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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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언제나 사고 잦을 날 없는 윤은협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길들여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할만큼 싸우고, 주로 내가 그를 

            혼냈다. 그러나 녀석은 혼이 날 때도 항상 ‘하하하’거리며 바보같이 웃었다. 

            착한 녀석이었다. 너무 착해서 녀석은 바보 같았다. 한 두가지 이외에는 타인의 감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때론 이기적이다. 자신과 몇몇 소중한 것 외에 다른 것들까지 폭 넓게 사랑할만큼 시야가 넓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바로 윤은협이 그랬다. 

            나는 열 아홉 때, 그런 윤은협의 사고 뭉치 인생 때문에 이미 한번 인생이 꼬였다. 

            “기연아, 어쩌지? 

            나...“ 

            “뭐?” 

            교복 넥타이 매듭을 초조하게 풀며, 녀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이번에는 정말 조직 여자를 건드렸어!!...” 

            씨바-!!!! 

            여기는 막다른 골목길이잖아, 이 새꺄!!!! 

            그러면 이 쪽으로 숨어 들면 어떻게 해!!!!!!!!!!!!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은협에게 빠져 든 것에 좌절했다. 미칠 일이었다. 물론 숭고한 내 마음까지 알아주길 원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손에 댈지 몰랐다. 

            아니, 여자건 남자건 소용없었다. 이 열혈 청년은 얼굴만 이쁘고 성격만 온순하면 밑도 끝도 없이 수작을 걸었다. 나는 사실 

            그런 녀석의 철없는 애정갈구에 조금 성격을 죽여볼까..생각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 또한 나를 연애대상으로 

            보기에는 이미 너무 친밀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나는 녀석을 안고 싶었지 안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녀석이 나보다 

            덩치가 커지면서 좌절하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그 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감히 조직 폭력배의 연인을 건드렸다는 겁 없는 말 뒤로, 이미 다른 녀석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집 앞 골목길로 

            뛰어드는 적어도 다섯 명의 녀석들. 

            정신없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아..늘 이런 식이다. 

            허나 문제는 이 싸움이 단순한 동네 녀석들의 싸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한번도 싸우는 일에 역부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은협과 더불어 지칠 정도로 한계를 느꼈다. 

            퍽- 하고 누군가 강렬하게 허리 쪽을 때렸다. 욱씬-거리는 굉장한 통증이 촤르륵 온 몸에 흐른다. 잠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고통이었다. 이어서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신입!!! 

            이 초삐리 같은 새꺄!!!! 

            넌 왜 가만히 있어!!!!!!!!!!!!“ 

            달려온 것은 분명 다섯명인데, 고통 때문에 흐릿한 내 시선으로 보기에도 누군가 한명은 정지해 있다. 네명만이 우리를 

            에워싸고 공격했던 것이다. 나는 그나마 그 한 녀석이라도 안 덤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마찬가지로 잘 싸우는 은협도 이미 반쯤은 얻어터졌다. 초 날라리 근성 때문에, 은색으로 염색한 녀석의 머리카락에 

            조금 핏기가 물들어 있었다. 

            그 때, 퍽-하고 다시 내 등뒤와 내 몸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렸다. 비겁하게 자신들보다 어린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쌍으로 

            공격하는 형님들이다. 

            “우웃..................” 

            아픈 통증으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풀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등 뒤로 은협이 얻어터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죽는 거 아닌가..하는 아찔함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들 중 하나가 쓰러지는 내게 칼을 

            내들었다. 

            “........-!!!!!!!!!!!” 

            나는 죽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마저 느꼈다. 

            “........넌 또 뭐야.” 

            그러나 곧 나를 향해 그 날카로운 단도를 휘두를 것 같던 깍두기 형님. 그들 중 하나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멈췄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물거리는 시선으로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 때, 골목길 입구 쪽에 누군가 지나가다가 멈춰 선 것이 보였다. 난데없는 타인의 등장에 조직 녀석들은 주먹질을 멈추고 

            잠시 소리를 빽 지른다. 

            아마 언뜻 쓰러지기 전에, 그 등장한 놈에게 교복같은 것을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설마 그 녀석이 우리를 도와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누군가 자신의 삶을 구해주리라고 믿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럴 만한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윤은협 이 개자식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그 녀석이 나를 구원처럼 여기며 허허거리는 

            바보짓에도 바빴던 것이다. 나는 윤은협에게 내가 기댈 수 있는 종자라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다른 누군가는 필요 없었다. 

            싸가지 없을 정도로 나는 냉정했다. 

            그날까지도 그 생각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쓰러진 채, 이마가 터져서 흐르는 비릿한 피냄새에 살짝 전율했다. 항상 냉랭하고 차가운 나를 유일하게 

            흥분시키는 그 무엇- 

            바로 그 때였다. 

            의례히 이 상황을 무시할 거라 믿었던 그 녀석이 갑자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천천히- 아마 내 눈이 그렇게 서서히 감겼기 때문에, 녀석이 들어서는 동작은 아주 서서히 느껴졌다. 영화 속의 

            슬로우모션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 

            믿을 수 없다!!! 

            그 얼굴도 모를 녀석은 우리를 도와주었다!!! 

            아니, 무엇 때문인지 이유는 전혀 모르지만 녀석은 날카로운 주먹을 날려 조직의 개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투닥거리고 퍽벅거리는 엄청난 소리들이 멍한 내 뇌리에서 이어진다. 하늘이 까맣게 물든 저녁이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를 

            도와주는 그 녀석을 제대로 구별할 수도 없었다. 

            그저 검은 짐승들이 엉켜서 마구 싸웠다. 그리고 검은 먹구름 사이로 까마귀같은 비가 내렸다. 

            아아..지랄같이 비가 내렸다. 

            그리고 너무나 지루할 정도로 그 싸움은 계속되었다. 거친 숨소리, 온통 뒤엉키는 검은 날의 회상.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마지막에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녀석들과 맞섰을 때, 그들 중 하나가 그렇게 소리쳤다. 

            “야, 가자. 안되겠다.” 

            “그러게..씨바... 

            ...무슨 고삐리들이 이렇게 쌈박질을 하냐...씨발새끼들.. 

            아주 싹수가 노랐다, 노래!!“ 

            가려면 알아서 갈 것이지, 뭐하러 끝까지 사람을 야루며 사라진단 말인가. 

            나는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안간힘을 썼다. 골목길 바깥쪽으로 흐느적 거리며 사라지는 다섯명의 깍두기들이 

            보인다. 

            투두두둑-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침내 털썩- 주저앉았다. 비가 와서 다행히도 핏자국은 배여들지 않고, 다만 여기 저기 얻어맞고 

            찢어진 곳만 쓰라렸다. 

            은협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 우리 둘다 너무나 흠씬 맞았던 것이다. 또한 우리 둘 말고도, 그나마 그 와중에 도와주려 뛰어 

            든 녀석도 꽤 많이 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캄캄해진 공간과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그를 확인하지 못했다.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은협이 먼저였다. 

            “...야...” 

            낮고 갈라진 음성으로 은협을 부르며 돌아서자, 녀석이 움틀거린다. 일어나..이 새꺄...라고 말하며 나는 힘이 빠진 채 

            녀석을 흔들었다. 

            그 때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녹초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다른 한 녀석이 갑자기 손을 높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하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문제였을지 모른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바로.... 

            “아악...-!!!!!!” 

            소리같은 건 잘 내지 않는 나도 깜짝 놀라는 바람에 조금 높게 고함을 질렀다. 녀석이 손을 번쩍 드는 순간, 번개에 맞은 

            것처럼 뭔가 허공에서 커다랗게 빛을 반사했고 동시에 나는 오른 손에 강하고 짜릿한 아픔을 느꼈다. 

            “.........-!!!!!!!!!”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분노에 가득 차 확인하려는 사이, 녀석은 아무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손등을 내려다보니, 오른 손에 

            마치 들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자국이 쓰윽 나 있었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피 냄새가 

            비릿하게 밀려왔다. 

            “...........뭐야.” 

            왜 느닷없이 공격하는거지.. 

            아니, 그렇다면 왜 도와준 거지..라고 혼란이 순간적으로 든다. 그러나, 내게 그림자처럼 빛을 등지고 서서 온통 시커멓게 

            보이는 상대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조용히 멀어졌다. 

            “유기연.” 

            “.........너, 뭐야.” 

            “...그 상처는 내 것이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우리를 남긴 채 멀어졌다. 쫓아가서 죽여 놓고 싶었지만, 그 쯤에 정신이 들기 시작한 은협 때문에 

            차마 그러지 않았다. 

            또한 상처도 그리 깊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주 절망적이고 한계를 느낀 그 순간에 그래도 불현듯 도와주었고 나타나준 그 묘한 

            존재에 대한 안도감이 있었다. 

            그 날의 야릇한 피 비린내. 

            별로 깊지 않은 상처였지만, 내 평생을 따라다닌 상처. 

            손등에 나 버린 이상한 발톱같은 상처. 

            그 이후로, 나에게는 묘한 버릇이 생겼다. 

            바로 초조하고 긴장할 때마다 그 손등의 상처를 입술에 대는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반드시 그 날의 공격받던 

            두근거림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항상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인형처럼 감정없이 숨을 죽이고 살아왔다. 그러나 

            숨죽여 그 상처를 핥는 순간만은, 기묘하게 가슴이 울컥거렸다. 

            그것은 갑자기 묘한 열기에 숨이 막하게 만들었다. 

            흡사 그 날의 비냄새와 피비릿내가 합쳐져서 머리 속을 쿵-쿵-쿵- 울리는 듯한 묘한 본능. 험악하고 잔인한 들짐승의 

            발톱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흔적. 

            내 오른 손에는 그렇게 짐승의 자국이, 그리고 왼손에는 내 정처없는 사랑의 낙인이 서로 남겨졌다. 

            바로 열 아홉에, 나는 양 쪽 손등에 둘 다 상처를 남겼다. 

            다만, 짐승의 흔적 쪽은, 누가 남긴 것인지 몰랐을 뿐이다. 7년 동안 궁금하고 가끔 화도 났지만, 역시 그 날 그 검은 

            그림자가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두웠던 밤, 퍼붓던 비, 폭력으로 정신없는 머리, 그리고 돌봐야 할 은협- 그런 

            것들이 그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내내 궁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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