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강원우는 빗속에서 조용히 나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 날, 큰형님이 당신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강서준도 , 윤은협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
“...윤은협이 마지막으로 당신을 데려 가기 위해,
큰 형님 일파들에게 정보를 팔았어요.”
나는 몰랐다.
그리고 비는 지랄같이 계속 내렸다.
차창 밖으로 와이퍼가 움직인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조용히 걷고, 조용히 웃고, 언제나 조용히 남의 등을 지키는 것 같은
그 사내는 마지막 말도 늘 조용히 끝냈다.
“윤은협도 아마 고심했을 겁니다.
강서준이 형사라는 것.
이 곳에 위장으로 들어와 몇 년씩 숨어 있는 경찰이라는 걸...
그도 말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
강서준이..
..그 개새끼가..형사라구..?..
세상에..
조직원이 아니라, 그저 숨어 있던..경찰..?..
은협이 팔았다는 정보는 바로..
...‘강서준이 경찰이다’라는 단 한 마디??..그 증거들?
머리 속에 불이 올라 그를 노려보자, 강원우는 여전히 온화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경찰이 맞습니다.
그 사실을 윤은협씨도, 그리고 조직의 큰 형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윤은협씨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이미..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요..“
그렇다.
........윤은협. 그 바보같은 녀석이 실실 웃으며, 그러나 눈동자에는 핏발이 가득 서서 말했다. 내가 너를 빼오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그러니 나를 버리지 마..라고.
“하지만, 기연씨.
문제는 은협씨가 그 말을 모두가 있는 곳에서 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보스는 강서준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또 당신을 노리면서도 기회를 찾고 있었지만..
당신과 서준 둘 다를 헤칠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만, 강서준을 조직 내에 끌어들여 모종의 다른 계획에 이용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조직 내에는 분열이 조금 있습니다.
보스의 판단과는 상관없는 그런 분열들.
그리고, 그 분열 때문에 계속 히스테리칼 했던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분노를 해결할 대상을 찾고 있었죠.“
차가 도착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온 것은 어느 저녁의 병원 앞이었다. 내가 문을 열기 조금 전에 강원우는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머리 속은 ‘강서준’ = ‘경찰’이라는 해답을 알게 되는 순간, 목이 턱 막힐 만큼 복잡하게 엉켜 들었다.
“...그리고 제가 기연씨를 고등학교에 모셔다 들이던 날.
은협이 찾아왔고..
서준의 정체를 알게 된 보스 반대파의 몇몇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 무리들은 경찰과 인질의 신분으로 부당하게 보스로부터 보호 받고 있는
당신과 서준..
둘 다를 없앨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로 은협이 찾아왔던 그 다음 날..
말입니다..“
탈칵-
왠지 더 들을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표정없이 비 내리는 차 밖으로 문을 열고 나선다. 그러자 서둘러 비속을 뛰어 나오며,
강원우가 우산을 펼쳤다.
“기연씨..
서준이는 오고 싶어도 못 왔을 겁니다.”
“..................”
“당신이 고등학교에 다녀온 그 비오는 날.
자정이 훨씬 넘어서 강서준은 공격 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서준이에게 ‘내일’은 없었습니다.“
가슴 위로 길게 난 상처.
횟칼에 저미듯, 쇄골에서 복부까지 길게 이어지는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모두가 그를 죽었다고 여겼다
했다.
아아...
죽어, 강서준.
죽어!!!
오늘 밤, 나는 니가 죽는 꿈을 꿀거야!!!
마음이 아프다.
갑자기 허리 위부터 ‘지잉-’하고 뭔가가 나를 울렸다.
아냐, 죽어, 강서준!! 너 따위는 일찍 죽어버려!!!
속으로 다시 끈덕지게 저주를 퍼붓자, 또 같은 울컥함이 울려댄다.
‘지잉-’하고 뭔가 날카로운 금속성이 내 속을 할퀴었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짐승 발톱을 내려다본다. 바로 이렇게 할퀸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너무나 선명하고 예리한 아픔이어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제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친 새끼-!! 이런 일로 유약한 유기연은 나가 죽어..
왜 그 녀석을 죽이지 못하는 걸까. 이 독찬 입으로 내뿜는 저주 하나에도, 단지 그런 상상 만으로 눈꺼풀 안 쪽이
뜨거워진다.
아냐, 죽어..강서준.
제발 내 눈앞에 차갑게 나타나...
멈춰버린 내 이성을 일깨우고, 이 고통스러운 저릿함이 사실임을 알려주듯 강원우가 등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기연씨.”
“...................”
“가서 죽이든 살리든,..
...양 쪽 다 그 녀석은 말리지 않을 겁니다.“
겨우 숨이 토해진다.
뻑뻑하게 가슴 안 쪽에 응어리 져 있던 뭔가가 검은 한숨처럼 내 안에서 훅-하고 흘러나왔다.
나는 병실에 들어가기 직전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아무래도 염려된다.
그는 두 번이나 조직을 배신했다. 바로 강서준의 말을 듣고 나를 풀어준 것, 그리고 강서준의 정체를 알면서도 눈 감아준
것.
그러면서 그는 무사할 수 있을까.
.. 약간의 염려로 돌아보았을 때, 그는 웃었다.
태어난 이례 늘, 내게는 따뜻한 미소를 보이는 사람처럼.
“저는 괜찮습니다.”
“...............”
“...이보다 심한 짓들을 해도, 또 강서준과 내가 이전처럼 형사와 조직원이라는 관계에서 얼마든지 친하게 지내도....”
“..................”
“...조직에서는 나를 다치게 못합니다.”
“......하지만, 강원우 실장..
..당신은...........“
“...제가 보스 입니다. 기연씨.”
“........!!!!!!!!!!!..........”
나는 정말 몸이 빳빳이 굳었다. 조금 전에 서준의 정체를 들은 것, 그리고 은협이 정확히 언제 찾아왔고, 녀석이 어떤
정보를 팔았고, 그 때문에 서준이 공격당했다는 걸 아는 순간만큼 온 신경이 차르륵- 전기로 충전되었다.
그는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한결같은 미소, 한결같은 눈빛.
“제가 당신을 노리고 있던 보스입니다. 유기연씨.”
“...............”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던 그 사람..
그러니깐..
당신의 입으로 짐승이라고 말했던 그들의 우두머리 입니다.“
“.........아-!..................”
“서준은 나를 케기 위해 조직에 위장침입했지만..
우리 조직의 베일에 가려진 진짜 보스인 저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가 경찰이라는 걸 알고 이미 알고 있었고..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공격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직원들에게, 보스는 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특수한 몇 명만이 보스의 실체가 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조직이 분열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림자처럼 가려진 보스..
진짜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언제나 조직원들의 분열을 만들었죠..“
“...아..........”
나는 작게 탄식하고 굳었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런 식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아랫사람처럼 숨어있던 강원우의 실체를.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가장 부드럽게 웃고, 가장 온화한 눈빛으로 사람을 지켜보지만, 그 뒤에서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마치 사랑하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시선을 보내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저렇게 따뜻한 미소로 얼마든지 심장에
정확히 비수를 꽂을 사람이다.
강원우는 조금은 쓰게 웃으며 가볍게 내 등을 민다.
“안녕히 가세요, 기연씨.”
“...........................”
“여기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속이 쓰리다. 지잉-하고 뭔가가 허리 위를 울렸다. 금속성의 아픔이 진득하게 심장 근육을 찌르며 돌아다녔다.
윤은협의 밀고로 칼을 맞던 날. 강서준은 피를 뿌리며 그 호텔 계단에 쓰러졌다고 했다. 그런 그 녀석이 강원우에게 한
부탁은 딱 한가지였다고 한다. 유기연을 놓아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