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들어서기 전에 잠시 눈을 들어 내가 갇혀 있던 그 호텔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손등을 들어 그 상처를 혀로 핥는다.
이곳을 떠나온지 한 달하고도 이주일.
나는 70일이 넘게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아니 돌아볼 이유도 없었던 곳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는 진작에 나를 알아본 몇몇의 녀석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윗사람들의 명령으로 이곳에
끌려왔고, 그리고 지금은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무리들이 당황해하는 카운터 앞에서 나는 말했다.
“강원우 실장 데려와.”
지극히 차갑고 내려앉은 목소리로.
드디어 범인을 찾았다. 내게 이 짐승의 흔적을 남긴 그 때의 인물.
믿을 수 없다. 그것이 강원우라니.
잠시 숨을 돌리고 기다리자, 계단 저 쪽에서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듣던 강실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선다.
그 때 헤어졌을 때와 다르지 않게 언제나 조용히 친절한 얼굴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 그는 잘생긴 얼굴에 멋진 웃음을
띄며 내게로 다가왔다.
“어쩐 일로 다시 오셨습니까.”
마치, 당신은 올 필요 없다..라는 식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종이를 찢어내고 튀어나올 정도로
네 갈퀴달린 그 손모양의 칼을 꺼내 양탄자 바닥에 내던진다.
풀썩-
고운 양탄자가 쇠로 만든 그 흉기의 무게에 잠시 먼지를 털었다.
“......................”
강원우는 그 던져진 짐승의 발톱과 내가 얼굴을 향해 들이댄 손등을 번갈아 쳐다본다. 몇 번이나 그렇게 둘러본 그는 분노와
싸늘한 노기로 가득한 내 시선을 보며 한 숨 쉬었다.
“이게 왜 윤은협의 손에 들어가 있지?”
강원우는 그 말에 대답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 젖는다.
그러나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나를 잠시나마 풍요롭게 만들었던 그 때의 기억- 비록 손등에는 짐승에게 할퀸 상처가
남아 있고, 또한 다소 폭력적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지켜주었던 기억.
아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상처를 볼 때마다, 나는 죽어있던 나를 깨우고 용기를 얻으며 두근거려했었다.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았던 내 삶에서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구원받은 그 기억.
‘그 상처는 내 것이다.’
..라고 말한 그 당당한 혈기.
그것이 만약 강원우였다면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속임수다. 내가 잠시나마 환상을 품었던 그 짐승의
추억이 바로 당신이었다면..나는 나의 미련함에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화가 날 것이다.
너는 알고 있다. 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당신이야?”
대 놓고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내 손등에 상처를 낸 사람이 너냐..라고 물었다. 그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너냐.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그렇게 무기력함을 느낀 적이 없는데..그 때 그 무기력함에서 나를 구해준 게 정말 너냐?
강원우는 한참 내 눈을 바라보았고, 그리고 물러설 기색없는 그 단단함에 질린 듯 고개 저었다.
“저를 따라 나오세요.”
그는 간단하게 말하며 나를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