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25/38)

            4.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감기에 걸려 있었다. 

            강원우가 조금 딱딱해진 얼굴로 약과 물을 챙겨주고는 나갔다. 그런 말에 반응할 정도의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묘하게 섭섭해져서 나는 약을 먹고 다시 눕는다. 머리가 어질 어질하고 목이 꽉 막힐 만큼 열이 났다. 그리고 허리도 아프고 

            온 몸 구석 구석 나른하게 삐걱거린다. 

            아아..감기 몸살에 걸릴만도 하지..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들어서는 서준의 얼굴을 노려본다. 

            “오늘은... 

            ...그만둬................“ 

            그리고 바싹 마른 입술을 열어 힘없이 쏘아붙였다. 오늘같은 날도 안으려 한다면, 정말 너는 인간 이하다..라고 덧붙인다. 

            그러자 녀석은 이미 강원우에게 보고 받았다는 듯, 말없이 침대에 앉아 얼굴만 들여다본다. 내 쪽에서 고개를 휙 돌렸지만, 

            다시 억센 손길이 턱을 돌려세웠다. 

            “무슨 짓이야.............” 

            다시 차가워진 음성에 녀석이 작게 웃었다. 하긴 녀석이 웃는다고 해봤자 제대로 미소짓는 게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듯한 

            절절한 미소가 아니다. 

            “학교에 다녀오셨다구요.” 

            개들-!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허상같은 의리를 쫓아 사회에 암적인 존재로 군림한 개들-!!! 

            나는 열이 잔뜩 베인 눈으로 녀석을 노려본다. 그러자 녀석도 애초에 할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나를 일으켜 세우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이 많습니다. 선배.. 

            쉬세요.“ 

            그리고는 정말 오해할 정도로 온화한 눈빛으로 말했다. 만약 내게 조금의 힘이라도 있었으면 턱을 한대 날렸을 정도로. 

            녀석은 물론 그런 험악한 시선에는 개의치 않고 나를 돌려세우며 가볍게 어깨를 주물렀다. 뭉친 근육과 약발이 돌기 시작한 

            몸은 허공에 붕 뜬 듯, 다소 몽롱해지고 만다. 

            “선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 

            “색기가 넘치는 타입이니깐 조심하세요. 

            일처리 깔끔한 강원우조차도 몇 년전부터 눈 독 드리고 있었으니깐요.“ 

            “....-!!!.....몇 년...전?...” 

            “..네. 몇 년 전. 

            제가 막 여기 들어왔을 때도 강원우는 이미 선배를 알고 있었어요.“ 

            흠..이라고 나는 낮게 신음을 낼 뿐이다. 귀 담아 듣지 않았다. 그저 어깨 이 쪽 저쪽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만족 할 

            만큼 부드럽게 만져준다. 

            “샤워시켜 드릴까요?” 

            “.........꺼져.” 

            “안 건드립니다. 절대로.” 

            내가 하지 말랜다고 안 할 녀석도 아니고, 내가 하라고 할 녀석도 아니다. 나는 거의 반쯤 안기다시피 욕실로 향해서 열이 

            오른 몸을 겨우 욕조에 담궜다. 

            머리카락 위로 뚝뚝 떨어지는 적당한 온도의 물기- 그리고 아무 말없이 부드럽게 감겨오는 샴푸의 향.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습기가 가득한 욕실이라는 공간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나는 겨우 머리 속이 아찔하게 잠기는 듯한 부드러움을 깨뜨리려 애쓴다. 그때서야 제 정신을 깨우듯 간신히 입을 열어 

            녀석에게 말했다. 

            “누나... 

            ..잘 지내고 있지?“ 

            “..네.” 

            녀석은 더 이상 없다는 듯 간결하게 대답했다. 나로서는 녀석의 잔혹한 짓에 적당히 감수하는 빌미가 된 일들. 그러나 녀석은 

            답답할 만큼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네 누나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왔어.” 

            잠시 머리 카락 속의 손길이 멈춘다. 그리고 훅-하는 짧은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녀석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씁쓸하게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 

            “..선배가 잘못한 건.. 

            그저 윤은협을 좋아한다는 것 뿐이니깐.“ 

            “하지만...” 

            “..그 날 은협이 선배와 기연이 선배를 둘 다 용서한 건.. 

            나 역시 기연이 선배처럼 부모님 없이 누나하고만 자라서 그렇습니다. 

            ..........나는 선배 마음을 이해해요. 

            ..누구나 혼자라는 것에 처절하게 길들여지는 사람들은.. 

            곁에 있는 뭔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니깐...“ 

            갑자기 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녀석은 정말 속을 알 수 없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날 내가 무슨 뜻으로 자신을 찾아갔었는지. 그래, 오히려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감정을 이용해 먹을 줄도 알았다. 은협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나의 안간힘을 이용해 먹는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이상하게 마음이 욱씬거린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것에 희망을 걸 만큼 은협을 사랑하는가..라고 스스로 자문해 

            본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녀석의 협박에 이제 자진해서 나를 버틸 수 있었던 나는 진작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무엇이 나를 그렇게 은협에게 옭아맸을까. 

            그것은 어쩌면 강서준의 말처럼, ‘그런 윤은협이라서 딱 알맞은 유기연’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길들여왔다. 

            조금 떨어져서 지낸 이 혹독한 과정이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준다. 

            갑자기 툭- 뭔가가 내 심장 아래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동안 질끈하게 나를 메어왔던 의무감이었는지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욱씬하게 에워쌌고, 나 역시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서준이 더욱 부드럽게 손을 놀렸다. 속이 공허하고 기묘한 후회감으로 가득찼다. 만약 

            허락되었다면 그순간이야 말로 마음 놓고 화내고 싶어질 정도다. 

            그러고보니 나는 , 윤은협에게는 제대로 화를 낸 적조차 드물었다. 

            “자, 머리 숙이세요.” 

            녀석이 등 뒤에서 말했다. 

            잘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순간 생각한다.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이 증오가득한 녀석이..그 찰나에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갑자기 맞닿은 등에서 열기가 솟아난다. 순간, 당혹감이 들 정도로 나는 엉망으로 취하고 싶었다. 술을 못하는 까닭에 정신이 

            그만큼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녀석을 알고 있다. 이 녀석을 이용해서 엉망이 되는 방법을 익히 알고 있다. 

            거품이 몸을 타고 흘러 내려 물 위로 둥둥 떠 다닌다. 나는 불쑥 속을 치고 들어오는 내 몸 안의 남은 열기에 당황했다. 

            맨 손이 전라의 몸을 아무런 기계적으로 씻기는데도 그렇다. 

            이미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 것같은 기묘한 상실감에 마음이 쓰렸다. 살짝 비틀거리며 녀석의 손길에 일어섰지만, 온 몸에 

            비누칠을 하는 그 손길에는 속수무책 반응하고 말았다. 

            “..........-!!!!!!!!!!!!!!” 

            다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감정없이 몸이 섞이는 이 관계에...그 잔혹한 이기심에 끝내 굴복한 내 생존본능 때문이다. 

            내가 이런 녀석에게 반응할 리가 없다. 절대 없다. 이 녀석은 나를 협박했고, 거의 억지로 몸을 열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사내 마저도 안을만한 내 강한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런 녀석에게 반응할 리가 없다. 이런 녀석과 몸을 섞는게, 단순한 쾌감 이상으로 좋을 리가 없다. 그저 길들여진 몸의 

            생리현상일 뿐이다. 둘 다 배출 이외의 것이 없는, 그저 파괴하고 공허해지기 위한 관계. 

            언젠가는 너를 죽인다, 강서준.. 

            나를 이렇게 만든 너를 .. 

            ..내 손으로 죽인다. 

            비누를 묻힌 거품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허리에서 엉덩이, 그리고 미끈한 허벅지 안 쪽까지. 

            “........아......................” 

            그리고 몽롱한 머리와 짙은 피로감,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 속 쓰리게 다른 것을 찾도록 부채질 했다. 사람은 지나치게 

            고통스러워지면, 그것을 피하기 위해 환상을 본다. 

            마치, 사막에 버려진 사람들이 신기루를 보듯. 

            “.....안아드릴까요?” 

            그 순간에 딱- 내 미묘한 상실감을 이해한 것처럼 녀석이 등 뒤에서 말했다. 순간 오싹할 정도의 전율이 다시 등줄기를 

            파고든다. 

            나는 그 찰나에 내가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했다. 바로 약 기운과 감기기운, 그리고 감정의 공허함에서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나는 나 아닌 다른 이의 목을 처음으로 내게 끌어당긴다.   

            그래, 언젠간 내가 너를 죽인다. 

            나를 수컷 냄새에 발정하게 만든 댓가로 너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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