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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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특별이벤트(?)는 없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상혁으로서는 실망스럽게도, 수한은 아주 건전한 애주가였다. 애초에 이야기했듯이 정말 술만 찐하게 마셨던 것이다. 마지막 Bar에서 주문한 양주를 채 반도 못 마시고 키핑을 시킨 후, 해롱거리는 수한을 부축해 하숙집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자정을 지나있었다.

“휴우~ 샤워나 해야겠다.”

아직은 동장군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꽤나 취기가 오른데다가 장정 하나를 거의 떠메다시피 했기에, 등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있었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서 손잡이로 팔을 뻗는 순간 소리 없이 열리는 문,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건 왜일까?

“안녕하세요~?”

“그, 그래. 안녕?”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여오자, 거의 본능적으로 인사부터 받고 보는 상혁. 그러자 마치 그림자처럼 ‘스르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 매끄러운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자, 잠깐만..”

“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귀, 귀엽다~~~~~’

처음에 느껴지는 이미지는 땡글땡글하다는 거다. 코알라처럼 새까만 눈동자는 물론, 짙은 쌍꺼풀이 진 눈 또한 크고 둥글었다. 그리고 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앞이마가 아주 예쁘게 반원을 그렸다. 게다가 조금은 작은 듯한 입술도 도톰하니 솟아올랐고, 심지어 콧방울과 귓불마저도 동글동글하니 작고 귀여웠다.

그런 오밀조밀하고 선명한 이목구비가, 애기처럼 뽀얀 살결과 단정하게 정리된 단발머리에 너무나 잘 어울려, 마치 하이틴 잡지에 나오는 교복차림의 소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상혁이 기대했던 뭔가 야릇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지만, 남자형제들 틈에서 삭막하게 자라며 가끔씩 상상해보던, 너무나 귀엽고 예쁜 여동생이 현실세계로 ‘툭~’ 튀어나온 듯한 저 모습이라니!

“그, 그러니까...네가 벼리지?”

“네, 오빠는 상혁 오빠고요?”

순간 상혁은 온몸이 노골노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감동이 마구 밀려왔다.

그것도 오빠란다, 오빠, 오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하하하~ 그래, 맞아~ 반가워~ 아침엔 내가 워낙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해져서는 미소가 연신 흘러나왔다. 그러자 벼리도 방긋 웃음으로 화답해주는 게 아닌가? 이렇게나 예쁘게 잘 웃는 아이를 두고서 그런 유언비어를 유포하다니, 역시 은주는 요주의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오빠~”

“응~ 그래~~ 헤헤헤~”

수천 번을 들어도 싫증이 날 것 같지 않은 저 ‘오빠’라는 말, 정말 살살 녹아 내리는 것만 같다.

“코털이 나왔어요~ 아주~ 긴 걸로요~ 풋~”

웃음을 참으며 멀어져 가는 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혁은 얼음동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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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에게는 아마 개그맨쯤으로 각인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만 보면 웃음부터 먼저 터뜨리니.

뭐,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벼리가 아주 밝아졌다며 좋아했지만 말이다. 망가진 모습만 보였는데도 슬슬 피하는 대신 그렇게라도 웃어주니, 어쨌던 그나마 나은 게 아니냐고 자위하면서, 상혁은 그렇게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져 갔다.

“야~ 박 상혁~”

문이 벌컥 열리면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상혁은 가슴이 덜컥했다. 번번히 겪으면서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자~ 자~ 이 누나가 널 생각해서 이렇게 맥주를 사온 게 아니겠니? 빨리 상 차려~”

“에효~ 알았어..”

술에 잔뜩 절어서는 비틀비틀 손에 든 비닐봉지를 휙~ 집어 던지는 은주, 이미 예상하고 있던 상혁은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 책상 위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방바닥에다 신문지를 깔고서, 캔맥주와 안주들을 주섬주섬 꺼내는 동안, 은주가 철퍼덕~ 주저앉는다.

‘나~참~ 무슨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음에도 대뜸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그녀, 허벅지의 깊숙한 곳은 물론 자칫 팬티마저 보일 지경인데도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예전에 가졌던 환상이 하나 둘씩 깨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란 건 틀림없다. 하지만 남자보다도 더 터프하고 무신경하니, 상혁도 이제는 꽤나 무덤덤해진 상태였다.

“캬~ 역시 타고난 살림꾼이란 말이야~ 너 내 마누라 해라~ 응?”

안주를 꺼내 먹기 좋게 찢은 다음, 캔맥주의 주둥이부분을 휴지로 깨끗하게 닦아 건네줬더니,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신 은주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난 됐으니 지금 남친이나 잘 키워보세요~ 누님~~”

“응? 그 자식? 에이~ 안돼, 그 짓은 잘 하는데, 고분고분한 맛이 전혀 없어. 걸핏하면 올라탈 생각만 하고...”

밖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상혁 앞에서 도대체 숨기는 법이 없다. 그게 그를 씁쓸하게 만든다. 그녀에 대한 마음이 서서히 정리되어가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아무리 봐도 은주에게는 자신이 남자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으니까.

상혁은 가슴한구석이 싸하게 아파오는 느낌에 맥주를 들이켰다.

“아~ 맞다, 이봐~ 숫총각~”

“크흐~~”

이제는 일일이 발끈하기도 귀찮았다. 아니, 하루에 한번이라도 저 소리를 듣지 않으면, 왠지 허전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내가 널 가르치면 되겠다. 그래서 제법 구실을 한다 싶으면, 그때 데리고 살지 뭐, 어때?”

“에?”

원래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이긴 했지만, 너무 취한 건지 오늘따라 좀 멀리까지 나가는 것 같아 왠지 불안했다. 그때 그녀가 상혁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누, 누나?”

“흐흐흐~ 내가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안 그래? 가만 보니까 누가 구제해주지 않으면 넌 평생 딱지를 못 뗄걸?”

이 나쁜 여자, 아픈 데를 아주 푹푹 찌르는구나! 그,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 걸까?

상혁은 바로 코 앞으로 다가온 새빨간 입술을 바라보며 자꾸만 입 안이 바짝바짝 타왔다. 살짝 벌어진 그 사이로 하얀 치아가 눈을 부시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이 턱을 간질인다.

“흐응~ 이렇게 보니까 꽤 잘 생겼는걸?”

“누...나...”

지금까지처럼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흐릿하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또렷한 빛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때 문득 미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때로는 여자도 일을 저질러버리고 싶어진다는.

지금이 그런 상황일까? 그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 순간 문이 왈칵 열리더니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언니~!!!”

“흐읏~!”

“어머~ 벼, 벼리야? 어, 언제 왔니?”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은주, 지금 막 돌아오는 길인지 가방을 둘러맨 벼리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핀다.

희한하게도 이 집에서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는 건 바로 저 아이였다. 늘 조용하고 목소리마저 크게 내는 법이 거의 없는데도, 묘하게 좌중을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너무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던 괄괄한 은주마저도 늘 벼리에게는 전전긍긍했다.

“언니는 오빠 좀 그만 괴롭히고 이리 나와.”

“벼, 벼리야~ 이제 막 마시기 시작했는데...”

손목을 잡아 끄는 벼리에, 은주가 울상을 지으며 사정하는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 같기도 했다.

“벌써 많이 취했어...뭐야? 아직 옷도 안 갈아입었잖아? 또 씻지도 않고 그냥 자려고?”

“아, 아니야! 지금 막 씻으려고 했어.”

벌떡 일어서더니 엄마 뒤를 쫓는 아기오리처럼 종종걸음을 옮기는 은주에,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오빠~!!”

“헉~! 그, 그래...”

그 커다란 눈으로 응시해오자, 상혁은 왠지 긴장이 되었다.

“오빠도...싫으면 싫다고 말해, 만날 언니의 주정을 받아주지만 말고...”

“그, 그게...주정까지는...아, 알았어!”

주절주절 변명을 하려던 상혁은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눈길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특별히 냉정하다거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닌데, 저 맑고 깊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위축이 되곤 하는 것이다. 너무나 깨끗한 호수를 봤을 때 서늘함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잘 자~ 오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그, 그래...너도 잘 자...은주 누나도...”

“응~”

두 여자가 사라지고 나자 크지도 않은 방 안이, 마치 가을운동회가 끝난 운동장처럼 느껴진다. 멍하니 앉았던 상혁은 마시다 만 맥주를 다시 넘기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가슴 속이 따스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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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준비를 하고서 방을 나오던 상혁은, 복도에서 미현과 딱 마주쳤다.

“어? 누님도 어디 나가세요?”

“응~ 장도 보고, 이것저것 살 것도 좀 있어서..상혁인?”

“아, 네~ 전 옷을 몇 벌 살까 하고요...군대 가기 전에 입던 것들은 이제 너무 작아서요.”

“그래? 그러면 잘 됐네? 혹시 딴 약속은 없지?”

“네...왜요?”

“남자 옷은 원래 여자가 골라줘야 제대로거든? 그리고 겸사겸사 네가 짐꾼도 좀 해주고..”

“하하하~ 좋죠, 이렇게 미인과 데이트를 한다는데..”

“호호호~ 아주 듣기 좋은 소린걸?”

두 사람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서 집을 나섰다.

이제는 봄기운이 완연해진 탓에, 따스한 햇살아래 여기저기서 움트는 새싹들이 너무나 싱그러워, 그걸 보기만 해도 괜히 즐거워졌다.

“음~ 이렇게 나오니까 너무 좋다~”

“후후후~ 저도 그래요~”

천천히 길을 걸으며 화창한 봄날을 만끽하는 중에도, 팔뚝을 은근히 눌러오는 뭉클한 감촉이 야릇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다고 끈적하고 뜨거운 욕정 같은 건 아닌,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달콤한 흥분 정도여서, 즐거운 기분을 더욱 북돋우어주었다.

“어디부터 갈까요?”

“어차피 장은 제일 마지막에 봐도 상관없으니까, 일단은 네 옷부터 보러 가자.”

“혹시 괜찮은 데 아세요? 저는 그런 데를 잘 몰라서요...”

사실 상혁은 자신이 직접 옷을 고르고 사는 일에 굉장히 서툴렀다. 지금까지 대부분은 고향집에 갔을 때 엄마나 형수들이 사준 것들이었다. 그게 아니면 학교 안에서 파는 기념 티 몇 장 정도? 그걸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러면 내가 상혁이에게 옷을 골라주는 첫 여자인가?”

“하..하..하...그렇겠네요...”

‘첫 여자’라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심금을 울리면서, 정말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젖가슴이 조금 더 밀착해온 것 같은 느낌은 그냥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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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미현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어머~ 정말 인물이 확 사는걸? 진작부터 좀 그러고 다니지?”

“헤헤헤~ 너무 쑥스럽게 그러지 마세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니야...어디 옆으로 한번 돌아서봐..”

거울 앞에 섰던 상혁이 몸을 옆으로 돌리자, 그녀가 옷의 품을 보듯이 여기저기 만져왔다. 어깨와 등을 쓰다듬은 손이 가슴을 부드럽게 더듬을 때, 상혁은 온몸이 짜르르~ 울리는 느낌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운동을 많이 했나 봐?”

“후후후~ 군바리야 생활자체가 다 운동이고 노동이죠.”

쑥스러움을 숨기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병 때부터 꾸준하게 웨이트를 했었다. 작업을 하느라 울퉁불퉁하게 팔만 굵어진 모습이 너무 싫었던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은 제법 균형이 잘 잡힌 몸매가 되었다. 물론 자신의 멋진 알몸을 보며 감탄하는 여자를 상상하곤 했다는 건 혼자만의 비밀이지만.

사실은 지금도 미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은근슬쩍 힘을 주고 있었다.

“좀 더 달라붙는 것으로 입어봐...그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요? 알았어요...”

상혁이 한 사이즈 작은 것으로 다시 갈아입고 나오자, 그녀의 낯빛이 아주 환해졌다.

“그래, 바로 그거야. 아주 좋은데? 정말 잘 어울려, 앞으로도 그렇게 입고 다녀, 알았지?”

“네...근데...너무 좀...민망하지 않나요?”

상혁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렇게 나지막이 묻자, 미현이 빙긋이 웃었다.

“내 말을 믿어...”

그리고 상혁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슬쩍 ‘툭’ 건드리면서 속삭였다.

“엉덩이가 아주 예뻐, 탄탄한 게 굉장히 섹시하기도 하고...”

“누, 누님?”

심장이 쿵쾅거리며 얼굴에서 열기가 화끈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워낙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청바지라, 안 그래도 앞쪽이 불룩하게 드러나 그렇게 말했던 건데, 이제는 정말로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게 될지도 몰랐던 것이다.

“호호호~ 괜찮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저기 의자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금방 올게...”

알아챈 게 분명했다. 미현의 눈길이 바지앞자락을 얼핏 스치는 게 보였다.

상혁은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충고대로 거울 옆 의자에 앉아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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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미현의 요청대로, 새로 산 옷을 입은 채 이동했다. 처음에는 왠지 남들이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아 어색했던 상혁도, 곧 적응이 되었다. 그녀의 장담처럼 길거리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던 것이다.

“어때? 자신감을 가져도 될만하지?”

“고마워요, 누님~ 헤헤헤~”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제법 괜찮은 모양새라는 걸 스스로도 확인하게 되자, 정말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거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자 앞에서 작아지는 남자를 완전히 탈피하는 날이 올 것 같았다.

“자~ 이건 내 선물이야..”

“네? 선물이요?”

“그래...호호호~ 마음에 들 거야..”

그녀가 내민 작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아까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이걸 사러 갔던 모양이다. 상혁은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수한을 통해, 그녀의 경제적 상황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 안에 든 걸 꺼내려다 화들짝 놀라 다시 닫았다. 여자의 속옷이 아닌가 할 정도로 꽤나 작은 팬티였다.

“누, 누님?”

“패션의 완성은 속옷이야. 겉으로 안 보인다고 그걸 소홀히 하면 진짜 멋쟁이가 못돼. 알았지?”

윙크를 하며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 하기야 지금은 하숙집아줌마이지만, 예전에는 패션의 첨단을 달렸을 게 분명하다. 상혁은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가슴이 찡해져 왔다.

“누나, 정말 멋진 선물이에요...마음에 너무 드는데요? 하하하~”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가장 큰 보답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일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굉장히 기뻤다.

“어머~! 너무, 너무 좋아~ 진작에 그러지?”

“네? 뭐가요?”

“금방 누나라고 불렀잖아?”

“아~”

자신도 모르게 ‘누님’이라는 평상시 호창 대신 그렇게 불렀다는 깨달았다. 그만큼이나 나이차를 순간적으로 잊었었다는 걸 거다.

“하하하~ 이런 선물을 처음 받아봐서 너무 기뻤던가 봐요.”

“앞으로는 누나라고 불러, 알았지? 이젠 누님이라고 불리면 팍삭 늙은 기분이 들것만 같거든?”

“후후후~ 눼~~ 누나~”

“호호호~ 들으면 들을수록 참 좋은걸?”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상혁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자신도 미현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쩌면 그녀를 통해서 연애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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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은 양손을 든 짐들을 주방에다 내려놓고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저...누나...아까...”

“호호호~ 이런~ 이런~ 하루 종일 열심히 자신감을 키워놨더니 그새 다 까먹었어?”

미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양 뺨을 두 손으로 잡아서 눈을 맞추었다. 또다시 심장이 마구 뛰면서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려 한다. 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그렇게 매사에 심각하게 고민하지마. 네 나이에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알았지?”

“..네...누나...”

마트에 들러 장을 본 후 버스를 타고 오다, 워낙 혼잡한 실내에 미현을 보호하려고 몸으로 막아선 게 실수였다. 탐스러운 그녀의 엉덩이와 마찰이 된 자지가 그만 벌떡 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다른 손은 손잡이를 잡은 상황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사람들에게 밀리고 버스에 흔들려, 엉덩이 사이를 박아대듯이 계속 찔렀었다.

“그리고 그거 알아?”

“뭔데요?”

“사람들이 선물을 할 땐 보통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이라니요?”

수수께끼 같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녀가 야릇한 미소를 띠며 소곤거렸다.

“반지를 선물할 때는 당연히 그걸 낀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향수를 줬을 땐 그게 섞인 체취를 맡고 싶다는 의미고...그렇다면 옷은?”

“누, 누나?”

그 순간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와락 껴안아버렸다. 그러자 그녀가 그의 이마를 손끝으로 살며시 밀어내며 말했다.

“쿡쿡~ 안돼요~ 이 순진한 총각님~”

“미, 미안해요..누나...”

정신이 번쩍 든 상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의 뺨으로 보드랍고 촉촉한 뭔가가 닿았다.

“쪽~ 오늘은 나도 너무 즐거웠어...두근두근하는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었거든?”

“..누..나...”

너무나 짧았지만 아찔할 정도로 짜릿한 입맞춤이었다. 그 달콤했던 느낌에 지금도 몽롱한 상태였다.

“자~ 빨리 씻어...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고...”

“헉~!!”

그녀의 눈짓을 따라 무심결에 고개를 내리던 상혁은 경악성을 토하며 후다닥 돌아섰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청바지의 한 부분이 물기로 얼룩져있었다. 너무나 흥분한 탓에 겉물이 흘러나와, 밖에까지 스민 것이었다.

그때 엉덩이를 토닥거리는 손길과 함께 속삭임이 들려왔다.

“흐응~ 상혁이의 가장 큰 매력이 그런 엉뚱한 곳에 숨어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누, 누나!”

“자~ 자~ 오늘은 그만...너도 나도 너무 흥분했어..”

마치 고백과도 같은 그 말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누나도 흥분했단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그녀도 자신처럼 아래쪽이 흠뻑 젖은?

상혁은 온몸이 부르르~ 떨려오며, 당장에라도 돌아서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아냈다.

“잊지마....여자는 분위기라는 거..오늘은 꽤나 훌륭했어...다음엔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게...”

등을 미는 손길에 상혁은 흐느적거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앞만 바라보며 방으로 돌아왔다.

“휴우~”

침대에 털썩 드러누운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불룩한 아랫도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누나...”

작게 중얼거려보고는 눈을 감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면서 가슴이 뛰었다. 미현은 많은 걸 가르쳐주면서 또한 여러 가지를 숙제로 남겼다. 어쨌던 분명한 건 자신이 분발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였다.

‘훗~ 누나, 내 선물을 입은 누날 꼭 보고 싶어요...’

이미 아까부터 그녀에게 줄 선물을 정해놨었다. 당연히 속옷이다. 그것도 아주 하늘하늘하고 투명한 망사로 된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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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노크소리에 문을 열자 벼리가 서있었다.

“오빠...”

“응, 벼리야...어서 들어와.”

그러자 주저주저 망설이기만 한다.

“무슨 할말이 있니?”

“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늘 느끼는 거지만 도무지 요즘 아이 같지가 않다. 마치 우리 할머니 시대의 규중처녀를 보는 듯한,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후후후~ 그러면 해봐, 뭘 그렇게 망설이니?”

“저...부탁이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빨리 말해...설마 이 오빠가 우리 벼리의 부탁을 거절하겠니?”

하지만 곧바로 그 호언장담을 정말 후회하고 말았다.

‘누, 누드모델이라니!!! 벼리야~~~ 너마저....흑흑흑~’

청천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물론 사정을 듣고 보니 일견 그럴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누드라니!

그것도 여자들만 있는 화실에서. 벼리 딴에는 그나마 위안이 되라고 한 얘기겠지만, 눈앞이 더 캄캄해지는 소리였다. 가뜩이나 시도 때도 없이 벌떡벌떡 서버려 곤란하게 만드는 자지였다. 그런데 좁은 실내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홀딱 벗고 있다면?

아, 아니,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누드모델이라고 하지 않나?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는 아니었다.

“..오빠...미안해요...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릴...”

“아, 아니...잠깐...할게...해줄게...”

벼리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비치는 순간 그렇게 말해버렸다. 상혁은 자신의 주둥이를 쥐어박고 싶어졌지만, 금새 환해지는 벼리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총각딱지도 못 뗀 놈이, 여자들 앞에서 알몸으로 선을 보이는 희귀한 경험부터 하게 되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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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가온님의 조언에 따라...명칭을 수정합니다...감사 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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