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9/38)

            6. 

            잠시만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묶여 있던 내실에서 룸 안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한 눈에 보아도 이곳이 비밀 요정 쯤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서준이 속한 조직 내에서 굴리는 몇 개의 요정. 그 

            중에 하나 쯤 되는 굉장히 화려하고  깨끗한 공간이었다. 

            몇 번인가 가 본 호텔의 룸 정도 되어 보였다. 커다랗고 큰 침대, 그리고 정갈한 실내 장식과 거울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강실장은 부드러운 사내였지만 빈틈이 없어보였다. 

            그는 잠시 딱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그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유기연 씨.” 

            그리고는 나를 홀로 그 방에 남겨두고 나가지 전에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연다. 문고리를 잡은 그의 태도는 어딘가 

            의심쩍여보였다. 

            “제 이름은 강원우 입니다. 다음번부터는 그냥 원우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나는 댁 이름 부를 일 없습니다.” 

            차갑게 대답하자 그가 빙긋 웃으며 문을 닫았다. 마치 ‘그럴 일이 있을지 없을지 두고 보세요.’라는 식의 태도였다.  

            덕분에 혼자 남겨진 나는 씩씩거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혹은, 이제 뭘 해야 할까..라고 생각해보지만, 전화기 한통도 없고 가지고 있던 물건도 다 빼앗긴 

            내 처지로써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머리가 질끈거리는 바람에 털썩- 침대에 머리를 박는다. 그 때쯤 문이 열렸다. 바로 나를 이곳에 

            가둬버린 문제의 후배, 강서준이 들어선 것이다. 

            순간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킨 것은, 녀석이 들어서면서부터 나른하게 넥타이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살짝 뭔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탓에, 나는 그만 긴장한 것이다. 

            설마..라고 어떤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친다. 좋지 못한 생각이었지만, 아까 녀석의 협박하던 태도로 보아 어쩌면 맞는 

            생각인지 모른다. 

            “.....넌 왜 온 거냐.”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다. 물론 이따금 여자들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주로 내 연애대상자는 남자였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은협도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물 일곱이 되도록 사내 녀석들과 관계를 가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내도록 나의 뇌리를 잡고 있는 것은, 윤은협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녀석은 

            내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 서늘한 느낌이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이 장소는 뭔가 특별한 은밀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저절로 속이 뒤엉키고 뭔가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그런 효과. 

            지나치게 깨끗한 방이었지만, 분명 공기 구석 구석 스며 있는 낯선 정사의 느낌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다소 경직된 채 묻는 내 질문에,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넥타이를 풀어 의자에 걸친다. 그리고는 더욱 기가 막힐 정도로 

            여유있게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이게 뭐냐니깐!!!.......” 

            마침내 참지 못하고 내 입에서는 고함소리가 튀어나온다. 녀석은 그 때서야 차가울 정도로 정지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며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선배는 내 인질입니다.” 

            “.........-!!!!!!!” 

            “윤은협이 모습을 나타날 때까지, 나도 선배에게 받을 수 있는 가치만큼은 보상받을 생각입니다.” 

            “...보...보상?...” 

            “몸으로요. 

            이 곳은 원래 그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선배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 아닌가요?“ 

            말도 안돼....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단박에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녀석은 그런 나를 잡을 생각도,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 낮고 잔혹하게 웃는다. 

            “도망가더라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선배.” 

            문은 잠겨 있었다. 

            그리고 문 밖에는 보나마나 내가 모르는 녀석의 수하들이 잔뜩 버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일과 아무런 관련 없다구!!!!.........이 미친 새끼....!!!!!!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내 눈동자는 저절로 충혈된다. 문 앞에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다는 녀석의 말을 실감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고이 고이 모셔두었다고 말하면 웃기지만, 나는 정말 남자를 경험한 적이 없다. 어쩌다 여자와 한번 잔 

            것- 그것도 대학교 일학년때 선배들의 장난에 의해 술김에 그렇게 된 것 외에는 한번도 경험이 없었다. 

            차가운 금속 문고리를 손바닥으로 느끼며 분노로 식히려 애썼다.반면,  녀석은 더욱 여유있게 다가섰다. 철저하게 자신을 

            외면하는 등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밀어붙이며, 녀석의 냉혹한 숨결이 문득 귓전을 파고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 

            “다른 어떤 것보다 선배는 은협이 선배에게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은협이 선배 곁에 남아 있고 싶을 테니깐요.“ 

            “............-!!!!!!!!!!” 

            몸이 저절로 떨렸다. 갑가지 몸이 오싹-할 정도로 물기 찬 뭔가가 내 목덜미를 쓸어내린 것이다. 녀석은 느긋하게 내 등 

            뒤를 음미하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그 순간, 완전히 굳어 버렸다. 녀석의 협박이 옳았다. 나는 여기서 도망가더라도 은협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실 은협이 선배가 어딨는지 알고 있습니다. 

            만약 선배가 오늘 제대로 내게 봉사해주지 않으면...“ 

            “.....-!!!!!!!!!!!” 

            “나는 얼마든지 윤선배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선배가 윤은협에게 정말 하고 싶은 짓이 뭔지를.” 

            “이 비열한 새끼..-!!!.....” 

            좌절감과 뼈아픈 상실감으로 굳어버린 내게, 녀석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