해독하느라 몸이 쉽게 피로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서우에게 말해주었다.
"에리를 못 구해서 화 나는 건 알겠는데, 그걸 츠부미한테 뭐라고 하지는 마, 그게 저 애 잘못인가? 게다가 저쪽은 네가 널 구해준 거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텐데."
"......"
서우는 츠부미를 보며 약간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왜 구해온 것이 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지만, 츠부미를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츠부미랑 나름대로 쌓아온 정이 있어서 차마 아이의 앞에선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츠부미는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서우는 그 집에서 조용히 잠적하는 며칠이 지났다.
"우웅... 몇 시지...."
잠에서 일어난 츠부미는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상당히 찌뿌듯하고 전신에서 묘한 둔통이 느껴졌다.
"흐아.."
거기에 몸이 저리지 않는 곳이 없어서 츠부미는 작은 손으로 마른 제 무릎을 꾹꾹 주무르다가 사방을 둘러 보았다. 점심을 먹고 또 곧바로 자버린 것인지 저녁이엇는데, 이렇게 오래 잤다고 해도 분명히 다시 눈을 감으면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왜 이렇게 졸리지....."
츠부미는 길게 하품을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요 근래 먹고 자기만 해서 조금은 동그랗게 살이 오른 배를 만지다가 츠부미는, 부스스하게 뜬 머리를 하나로 묶고는 밖으로 나갔다.
엊그제 잠에서 깨어나자 무척이나 배가 고팠지만, 냉장고를 마음대로 뒤지기가 뭐해서 가만히 쇼파에 앉아 있었더니, 어쩌다가 잠에서 깬 에리가 츠부미에게 왜 자지 않고 쇼파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배가 고파서... 라고 말했더니 유리는 깜짝 놀라 츠부미에게 냉장고에서 뭔가 꺼내 먹지 그랬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음식 뒀다 뭐할라구? 조만간 유통기한 지나면 버릴 거 투성이야.'
'그래두, 허락 없이 냉장고를 뒤지면 안될 것 같아서요...'
'응?'
'여기는 유리님 집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멋대로.. 으학!'
'뭐어? 으아아으아응, 츠부미쨩- 카와이이이이이!'
'유, 유리니임...!'
'님은 무슨 님이야, 언니라고 불러... 그래, 헉헉. 어서 날 언니, 언니라고 불러!'
'네.. 네, 언니!'
'으앙, 츠부미.. 등짝, 등짝을 보자!'
그렇게 말하는 유리의 모습은, 좀비 사태가 생기기 전 언젠가.... 사탕을 줄 테니 '오니쨩'이라고 한 번만 불러달라고 했던, 아랫집의 안경쓴 남자를 생각하게 했다
어쨌든, 유리는 츠부미를 안고 부둥부둥 거리다가 배고프면 언제든지 음식을 해 먹으라고 말했다. 거기에 아예 우리 집에서 사는 게 어떻겠냐며 츠부미를 끌어 안고 마구 뒹굴었다. 그 덕에 츠부미의 작은 머리는, 거의 비슷한 크기 같은 느낌인 유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게 되었는데... 츠부미는 사실 그것에 꽤나 놀랐다. 늘 같이 지내던 에리의 알몸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왠지 그런식으로 닿은 것은 처음이어서...
"......"
츠부미는 슬쩍, 옷 사이로 자기 가슴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가 곧바로 다시 옷을 탁탁 놓고 한숨을 폭 쉬었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 후, 아무래도 츠부미도 부모님을 잃고 여기로 쫓기고 저기 쫓기다 보니 자기 몸이나 이성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츠부미의 나이는 이제 13살, 충분히 자기 몸의 변화에 대해 고민할 나이이기도 햇다.
그런데 그런, 여성 신체 성숙의 끝판왕이라고 보아도 좋을, 유리나 모모를 보다 보니....
"흐아아.."
츠부미는 다시 한숨을 폭 쉬면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 다음 씨리얼을 들이 부었다. 그리고는 적절히 씨리얼이 조금 물렁해졌을 때 먹으면서 이것저것, 이 집에 와서 본 것을 떠올렸다. 친해 보이던 유리와 서우... 에리와 서우.
물론 츠부미도 에리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왜 삼촌이 그랬는지, 언니인 에리를 데려간 것인지.. 츠부미도 무섭고 걱정 되었지만 어린 츠부미의 머리로는 아직까지 '무시히메'가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못하는 부분이 조금 있었다.
삼촌과 연구소 사람들이 지겨울 정도로 중얼거리던 무시히메, 연구소에서의 일을 떠올린 츠부미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부러 열심히 꾸역꾸역 씨리얼을 입 안에 밀어넣고, 씽크대로 가서 그릇과 수저를 닦은 다음, 잠시 쇼파에 앉았다.
츠부미는 유리를 굉장한 부자 정도로 생각했다. 일단 대피소도 관리자도 유리였던데다가..
'유리님이 부러워, 진짜 좋을 것 같아.'
바깥 상황은 당연하게도 혼란스럽다고 나고야에서 얼핏 들었다. 물론 나고야에서도 본 것도 있고... 집이 있던 곳 외에는 부랑자나 피난민이 넘치고 있었고, 범죄는 일상이어서 아이 보호소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그 범죄의 표적이 되어 죽고 있었다. 연구소에 끌려간 것만 제외하고는 츠부미는 확실히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연구소에 끌려 갔을 때에도, 츠부미는 그저 보통 인간으로 분류되어 혹시 에리와 같은 것이 아닌가 몇 가지 자잘한 검사와, 고통스럽긴 했어도 별 거 없는 실험만 받았을 뿐이니까.. 츠부미는 잠시 집을 돌아보다가, 이 정도로 크면 잠깐 TV를 틀어도 그닥 시끄럽지 않을 것 같아, TV를 틀었다.
그렇게 얼마나 예전 방송을 재방송해주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잠이 쏟아진 츠부미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가는 길에 뭔가 이상한, 왠지 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
츠부미는 이 소리가 무엇인가 싶어 그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복도의 끝에 있는 것은 욕실이었고, 물소리에 섞여... 츠부미의 귀에는 앓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욕실에 다가갔을 때 보이는 것은 알몸으로 서우에게 안겨 있는 나나였다.
"!"
너무나도 적나라한 그 모습에 츠부미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어버버, 입도 가리지 못한 채 쩍-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 보았다.
"흐앙, 으아아앙.... 서우님.....!"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처음이어서 그런가..... 엄청 조이는데요? 누구랑 안 했어요?"
"네, 네에에엣... 안 했어요, 힉...! 아무랑도... 으핫, 악!"
츠부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둘은 츠부미가 온지 모르고 있었다. 서우의 경우에는 충분히, 츠부미가 근처에 왔을 때부터 알만도 했지만, 꽤나 이런저런 일로 쌓여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나나를 탐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 서우는 츠부미가 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츠부미의 발소리는 몹시도 작고 가벼워서, 틀어놓은 물소리에 섞여 전혀 들리지 않았다.
"...으...!"
츠부미는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며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그렇게 츠부미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은 평소와는 다르게 유리가 직접 차리고 있었는데, 츠부미의 보송보송했던 얼굴, 정확하게는 눈 밑에 깊은 그늘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츠부미에게 다가왔다.
"얼굴이 왜 그래? 잠 못 잤니?
"네? 아... 예, 조금."
"잠 설치면 안 돼! 피부의 적이야...... 넌 어려서 아직 괜찮겠지만, 그래도 조심해라 20살부터 훅 가기 시작한다."
"네? 네네..."
어린 츠부미는 아직 모를 말이었지만, 츠부미는 애써 헤헤, 웃음을 터뜨리다가 유리가 주는 반찬을 식탁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츠부미가 본 것은, 나란히 같은 방에서 나오는 서우와 나나였다. 마악 방에서 나오던 서우는 츠부미와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잘 잤어?"
"아, 네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서우는 나른하게 웃으며 츠부미가 조금씩 조금씩 옮기고 있던 반찬을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래서 뒤에 나온 나나와 모모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헌데 아침에는 츠부미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도 없고, 츠부미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고기가 떡- 하니 메인으로 올려져 있었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고기가 와서 말이지, 후후. 피 뚝뚝 흐르게 구워왔어."
뿌듯하게 웃는 유리를 보다가 츠부미는 고기를 보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내렸다.
'...난 고기보다는 생선이 좋은데....'
하지만 츠부미는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어딘데? 고기든 뭐든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츠부미가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젓가락을 집는 순간이었다. 나나가 밥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전 바싹 굽는 게 좋은데요!"
"바싹 굽기 귀찮아!"
"으앙, 유리 씨."
"애교 부려도 몰라."
"우우우우웅. 피 뚝뚝 흐르는 거 싫어요, 싫어어어어."
"이미 후라이팬 물에 담궜지롱."
"악, 안 돼!"
나나는 대 놓고 볼을 부풀리면서 반찬에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 츠부미는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자기 보다 어른이면서, 어떻게 반찬 투정을?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물론 거기에는 어제 그 장면에 대한 영향도 있었다.
츠부미가 아예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행동의 의미는 알고 있다.
츠부미는 갑자기, 나나가 매우 못마땅해 보였다. 그녀가 어른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고, 왠지 모르게 자체가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왜 불쾌한지, 그리고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
츠부미는 앞에 놓인 고기를 애써 기분 나쁜 표정을 피면서 씹어 먹었다.
*
"잘 가, 자주자주 와."
오래간만에 만난 세 여자와 헤어지고 다시 츠부미와 함께 교단으로 돌아왔다. 사쿠라는 츠부미를 보자마자 서우님의 딸이었냐며 - 딸마저 사랑하겠노라고 눈물을 글썽이다가, 그게 아니라고 말하자 그제야 활짝 웃었다.
"다, 다행이에요. 에헤헷.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츠부미요. 츠부미, 인사해....어, 아마 널 이래저래 도와주실 거야, 이쪽은 사쿠라 씨."
"아, 안녕하세요.."
"서우님의 딸이 아니라니까 더 예뻐 보이는구나! 흐후훗."
츠부미는 서우를 계속 뒤돌아 보는 듯했지만, 서우는 돌아오자마자 터지기 시작한 일 때문에츠부미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게 되었다.
<서, 서우님! TV... 지금 당장 TV를 보세요!>
"TV요?"
헤어지고 나서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사쿠라의 전화가 왔다.
서우가 잠시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바로 TV를 틀자, 딱 켰을 때의 쳣 화면에서 긴급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기껏해야 연구소 폭파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더니, TV에 나오고 있는 것은 후지야마였다.
"예, 여러분께 이렇게 긴급하게 발표하게 될 것은......"
발표하고 있는 사람의 바로 옆에서 징그럽게 웃고 있는 얼굴은 마치 서우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우는 이를 빠득- 갈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기자회견장을 습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좀비를 끌어들이는 여자, 무시히메에 대한 발표입니다. 여기.... 아케라 에리 씨를 보아주세요. 이제까지 극비로 숨기고 있었으나, 연구결과가 진행 상당히 진행 되어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순간 화면에 뜨는 것은 에리였다.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대비했는지 에리는 기절한 듯 잠들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시히메 중 한 명입니다. 이 사람의 특이한 점이라 하면.... 보시다시피 좀비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상 속에서 에리와 좀비는 유리 상자에 같이 있었다. 그럼에도 좀비는 에리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서우는 겨우겨우 분노를 삼키며 겨우 그 방송을 끝까지 보았다. 그래서 에리를 어디에 숨기고 있는 거냐, 어디에 있는 거냐....!
그렇게 생각했을 때, 후지야마가 마이크를 잡아서 단상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마치 서우에게 보여주듯, 비열하고도 지저분한 미소를 질질 흘렸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실, 도쿄 연구소를 테러한 테러범에게 전합니다.. 흐흐. 히히히......"
============================ 작품 후기 ============================
츠부미 편은 이걸로 끝나고 다음 편 부터는 능력자 vs 능력자 편이 됩니다.
잊어버리지 않게 후기에 잘 적어놔야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