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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택시비를 내려고 지갑을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그 순간 상혁의 머리 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게 있었다. 으슥한 곳에다 택시를 세우고서, 의식이 없는 은주에게 온갖 짓을 다한 뒤에 지갑에서 현금까지 훔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잡아떼며 택시요금을 달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의 지능적인 범죄였다.
“얼마나 없어졌는데?”
하지만 은주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났는데..나이트에서 보탠다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다 줘버리고 원래 카드 밖에 없었어..나중에 나올 때 현금을 찾는다는 걸 깜박했었어.”
상혁은 맥이 탁 풀렸다. 차라리 택시기사가 범인이기를 바랬던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카드를 주니까...뭐라고 했는데...하여간에 카드는 안된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하숙집 앞에서 잠시 기다리게 해놓고 빌린 거야? 수한이 형한테?”
이렇게 된 이상, 사실여부를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그는, 넌지시 수한을 언급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아니, 아니야...분명히 여기까진 안 왔었는데...아~ 상품권! 맞아, 그래, 상품권을 줬어..이제 기억나..”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이 통 큰 여자가 택시비 대신으로 하라며, 지갑에 있던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내밀었단다. 물론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그랬겠지만.
“야~ 그 사람 아주 ‘화끈한 누구’ 때문에 땡잡았는데?”
어이가 없어진 탓인지,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말투가 흘러나와버렸다. 내뱉고 난 다음에야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은주는 이제야 기억이 제대로 떠오르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헤헤헤~ 그 아저씨 정말 양심적이던데?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거 있지?”
예측이 번번히 빗나가자 민망해져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차피 탄력이 붙기 시작한 은주가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얌전히 듣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 동안 택시기사들을 안 좋게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좋은 사람들을 연짱으로 만나니까..”
둘의 약혼을 축하한다며 공짜드라이브를 시켜주었던, 그 택시기사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었는가 보았다. 하기야 그건 상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행복했던 순간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준 셈이었으니까.
어쨌던 거스름돈을 주겠다는 그 사람과 안 받으려고 옥신각신하는 중에도 은주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단다. 그걸 다시 떠올리며 미소까지 짓는 걸 보자니, 상혁의 속에선 천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얼씨구나~ 아주 신이 났네? 신이 났어...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렇게나 읽히기 쉽다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하나도 안 먹히고 있었다. 제발 좀 분위기파악을 하라고 신호를 팍팍 보내는데도 말이다.
“그러다가 그 아저씨가 그래도 너무 미안하니까 그러면 자기가 커피를 사겠다는 걸,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생맥주나 한잔 사라고 그랬던 거 같아..안주를 안 시키면 그 돈이 그 돈이니까...”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전생에 술에 원수라도 진 건지, 어째서 모든 걸 술과 결부시킬까? 상혁은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휴우~ 그래서?”
“응~ 그래서~~”
평상시엔 그렇게나 눈치가 빠른 여자가, 아직 술이 덜 깬 때문인지 상혁의 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이제는 아예 신바람이 나서 모험담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 아저씨도 어차피 마지막 손님으로 태운 거였다면서, 자기도 같이 한잔하겠다고 했어..”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서 누가 거절할까? 택시기사들의 쏠쏠한 재미 중에 하나가 골뱅이여자들을 주워먹는 거라는데. 더군다나 은주 정도면 정말 횡재다. 상혁이 그 입장이었더라도 그렇게 대답했을 거다.
“아마 버스 종점 옆에 있는 호프집이었을 거야...”
기억이 왔다갔다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미 많이 취한 그녀가 깜빡 졸았는지, 흔들기에 눈을 뜨자 그만 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오다 눈에 띈 게 바로 노래방이었다.
“미안하잖아? 내가 술을 사달라고 해놓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상혁의 눈길을 그제서야 의식했는지, 슬그머니 그렇게 변명했다.
“그래서 노래방으로 간 거야?”
“응...”
대담한 건지, 아니면 남자를 믿지 않게 되었었다는 고백과는 달리 여전히 잘 믿어버리는 천성 탓인지는 모르겠다. 자고로 ‘방’이라 이름이 붙은 곳을 남자와 단 둘이 간다는 건, 언제나 섹스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걸 전혀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모텔방, DVD방, 노래방 등등..거기에서 예외가 되는 곳은 ‘PC방’ 정도일까?
아니, 그런 걸 떠나서 그녀의 남성편력을 생각해볼 때, 노래방에서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먼저 들었다.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그렇다면 원인은 단 하나,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만든 술이 문제였다.
이제는 그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은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노래 몇 곡만 부르다 금방 나왔어, 절대 딴 일은 없었어. 정말이야, 나올 때 보니까 시간이 30분이나 남아있었어..”
저렇게 말한다면 사실일 거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꼭 확인해야만 할 부분이 있었다.
“거기서 술을 더 마신 건 아니고?”
“으, 응...그냥 캔맥주 하나만..”
“어휴~~”
상혁의 한숨 소리에 찔끔한 그녀가 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그것도 거의 안 마셨어..몇 모금만 입에 대다가 조느라고...”
‘부글부글’ 조금씩 끓어오르는 울화를 억지로 참고 있던 상혁이, 마침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제정신이야?”
“자, 자기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고 다녀? 응? 넌 신문기사도 안 봐?”
훔친 택시로 강도질을 한 사건이며, 여자승객을 성폭행한 택시기사 등등을 쭉 나열했다.
“..그래서 일부러 한 택시를 지정해놓고 콜만 하는 여자들도 꽤 있다잖아? 그런데, 그렇게 무방비하게 구는 거야?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당하면 도대체 어쩌려고?”
퍼붓다 보니까 상혁은 더욱더 화가 났다. 처음에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성폭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습관을 그냥 내버려두다가는, 자칫 언제 큰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여자들이 목숨까지 잃은,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그 얼마나 비일비재했었나!
“...미안해...잘못했어...다신 안 그럴게...”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던 은주가,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용서를 빌어왔다. 뻔뻔하리만치 당당하던 평상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걸 보자 왠지 찡해지면서 마음이 아파온 상혁은, 자신이 너무 심했나 싶기도 했다.
하기야 어젯밤 사건만 아니었다면, 그냥 몇 마디의 잔소리에서 그쳤을 거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앙된 탓이었다. 약간은 미안해져 그녀를 껴안고서 다독거렸다.
“큰소리를 쳐서 미안해..하지만 제발 네 자신을 좀 아껴, 이젠 너 혼자만이 아니란 걸 잊지 말고..”
“으, 응...”
“그리고 어제처럼 많이 취했다 싶으면, 차라리 나한테 전화해..데리러 갈 테니까, 알았지?”
“응, 그럴게..”
“또 한번만 이랬다간 그땐 정말로 가만 안 둘 거야!”
“앙~ 서방님~ 소녀가 잘못했사오니 그만 용서해주시와요~~ 네?”
약간 풀어주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대뜸 기가 살아나, 어설픈 사극흉내까지 내면서 애교를 떠는 그녀, 그걸 지켜보는 상혁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그가 사랑하는 ‘장 은주’란 여자다. 때로는 사람의 속을 왕창 뒤집어놓는 엉뚱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뻔뻔스러울 정도로 언제나 당당하고 씩씩한 여자,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저런 모습에 반해버린 게 아니던가? 저걸 억지로 뜯어고치게 만들면, 그때는 이미 은주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래...알았어..우리 예쁜 각시..쪽~”
은주에게 입맞춤을 해주고는 부드럽게 물었다.
“몇 곡 부르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고 보니까...30분밖에 안 지났더라, 그 말이지?”
“응...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그 아저씨가 날 깨워서는 대문 앞에까지 바래다준걸? 너무 착하고 고마운 아저씨지?”
“그때쯤이 몇 시였는지는 전혀 몰라?”
“응,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재빨리 다음 화제로 돌렸다. 일단은 다 들어보고 난 뒤에, 차근차근 정리해볼 일이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그냥 자기 방에 와서 불을 켜니까 없길래 내 방으로 갈까 하다가, 침대에 잠시 앉았는데 그대로 잠들었나 봐..”
뭔가 실마리를, 가령 수한과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었다던지 하는, 잡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그로서는 너무나 허망한 결론이었다.
‘어쩌면 안 당했을 수도 있겠는데?’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여겼던 일이었는데,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의 노래방인데다가, 들어올 때부터 잔뜩 취한 은주를 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자도 아닌 보통사람이, 과연 강간을 시도할 수가 있을까?
은주가 소파 위로 늘어지고서야 문득 욕심이 생겼을 거다. 그녀 곁에 바짝 붙어 앉아, 겉에선 표가 나지 않을 만큼만 팬티를 살짝 끌어내려놓은 채, 누가 오지 않나 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보지를 만진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자신도 바지 속에다 손을 넣어 자위를 했겠지. 그러다 사정직전에 급히 자지를 꺼내, 치마를 들치고서 그 안쪽에다 잔뜩 쏟아냈다는.
이게 대충 상혁의 머리 속에서 그려진 시나리오였다. 확인할 길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된 사연이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어찌되었던 보지털에 묻어있던 정액자국만큼은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게 최상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은주가 저렇게 안심하고서 모든 걸 털어놓게 만든, ‘남은 30분’정도야 얼마든지 트릭이 가능했다. 카운터에 가서 시간연장을 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당시의 시간대를 알고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그때 갑자기 은주가 속삭여왔다.
“그거 알아?”
“뭘?”
뭔가 뒤늦게 기억난 거라도 있는 건가? 상혁은 기대감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좀 전에 자기, 캡 멋있었어~”
“응?”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물론 기분이 나쁠 이유야 전혀 없지만.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를 땐 좀 무서웠거든? 근데...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잘못을 지적하는 데는 정말로 감탄했어. 난 전혀 생각도 못했던 건데, 자기 말을 들으니까 ‘내가 정말로 잘못한 거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자기가 너무, 너무 존경스러워지는 거야~”
“하..하...이거, 너무 민망한데? 그럴 정도까지는 아닌데...”
쏟아지는 찬사에 상혁은 흐뭇해지면서도, 너무나 낯간지러워 온몸이 스믈스믈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진짜야! 정말 반성했어. 이렇게나 똑똑한 사람을 맹한 바보라고 생각했던 게 너무 부끄러워..자기한테는 내가 얼마나 같잖게 보였을까? 온갖 잘난 척은 다했었으니까...”
크흑~ 그랬구나, 날 맹한 바보라고 생각해왔었다니!
상혁은 참으로 야릇한 기분이었다. 극찬임이 분명 틀림없는데도, 무작정 즐거워할 수만 없다니. 그렇다고 저기에다 대놓고 화를 낸다면, 그땐 정말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날 너무 사랑해서...늘 걱정해주고, 따뜻하게 챙겨주잖아? 고마워, 자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야, 아니, 진짜 왕자님이야~ 사랑해~”
입술을 와락 덮치더니 아주, 아주 뜨겁게 빨아들이는 은주, 얼마나 열렬하게 키스를 하는지, 그의 앞 이빨이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쨌던 결론은 지금 이순간이 그에겐 굉장히 행복하다는 거였다.
‘그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했던가? 앞으로는 조심시키면 되겠지...’
이쯤에서 접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자신이 명탐정 홈즈도 아닌 다음에야, 끝까지 추적하고 파헤쳐서 의혹을 낱낱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앙~ 자기야~ 여기 만져봐~”
은주의 손에 이끌려 만져본 보지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아흑~ 아까 자기한테 꾸지람을 들을 때부터 보지가 찌릿찌릿하면서 마구 쏟아졌어...아앙~ 지금 자기 손이 닿기만 하는데도 그대로 가버릴 거 같아~ 아~~”
마구 문질러오는 질퍽질퍽한 보지가 크게 실룩거리면서, 손을 아예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헐떡거리며 하체를 요란하게 흔들어대던 은주가, 도저히 양에 안 찬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더니 상혁의 몸을 거꾸로 올라탔다.
“후웅~ 웅~”
따스하고 보드라운 것에 휘감기는 자지로부터 밀려든 아찔한 감각에, 상혁은 진저리를 치며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지에다 혀를 가져갔다. 그리고 미끌미끌하게 흐느적거리는 살점을 가르며 쭉 훑어 올리는 순간, 갑자기 자지가 그녀의 입에서 도로 빠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우읍~”
느닷없이 들려온 헛구역질 소리에 깜짝 놀란 상혁은, 다급하게 은주를 불렀다.
“으, 은주야?”
“우엑~~”
하지만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 대신에 대답을 해온 건, 그의 하체로 쏟아지는 뜨겁고도 걸쭉한 빗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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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탈진한 상태로 잠이 든 은주를 품에서 조심스레 빼내고는 내려섰다. 그리고서 은주의 방을 빠져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선 상혁은,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에다 불을 붙였다.
“하하하~~”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은주의 앞인지라, 억지로 참고 참았던 웃음을 이제서야 맘껏 토해냈다. 너무나 웃겨서 눈물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푸훗~”
뱃가죽이 아플 만큼 웃고 났는데도, 여전히 피실피실 새나온다. 하기야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하는 순간에는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지나고 나니 너무나 웃겼던 것이다. 자지를 빨다가 오바이트를 하다니!
하기야 애초부터 무리였다. 출근을 못할 정도까지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칫솔질만 해도 올리기가 십상인데, 그 커다란 자지를 목구멍 깊숙이까지 삼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번 토하기 시작하자 완전히 속을 비워내고서야 멈추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상혁의 옷은 물론, 알몸이었던 은주야 씻기만 하면 끝이었지만, 엉망이 된 이불과 침대시트까지 몽땅 다 빨아야만 했다. 덕분에 애초의 계획과 달리 방을 옮긴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해장국은커녕 물만 마셔도 화장실로 쫓아가던 은주가, 결국엔 완전히 지쳐서 겨우 잠이 든 상태였다.
“에효~ 당분간은 술을 좀 자제하겠지..그나저나 뭐를 좀 먹여야 하나?”
죽을 사온다고 해도 몇 술이나 제대로 뜰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상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지갑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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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를 깨워 겨우 몇 숟가락을 먹이고는 다시 눕혔다. 하루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채, 핼쑥한 낯빛으로 식은 땀까지 흘리며 잠이 든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그래, 특별히 몸 상한 데가 없었던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앓아 누운 은주가 주는 교훈이었다.
그 놈이 딸딸이만 쳤던지, 은주의 보지에다 박았던지 그게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렇게나 골머리를 썩어가며 이런 상상 저런 추측을 했을까?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간 한줄기 바람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몸과 마음에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사실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미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은주는 좀 어때? 뭐라도 좀 만들어줄까?”
“으, 응...누나...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데, 속이 아직도 많이 울렁거리나 봐..자고 나면 좀 나을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봐서 콩나물국이라도 끓이든지 하고..지금은 그냥 자게 두는 게 제일 좋아..”
“그래, 알았어..근데, 너무 어둡지 않아? 불이라도 좀 켜지...”
그 순간 상혁은 달려오는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만 같은 큰 충격을 느꼈다.
“왜 그래?”
“아, 아니...밖으로 나가자, 은주가 자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까..”
“으, 응..”
그의 기색이 너무나 심상치 않았는지, 미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뒤를 따랐다. 그리고 주방까지 와서는 식탁의자에 털썩 앉은 그의 어깨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누나..”
“응..”
“혹시 어젯밤에 내 방에 온 적 있었어?”
“아니, 왜?”
아까 은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그냥 지나쳤을까? 미현의 대답에, 상혁은 너무나 안일했던 자기자신을 반성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 큰 화근을 그냥 덮어버릴 뻔했던 것이다.
‘벼리는 당연히 아니고...’
은주가 거기서 자고 있는걸 봤었다면, 지난밤에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다. 그리고 미현도 온 적이 없단다. 그렇다면 자신이 들어섰을 때 꺼져있던 전등은 어떻게 된 걸까?
은주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방에 들러 불을 켰을 때 그가 없었다고,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느라 침대에 앉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즉, 전등을 켜놓은 채 잠들었다는 것이다.
조금 전 미현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깨닫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택시기사가 범인이라면 아까 생각한 것처럼 그냥 묻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수한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저 스쳐 지나간 바람이 아니었다. 언제 갑자기 태풍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일단 확실하게 밝혀진 건 한가지다. 은주가 잠들어있을 때 왔었다는 것, 수한 말고는 전등을 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남은 문제는 과연 불만 꺼주고 돌아갔느냐 하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구나...이건 수한이 형한테서 직접 알아낼 수 밖에...’
간단한 듯하면서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지난밤 그 방에 온 적이 있는지, 수한에게 물어보면 된다. 만약에 딱 잡아뗀다면, 그건 그가 범인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순순히 인정을 한다면 택시기사 쪽으로 기운다.
물론 수한이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뒤처리를 했다고 자신하고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완전히 태연할 수만은 없을 거다.
‘문제는 수한이 형이 범인일 경우인데..’
상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 미현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뭔가를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그녀, 따스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그녀의 눈동자에 마음을 굳혔다. 이 일을 상의할 사람은 그녀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심중을 알고 싶기도 했고.
“누나..”
“응...”
“좀 심각한 이야긴데...”
“마당으로 나갈까?”
“그래야 할 거 같아..”
역시나이다. 은주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대뜸 알아차린다.
두 사람은 조용히 현관문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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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듣고 난 미현의 얼굴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한 씨가 범인이야..”
“어?”
굉장히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그녀에 상혁은 좀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잊었니? 우리 집의 모든 빨래를 누가 하는지...”
“아~!!”
“안 그래도 아침에 조금 이상했었어..원래 그렇게 매일 팬티를 갈아입는 사람이 아닌데..”
수한이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속옷빨래를 내놨단다. 그리고 거기에다 더 결정적인 사실이 있었다.
“보지털이 붙어있었어...그래서 어디 밖에서 그러고 온 줄만 알았는데..”
남자의 것인지 여자 건지, 미현은 그게 구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간 하숙생들의 속옷을 그만큼이나 빨아봤으니, 뭔가 노하우가 있을 것도 같았다.
미현의 말에서 또 한가지가 확실해졌다. 은주의 보지에다 박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팬티에 보지털이 달라붙은 거다.
상혁의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화도 화지만, 그보다는 난감해지는 마음이 더 컸다.
“어떡하면 좋겠어? 누나”
수한이라는 수입원이 당장 사라지면 가계가 휘청할지도 모른다는 점도 있지만, 그녀의 남편과 수한 사이에도 뭔가가 있는 것 같았기에 그렇게 물은 거였다. 어쩌면 부부관계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올지도 몰랐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되돌아온 질문에 상혁은 순간 멈칫했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나 말고 다른 남자들은 전부 이곳에서 싹 몰아내고 싶어...미현이 너도, 은주도, 벼리도 모두다 가지고 싶어...그리고 그렇게 비는 방 하나를 채워줄 여자하숙생도 곧 생길 것도 같고..”
다른 누가 들으면 미친 놈이라고 욕할만한 소리를 내뱉어놓고서, 당당하면서도 뜨거운 눈빛으로 응시하는 상혁을, 잠시 묵묵히 바라보던 미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디 작전을 한번 짜볼까? 여보~”
화사하게 피어 오르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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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방법은 미현의 남편인 창우와 수한을 짝지워주는 건데...
다리에 털이 숭숭한 남자 둘이서 알몸으로 비비적거리는 장면을 상상하니...크윽~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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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현의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며 한걸음 다가서더니 속삭였다.
“그전에...”
“응?”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여보~”
한쪽 눈을 찡긋하는 그녀, 장난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무게감이 팍팍 전해졌다. 지금껏 다정하고 부드러운 모습만 보여왔던 것과 달리, 은주의 터프함이나 벼리의 묘한 카리스마마저도 감히 비교가 안될 만큼 엄청난 포스라니! 이게 바로 연륜이라는 걸까? 위엄마저 서린 모습이 마치 여왕님처럼 고고하게 느껴진다.
‘저 손에다 검은 채찍과 촛불까지 든다면...이, 이건 좀 아닌가? 하지만 굉장히 어울릴 것도 같은데, 그렇게 한번 시켜보는 것도 꽤나 짜릿....’
망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현실도피를 막 시도하려는 그때, 자지를 콱 틀어쥐어오는 손. 상혁의 정신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호오~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걸 보니까 정말인가 본데? 그러니까~ 새로 온다는 그 하숙생한테도 이미 이 자지를 사용했단 말이지?”
“아, 아~ 그, 그게 사실은...그렇다기 보다는..”
상혁은 많이 망설여졌다. 은아와의 관계를 밝히는 게 꺼려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연들을 털어놓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부분, 즉, 은아의 과거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이해심 많은 미현이라지만, 그런 여자, 다시 말해 창녀였던 은아를 과연 용납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때로는 같은 여자에게, 남자보다도 더 냉혹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바로 여자들이었다.
“어떤 여자길래 그렇게나 망설여? 유부녀라도 건드린 거야? 응?”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어머? 진짠가 보네? 호호호~ 바람둥이가 될지도 모르겠다곤 생각했지만...언제 이렇게 컸을까? 좀 전에도 한 여자를 돌싱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미 또 하나를 그래 놨었어?”
농담처럼 가볍게 말했지만, 그걸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미현은 그가 원하는 바를 말하자마자, 일고의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남편과 헤어지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건 그만큼이나 믿고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도리였다.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야. 다만, 이런저런 사연이 좀 있어서 그래. 은주하고도 전혀 무관하지 않고..”
“은주랑 연관이 있다고? 흐응~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 그렇긴 하지..”
아니, 미현만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벼리도 마찬가지였다. 상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야기가 좀 긴데..어디에 앉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으, 음...그러면 거기가 딱이야, 이리와~”
앞장서서 잰걸음을 옮긴 그녀가 멈춘 곳은 뒷마당의 커다란 은행나무 앞이었다. 그리고는 나무아래 놓인 낡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상혁은 굵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샌드백을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해?”
“글쎄? 머리 속으로야 범죄만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도, 막상 접하면 아마 나도 모르게 차별하겠지.”
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안심이 되었다. 그때 그녀가 손을 잡아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자신을 믿고 이야기해봐.”
“미현아, 사랑해. 당신은 정말 멋진 여자야..”
속삭임과 함께 그녀의 촉촉한 입술을 덮었다. 뜨거운 여름더위마저 잊게 해주는 시원한 나무그늘과 오래된 소파가, 마치 어느 시골의 나지막한 언덕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뭇잎 틈새로 스며든 반짝거리는 햇살이, 포근하게 어루만지며 둘의 달콤한 사랑을 축복했다.
원피스의 목덜미 쪽으로 파고든 그의 손이 젖가슴을 거머쥐자, 미현이 작게 소곤거렸다.
“은주가 보면 어쩌려고?”
“괜찮아, 언제까지고 숨길 수만은 없잖아? 전에야 당신의 입장이 별로 떳떳하지 못했다지만, 이젠 아니잖아?”
이미 이혼까지 결심한 그녀였다. 그런 큰 결단을 내려준 미현에게, 여전히 숨겨진 여자의 아픔을 요구하기엔, 도저히 양심상 그럴 수도 없고 또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야 은아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상우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거기다가 은주에게 미현과의 관계를 숨기게 되면, 은아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모두가 함께 산다고? 은주와 벼리의 눈을 피해, 도둑고양이처럼 그녀들, 미현과 은아, 방으로 숨어드는 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그럴 거라면 지금 당장 이쯤에서 멈추고는, 잠깐 즐거운 꿈을 꾸었었다고 생각하고 말아야 한다.
“쿡~ 아닌데? 전에도 미안해서 그랬지,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어.”
“에? 그게 무슨...”
“몰랐어? 법적으로는 난 이미 독신이야, 이혼한 걸로 되어있어..이 집이라도 건지려면 어쩔 수가 없었거든?”
“아~!”
미현의 말뜻을 단숨에 알아들었다. 사업이 망하면서 몰려들었을 채권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비록 그전에 명의이전을 했었다곤 하지만, 가장 먼저 조치를 취했을 금융권에게서마저도 이 집을 무사히 지켜냈다는 게 조금은 의아스러웠는데, 그런 숨은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가만? 그렇다면 수한이 형, 아니지, 그런 새끼가 무슨 형이야? 그 자식이 집적댄 것도 그걸 알고서 그런 거야?”
“그런 셈이지..”
수한이 왜 미련을 못 떨치고서,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미현이 마음만 돌리면 언제라도 결혼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아저씨가 그러고 돌아다니는 걸 꾹~ 참은 거야?”
“법적으로야 어쩔 수 없이 남남이 됐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부였으니까...그리고 사실 이 집도 그 사람이 번 돈으로 샀잖아? 이젠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미련도 없어졌고..”
역시나 맺고 끊는 게 아주 확실했다. 그냥 외면하면 그만일 것을, 그녀는 거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이 집이 진짜로 자기 것이 된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 모아놓았던 쌈짓돈도 미련 없이 선뜻 내주곤 했을 거다.
“꼭 그렇게만 생각할 건 아니잖아? 부부가 모은 재산에 대해서는 여자에게도 반은 권리가..”
“쉿~! 그건 그만 이야기해. 내 마음이 그랬었다는 거니까, 그리고 이미 다 지난 일이고..자기한테도 그게 차라리 다행일걸? 그 덕분에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는데?”
강한 여자다.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고. 이런 미현이라면 절대로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거다. 이제서야 상혁은 완전히 안심하고 은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걔가...음, 이름은 은아라고 해...나이는 스물 셋이고...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 하면...”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을, 미현이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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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미현이 처음으로 내뱉은 건, ‘은주랑 그 여자, 그리고 자기, 모두들 참 질긴 인연이네?’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성의하게 들리는 그 말이, 상혁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의 믿음대로, 색안경을 끼고서 은아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들 사이의 묘한 관계를 신기해할 뿐이었다.
“흐응~ 그러니까 은아라는 그 여자가 형님이라는 소리네?”
자지를 더듬으며 이런 소리까지 해대니, 그로서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밖에는.
“그래도 처음으로 싼 건 미현이 보지 속이니까, 당신이 제일 맏이가 맞아...후후후~”
“킥~ 그렇게 되는 건가? 이왕이면 누가 애기를 가장 먼저 가지는가로 결정하면 어때?”
“크윽~”
나이 25살에 애 아빠라니? 그것도 아직 졸업하려면 까마득한데!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찔끔하면서 딱딱했던 자지가 푸르르~ 죽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그나저나...일단은..”
목을 껴안아오면서 하체 위로 올라앉았다.
“해줘, 지금 당장..”
“미현아?”
“빨리...”
그의 바지를 내리고서 자지를 꺼내더니, 다시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를 옆으로 젖히고는, 구멍에다 그 끝을 맞추었다.
“마구 박아줘, 안에다 가득 싸줘, 어서!”
“미, 미현아?”
흥건하게 젖어버린 보지입술이 미끌미끌한 감촉을 전해주고 있었다. 상혁은 너무나 놀랐다. 이런 환한 대낮에, 그것도 뒷마당에서 이러다니! 그때 이어지는 그녀의 뜨거운 속삭임.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너무 흥분해버렸어..”
입술을 빨아오면서 허리를 밑으로 내리는 미현, 쫀득쫀득하게 달라붙는 보지의 속살이 아찔한 쾌감과 함께 크나큰 흥분을 몰고 온다. 그는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를 꽉 거머쥐었다.
‘은주가 본다면, 어떻게 나올까?’
미현에게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긴 했어도 내심 걱정이 안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은주라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야 하겠지만, 결국엔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딴 여자가 생기더라도 속이지만 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던 걸, 긴가민가하면서 미루어왔던 게 조금은 후회가 되는 중이었다.
“흐응~ 응~”
엉덩이를 돌리는 미현에게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거친 요분질에, 무릎 위에 걸려있던 반바지와 팬티는 이미 발치로 떨어져 내리고, 홍수를 일으킨 보짓물이 그의 두덩은 물론 허벅지까지 미끌미끌하게 적셨다.
하지만 상혁은 왠지 답답함을 느꼈다. 들킬 땐 들키더라도 좀 더 화끈하고 과감하게 즐기고 싶었다.
“하아~ 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일어서게 만들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온다. 그는 치마를 끌어내리면서 빙긋이 웃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지?”
“앙~ 나도 좋아~”
골목의 막다른 집, 뒤쪽은 산비탈이다. 게다가 까마득하게 높은 아주 큰 은행나무 밑이기에 훔쳐볼 사람은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대담하게 나온다. 그의 손길에 맞추어, 마치 스트립댄서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유혹한다. 그녀의 작은 발에서 치마가 빠져 나오고 팬티만 남은, 그것도 한쪽으로 젖혀져 번들거리는 보지가 보이는, 미끈하고도 육감적인 하체가 아찔하기만 했다.
순간 흠칫하며 그곳으로 틀어박히는 상혁의 시선, 그걸 본 미현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주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젖혀진 팬티 밑으로 드러난 보지가, 지난밤 은주의 그것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깟 것 마음에다 두지마, 자기의 이 커다란 자지가 드나들던 곳에다 넣어봤자, 어디 기별이나 갔겠어? 은주는 자기가 당한 것도 모른다며? 수한 씨 자지가 얼마나 작았으면 그렇겠어? 킥~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참..불쌍한 인생이다, 그치?”
“흐흐흐~ 흐흐~”
장난스러운 미현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랬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혁은 ‘코끼리보지에 개미좆’이라는 농담이 떠오르며,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모기한테 물린 정도는 됐겠지...”
“호호호~ 맞아~”
상혁은 그녀의 팬티마저 벗겨버리고서, 자신의 발목에 걸려있던 것도 빼낸 뒤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녀를 이끌어, 나무에다 손을 짚고 허리를 뒤로 내밀게 만들었다.
“앙~ 자기야~ 어서~ 응?”
하체만 벌거벗은 외설적인 모습이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를 살짝 벌린 채 흔들어대는 탐스러운 엉덩이 사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지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서, 벌렁거리는 그 중심으로 귀두를 가져갔다.
“아흐흑~ 좋아~ 이거야, 역시 자기자지는 꽉 차는 게 최고야~ 앙~”
“후후후~ 미현이 보지도 찰떡처럼 쫀득쫀득 달라붙는데? 정말 맛있는 보지야..”
“아흑~ 앙~ 박아~ 내 보지가 터지도록 쑤셔줘~”
굵은 자지가 반쯤 박혀 들자,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듯이 엉덩이를 밀어오며 달뜬 신음을 토해낸다. 상혁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짜르르한 쾌감에, 잘록한 허리를 붙들고서 세차게 박아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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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건 수한과 창우였다. 은아의 일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된 다음에야, 다시 의논해볼 문제였다. 지금으로썬 결정된 게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다.
“일단 그이는 수한 씨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
“응?”
그러자 미현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제는 남편에게 완전히 지쳤다는 걸 은근히 드러내면서, 재혼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척만해도, 수한이 알아서 정리해줄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수한이 창우를 들쑤시며 뭔가를 획책해왔었다는 그의 추측이 사실인듯했다.
“그러고 나서 은주의 보지 값을 받아내야지, 그것도 아주 비싸게 말이야..그냥 보내주면 너무 억울하잖아?”
“어떻게?”
“웅~ 그건 머리를 좀 짜내 봐야 할 것 같아...참~! 맞다, 은주 팬티랑 수한 씨 팬티...자기가 따로 잘 보관해야 해, 알았지? 중요한 증거물이니까..”
아직은 빨래를 하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은주의 팬티에 보짓물과 정액이 뒤섞여 묻어있을 테고, 수한의 것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법적인 처벌이 가능할 정도로까지 증거가 될지는 미지수라도, 최소한 수한을 압박하는 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거기까지 꼼꼼히 챙기는 그녀의 모습에 왠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자~ 일단은 이 정도만 하고 은주한테 가봐..깼을지도 모르니까..”
“응, 고마워, 미현아 사랑해..”
“나한테도 좋은 일인데 뭐~ 사랑해, 여보~”
부드럽게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서면서 미현이 속삭였다.
“여기서 하는 거 너무 짜릿해, 맛들일 거 같아~ 호호호~”
“후후후~ 나도 그래, 언제 한번 달밤에도 해보고 싶은걸?”
“킥~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미현에게 의논하기를 정말로 잘한 것 같았다. 상혁의 마음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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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 씨, 미안해..내가 하나 사줄게...”
“아, 아니, 괜찮아...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세탁물 속에 열쇠가 섞인 줄도 모르고 세탁기를 그냥 돌렸다가, 그의 팬티가 찢어지는 바람에 버렸다는 핑계를 대는 미현에, 은주를 슬쩍 쳐다보며 어색하게 대답하는 수한의 모습에서 확실하게 심증이 갔다.
‘개미좆만한 새끼..’
상혁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웃음이 피실피실 새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갖다 붙여준 별명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속은 좀 괜찮아?”
“응~ 자기야~ 고마워~ 자기가 사다 준 죽을 먹고 나니까 좋아졌어..”
“후후후~ 그래? 그래도 그것만으론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꼭꼭 잘 씹어서 먹어, 알았지?”
“응~ 헤헤헤~”
방실방실 웃는 은주를 향한 수한의 눈에서 얼핏 스치는 욕정과 질투의 빛깔, 순간적으로 상혁은 주먹을 날릴뻔한 걸 겨우 참고서 밥그릇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래처럼 느껴지는 밥알을 꾹꾹 씹어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고개를 들자, 미현의 따스한 미소가 맞아주었다.
‘잘 했어, 자기야...조금만 참아, 내가 백배로 쳐서 갚아줄게..’
미현의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슴 속이 훈훈해졌다.
‘그래, 알았어...사랑해~’
그녀는 분명히 알아들었을 거다. 상혁은 차분하게 식사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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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전화를 해주었었기에 문은 열려있었다. 상혁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아가 대뜸 목을 껴안으며 뜨겁게 키스해왔다.
“후후후~ 어젠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아니, 괜찮아, 오빠...”
고개를 젓는 그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상큼한 향기가 풍겨왔다. 정성껏 단장하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이렇게 예쁘고 발랄한 여자가 새장 속의 새처럼 갇혀서 지내야 한다니, 상혁은 가슴이 찡해졌다. 그리고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었다.
“은아야, 오늘도 인터넷수업이 있어?”
“아니, 없어, 왜?”
오늘도 온종일 이곳에서 질퍽하게 사랑만 나누려던 그의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그러면 우리 밖으로 나가자..”
“으, 응? 어딜?”
“교외로 바람이나 쐬러 가...맛있는 것도 사먹고..”
“하지만...”
“남편에게서 전화가 올까 봐?”
“......”
대답을 못한다. 즉, 그렇다는 의미다.
‘이런 개자식, 무슨 노예도 아니고...’
상혁은 속으로 상우에게 욕을 퍼부었다. 물론 보금자리에까지 쳐들어와 그의 아내와 알몸으로 뒹구는 처지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긴 하지만.
은아가 더더욱 안쓰러워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 강하게 밀어붙여봐야, 그녀만 주눅이 들뿐이었다.
“그래, 알았어...그러면 놀러 가는 건, 마지막 날로 미루자. 그땐 괜찮겠지?”
“응, 오빠...미안...흡~”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그녀의 입술에다, 이번에 그가 먼저 키스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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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간 낮 시간은 몽땅 은아의 집에서 보냈다. 사랑을 나눈 그 수십 번 동안, 상혁이 쏟아낸 정액이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 항문 속에까지도. 벼리와의 일 때문에 은근슬쩍 물어보자, 그녀는 그걸 다르게 해석했는지 대뜸 뒤쪽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그 짜릿함에 빠져들었었다.
약속했던 마지막 날이 되자 은주의 차를 빌렸다. 화사하게 차려 입은 은아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그녀의 뺨에다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후후후~ 우리 은아, 오늘따라 더 예쁜데?”
“앙~ 고마워, 여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은 듯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기엔 충분했다. 상혁을 ‘여보’라고 부르는 여자가 이렇게 또 한 명 늘어났다.
“그러면 슬슬 출발해볼까?”
“응~ 좋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이 허벅지를 슬금슬금 더듬자, 은아가 치마를 끌어올리면서 가랑이를 벌려주었다. 그러자 까만 털 아래쪽으로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은 빨간 속살이 드러났다.
“아주 멋진데?”
“대신에 운전조심 해야 해. 알았지?”
“당연하지, 우리 은아하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후후후~”
“아앙~ 좋아~”
여린 살갗을 헤집는 손가락에 보지가 아주 빠르게 젖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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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물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내달리니 참으로 상쾌했다. 거기에다 사랑하는 연인의 깊은 속살을 만지는 짜릿함까지 더해졌으니, 그 기분은 더욱더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오니까 좋지?”
“자기하고면 어디라도 좋아~”
손끝에서 느껴지는 보지가 실룩거리며 물을 또 한번 흘려낸다. 그런 은아의 모습이 음란하면서도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상혁은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오면서 갈증이 일었다.
“응? 어디로 가는 건데?”
차를 길 옆으로 빼내자 그녀가 그렇게 물어왔다.
“목이 말라서..”
“약수터에 가는 거야?”
“후후후~ 약수터가 왜 필요해? 여기에 이렇게 맛있는 샘물이 있는데..”
“아앙~”
보지 속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은아가 달뜬 신음을 토해냈다. 오솔길 초입의 수풀이 우거진 곳에다 세우고는, 차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돌아간 다음,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자~ 예쁜 보지를 활짝 벌려봐...내가 마음껏 빨 수 있게..”
“아~”
바닥에다 무릎을 꿇는 그를 향해, 좌석에 앉은 채 가랑이를 활짝 벌리는 그녀, 치마를 허리 위로 걷어버린 탓에 물기로 번들거리는 하체가 완전히 개방되었다. 게다가 엉덩이를 쳐들어 앞으로 내밀자, 보지의 가장 깊은 데까지 내비칠 정도였다. 그 뜨겁고도 축축한 곳으로 얼굴을 가져가는 순간, 진하고도 유혹적인 냄새가 가득 밀려왔다.
“할짝~ 할짝~”
“아흑~”
매끄러운 점막을 혀끝으로 미끄러지며 꿀물을 살짝 떠올리기만 하는데도, 그녀의 높다란 교성이 숲 속을 울렸다. 상혁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서, 혀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대로 설득을 해봐야지...’
사실 그녀는 결혼생활에 대해 이미 큰 미련은 없어 보였다. 자신이 기대했던, 그런 따스하고 안온한 게 아니라는 실감한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녀의 미래에 대해 뭔가를 확실히 보장해줄 수만 있다면야 또 다르겠지만, 현재로썬 그저 막연한 희망밖에는 줄 게 없었다. 그래도 그게 지금처럼 좁은 세계에 갇혀,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거라 굳게 믿는다.
그녀의 가랑이에서 올라와 속삭였다.
“사랑해, 은아야..”
“나도...”
자신의 보짓물이 잔뜩 묻어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그의 입술을 열심히 빨아온다. 상혁은 그런 그녀를 더 이상은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 같이 살래?”
“자, 자기야?”
느닷없는 그 말에 은아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
상혁은 은아의 손을 잡아 뒷좌석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다 올려놓고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사람은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할 수가 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전혀 쓸모 없는 것들에도 자꾸만 욕심을 내곤 해...그러다 보니까 정작 필요했던 것의 소중함도 나중엔 잊어버리게 되는 거지..”
세 여자로도 모자라 은아마저 욕심 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들 모두가 소중하다는 건 틀림없는 진심이었다. 어쨌던 지금 그에겐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해야 할 이야기를 머리 속으로 다시 한번 정리했다.
“네가 살고 있는 그 오피스텔을 한번 생각해봐..그 중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 필요도 없는데, 그저 남들도 있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잔뜩 쌓아놓은 물건들이 대부분 아니니? 그런 것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면 답답하지 않아? 어느 날 갑자기 그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너를 덮쳐버릴 것 같은 기분은 안 들어?”
상혁의 음성이 점점 더 열기를 띠어가자, 은아는 마치 홀린 듯이 입을 헤~ 벌리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것들일수록 겉모양은 더욱더 화려한 게 대부분이야...사람의 마음을 유혹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서, 진짜로 중요한 걸 못 보게 만들지...자, 눈을 감아봐..”
“으, 응...”
눈을 스르르 감는 은아, 그녀에게 최면술을 걸고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그 스스로가 자기최면에 걸려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거 왠지 여신도를 홀리는 사이비교주가 된 것 같은데...’
상혁은 그녀의 보드라운 눈두덩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고개를 숙여 귓가에다 속삭였다.
“이제부터 머리 속으로 네 집을 그려보는 거야, 알았지?”
“응..”
“자~ 그러면 뭐부터 먼저 버릴까? 주위를 쭉 둘러봐..”
그러자 눈가를 움찔움찔하던 은아가 잠시 후 대답했다.
“신발장 안을 정리하고 싶어. 꽉 차서 비좁기만 하고...지금 신는 것 몇 가지만 빼고 다 버리겠어..”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거다.
깊숙이 빠져들어 하나하나 열거하던 은아가, 마침내 자신의 물건정리를 다 끝냈는지, 상우의 것들을 버려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쓸모 없는 재테크 책들을, 그걸 본다고 해서 돈을 벌 수가 있다면 책의 저자들은 이미 억만장자가 되어 있을 거다, 제일 먼저 선택했을 때는 웃음이 나올뻔했다. 상우의 조악한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그것들이, 그녀 역시 가장 눈에 거슬렸었던 모양이다.
물건의 이름이 나오는 간격이 점점 더 길어지더니, 결국 침묵이 자리하자 상혁은 그녀의 입술에다 입맞춤을 했다.
“어때? 이젠 집안이 시원시원해졌지?”
“응~”
여전히 눈을 감은 그녀에게서 떠오른 해맑은 미소가 참으로 싱그러웠다. 다만 치마 아래쪽으로 드러난 눈부신 허벅지의 유혹에, 그의 손이 자꾸 움찔거리는 게 조금은 문제였다. 저 사이로 슬쩍 밀어 넣기만 해도 축축하게 젖은 보지가 반겨줄 테니까. 그리고 그녀의 뒤통수를 찌르고 있는, 터질 것만 같은 자지도 위태위태하긴 마찬가지인 상태였고.
“자, 이제부터가 진짜야..”
“꿀꺽~”
침부터 삼키며 긴장하는 은아가 너무나 귀여웠다. 그리고 그 순간 자지가 꿈틀하자, 그녀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으~ 빨리 끝내야겠다...미치겠어..’
상혁은 그녀를 당장 안고 싶은 마음에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았지만, 억지로 참고서 말을 이었다.
“네 마음이 진짜로 원하는 것, 네 영혼이 간절히 소망하는 게 뭔지 찬찬히 들여다봐...이제는 네 눈을 가리던 건 모두 치워버렸으니까, 진실을 볼 수가 있을 거야...”
그의 나지막하면서도 뜨거운 속삭임에, 잠이 든 것처럼 조용한 숨결만 토해내던 그녀의 눈이 마침내 열렸다. 총기가 서려있는 눈동자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맑디 맑은 호수로 따스한 온기가 돌더니, 그녀의 얼굴전체로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상혁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또다시 물었다.
“나랑 같이 갈래? 내가 사는 곳으로...”
“..응...그럴게...”
“어쩌면 많이 힘들지도 몰라...”
“괜찮아...확실히 알았어, 내가 가장 원하는 건 바로 오빠와 함께 있는 거라는 걸...”
“그리고 미리 사과할 게 있어..”
“뭔데?”
“너만을 사랑한다고 약속해줄 수가 없어...”
“훗~ 이미 알고 있는 걸? 그 언니? 사랑해~ 쪽~”
은아가 양팔을 위로 올려 그의 얼굴을 잡아당기더니 입맞춤을 해왔다. 상혁은 그 달콤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많이 난처한 모습으로 덧붙였다.
“음..그게...은주만이 아니야...”
“뭐..그럴 수도...에엑~~!!!”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는 그녀를 꽉 껴안았다.
“잠깐만, 잠깐만 그대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잠시면 돼...”
그러자 버둥거림을 멈추는 그녀, 아마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을 거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모든 걸 밝힐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어리석은 짓일 거다. 일단 상우와 헤어지고 난 후에 차차 설득하면, 이미 물러날 데가 없는 상황에서 훨씬 더 수월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한다. 은아한테만큼은 그래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겨우 기어올라온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놓고는, ‘내 손을 잡을래, 아니면 다시 저곳으로 뛰어내릴래?’라고 묻는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건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다.
상혁은 미현, 은주 그리고 벼리에게로 이어지는 그간의 사연들을 다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우와 은주 사이에 있었던 사건까지도.
“내가 미친 건지도 몰라. 아니, 지독하게 나쁜 놈이라서 그럴 거야...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내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자꾸만 시키니까...”
“오빠...”
은아의 눈에 이슬이 고여있었다. 그걸 보자 마음이 짠하게 아파왔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 곁에 아무도 안 남아있게 될지도 몰라...그래도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너희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거야..”
은아의 입술에다 뜨겁게 키스를 한 후 다시 속삭였다.
“마음 아프게 만들어서 미안해. 하지만 내가 밉다고, 조금 전에 가졌던 용기까지 버리진 말았으면 해..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지금껏 해왔듯이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 남자 따위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재능을 펼쳐봐..난 그게 널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어..”
상혁은 그걸로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고 나자 왠지 가슴 속이 휑하니 빈듯한 느낌이었다. 은아가 원망을 품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왕이면 자신과 더불어 상우까지도 실컷 미워해주길 바랬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날갯짓을 할 원동력을 얻게 된다면야, 그것도 나름대로 크나큰 소득이니까.
“..오..빤...흑...흑...”
“은아야...미안해...”
그녀의 울음소리가 가슴 속을 헤집고 들어오자, 생채기에다 굵은 소금이라도 뿌린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파왔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저 눈물을 닦아주는 것뿐.
그때 그의 허벅지 위에 누워있던 은아가 몸을 일으켰다.
“흑흑~ 오빤 정말, 정말 나쁜 사람이야...흑흑...”
“그래...맞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히려 다정하게 껴안아온다. 그녀의 그런 성정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흑..흑...나빠..흑...정말 나빠...어떻게 하라고? 밉다는 말 한마디쯤은 할 수 있게 해주지도 않고..더 사랑하게 만들어버리면 날더러 어쩌라고...흑...”
“..은아야...사랑해...”
그제서야 긴장이 팍 풀린 상혁은 키스와 함께 그녀를 더듬었다. 그러자 뜨겁게 달라붙어오면서 온몸을 비비적거린다. 그의 무릎 위로 올라앉은 은아의 가랑이가 미끌미끌한 애액을 뿜어대고 있었다.
“하아~ 어디로든지 빨리 가...자기자지에 박히면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싶어, 어서..”
“그래...”
재빨리 앞자리로 옮겨 시동을 거는 사이, 그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지 그의 반바지지퍼를 열고서 자지를 꺼내 입에다 물었다.
“우웅~ 흐읍~ 웅~”
상혁은 아랫도리에서 올라오는 아찔한 쾌감에, 자신도 모르게 엑셀을 강하게 밟으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모텔로 핸들을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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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방으로 들어서서는 침대에 누울 시간조차 없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서 아랫도리만 내려 삽입해버렸다. 화장실 문에다 은아를 기대놓고는, 그녀의 한 다리를 잡아든 채 얼마나 정신 없이 박아댔을까? 오는 동안 이미 그녀의 입 속에서 잔뜩 자극을 받았던 탓인지, 아니면 굉장히 흥분한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몇 배나 빨리 사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꽉 맞물린 두 성기의 틈으로 새나온 정액이 바닥으로 길게 늘어질 때, 상혁은 허리를 또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쯤 시들어가던 자지가 되살아나며, 순식간에 보지 속을 꽉 채워버렸다. 그리고는 깊숙이 결합한 상태로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걸음을 옮겨, 침대 위에다 내려놓고서 거칠게 펌프질을 해댔다.
첫 번째와는 달리 아주 길고도 길었던 두 번째의 정사가 끝날 즈음에는, 정말로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쉬어있었다.
“아~ 여보~ 여보~ 여보~ 아~”
그의 몸을 사지로 칭칭 감고서, 반쯤은 정신이 나간 듯이 중얼중얼대는 은아의 아랫도리에서는, ‘삐이~ 푸륵~’하는 요란한 보지트림이 질척한 물소리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 여전히 치골을 비벼오던 그녀의 보지에서 시들시들해진 자지가 빠져 나오자, 마침내 그녀가 팔다리를 풀고는 힘없이 늘어졌다.
상혁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속삭였다.
“정신이 들어?”
“..나...물...물 좀...”
“그래...”
그는 재빨리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왔다. 그걸 받아서 반은 흘리다시피 벌컥벌컥 마신 은아가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죽는 줄만 알았어...하아~~”
“훗~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싶다며?”
“힝~ 너무해~”
울상을 지으며 품으로 폭 안겨 드는 귀여운 행동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 여자의 어디에서 그런 어두운 과거와 유부녀라는 현재의 모습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저 밝고 청순한, 여대생이라는 그녀의 또 다른 면만이 도드라질 뿐이었다.
상혁은 탐스럽고 부드러운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물었다.
“이젠 마음이 좀 풀렸어?”
“웅~ 안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박으려고?”
“훗훗~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으, 응~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더하면 죽을 것 같긴 한데...”
“하하하~ 왠지 죽을 땐 죽더라도, 그렇게 해봤으면 싶은 마음이 들지?”
“에? 어떻게 알았어?”
정말로 너무 예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떻게 자기주변에는, 하는 짓마저 이렇게 사랑스럽기만 한 여자들뿐인지, 상혁은 자신의 조상님 중에서 인류평화에 무지하게 공헌한 분이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우주평화일지도.
“기억 안나? 첫날에 우리가 몇 번이나 했는지?”
“아~! 맞아, 그때도 죽을뻔했지? 5번인가?”
“흐흐흐~ 그래, 그때 내가 그랬었거든? 허리가 부러지기 직전인데도,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이었어..”
“킥킥~”
두 사람은 서로의 나신을 꼭 껴안은 채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진정되자 그녀가 말했다.
“차에서 물었던 거, 다시 한번만 물어봐 줘...”
상혁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조용히 입을 뗐다.
“나랑 같이 갈래? 내가 사는 곳으로...”
“응, 기꺼이...언제라도...”
“사랑해, 은아야...내 귀여운 종달새...”
“앙~ 여보~ 사랑해~”
달콤하고 따스한 키스와 함께, 그는 또다시 어려운 한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가 들었다. 이렇게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은아가 그의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소곤거렸다.
“그 언니들하고 벼리라는 동생, 좀 자세히 들려줘...듣고 싶어...”
“알았어...”
당연하겠지, 그게 인지상정이다. 상혁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파고드는 그녀를 보듬어 안은 채,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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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고도 짜릿했던 그리고 감동적이었던 은아와의 데이트는, 결국 그녀의 집에서 끝났다. 물론 뜨거운 정사가 곁들여졌음은 당연했다. 그것도 그녀의 세 구멍에다 골고루 정액을 뿌려주는 아주 화끈한 마무리로.
은아는 당분간 마음준비만 하고, 겉으로는 예전과 같이 지내기로 했다. 미현과 인사를 나눌 자리를 곧 마련하기로 했기에, 실제로 뭔가를 하더라도 그건 그 이후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미현의 움직임에 맞추어, 은아도 시기를 조절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생계라는 부분에서, 당장 고민거리에 부닥칠 사람도 그 두 여자였다. 하기에 급한 당사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해봐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용돈을 아껴 쓰면서, 간간이 아르바이트까지 한다면 상당부분 커버가 될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었어..”
상혁은 경과보고(?)를 하는 중에도, 미현의 가랑이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은아와의 질퍽했던 섹스에 대해서 조금은 의도적으로 세세하게 묘사를 했기에, 그녀의 보지는 이미 흥건하게 물기를 머금은 상태였다.
“흐응~ 그러면 방을 놀릴 필요가 없게 된 거네?”
“후후후~ 그렇지, 방이 비자마자 곧바로 찰 테니까..”
아랫도리만 벗은 채 소파 위에 앉은 미현의 모습이 너무나 짜릿했다. 그날 이후, 아무도 없는 대낮이면 의례히 이 은행나무 밑에서 이러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밑에만 벗은 그의 자지에다, 고개를 잠시 처박은 그녀가 다시 올라와서는 말했다.
“근데...아무래도 수한 씨 문제는, 은주한테도 이야기를 다해주고 도움을 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알리자고?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수한 씨한테 당한 걸 그렇게 숨기려고만 하지 말아, 자기만 이해한다면 큰 상처는 안될 테니까..”
미현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그렇게 말을 이을 때, 뜻밖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하다니? 수한이 오빠한테 뭘 당했다는 거야?”
“헉~!! 으, 은주야!!!”
집 모퉁이에서 스르르 나타나는 은주의 모습에, 상혁은 기겁하며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그런데 미현의 반응이 너무나 의외였다. 사타구니를 손으로 가리고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와는 달리, 질척하게 번들거리는 보지를 숨기기는커녕 자기옆자리를 두드리며 은주에게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다 이야기해줄 테니까..”
그러자 정말로 조용히 다가와 앉는 은주, 상혁은 갑자기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이, 이 여자들 도, 도대체 뭐야?’
은주가 평소 보여준 모습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는 이해해줄 거라 기대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런 장면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둘이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가, 뒤늦게 나타난 은주에게도 자리를 내주는 듯한 분위기가 아닌가? 은주나, 미현이나, 둘 다 상식을 벗어난 태도를 보이는 것에, 상혁은 ‘내가 과연 이런 여자들을 감당해낼 수가 있을까?’하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훗~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그래서 복수한 거야?”
“계집애도 복수는 무슨?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인데...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건 내가 먼저였어..흥~”
“헛~!!”
느닷없이 자지를 잡아오는 미현에 상혁이 당황하는 그때, 그녀가 또다시 덧붙였다.
“너무 멋진 사람이잖아? 그래서 순수하게 여자로서 반한 거야...자기도 이리 앉아..”
“..으, 응...”
옆으로 물러나며 자지를 잡아 끄는 미현, 그는 주춤주춤 두 여자 사이에 끼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숨죽이고서 눈치만 봤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잠시 끊어졌던 두 여자의 대화가 재개됐다.
“그러는 넌 언제부터 눈치챈 거니?”
“꽤 오래 전부터...”
“하기야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었어...네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이건 상혁도 감이 잡혔다. 은주는 예전부터 이미 둘 사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한집에서 살면서 살을 섞는데, 그걸 못 느낀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은주가 차라리 솔직하게 다 말해달라고 했던 건, 어쩌면 미현과의 관계를 넌지시 암시했던 걸지도 모른다.
“화나지 않았어?”
“내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까..언니한테 그럴 처지도 아니지..뭐..”
“그런데...괜찮겠어?”
미현이 그를 가리키면서 묻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은주가 대답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 털어놓으려고 했었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거야?”
“조금 전에 막 왔어...외근을 나왔다가, 점심이나 먹으려고...”
상혁은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벌어진 사태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시일 안에,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두 여자 사이에서 오가는, ‘은주가 저지른 짓’이라는 게 뭔지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러자 그의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했는지, 두 여자가 동시에 쳐다봤다.
“네가 할래? 아니며 내가 할까?”
“..아무래도 내가 하는 게 맞겠지...자기야...”
“으, 응...그래..”
은주의 부름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이야기를 했었어야 하는데..미안해..”
“아, 아니야...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심장소리는 거칠어져만 갔다. 비록 그녀들에 비해서는 눈치가 느리다지만, 그렇다고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얼핏 머리 속을 스치는 게 있었던 것이다.
“사실...예전에...아저씨랑 잠깐..그런 사이였던 적이 있어...”
역시나 상혁의 추측이 맞았다. 미현에게 복수한 거냐고 물은 것이나, 그에게 미안하다고 한 걸 연결 지으면, 나오는 결론은 그것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은주가 창우와 그런 관계였었다는 것보다는, 그걸 알면서도 여태껏 덮어주고 있었던 미현이 더 놀라웠다.
분노? 글쎄, 이미 이런저런 일을 워낙 많이 겪은 탓인지, 아니면 이제는 남편과 정리하기로 결심한 미현 때문인지, 그런 감정도 별로 들지를 않았다. 그저 그렇게도 꼬여있었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기자신에게 조금은 야릇한 기분마저 들뿐이었다.
“..어쩌다가 순간적으로 그렇게 됐었어...”
“한가지만 물을게..”
“으, 응...”
“술 때문이지? 맞지?”
“그, 그게...”
지금까지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은주의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고개를 떨군다.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왔다. 그 놈의 술, 술, 술! 그녀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건에는 그게 꼭 등장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움찔하면서 움츠러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어쨌던 이제는 아무 사이도 아닌 거 맞지?”
“으, 응...맞아..”
“좋아, 이미 미현이 누나가 다 용서한 일을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니까..”
고개를 살며시 쳐드는 은주에게 일침을 가했다.
“대신!”
그러자 또다시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딱 한 달만 술을 끊어봐, 알았지?”
“그것만 하면 돼?”
“그래..그리고 나도 미안해, 그 동안 속여와서...”
“아니야...언젠가 말해줄 줄 알고 있었어.”
어깨를 보듬자 은주가 품 속으로 안겨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오는 손길, 고개를 돌리자 미현의 따스한 미소가 반겨주었다.
“여기서 들을래? 아니면 안으로 들어갈까?”
“그냥 여기가 좋겠어...안은 너무 답답해...”
은주의 대답에 미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팬티와 치마를 챙겨 입었다.
“그러면 마실 거라도 가져올게.”
미현이 사라지자 상혁은 입을 열기가 참으로 난처했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지.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자기는? 내가 창녀같이 더럽게 느껴져?”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건 달라..어쨌던 나를 만나기 전의 일들이잖아? 하지만 난...”
“사랑해, 여보..”
그녀의 따사로운 음성에 상혁은 말을 멈추었다. 이미 모든 걸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건 오히려 그녀를 모욕하는 짓이었다.
은주가 그의 목을 껴안아오면서 속삭였다.
“여보,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야...이상하게도 당신한테는 뭐든 다 털어놓고 싶어져. 그리고 투정을 부리고, 억지를 피워도 다 받아줄 것 같고...”
“그래...얼마든지 그래도 돼...사랑하는 내 아내...”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를 찾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하체를 더듬다가, 자기 손에 미현의 보짓물이 묻어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왠지 그것마저도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래..은주를 위한답시고 숨기는 게 아니었어...’
미현의 말이 옳았다. 은주가 상처받고 아니고는, 오로지 그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