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적. 2> 1. (11/38)

            <흔적. 2> 

            1. 

            단지 윤은협을 좋아했을 뿐, 그토록 평범하게 살던 남자 스물 일곱의 유기연. 

            그러나, 나는 팔렸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강서준은 누차 그 사실을 반복해서 말했다. 

            “윤은협을 나서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선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선배를 파괴하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나는 그 곳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대부분은 묶여 있었고, 첫날 범해진 잔인한 흔적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정신이 파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다만, 제정신을 차려야만 복수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내 온전한 

            독기가 문제였을 뿐. 

            “나야 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냉정함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조금 전에 겨우 밥을 몇 알 씹었다. 말 그대로 먹는 차원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쌀 몇 톨 씹는 것으로 나는 잠시 생존 

            의지를 기억해냈다. 

            안으로 들어오는 밥이라도 제 때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처참할 정도로 몸이 엉망이 된 며칠 후였다. 첫 번째는 충격 

            때문에 얼얼하고, 두 번째는 거의 무감각해졌다. 그 이후를 숫자를 세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이 흐른 것이다. 

            녀석이 내게 소염제를 건네고 열이 나는 몸을 욕실에 처박았을 때도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세 번째 관계 이후로 나는 녀석의 

            목적을 알았다. 

            아무 말없이 조금전에 자신과 접합했던 내 몸의 부위를 손가락으로 넓게 벌렸다. 녀석은 표정없이 연고와 약을 들고 들어와 

            침대 한 쪽에 시체처럼 널브러진 내게 말했던 것이다. 약을 발라줄테니, 벌려요..라고. 

            온 몸이 붉게 달아오르는 수치감을 무릅쓰고 나는 침대에 앉은 채 양 다리를 넓게 벌렸다. 앉은 자세로 벌리고 허리를 살짝 

            내리자, 녀석이 그 허벅지 사이에 꿇어 안는다. 이런 기묘한 자세는 한번도 취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단 일주일 만에 

            나는 이곳의 생리를 적절히 이해했다. 

            녀석이 나를 협박의 구실로 삼고 있는 윤은협도, 사실은 단단히 이 통증의 원인이었다. 내가 심하게 저항할수록 협박은 더더욱 

            비열해졌다. 녀석은 언제나 ‘윤은협에게 알려도 좋습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이 상황을 깨끗이 종결한 것이다. 절대 감정을 

            들켜서는 안 된다. 아무리 윤은협이 인간 말종의 머리통 가벼운 녀석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지난 10년 가까이 소중한 

            대상이었다. 

            마침내 나는 온 몸을 붉게 물들인 채, 아직도 녀석의 것이 움찔거리며 세어나오는 애널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약을 발라주기 

            위해 내 아랫도리에 얼굴을 붙인 녀석이었지만, 참을 수 없을만큼 모멸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녀석은 그걸 즐겼다. 

            “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강서준...“ 

            “............” 

            “윤은협은 나 때문에 뭔가를 포기할 녀석이 아냐. 

            그 녀석은, 내가 여기 인질로 잡혀 있건 아니건 신경도 안 써.“ 

            그러자 녀석이 피식 웃는다. 뜨거운 숨결이 민감한 하체에 닿자, 저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그럴 겁니다. 선배. 

            윤은협은 무신경한 녀석이니깐요.“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 좋지 않았던 은협과 서준이다. 좋아하지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나를 이 곳에 가두고, 이런 혹독한 짓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선배...” 

            약을 발라주기 위해 애널의 점막을 손가락이 쓸어갔다. 주름 하나 하나 까지 녀석에 의해 이미 관찰당하고 꿰뚫어졌다. 나는 

            몹쓸 정도로 녀석에게 범해지곤 했다. 

            “그렇지만 윤은협도 곧 나설 겁니다. 

            적어도 언제까지나 비겁하게 숨어 있지는 않겠죠.“ 

            녀석은 온화하게 말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내 자세는 숨기지 못할 정도로 비참했는데, 녀석은 나날이 더 자신감에 불타는 

            것 같아 머리 뚜껑이 다 열린다. 

            “니가 착각...하고 있는 거다, 강서준.” 

            나는 그 녀석에게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짐승같은 짓을 할수도 있지만, 그 녀석은 달라. 절대 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할 녀석이 아냐. 

            우리의 감정은 그 깊이가...이만큼이나 달라. 그걸 나에게 굳이 말하게 만드는 너 역시 비열하고 질 나쁜 악당이고. 

            “저는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단호하게 말하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제서야 녀석에게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하반신에 재빨리 침대보를 덮는다. 

            아무리 그래도 녀석에게 유린당하기 위해 날마다 벗겨진다는 것은, 같은 사내에게 몸을 보인다는 것 이상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윤은협은 곧 나타날 겁니다, 선배.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파괴되어야 꼭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윤은협은 그런 타입입니다.“ 

            “.........소중한 것이...파괴돼..?............” 

            나는 따뜻한 면 이불 아래로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다소 충격을 받은 채 중얼거렸다. 녀석은 넥타이를 챙겨 맨 채, 담배를 

            빼 물었다. 언제나 행위가 끝나면 담배를 물곤 하는 녀석이다. 

            “선배는 은협이 선배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윤은협이 자신의 그런 감정을 알아차리기 전에 그 소중한 것을 조각 조각 파괴해 놔야 희열을 느끼구요.“ 

            쓰윽- 

            담배를 한 쪽으로 문 채, 녀석이 웃었다. 그 잔혹한 미소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깐, 녀석이 나를 감금하고 

            협박하여 유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윤은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만약, 은협이 나타나서 스스로가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고 돈만 갚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억지로 내 몸을 가질 이유도 없다. 

            목적은 처음부터 나 자신이었다. 나를 파괴하는 게 윤은협을 파괴하는 거라고 믿는 강서준의 어이없는 심리 때문이었다. 

            나는 혼이 빠져 나가는 듯한 격렬한 분노와 허기를 동시에 느낀다. 말도 안 된다. 이런 일에 휘말려서 이렇게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게!!! 

            그러나 녀석은 흡족하게 미소지으며, 양복 자켓을 들어올렸다. 그대로 멍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내 턱을 쓸어내리듯 손가락으로 

            집으며 서준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마음껏 파괴되세요, 선배. 

            선배가 엉망이 될 수록, 강은협도 엉망이 되고.. 

            그러면 제 목표는 달성 됩니다. 

            선배의 정신을 타락 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뭐라도 합니다.“ 

            “..............-!!!!!!!!!!!!” 

            그리고 녀석은 그곳을 나갔다. 언제나 이 곳에 갇힌 채, 웅크리고 있는 나는 한마디로 사육당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그 사실을 오늘의 대화로 완전히 인식하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에 완전히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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