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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불단을 차린 뒤에 아키오는 뭔가 다른 것을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서우가 도와줄 것이 없어, 서우는 밖으로 나와 슬슬 마을을 걸어다녔다. 지나가면서 자경단과 만나기도 했지만 어제 보았기 때문인지 딱히 뭔가 말을 걸지 않았고, 나름대로의 허락[?]을 얻은 서우는 마을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게 뭐지?"
...여자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젊은 여자가 없었다. 거의 다 중년, 노년..... 이 마을에서는 아키오가 천연기념물, 아니 그 이상의 희귀물 수준이었던 것이다.
"으응? 어제 밖에서 왔다는 사람이 저 사람인가 보네.."
"잘생겼네, 흐후훗. 뭐하는 사람이래?"
"글쎄, 그냥 뭐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겠지. 아키오 씨한테 전해줄 게 있어서 왔다는데?"
걸어다니면 다닐수록 중년미가 흘러넘치는 유리가 엄청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우는 그저 눈을 감았다. 시간하는 거라면 몰라도 역으로 다수의 중년 여인들에게 시간 당하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키도 크네~"
"어깨 좀 봐, 등도 탄탄해 보이고 말야. 으흠흠."
'...난 여기서 빠져 나가야겠어.'
그렇게 일단 그 자리를 피하자고 생각하며 몸을 빼던 서우는 어제의 그 노인과 딱-하고 마주쳤다.
"으잉? 아직 안 갔구먼. 어제 고마웠네, 아키오는 일어났는가?"
"아, 예에."
"..그렇구먼, 근데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가려구...?"
"아, 그... 아키오 씨 집 안에 있는 곳에 머물기로 했는데요."
"으잉, 그래? 그 컨테이너에 머물기로 했다고?"
"예, 어떻게 이야기가 그리 되어서."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 같지만 어찌되었건 아키오의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생긴 것도 아주 조금이지만 확실히 닮아있었다.
"........"
서우는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키오도 늙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아무리봐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아버지쪽이 미남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노인이 서우에게 상자 한 개를 덥석 쥐어주었다.
"....?!"
"이거 약인데, 아키오에게 꼭 전해주게, 껄껄껄껄!"
"아.. 음......네."
"그 애가 한번 나왔으니 또 언제 다시 나올지 몰라... 모른다구우."
'..아니 그런 희망적인 말을.'
어쨌든 말하는 것도 이상한 게 노인은 확실히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이 심한가 보다, 그새 웃으며 서우에게 상자를 쥐어준 노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거리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서우는 잠시 상자와 보건소를 번갈아 보다가 마을에서 벗어나 방어벽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그것을 살펴보았다.
"영 부실하잖아?"
뭔가 탄탄하다는 느낌보다는 지점토를 억지로 세워놓은 느낌.. 아무래도 급하게 세우다 보니 거의 콘크리트 범벅일 뿐 제대로 된 철골도 안에 심지 못했으리라.. 서우는 귀를 대고 톡톡 벽을 두드렸다. 왠만한 건물의 벽만큼 두꺼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때 그 정도 녀석들이 오면 무너질지도 모르겠는데...?"
대피소에 있을 때, 그곳을 습격했던 녀석들이 대피소를 미친 듯이 두드리던 것을 생각하며 서우는 머리를 떼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며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정부에서 내보내는 뉴스를 보았더니, 일본 최고의 능력자 [카토 토지로]가 오사카 방어선을 넓히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돌아와 다른 능력자들과 함께 도쿄 방어선을 넓히는데 힘쓰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최종 목표는 다른 도시와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해 방어벽을 설치하는 것이며 세 명의 능력자와 자위대가 밤 낮 가리지 않고 좀비를 토벌하고 있다. 도쿄 또한 방어벽을 넓히기 위해 ▣ 모양으로 계속해서 방어벽 밖에 또 다시 방어벽을 세움으로써 사람들이 살 공간을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그래서 이렇게 대충 세운 건가, 나라 자체가 바이브레이터인 섬 주제에. 지진 오면 그냥 무너질 텐데 패기 보소."
서우는 손을 벽에 대 보았다. 왠지 와이어를 한번 강하게 뽑으면 빨대라도 꽂는 것처럼 픽- 하고 뚫릴 것 같은 느낌이어서 살짝만 잘라볼까 하다가 케이크도 아닌데, 귀찮은 일이 생길지 몰라 그만두자고 생각하며 손을 접고 벽에 거칠거칠한 부분을 잡고 위로 올라가다가, 끝 즈음에 올라왔을 때 팍- 하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적당히 철조망을 밟고 그 위로 올라서 넘게 되어, 아슬아슬하게 담을 넘어 그 위에 선 서우는 밑을 슬쩍 내려다 보았다. 벽의 높이는 하필이면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11M. 서우는 가볍게 머리가 어질해짐을 느꼈지만 밑의 광경에 더더욱 말문이 막혔다.
"얽."
밑은 새까맸다. 말 그대로 새까맣다고 할 정도로 검은 머리카락 달린 좀비 투성이었다. 적어도 벽의 10m정도는 좀비들이 둘러싸고 있을 정도로 서로 바글바글거리면서 여기저기 머리를 박고, 헤메고 있었다. 아마도 이 벽을 지을 때 모여들었다가 자기들끼리 모여 뭉쳤는데 지능이 없다 보니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들끼리 밟고, 밟히고 또 넘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마치 파리 끈끈이처럼 모이게 된 것 같았다.
위에 있던 서우가 와이어를 뻗어 제일 큰 놈의 머리를 반으로 휙, 갈랐다.
"그어억- 그그극..."
"크어.....!"
그 소리를 감지했는지 또 자기들끼리 잠시 바글바글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또다시 조용해진다. 자세히 보니 발 사이에 밟히고 있는 좀비들도 있었는데, 몇 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밟히다가 척추라도 부러진 듯 싶었다. 그 외에도 밟혀 죽은 좀비가 꽤나 보였는데.. 왠지 저대로 내버려두면 거의 반은 혼자 밟혀 죽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돌연변이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벽도 무사할 것 같고... 서우는 다시 벽 안으로 들어와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아키오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문득 그 길 옆에 난 코스모스가 눈에 띄었다.
".....코스모스라."
사진에 배경은 거의 다 코스모스 밭, 서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것을 한 움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와이어로 깨끗하게 꽃을 잘라, 윗 부분이 망그러지지 않게 나름대로 곱게 줄기 부분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이것이 나름대로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이걸 가져다 주면 미연시처럼 친밀도 +5라도 될 듯한 느낌이랄까.
예상대로 그것은 틀리지 않았고, 코스모스를 들고가던 서우는 마악 문 앞에 서 있던 아키오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오셨군요. 저는 잠깐 나갔다 올게요, 불단에 올릴... 어..?"
서우는 말없이 코스모스를 내밀었다. 아키오가 큰 눈망울을 꿈뻑거리며 서우를 올려다 보자, 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이, 이건....코스모스잖아요. 어떻게.."
"거실에 있는 사진들 배경이 다들 코스모스길래요."
"아..."
코스모스를 받아든 아키오는 그것을 꼭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그 표정은 감동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의 작전이 정확히 먹혀 들어가자 서우는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아키오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불단 앞에 섰다.
'...오오, 일본 애니에서 본 거랑 똑같이 생겼네.'
많이 본 모양새에 나름 신기해 하며 이리저리 곁눈질로 살펴보자, 아키오는 그 앞에 앉아 코스모스를 내려놓았다.
"..제대로 된 장례식은 해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단이라도 차려주고 싶었어요."
불단 위에는 적지만 음식도 차려져 있어, 기도하면서 중얼거리는 아키오의 뒤에서 서우도 나름대로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네 아내는 내가 가질 테니 편히 잠들기를."
지금 당장이라도 요시자와가 들으면 저승에서 그대로 기어올라올 일이었지만 설사 기어올라고 한다 해도 그대로 저승으로 다시 빠른 택배로 보내 버릴 서우였기에 제멋대로 두 손을 감싸쥐고 기도를 한 다음 눈을 떴다.
**
저녁은 아키오가 식판을 들고 서우가 있는 곳으로 왔는데, 코스모스를 꺾어다 준 일 때문이었는지, 음식이 점심보다 더 호화스러웠다. 그리고는 재빨리 종종, 집 안으로 들어갔고 서우는 식판에 담긴 음식들을 다 해치운 다음, 작은 창으로 집안을 살펴보며 아키오를 관찰했다.
...또 그 인격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아키오는 태연스레 집을 정리하고 또 무언가를 분주하게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약이 좀 남았던 것 같은데...."
다른 인격을 기다리자고 한 결심은 잠옷을 입은 아키오의 뒷태를 보자마자 팍- 하고 사라지고 서우는 잠시 그것을 생각하며 가방을 뒤졌는데, 맙소사.... 대체 어디서 흘린 것인지 약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흘릴만한 곳이 없었는데..? 그때 감시인들에게서 도망치면서 흘린 것 같았다. 서우는 거기까지를 생각하며 가방을 탈탈 털다가 절망하며 그냥 앞으로 누워 이불을 돌돌 감았다. 남편을 사랑하는 미망인에, 나름대로 평화로운 상황이니 덮치면 소라 같은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와하하하, 미친..."
서우는 풀썩 누운 상태로 이불을 뒤집어 쓴 다음 불을 꺼버렸다. 차라리 이렇게 될 거 그냥 자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누운 상태로 어둠에 감싸인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무언가 느리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나 미약한 것이어서 서우는 금세 잠들었고....... 어느 순간 쿵- 하고 울리는 진동에 다시 눈을 떴다.
"....?"
서우는 잠들려 애쓰면서도 그것을 느꼈다. 뭔가의 진동, 무언가가 오고있다는 왠지 모르게 형태라도 가진 것처럼 꾸물거리는 그 불쾌함과 두근거림, 고양감. 전율. 서우는 제 입술 끝을 이빨로 세게 깨물다가 그 끝을 슬쩍 이로 비볐다. 입 꼬리가 볼살을 위로 올리며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분명히... 이곳으로.
그 시작은 비명소리였다.
============================ 작품 후기 ============================
혼자멘붕한자벳 : 소설
혼자멘붕한자벳 : 후기를 쓰려는데
혼자멘붕한자벳 : 뭐라고 말좀 해주세요.
혼자멘붕한자벳 : 복붙하게.............
백-- : 엥?ㅋ
혼자멘붕한자벳 : 다들 일어나!!!!
백-- : 정말 재밌었습니다
혼자멘붕한자벳 : 말 한 마디만'ㄷ'
로-- :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 : 잘 봤습니다
혼자멘붕한자벳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 : 작가님 짱
혼자멘붕한자벳 : ㅇㅋ
혼자멘붕한자벳 : 'ㅠ'
로-- : 다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백-- : 아 지성
후기에 쓸 게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