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13/38)

            3.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워뒀는지, 아파트 입구 앞에는 우유가 썩고 있었다. 그리고 신문도 싸여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이럴 때 너무나 불편하다. 머리카락까지 몽땅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도 누구하나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열 여섯에 고아가 되어 버린 나는 그래서 은협에게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 일년 뒤에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갑게 굴며 

            담배를 찾던 그 녀석- 마치 커다란 개처럼 생각 단순하고 착해빠지고 이기적인 그 녀석. 

            달칵-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이 오랫동안 없는 장소를 나타내듯 잠시 허한 바람이 불었다. 아파트는 죽을 듯 살 듯 

            7년을 고생해 모은 돈으로 얻은 전세다. 그나마 은협이 녀석도 자주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잠들곤 해서 더욱 정이 간 곳이다. 

            어차피 7시 전에만 들어가면 되는 일이고, 나는 기왕 들어온 것 이것 저것 옷가지를 챙기며 무심결에 자동응답기를 눌렀다. 

            핸드폰은 이미 훨씬 전에 서준 일당에 의해 박살이 났던 것이다. 

            삑-하고 작은 통신음이 들리고, 전화기 안에서 녹음된 은협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다소 넋을 놓고 앉았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저절로 이 일들에 대한 현실감이 들었다. 

            -야, 유기연! 너 어딨는거야, 대체!!!!- 

            벌떡-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이 된 은협이 이곳에 숨어 있기라도 한 듯 심하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이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정말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처럼 얼죽 죽여버리겠다는 생각 하나와..그리고, 

            - 사무실 사람들 말로는 서준이 그 새끼가 데리고 갔다는데 일주일 동안 도대체 어딨는거야!!!!!!!!!!!! - 

            그리고 이 녀석이 나타나면 위험하다는 것. 그래, 이왕 망쳐진 것 조금만 더 녀석의 버팀이 돼 주자..라는 아주 천사표 

            같은 생각. 

            - 아무튼, 오자마자 이거 들으면 나한테 연락해! 

            여기 번호가 ***-**** 이야! 

            너 도대체 뭐야, 유기연!! 

            핸드폰도 끊어버리고 집에도 안 돌아오고!!! 

            서준이 그 새끼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그래도 우리가 지 고등학교 선배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주, 혼자서 별 흥분을 다하는 군..나쁜 새끼..............” 

            녀석은 역시 그 앞뒤 안 가리는 성격답게 개망나니처럼 전화기에 대고 마구 성질을 부린다. 

            휴우-라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심경 때문에 나는 쇼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오랜만에 태양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시선이 

            가물거린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간 강서준의 그 말이 잠결에 떠올랐다. 

            ‘원래 소중한 것이 파괴되어야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차리는 미련한 인간들도 많습니다. 선배. 

            윤은협은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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