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흔적 - 5> 1. (28/38)

            <짐승의 흔적 - 5> 

            1. 

            약속이란 본래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약속도 기대한 적이 없다. 

            하룻밤만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여행을 떠난 엄마 아빠도, 그리고 그 피 끓는 청춘에 의형제를 약속한 또 다른 내 연인 

            윤은협도. 

            또한 마치 정부이자 창녀처럼 마음대로 몸을 사고, 점령하고 나를 지배했던 그 날들도. 

            “저를 따라오세요.” 

            라고 강원우가 말했다. 

            나는 무려 5일을 혼자 지냈다. 강원우가 틈틈이 들어와 말 상대를 해주고 신문이나 기타 읽을 꺼리들을 가져다 주며 

            평상시처럼 굴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서준이 조직을 배신한 것인지, 혹은 죽기라도 한 것인지, 다친 것인지..것도 아니라면 그냥 

            일에 바쁜 것인지. 

            죽었다면 나는 춤을 출 것이다. 다쳤다면 나는 노래라도 부르고 덤블링이라도 백번 할 수 있다.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서준 형님은 바쁘세요, 요새.” 

            나의 안색을 살피며 뭔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강원우가 조용히 말했다. 굳이 묻지 않았는데, 그만큼 내게 초조한 빛이 

            나타났나 싶어서 나는 이내 얼굴을 돌렸다. 

            5일동안 나는 처음으로 녀석에게 들었던 약간의 따뜻하고 절절한 감정. 그런 것들을 잊었다.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노리개처럼 굴다가 이제는 바쁘다는 이유를 말하다니.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5일만에 강원우는 들어오자마자 간단하게 식사를 준 뒤, 짐을 챙겼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따라오세요..라고. 

            그래, 알고 있다. 녀석은 내게 무슨 말이든 ‘내일 하자’라고 말했고, 약속 했다. 

            약속이란 본래 깨어지기 위해 준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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