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쯔꾸르 야겜 속 촉수괴물이 되었다-87화 (87/108)

Ep. 87

로셸 왕국은 페로스 협곡의 바로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국가이다.

페로스 협곡에서 북쪽으로 쭈욱 올라가다 보면 아드리라는 커다란 산맥 하나가 나오는데, 그 산맥을 지나면 엘라이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숲이 펼쳐진다.

엘라이탄 숲.

이곳부터가, 바로 로셸 왕국의 영토였다.

‘일단 달리는 건 인간 몸으로 하는 게 훨씬 더 편하네.’

나는 엘라이탄 숲에 도착해 있었다.

페로스 협곡에서 밤새도록 북쪽을 향해 달린 결과였다.

두 다리로 몸을 통통 튕긴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아.’

외형도 그렇지만, 이 몸은 성능 또한 완벽했다.

애초에 촉수 괴물인 내 능력치를 그대로 담고 있는 몸이었으니, 초월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비단 능력치뿐만 아니라, 몸을 꾸물꾸물 움직여야 하는 촉수 괴물로 있다가, 두 다리로 땅을 박차며 달리는 인간의 몸을 취하게 되니 너무 상쾌했다.

몸이 가볍기도 하고, 한나절에 걸쳐 커스터마이징을 한 보람이 있었다.

“후으.”

‘공기 좋고.’

슬슬 아침이 밝아왔다.

푸른 숲속의 새벽 공기를 잔뜩 들이마신 나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은 여기에 오기 전에, 아내들한테 내 인간 모습을 먼저 보여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분명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일단은 아내들에게 인간 폼을 소개해주는 것보다, 우선 로셸 왕국을 먼저 들려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니까.

내게는 이제 ‘뿌리촉수’라는 새로운 종류의 촉수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까지 나갔다 한들 언제든 다시 던전으로 순식간에 돌아올 수가 있었다.

이왕 외출한 김에 마력석도 얻고, 왕국의 마을을 구경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선물도 챙겨 와야지.’

아내들한테는 언제나 잘해주고 싶었다.

무지성으로 자지를 박아넣어 섹스로 시작한 관계이지만, 아내들이 행복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

지금도 매일같이 보지를 팡팡해주며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선물도 사주고 필요한 것들도 챙겨주고 하다 보면 지금보다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걸 위해서, 이전 백합 길드의 S클래스 모험가 룬의 창고를 털 때, 던전 코어와 함께 가지고 나왔던 보석도 조금 챙겨 왔다.

금괴와 더불어 꽤 많은 보석들을 훔쳤었는데, 그중 굴러다니는 보석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이 정도면 돈은 충분할 것이다.

부스럭- 부스럭-

“크르르......”

“크륵......!”

‘그나저나 여기는 몬스터가 상당히 많네.’

잠시 생각에 잠겨있으니, 어느덧 몬스터 몇 마리가 나를 사방에서 둘러싼 채 입맛을 다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엘라이탄 숲은, 온통 ‘오크’와 ‘트롤’들 투성이었다.

판타지의 단골손님인 몬스터들은, 이 세계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변종이 아닌 일반적인 오크와 트롤의 경우, 뱀파이로 1개체와 맞먹는 강함을 지닌다.

인간을 기준으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E클래스 모험가와 좋은 1:1 승부를 펼칠 수 있다고 말하면 될까.

물론, 그중에는 가끔 D클래스 모험가 수준의 개체도 발견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나한테는 안 되지만.’

내 능력치가 워낙 높아져서 이제 E클래스 모험가니 D클래스 모험가니. 둘 다 수준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D클래스면 나름 숙련된 모험가이다.

C클래스만 돼도 상당한 강자. 세상에서는 베테랑 취급을 받는다.

우우웅-

투콰악-!

나는 손바닥으로부터 마탄을 생성해, 각각의 오크들의 면상에 에너지 볼을 먹여주었다. 오크들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기도 전에, 상체가 터져나가 명을 달리했다.

‘마탄도 참 효자 스킬이야.’

밤새 이동하면서 몬스터들과도 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때 가장 많이 사용한 기술이, 바로 마탄이었다.

굳이 몸에 피를 묻혀가며 싸우고 싶지는 않기에, 마탄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처음에는 마탄을 사용하기 위해 손바닥을 갈라 그 사이에서 마력촉수를 뽑아내 사용해야 했지만, 계속해서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그냥 손바닥 위로 바로 마탄을 생성해 바로 날리는 게 가능해졌다.

점점 변신한 인간의 몸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감지촉수 또한, 내 인간의 몸 안에서 잘 작동되고 있었다.

인간 모습인 만큼 바깥으로 감지촉수를 길게 내뺄 수 없기에 감지 범위가 대폭 좁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초인적인 영역을 미세하게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했다.

쯔즙-

‘어우, 많기도 해라.’

감지촉수로 주변을 감지해보니, 사방이 전부 몬스터들 천지였다.

이럴 때 보면 또 촉수 괴물의 몸체가 그립기도 하다.

몬스터들이 압도적인 포식자의 냄새를 맡고, 알아서 기어 다니니까.

만약 촉수 괴물 상태로 돌아온다면, 저 몬스터들 중 99%는 나를 피해 다닐 것이다.

인간 모습으로 변신하면 아예 몬스터의 기운 자체가 없어지는지, 하나같이 다 시비를 걸어온다.

잠시 촉수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올까 했지만, 나는 그냥 인간인 상태 그대로 숲의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자와 섹스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몬스터를 잡아도 경험치를 주기는 하니까.

생물 해체 분석 스킬의 중첩 포인트도 얻을 겸, 나는 덤벼오는 몬스터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투콰악-!

그렇게 숲을 청소하며 앞으로 나아간 지도 5시간.

‘곧 있으면 마을이 나오겠구나.’

계속해서 엘라이탄 숲을 전진하니, 이제 슬슬 인간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숲을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 눈에 보였다.

사실 말이 5시간이지, 내 속도는 초월적이기 때문에 엘라이탄 숲도 거리로 따지면 상당한 길이를 지나쳐온 것이 된다.

뛰다가, 몬스터들을 잡다가, 뛰다가. 나는 흔적을 따라서 빠르게 발걸음을 놀렸다.

‘마을 이름이 라일락이라고 했나.’

전에 마력석을 훔치려고 했던 마을이, 바로 이 마을이었다. 엘라이탄 숲을 지나서 있는 마을.

평화로운 시골 촌마을로 생각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됐다.

부스럭- 부스럭-

나는 천천히 숲길의 끝을 걸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 이게 뭐야.”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산뜻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기대했던 내 마음이 완전히 엇나갔다.

그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들은 부서져 있고, 사람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사뿐-

‘뭘까.’

나는 마을 입구에 내려앉아, 마을 전체를 살펴보았다.

작은 마을이긴 한데, 온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집이라고는 단 한 채도 보이지를 않았다.

전부 부서져 내리거나 무너져 있었다.

어떤 집은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일까.

마을 자체가 무언가에게 습격들 당한 듯하다.

터벅, 터벅-

나는 마을을 걷다가, 길가에 널브러진 시체 한 구를 손에 들었다.

“으음......”

복부에 꽂힌 강한 일격.

사인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내장과 뼈가 으스러져 있고, 거대한 주먹의 형태가 늑골을 파고들어 안쪽까지 있었다.

‘오크한테 당했나 보네.’

이 정도의 강함과 커다란 주먹이라면, 직관적으로 생각나는 건 오크밖에 없었다.

다른 몬스터들도 많지만, 엘라이탄 숲을 지나오면서 오크들을 많이 마주했다 보니 아무래도 오크가 강력하게 의심되었다.

나는 남자의 시체를 내려놓고, 다시 마을을 둘러보았다.

다른 시체들의 상태도 살펴보는데, 습격을 당한 게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닌 듯했다.

썩은 시체는 하나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생존자는 없나?’

마을 자체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감지촉수로 마을 전체를 스캔했다.

쯔즙-

‘어? 있다.’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너져내린 어느 집 지하에 두 명의 사람이 숨어있었다.

용케도 이 참상에서 살아남았네.

나는 지하에 사람이 있는 집으로 다가갔다.

터벅, 터벅-

집은 폭삭 주저앉아 있었고, 겉으로 봐서는 안쪽에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감지촉수는 반경 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주저앉은 침대 밑으로 좁은 틈새가 있었고, 그곳에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가 존재했다.

나는 부서져 내린 침대를 치우고, 지하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흠칫-

- 어, 언니......! 몬스터가 문을......!

- 쉿! 조용히 해. 숨어있으면 괜찮을 거야.

안쪽에 있던 두 명의 사람이 숨을 죽이고 최대한 몸을 밀착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자매 같은데, 마을이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떻게든 안쪽으로 피신해 둘만 살아남은 것 같았다.

저들은 내가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실의 장롱에 몸을 숨기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오크가 들어온 줄 알고 있는 거겠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지하실을 살펴보았다.

별로 커다란 지하실은 아니고, 정말로 피난용으로 만들어 둔 지하실인 듯했다. 소량의 식량과 더불어 책 몇 권. 간이용 화장실과 이불, 매트가 전부였다.

나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말린 과일 하나를 집어 먹었다.

“오.”

맛있어.

망고, 포도, 사과를 섞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환상의 과일이 있다니.

나중에 던전에서 기를 수 있게 품종을 확인해서 씨를 좀 챙겨가야겠다.

내가 목소리를 내자, 비로소 저들이 속삭이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 어, 언니. 방금 사람 목소리가 들렸는데?

- 나, 나도 들었어......

-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런데 혹시 산적일 수도 있으니...... 일단 가만히 있어야 해.

하기야, 여기는 현대가 아니지.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 산적들이 몰려와 마을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약탈하기도 한다.

사람이라고 해도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저들은 구원의 동아줄조차도 의심하며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냥 곧바로, 두 여자가 숨어있는 장롱으로 향했다.

터업-

그리고 문을 열었다.

“아.......!”

“아!”

두 여자는 처음에는 두려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딱히 나쁜 짓이라고는 전혀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선하고 잘생긴 인상의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덜렁덜렁-

“어......? 꺄, 꺄악......!”

곧이어 커다란 물건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내 하반신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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