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적. 1> 1. (4/38)

            <흔적. 1> 

            1. 

            내 이름은 유기연. 나이 스물 일곱. 

            하는 일, 외부 비서로 프리랜서 일을 하며 이따금 친구 윤은협의 사무실 일을 돌봐주는 것- 

            한 낮의 더위가 찌는 듯 했다. 셔츠 밖으로 땀이 밀려 나올 것 같이 등이 따가웠다.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느긋하게 

            계단을 내려가며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 어떻게 하지, 기연아...- 

            또 윤은협이다. 

            보나마나, 자신이 저지른 여러 가지 사고 중에 하나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녀석은 참 여러 가지로 사고를 

            쳤다. 그 호감가는 얼굴, 그리고 천성적으로 절대 어쩔 수 없는 착해빠진 이기심. 

            그런 것들을 무기로 사람들은 녀석에게 마구 빠져들었다. 투자자들은 투자했고, 정치가들은 빽을 써줬으며, 하다 안되면 각종 

            로비에 뒷돈까지.. 

            나는 적당히 말렸지만, 윤은협이 그런 일에 ‘적당하다’라고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승승장구 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몇 년 전에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정치가를 이용해서 심지어 주가조작까지 들어갔다. 

            언젠가는 큰 코 다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봐 주고 있었다. 녀석이 뿌리는 재앙의 씨앗이 

            너무 커지지만 않을 정도로 조율해주는 역할이었다. 녀석에게는 제어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것만 조금 잡아주면 그 다음은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사고를 치면, 녀석은 항상 나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매달리듯 덤벼들며 순수가 빛나는 그 유혹적인 눈동자로 간절하게 빌어대는 

            것이다. 도와줘, 제발. 난 너 없으면 안되는 거 알잖아..라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까지만- 

            그 날, 나는 지하철을 타면서 은협의 다급한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나지막하고 침착하게 묻자, 녀석은 조금 진정된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아.. 

            사채업자들이 찾아왔어. 

            늘 돈을 빌렸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오래 사무실에서 버틴다구...- 

            그래서?..라고 차갑게 말하며 나는 녀석에게 들리지 않게 웃었다. 

            바로 그런 거다, 윤은협. 사고 치더라도 다 용서해줄테니 제대로 사고쳐라. 

            ..그래야 언젠가는 나에게 정말 벗어나지 못하지....라고.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내게도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인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