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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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961207

제목:질긴 인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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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은 그 특유의 느긋함(이라 쓰고 ‘게으름’이라 읽으면 정확하다)을 발휘하여 침대 위로 덜렁 드러누웠다.

“휴~ 일단 오늘은 대충 이 정도만 하지 뭐~, 또 필요한 게 생각나면 그때 사고..”

방 안을 휘휘~ 둘러보자 그래도 제법 분위기가 난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고생한 보람을 느끼고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큼지막한 책상 옆에 달라붙은 싸구려 책장, 그리고 역시 아주, 아주 저렴하게 구입한 플라스틱 서랍장과 천장에서 바닥까지 딱 가로지른 무식하리만치 튼튼해 보이는 행거 하나.

흐뭇해하는 당사자의 평가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썰렁하게만 보일 게 틀림없지만, 애초에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 쓸 정도의 위인은 못 된다.

‘똑~ 똑~’

노크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지금 방문을 두드릴 사람은 하숙집아줌마뿐이었다. 그렇다면 초장부터 이미지관리를 잘해놔야, 하다못해 콩 한 쪼가리라도 더 떨어지는 법이다. 이렇게 낭창낭창한 모습을 보이면 무조건 마이너스였다.

번개같이 몸을 날려 책상 밑으로 머리를 처박고서, 뭔가를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약간 헐떡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헥헥~”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서 안으로 들어서는 인기척.

“아휴~ 고생이 많네? 자~ 이것 좀 받아.”

예상대로다. 조금은 수다스럽게까지 느껴지긴 하지만, 허스키한 비음이 살짝 섞인 음성이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하숙집의 절대권력자, 아줌마였다. 책상 밑에서 미적미적 기어 나왔다.

“어?”

처음 봤을 때부터 자꾸만 시선이 그리로 쏠려 당혹감을 느끼게 만들던, 탐스러운 아줌마의 품에 껴안긴 저 부러운(?) 물건은!

“아까 보니까 짐 중에서 이불이 안 보이는 것 같던데...맞지?”

“아..하...하..하...가, 감사합니다...제가 방 정리를 하느라 깜박해서...”

당연히 핑계다. 까먹은 게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침대를 사면서도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게 이불일 줄이야! 태연한 척해도 쪽팔림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야~ 야~ 임마, 이 정도로 뭘 그래? 천하의 예비역병장님이...’

삽 한 자루만 쥐어주면 터널을 파내고, 낫만 쥐고서도 산 하나를 혼자서 모두 깎아낸다는, 그 찬란한 위업에 빛나는 육군땅개생활을 빡빡하게 다 채운 그다.

“이, 이리 주세요. 제가 내일 당장 이불을 사고, 이건 깨끗하게 빨아서 반납하겠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남는 건데, 뭘? 그런데 상혁 학생은 정말로 싹싹하네?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막내 동생 같아서, 왠지 남 같지가 않더라~ 호호호~”

“하..하..그, 그러세요? 저, 저도 꼭 저희 엄마처럼 친숙한 게...”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등으로 흐르는 식은 땀. 아무리 눈치가 무딘 그라지만, 자신의 실수가 뭔지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한 시간 후에 저녁식사니까, 늦지 말고 맞춰서 나와요.”

“네? 네, 네...알겠습니다...”

갑자기 딱딱한 존댓말로 용건만 말하고는 휙~ 나가버린다.

“아~ 이 멍청한 놈...”

그렇다. 이 천하무적예비역님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자 앞에서 버벅댄다는 점이었다. 30대 초반의, 그것도 섹시한 그녀를 엄마와 비교하다니. 더더군다나 호의를 표시하며 동생 운운하는데다 대고서 말이다.

일부러 닦아내지 않고 두었던 이마의 땀방울 효과까지 한꺼번에 몽땅 말아먹은 셈이다. 왠지 단단히 찍혔을 것만 같다. 콩 쪼가리는 고사하고, 만날 콩나물국에다 멸치조림만 먹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고 있었다.

“크~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그냥 처음 그 집으로 정했어야 하나?”

하숙비도 싼 편인데다가 넉넉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주인이던 그 하숙집, 본능적으로 이곳의 하숙생들은 전부 오래되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었다. 지방으로 전근을 가게 된 사람 때문에 마침 방이 비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걸 망설이게 한 건, 너무나 후덕하고 편안한 아주머니의 외모였다.

물론 그거야말로 하숙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조건 중 하나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 마음가짐에서 형성된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에게서는 엄마와 같은 포근함이 묻어났었다. 문제는 남자들의 땀냄새만 지겹도록 맡아왔던 상혁이기에, 복학하는 이 시점에서 약간의 기대랄까 그런 게 있었던 것이다. 객지생활을 하는 남자들의 로망이 바로 젊고 섹시한 하숙집아줌마가 아니던가?

때문에 한집만 더 둘러보고 결정하자는 망설임이 결국에 발목을 붙잡았다. 이 하숙집의 문패 옆에 붙은 ‘하숙생 구함’이라는 종이를 보고 들어선 순간,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젊은 여자의 자태에, 제발 그녀가 주인이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쩝~ 샤워나 해야겠다...괜히 땀냄새를 풍기다 또 찍히지나 말고...”

상혁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서 수건과 속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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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 구조에다 방이 5개, 그를 포함해 독방을 쓰는 하숙생만 4명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정작 식탁에 마주앉은 건 달랑 두 사람뿐이다.

“쩝쩝~”

“냠냠~”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먹고 있는 건 당연히 상혁이다. 젓가락만으로 5분만에 식판을 깨끗하게 비운 뒤, 담배 한대까지 피우고도 여유 있게 근무교대를 해내던 전투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많이 먹어, 아무래도 오늘은 전부들 밖에서 먹고 올 모양이니까..”

“아, 네~”

조금은 까탈스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다지 뒤끝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사실 ‘갑’이 이렇게 ‘을’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 상황이, 억울한 점이 없잖아 있긴 해도 어쩌랴, 자초한 일인 걸.

상차림 역시 상혁의 기우였다.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환영의 의미인지, 생각지도 못한 아구매운탕이 떡하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꽤 놀랐었다. 더군다나 제법 훌륭한 음식솜씨까지.

“반주도 한잔 할래?”

“꿀꺽~ 조, 좋죠..”

그에게 있어 또 하나의 약점, 바로 술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상형이 술 잘 마시는 섹시한 여자였다.

“자~ 우리식구가 된 걸 환영해, 앞으로 잘 해보자~”

술을 따라주고서 자신의 잔마저 채우더니 생긋 웃으며 내민다. 살살 녹는 듯한 그 미소에 상혁은 온몸으로 전기가 짜르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잘 부탁 드립니다. 누님~”

“어머~”

순간 그는 찔끔하고 말았다. 딴에는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회심의 일타를 날린 건데, 지나치게 오버한 걸까?

“호호호~ 그래, 그래. 이 누나만 믿어~ 자~ 건배~”

“헤헤헤~ 눼~ 누님~”

상혁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잔을 부딪쳤다. 저 정도의 외형적인 스펙에다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니. 그는 이 누님이 점점 더 마음에 들고 있었다.

“근데 상혁이...이렇게 불러도 되지?’

“당연하죠~”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왠지 앞으로 즐거운 하숙생활이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었다. 조금은 므흣한 상상도 곁들여가면서 헤죽대고 있을 때.

“애인 없지?”

불까지 확 지른다. 끈적하게 달라붙어오는 듯한 저 야릇한 미소, 그의 머리 속에선 19금 영화가 막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게 녹녹할 리가 있나? 그랬다면 이 세상에는 솔로부대라는 게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음~ 혹시...아직 숫총각?”

“컥~”

단숨에 급소를 콱 찔러왔다. 콤플렉스와도 같은 저 단어, 친구들에게 일명 ‘헌 숫총각’으로 놀림을 당한다는 걸 모르고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상혁에게 있어서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치명타였다.

“호호호~ 정말인가 보네?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

짜랑짜랑한 교소가 그의 쓰린 가슴 속을 마구 헤집었다.

“크으~”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소주를 원샷으로 날리는 것뿐이었다.

“어머~ 왜 그래? 그게 뭐 어때서? 난 순수해 보여서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자~ 내가 따라줄게.”

“네...”

자작을 하려는 상혁을 만류하고서 대신 잔을 채워준다.

하기야 그게 어디 그녀의 잘못이겠는가? 못난 자신의 탓이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기억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근데..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에요? 다른 하숙생들도 궁금하고요.”

화제를 바꾸었다. 실상 그것들이 많이 궁금하기도 했고.

“으, 응~ 우리남편은...”

사업을 한다고 했다. 한때는 제법 잘나가는 젊은 기업인이기도 했는데, 과욕을 부리다가 한방에 다 날려먹고는 재기의 그날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중이라나? 웃음과 함께 그냥 가볍게 넘기는 그녀의 눈빛에서 언뜻 아픔이 느껴져, 괜한 걸 물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나마 그 부분을 짧게 끝내고서 곧바로 하숙생들로 넘어가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상혁이 말고 남자 한 명과 여자 둘인데...”

그때 갑자기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요란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 언니~!! 설마 벌써 다 치운 거 아니지?”

다급한 여자의 음성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 상혁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소리만으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끼 하마쯤을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대박이었던 것이다.

‘와우~ 이거, 이거...내가 정말 하숙집 하나는 끝내주게 골랐구나~’

완전 로또에 맞은 기분이었다. 이 매력덩어리 누님에 못지않은, 아니, 솔직히 겉모습만으로 보면 훨씬 더 뛰어났다. 몸에 달라붙은 정장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쭉 빠진 몸매에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려, 오뚝하니 솟은 콧등 근처에서 살랑대는 저 눈부신 미모를 보라!

“어서 와~ 다행인줄 알아, 여기 상혁이 덕분에 안 굶어도 되니까..호호호~”

상혁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이 짧은 대화로 유추해보건대, 이 매력만점인 누님이 의외로 냉정하다는 거였다. 식사시간을 정해놓고는 그걸 어기면 칼같이 치워버린다는 사실.

‘그, 그래도...자기만 믿으랬으니까...난 확실히 챙겨줄 거야...암...암...막내 동생 같다고 했잖아?’

그렇게 자위를 해보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어멋~ 새 식구? 반가워요~”

“아, 네? 네...저도~”

“꺄~~ 이게 뭐야? 아구매운탕에 소주까지? 자, 잠깐만!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까, 언니 이거 다 먹으면 안돼, 알았지?”

“호호호~ 그래, 걱정 마. 우리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

또다시 요란한 발걸음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저 몸매에서 어떻게 저런 파워가 나오는 걸까? 상혁의 머리 속에서 ‘진각(振脚)’이라는 말과 함께 황비홍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화끈한 게 이 집 여자들의 특성인가 보다. 조금 전에 그녀가 느닷없이 손을 턱 붙잡으며 악수부터 해온 걸 보면. 물론 그게 그의 마음을 더욱더 흐뭇하게 만들었다는 건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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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러면 나보다 1년 후배네?”

26세,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해서 3년째라는 장 은주. 과는 비록 다르지만 상혁과 같은 대학의 1년 선배였다. 이 하숙집에서만 5년을 지낸 최고참이란다. 화장을 지우고서 편한 옷차림으로 다시 나타난 그녀는, 아까와는 또 다른 청순한 미모로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를 공황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부터 말을 놓을게. 상혁이도 나를 누나라 불러..자~ 반가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쭉 내밀었지만 상혁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은주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뭐니? 왜 기분 나빠?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다가, 과 선배도 아닌데 반말을 해서?”

“아, 아니에요. 누나...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그제서야 정신이 든 상혁이 잔을 부딪쳤다.

“흐응~ 어째 그게 더 기분 나쁜데? 나 같은 미녀를 앞에다 두고 딴 생각이라니?”

“킥킥~ 얘~ 쟤가 아주 순진덩어리거든?”

순간 상혁은 뜨끔했다.

“누, 누님~!”

“호호호~ 애인은 고사하고, 숫총각이란다~ 천연기념물이야~~”

이미 늦어버렸다. 사정없이 터뜨려버린 누님 탓에 상혁은 벌개진 얼굴로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어머~ 어머~ 뭐야? 그 사이에 둘이서 그런 이야기까지 한 거야?”

“호호호~ 우리가 보통~ 사이가 아니거든?”

누님이 슬며시 그의 손을 잡으면서 눙치자 은주가 펄쩍 뛰었다.

“꺅~ 손 떼~ 이 밝히는 아줌마~!!”

“늦었네요~ 상혁이는 이미 나의 매력에 푹~ 빠진....”

마치 친구처럼 아옹다옹 토닥거리는 그녀들. 그는 양손을 두 여자에게 잡힌 채 중간에서 장난감 취급을 받고 있었다. 꽤나 짜릿하고 즐거운 상황임에도, 그의 머리 속은 딴 데로 여행을 떠난 탓에 그런 걸 만끽할 겨를이 없었다.

‘맞아. 틀림없어...’

처음에는 화장을 한데다 정장 탓에 워낙 성숙해 보여 몰라봤었다. 하지만 저 얼굴이 둘일 리가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뇌리에 틀어박히면서, 심장에다 못질을 했었으니.

상혁은 당시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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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참, 어째 군바리보다 더 잘들 자네?”

첫 휴가를 나와서는 바로 고향집으로 가는 대신 학교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들어가, 마침 예전에 안면을 텄던 아저씨가 근무 중이라 출입증 없이도 들어갈 수가 있었다, 층층을 뒤져서 선배와 후배를 찾아냈다.

그 이후야 당연히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결국엔 학교 앞의 허름한 여관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비좁은 곳에 세 사람이 끼어 누웠는데도, 둘은 방바닥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덕분에 상혁은 혼자 앉아, 사온 소주를 마시며 열심히 포르노를 시청했다.

남들이야 첫 휴가를 나오면 애인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지만, 여자친구는커녕 총각딱지마저 못 뗀 그였기에 이나마도 호강이었다. 아마 옆에 누운 둘만 아니었다면, 밤새 딸딸이를 치다 해골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쩝~ 무지 야박해졌네?”

예전에는 밤새 연이어서 틀어주더니만 달랑 두 프로가 다였다. 그래도 혹시나 기대하며 TV만 뚫어져라 노려보다 보니, 어느새 창 밖으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눈이 뻑뻑하게 아파오면서 이제서야 졸음이 몰려왔지만, 별로 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TV를 끄고 씻을 생각에 일어서려다 멈칫하고 말았다.

“어~?”

뭔가를 들은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아~”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듯한 전율이 흘렀다. 숨마저 멈추고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아흑~”

분명했다. 여자의 신음소리다. 비록 직접 경험은 없다지만, 그간 봐왔던 포르노가 몇 편인데 그 정도도 구분 못할까? 곧바로 벽에다 귀를 갖다 붙였다.

“흐흐~흑~ 아~ 아~ 오빠~”

거의 흐느끼고 있다. 그 중간중간 울리는 굵은 남자의 음성. 여자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면서 그 끈적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씨발~ 아예 잡는구나, 잡아~’

부러움이리라. 상혁은 속으로 욕을 해대면서도 팬티를 뚫고 나올 것만 같은 자지를 거머쥐었다. 포르노 따위는 비교가 안되었다. 밤새 눈알이 아프게 그걸 지켜보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탁~ 탁~ 탁~’

만약에 자고 있는 두 사람이 깬다면 개쪽이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흥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아주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부러움, 질투, 흥분, 그리고 자기모멸감까지.

‘찍~ 찍~’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엄청난 쾌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팬티를 다 적시고도 그 틈새로 새나온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미지근한 감촉이 자괴감을 더하게 했다.

“하아~”

화장실에서 휴지로 닦아내고 방으로 다시 돌아와 담배를 물 때까지도, 여자의 울음은 계속되어 또다시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더 있기가 싫어서, 워낙 방음이 안 되는 곳이라 듣기 싫어도 자꾸만 들린 탓에, 두 사람을 깨워 씻게 한 후 방을 나섰다. 그때 옆 방문이 열리면서 실루엣이 보였다.

“헉~!”

“왜요? 형..”

“아, 아니..”

상혁은 후배에게 얼버무리는 중에도, 복도를 지나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여자의 얼굴로 시선이 못박혀있었다. 아주 못 생겼거나, 아니면 최소한 천박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런데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것도 그가 평소 꿈에서나 보던 완벽형에 가깝게 말이다.

그린 듯이 선명한 이목구비가 너무나 청순해, 청바지와 하얀 블라우스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손에 든 파일에 찍힌 선명한 학교마크가 왠지 분노를 일으킨다. 아마 상대적인 박탈감일 것이다. 자신과 같은 학교의 여학생이 타교생과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괜히 열이 받는 그런 심리.

“자~ 자~ 빨리 가서 해장국이나 먹자. 속 쓰려서 죽겠다.”

“그래요, 형...”

선배의 재촉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여관 문을 벌컥 열자마자 골목길을 두리번거렸지만, 휑하니 바람만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알 수 없는 허전함에 가슴이 온통 텅 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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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쒸~ 거기만 안 갔어도...’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 ‘헌 숫총각’이라는 오명을 붙게 만든 그 이후의 일이 덩달아 떠오른 탓이다.

“언니, 얘 정말 숫총각이 맞나 봐? 우리 같은 미인들이 손을 잡았는데도 귀찮다는 표정인걸?”

“그렇지?”

상혁은 울컥하고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누구 때문인데?’

물론 마음 속으로만 내뱉었다.

바로 저 여자, 은주 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던 거다. 그간 지켜왔던 순결(?)이 왠지 억울해져서 확~ 저질러버렸던.

“아, 아니에요. 그냥 술이 마시고 싶은데...침만 삼키자니..”

“어머~ 미안, 미안~ 하기야 이렇게는 술을 못 마시지? 자~ 자~ 사과하는 뜻에서 내가 먹여줄게~”

“괘, 괜~ 크흡~ 콜록~ 콜록~”

대뜸 입에다 들이붓는 소주에 당황하다가 사래가 들고 말았다. 상혁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재채기를 하는 중에, 자신이 이곳에 머물게 된 게 복인지 화인지 이제는 알쏭달쏭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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