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윤은협은 한마디로 대책없는 인간이었다.
녀석은 언제나 반쯤 호기심과 흥미로 곧잘 사고를 쳤고, 그 때마다 나는 녀석의 사고를 수습하기에 바빴다.
잦은 여자문제부터 해서, 교내 싸움 문제, 성적 문제 등등.
그러나 은협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사심없이 나를 믿고 좋아하는 그 순수함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덩치도 크고 강아지 눈망울 같이 초롱 초롱한 녀석은 늘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내게 말했다.
“아아...여자친구가 또 임신을...........”
나는 항상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뇌했지만, 역시 내가 반했던 게 죄였다. 보상받지 못할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묘한 끈으로 묶여 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가족이었다.
나는 열일곱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철없이 덩치만 큰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은 그 학교에서 가족이
없는 몇 안되는 사춘기 녀석들 중 둘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한다..라는 묘한 의식은, 녀석에게는 우정으로, 그리고 내게는 애정으로 다가왔다.
어느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우리들은 각자의 부모님 산소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정좌를 한 채, 교복 셔츠를 말아올리고 지혈을 하듯 팔꿈치
아랫부분을 천으로 단단히 동여메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철없는 치기.
그런 의리에 혹하기 마련인 그 시절의 허세 정도로 우리는 사고를 쳤다. 언제나 이성적인 내 쪽에서 녀석의 그 장난같은
제안에 어느 정도 찬성 한 것은, 바로 피를 섞는다는 묘한 자극 때문이었다.
“엄마........
...내 가족이야.“
..라고 녀석이 먼저 산소를 향해 말했다.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왼손에 가볍게 십자를 그어 피를 약간 흘린 채 서로 섞이게 만들었다. 빗물 때문에
잠시 희석될 수도 있었지만, 그 농도 짙은 점액질은 그 날 이후 내내 나에게 남겨졌다.
녀석과 나는 의형제라는 기분 좋은 미명 아래, 빗줄기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놓고 부둥켜 안은 채 울었다. 잃어버린 가족
대신으로 우리는 서로를 찾았다.
나는 믿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을.
왼손에 서로 십자 무늬가 남겨져 있는 한, 우리가 계속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