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득, 완전히 녹초가 된 몸으로 팔을 지탱하고 일으키자 녀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정말 나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 늦은 시간에 또다시 녀석이 손님처럼 나를 안고 나간다는 것에 갑자기 욱씬- 갈비뼈가 아린다.
항상 이런 식이었으므로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나는 문득 손을 들어, 감기약의 부작용인지 저릿하게 아파오는 가슴 어귀를
가볍게 매만졌다.
“푹 쉬세요.”
녀석은 다시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며, 아무 말없이 그렇게만 당부했다. 나는 녀석에게 날카롭게 대답했다.
“언젠가는 내 손에 죽어도...”
“...............”
“우리 사이에 이제 빚은 없는 거다, 강서준.”
“.................”
“니가 나에게 이런 상처들을 안기고..
무사하게 앞으로 살아나갈 거라고 기대하지 마.“
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걸어나가는 하얀 셔츠만 눈에 박힌다. 나는 교묘하고 날카롭게 가슴을 찔러대는 둔통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격렬한 감정들이 엄청난 살기와 색기로 튀어나와 나를 짓누른 게 뻔하다.
“..선배.”
그리고 그는 나가기 전에 잠깐 멈췄다. 마치 그 순간에 가슴을 콕콕 -찌르는 내 원인모를 감기 증후군에 대답하듯 말이다.
허나 녀석은 뭔가 말할 듯 주저하다가 곧 혼자 고개를 젖는다.
마침내 결심한 듯 뒤를 돌아보며 침대에 누워 노려보는 내게 말없이 미소지었다.
“........-!!!!!!!!!!”
쿵- 하고 마음이 내려 앉는다.
나는 그런 미소를 보지 못했다. 강서준이 저런 웃음을 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내려앉도록
만드는 그런 절절한 웃음.
그 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은 갑자기 멈춰 있던 상태에서 한걸음에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손등을 들어올려, 양 쪽 다에 도장을 찍듯 입
맞춘다. 불기가 어린 듯한 뜨거운 흔적-
나는 훅-하고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킨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나의 십자(+)무늬 상처와 짐승의 발톱 자국을 혀로 핥았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마치 맹수들이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하듯 조용한 태도였다.
“............-!!!!!!!!”
“..이전부터 특이한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겠다.
다시 욱씬- 하고 심장이 아팠다.
감기약의 독한 기운에 묻혀, 과도한 관계를 맺은 게 아무래도 원인인가 싶을 정도다.
녀석은 그저 잠시 얼굴을 바라보더니 여전히 처음보는 그 절절한 깊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난다. 처음보는 것은 미소만이
아니다. 그 미소를 만드는 따뜻한 시선- 도무지 설명할 길 없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그 뛰어 오르는 맥박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하게 만드는 시선.
한 사람의 눈빛이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휘저어 놓았다.
“내일..이야기 하죠.
....내일은..
그래도 선배 쪽에서 기다리는 시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도 선배에게 할 말이 있거든요.”
갑자기 난데없는 ‘내일’이라는 단어에 숨이 막혔다. ‘내일’이라니..‘내일’이라니!!
우리에게 무슨 ‘내일’이라는 게 있어!!!!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그런 일은 좀체 없는데, 내 안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색기와 살기- 그 두 가지의 격한 감정이
내 숨통을 스스로 옭아맨다.
심장에 마구 집어넣고 빗장을 걸었던 나 자신. 남은 수년에 걸쳐서 한 일을, 이 녀석은 손쉽게 몇 달만에 내게서 그것을
끄집어 냈다. 용서할 수 없다. 가뜩이나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너에게!!!!
나는 온 몸에서 발산하는 독기와 살기를 담아 냉정하게 말했다.
“잘난 척 하지마라, 강서준.”
“.............”
“나는 오늘...
내일이 오기 전에 니가 죽는 꿈을 꿀테니.”
휴우..라고 잠시 녀석의 등이 굳었다.
차가운 말들이 그 하얀 셔츠에 부딪쳐 예리한 파편을 튄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녀석은 마침내 나갔다.
나는 그 때서야, ‘뭐지..방금 그건..?..’이라고 무의식 중에 중얼거린다. 아직도 격렬하게 뛰어 오르는 심장을
움켜쥔다. 감기가 아니라 심장병에 걸린 것 같았다.
더군다나 전에 없이 ‘내일 이야기 하죠’라니..
그런 일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녀석과 내가 달리 나눌 이야기가 있던가..라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길 정도였다.
‘내일’이라는 단어.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랜만에 떠올린 것이다. 아아..‘내일’이라는 게 있구나..이런 관계에-!!!
빌어먹을!!!!
그리고 그 시선과 미소.
그것은 흡사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숨막히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잠시간 멍한 채로 계속 욱씬거리는 통증에
나는 숨을 할딱인다.
정신이 든 것은 바로 몇 분 뒤였다.
아아..
미쳤나보군, 인간 유기연.
저런 녀석에게 뭔가 기대를 하다니.
아니, 설마 자신이 뭔가 기대하고 있다고 착각하다니.
정말 미쳤군.
죽어버려, 강서준.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으니, 니가 알아서 죽어버려.
털썩- 침대에 머리를 뉘였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만큼의 열기운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