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6
몸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꼬챙이처럼 꿰어진 남자들.
쩌업- 쩝- 쩌업-
S-1은 흉포한 포식촉수를 벌려, 남자들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우두둑-
콰직-!
강철보다도 단단한 이빨이 뼈와 살들을 분리하고, 조각난 남자들의 몸체로부터 피가 줄줄 흐른다.
인간 시절이었다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걸 넘어서 토악질이 나올 만한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
촉수 괴물의 몸에 익숙해지면서, 내 영혼과 정신 또한 인간이 아닌 촉수 괴물의 격에 맞도록 바뀐 것이다.
‘잘했어. 이제 본래 위치로 돌아가, S-1.’
“키애애애애액-!”
식사를 마친 S-1은 내 명령에 따라 하늘로 복귀했다.
남자들의 생명에 불씨는 꺼졌다. 그들이 모조리 먹힌 것을 확인한 나는, 이내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 생물 해체 분석
{ 연구한 종족 : 뱀파이로( 뱀파이로 변신, 초음파 탐지, 예민한 후각, 로우 피어 ) }
{ 쌓은 중첩 수 : 인간( 202 ), 묘족( 15 ), 자이언트 아이( 98 ), 오크( 103 ), 블루 키메라( 72 ), 옐로우 망키( 55 ), 쉘 터틀( 31 ), ...... , 뱀파이로( 87 ), 뱀파이로 로드( 15 ) }
‘좋다.’
인간 중첩 포인트 202.
이걸로 이제 중첩 포인트를 소모해, 인간 변신 스킬을 얻는 것이 가능해졌다.
헤나의 보지를 따먹고, 남자 네 명을 죽인 성과였다.
촉수 수족이나 특수 수족은 말 그대로 내 손과 발.
나의 분신이자 인형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죽인 생물들도 모조리 중첩 포인트로 계산된다.
‘그나저나 여자랑 섹스하면 중첩 포인트를 15나 줘서 참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정말 마을 몇 군데라도 습격했어야 했겠어.’
정확히는 단순한 섹스가 아니라 질내사정이 퓻퓻 섹스가 조건이지만, 그거나 그거나 똑같았다.
만약 섹스해서 중첩을 얻지 못했다면, 죽여서 1 중첩을 얻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악귀 같은 학살자 루트를 타야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해 본다면, 여자들을 따먹어서 포인트를 쌓으라는 여신의 의도가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야 섹스하면 좋으니까.
종족 중첩 포인트 200을 소모하면 소모한 종족으로의 변신 스킬을 얻을 수 있고, 100을 소모하면 소모한 종족의 긍정적인 특성 하나를 영구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긍정적 특성이라......
‘인간의 긍정적 특성은 뭘까.’
뱀파이로의 경우, 긍정적 특성으로 초음파 탐지, 예민한 후각, 로우 피어라는 스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셋 모두 그럭저럭 쓸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긍정적 특성으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인간의 장점이라면 많지만, 그걸 특성으로 얻는다고 치면 잘 모르겠다.
뭐, 얻어보면 알겠지.
지금은 때가 아니고 나중에. 긍정적 특성도 궁금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화 스킬이니까.
[ 스킬, ‘생물 해체 분석’에서 인간 중첩 ‘200’을 사용합니다. ]
[ ‘인간 변신’을 익혔습니다. ]
‘드디어.’
⚫ 인간 변신
- 종족,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레벨이 낮았을 적에 인간화 스킬을 대체 언제 얻을까 하고 생각하여 농담 삼아 100레벨에나 얻는 거 아닌가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100레벨은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96레벨이다.
‘아무튼, 얻었으니 만족한다.’
곧바로 변신하고 싶지만, 의지를 통해 스킬을 발동하니 눈앞에 경고문이 나왔다.
[ 먼저 아바타를 설정해 주세요. ]
‘으음.’
맞아.
뱀파이로 때도 그렇고, 우선 프린세스 메이커부터 해야지.
인간은 외모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받는 대우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아바타 설정에는 신중해야 했다.
띠링-
아바타를 설정하겠다고 생각하자, 눈앞에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뱀파이로로 변신할 때도 이런 창이 떠올랐었는데, 그때는 그냥 크기만 키우고 랜덤으로 설정했었다.
지금도 랜덤으로 설정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버튼을 눌려보니까, 느끼한 백인 얼굴부터 험상궂은 관상을 한 2m 30cm의 흑형까지. 다양한 아바타가 나타났다.
나는 전부 물리고, 지구에 있을 적 나를 떠올리며 아바타를 만들었다.
‘우선 키는 188cm.’
사실은 182cm지만, 이 정도의 버프는 괜찮지 않을까. 원래 아바타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이상형을 덧칠해서 만드는 거니까.
나는 신체의 토대를 만들고, 얼굴을 조각했다.
‘얼굴도 내 얼굴에서, 조금 더 잘생기게......’
지구에 있을 적 못생겼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남자라면 무릇 존잘을 꿈꿔야 한다.
‘그래도 적당하게 꾸미긴 해야겠지.’
너무 잘생겨 얼굴에서 빛이 나는 조각 미남으로 만들면, 본래의 내 얼굴과 너무 달라진다. 그건 또 싫었다.
나는 내 얼굴 본판 느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잘생겨지기를 원했다.
일단 이목구비와 턱선을 조금 손봤다. 그것만으로도 제법 그럴듯한 얼굴이 완성되었다.
‘그다음은 육체.’
몸은 탄탄한 근육이 멋있게 자리를 잡도록 바꾸었다. 벌크업 한 보디빌더급의 사이즈는 아니지만, 전신을 알차게 채워놓았다.
‘......벌써 저녁이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아바타를 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밤이 되었다.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저물 정도로 오래 걸렸지만, 게임에서 아바타를 만들 때도 몇 시간씩 시간이 소요될 때가 있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는 양호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드디어 원하는 모습이 탄생했다.
‘이야.’
좋다.
아바타를 바라본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양심이 너무 없었나.
얼굴은 그렇다고 쳐도, 몸이 지나치게 좋게 바뀌었긴 한데......
‘그래도 뭐 어때.’
양심보다는, 낭만을 택하는 것이 인생을 즐겁게 사는 답이다.
나는 아바타를 저장했다. 이제부터는 인간으로 변신할 때마다, 해당 아바타의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다.
촤아아아악-
거두절미하고, 바로 인간 변신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여러 가닥으로 뻗어있던 촉수들이 안쪽으로 들어간다. 거대하게 부풀어있던 몸체가 순식간에 압축된다.
‘오오......’
유동적이었던 몸이 요동치며, 코어를 중심으로 신체가 재구성된다.
콰드드득-
살점들이 부풀고 압축되고를 반복하며, 내가 아바타로 저장해뒀던 신체의 형상을 띤다. 피부도 인간 살갗의 질감을 갖추고, 머리카락까지 자라난다.
골격이 탄탄하게 갖춰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모든 현상이 단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 아.”
목소리가 나온다.
뱀파이로로 변신했을 때처럼, 성대가 생겨서 그렇다.
아바타를 설정할 때 목소리까지 설정할 수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도 내가 원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눈을 뜨고 팔을 움직여본다.
손가락 한마디 한마디까지. 전부 원하는 대로 움직여졌다.
“괜찮네.”
편하다.
촉수 괴물로 지낸 시간이 꽤 길어서 인간의 몸이 어색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20년 넘도록 살아온 몸이라 그런지 아주 친숙했다.
두 다리로 걷는 것도, 몇 걸음 걸으니 금세 익숙해졌다.
촉수 괴물로 있는 동안은 계속 몸체를 끌고 다녔으니까. 그 감각에 워낙 적응해 있었는데, 재활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
나는 몇 번 몸을 스트레칭한 다음 협곡을 걸었다.
터벅, 터벅-
인간화 스킬을 얻어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쿵- 쿵- 쿵-
“크르륵! 크롸아아-!”
......물론 세상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 세상이 나를 가만히 놔두는 건 아니었다.
울티노스.
흉측하게 생긴 고릴라 형태의 거대 몬스터.
자이언트 아이보다도 한층 더 강력하며, 최상위권의 D클래스 모험가와 맞먹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놈이다.
C클래스 미만의 모험가라면,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몬스터.
하지만......
‘명을 재촉하네.’
나는 평범한 몬스터들 정도는 몇백 마리가 몰려와도 두렵지 않은 진정한 괴물이다.
촉수 괴물로 살면서 던전의 주인이 된 다음에는, 내게 먼저 덤벼오는 몬스터는 존재하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덤벼오다니.
아무래도, 놈은 나를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보는 듯하다.
“크롸아아아-!”
쿵- 쿵- 쿵- 쿵-
가슴을 치며 포효한 울티노스가 순식간에 도약해 내게로 달려들었다.
쐐애액-!
상당히 빠른 속도.
나약한 모험가라면 반응하기도 힘들겠지만, 나는 돌진해오는 울티노스를 향해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뻗었다.
처억-
놈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만, 아쉽게도 나는 인간으로 변신했을 뿐이지, 인간이 아니다.
영혼은 예전에 인간이었을지언정, 지금의 내 정체는 그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촉수 괴물’일 뿐이었다.
쩌적-
울티노스를 향해 뻗은 내 손바닥 틈이, 슬쩍 갈라진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마력촉수’가 튀어나와, ‘마탄’을 날렸다.
“크롸아-!”
투콰악-!
울티노스의 상체가 순식간에 꺼졌다.
“......”
쿠웅-!
달려오는 모습 그대로 절명한 것이, 놈의 최후였다.
겉은 인간이지만 속은 촉수 괴물이기에, 팔을 갈라 촉수를 뿜어내는 것도 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촉수들을 한 번에 뿜어내면 변신이 풀리겠지만, 뱀파이로로 변신했을 때보다도 많은 촉수를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인간으로 변한 내 몸에 만족하며,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이제부터 어딜 가볼까.’
현재 내가 위치한 중립 구역을 중심으로 네 구역.
프리지아 대연합, 국가 연합, 대수림, 비경.
총 네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데, 우선 비경은 패스였다. 너무 험난한 곳이라, 현재의 내 능력치로는 힘들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수림도 패스. 엘프족이나 수인족은 종족 단위로 뭉쳐서 살기 때문에, 어떤 마을을 가든 괴물 같은 능력치를 가진 수호자가 한 명쯤은 존재했다.
프리지아 대연합은...... 전작 주인공이 있어서 좀 그렇고.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국가 연합.’
페로스 협곡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는 로셸 왕국이다.
전에 아리엘을 만나기 전에도 로셸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마력석을 훔쳐 오려던 중간에 아리엘을 만나는 바람에 다시 페로스 협곡으로 돌아왔었다.
이참에 로셸 왕국에 신분 하나를 만들어 놓고, 마력석도 가져오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괜찮은 암컷이 있으면, 따먹고.’
나는 로셸 왕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