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쯔꾸르 야겜 속 촉수괴물이 되었다-79화 (79/108)

Ep. 79

아리엘.

이 세상 모든 뱀파이로들을 통솔할 수 있는 로드이자,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운명을 지니고 세상에 나온 그녀는, 사실 굉장히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항상 그녀의 엄마가 곁에 있었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언제나 외로움이 아닌 행복감과 포근함을 느꼈으니까.

아리엘은 항상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고, 엄마와 함께 꼬옥 붙어 다니면서 그녀의 외로움을 엄마의 따뜻함으로 채워나갔다.

“나도......! 나도 혼자서 잘 할 수 있거든......!”

하지만, 그녀는 언제까지나 아이가 아니었다.

아리엘은 그녀의 내면에 외로움이 잠들어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스스로 엄마의 품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아직 어리긴 하나, 성인이 된 아리엘은 혼자의 힘으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자기만을 바라봐주는 식구들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엄마와 처음으로 말싸움도 하고, 그녀의 품을 벗어났다.

“헤헤, 엄마한테 증명하는 거야.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홧김에 시작한 가출은, 정말로 독립이 되어버렸다.

여러 떠돌이 뱀파이로들을 수하로 영입해서, 아리엘은 그녀만의 패밀리를 만들었다.

너무나도 쉬웠다.

휘하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말만 걸어도, 모든 뱀파이로들이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리엘이 열심히 돌아다니는 만큼, 그녀의 패밀리 수는 빠르게 늘어갔다. 아리엘은 만족감을 느꼈다.

“얘들아! 오늘은 내가 그린 자이언트 베어를 잡아왔단다......! 헤헤, 많이많이 먹으렴!”

아리엘은 그녀의 식구들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그녀가 모은 뱀파이로들인 만큼, 그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하지 않니!? 내가 있잖아......!”

하지만, 아리엘은 책임을 넘어 뱀파이로들과 친구가 되고자 했다.

그녀의 안에 있던 외로움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그녀의 말을 받아줬던 엄마라는 존재가 없으니, 새로운 말동무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리엘은 깨닫지 못했다.

“키릭, 그린 자이언트 베어, 맛있다.”

“감사, 합니다. 키릭.”

로드는 본래 ‘지배자’일 뿐이고, 하수인들은 그런 지배자의 명령을 듣는 ‘장기말’일 뿐이라는 것을.

“으음, 얘들아? 그런데 내 말은 안 들어주니?”

“죄, 죄송합니다. 키릭.”

“죄송하면, 이리 가까이 와보렴!”

“자, 잘못했습니다. 키릭.”

아리엘은 식구들과 ‘친구’가 되어 친하게 지내고자 했지만, 그녀의 식구들은 그녀를 ‘여왕’으로 대했다.

뱀파이로들은 뱀파이로 로드인 아리엘을 이상하게도 너무 어려워했다.

‘애들이 내 말 이해를 잘 못 해서 그런가?’

처음에 아리엘은 자신과 일반 뱀파이로들 사이의 지능 차이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뱀파이로는 지능이 높지만, 로드급의 지능을 지닌 건 결코 아니다. 때문에, 뱀파이로와 로드 사이의 지능의 차이 때문에 뱀파이로들이 자신을 어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만 제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여왕님.”

“어? 그, 이, 이야기는 안 듣고 가니......?”

“네, 그럼 이만......”

그러나,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만난 늙은 뱀파이로.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뱀파이로를 밖에서 처음 발견한 아리엘은, 드디어 그녀의 친구가 되어줄 뱀파이로를 찾은듯했다.

하지만. 그 늙은 뱀파이로 또한 그녀를 멀리 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이러지......?’

여왕의 수하면 여왕의 이야기는 당연히 친구처럼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리엘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겼지만, 그건 아리엘이 로드라는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로드라는 위치 자체가, ‘공포로 지배하는 통솔자’의 위치였다.

아리엘이 가지고 있는 스킬인 ‘로드의 아우라( 뱀파이로 )’에 노출된 뱀파이로는, 일단 그녀에게 복종심과 함께 가슴 속 깊이 ‘두려움’을 느낀다.

그녀를 만난 순간.

그녀의 영역에 들어간 순간.

뱀파이로들은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낀다.

때문에, 그녀가 다가가는 데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녀 주변에 뱀파이로들을 모아둘 수 있는 스킬이, 그녀가 뱀파이로들과 친해지는 것을 막는다니.

아리엘은 그러한 사실을 끝까지 알지 못했고, 뱀파이로들이 그녀와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둘 때마다 점차 외로움을 느껴갔다.

그녀는 친구의 존재에 목말라 있었다.

‘나랑...... 이야기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물론, 아리엘은 뱀파이로들에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계속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점차 올라오는 외로움은 막을 수 없었다.

“엄마! 저 왔어요......!”

결국 아리엘은, 그녀의 동굴에서 벗어나 엄마를 찾아갔다.

잠시의 외출이었다.

그녀와 잔뜩 이야기를 나누러 간 것은, 그런 이유였다.

외로움.

외로움은 잘 타면서 친구가 없는 아리엘에게는, 그녀의 엄마가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녀와 친해질 수 있는 ‘운명’의 뱀파이로가 있지 않을까, 아리엘은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그 운명을 만났다.

“얘야! 얘야!”

“어디 가니!? 처음 보는 뱀파이로인데! 혹시 혼자니!?”

처음에는 커다란 뱀파이로구나 싶었다. 몸집이 크면 뛰어날 개체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아리엘은 우선 영입 멘트를 날리고 보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끌림이 느껴졌다.

애초에 그녀의 눈앞의 뱀파이로는 그녀를 두려워하지도, 싫어하지도, 멀어지려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영입할 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뱀파이로가 싫어했는데.

아리엘은 일차적으로,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한 뱀파이로에게 큰 끌림을 느꼈다.

“그래서 있잖아? 내가 확! 하고 말해버린 거지.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한술 더해서 비행하면서 이야기를 떠들었던 것도, 그 뱀파이로는 하나도 지루해하거나 꺼림직해 하는 일 없이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아리엘은 너무 즐거웠다.

비록 동굴에 도착한 다음 식구들이 전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슬퍼서 펑펑 울어버렸지만, 그래도 이전에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어떻게든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뱀파이로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으신가요 여왕님?”

“시원해질 때까지 조금 더 우세요.”

꼬옥-

‘아......’

아리엘은, 그녀를 안아주는 뱀파이로를 정말 생전 처음 보았다. 그 뱀파이로의 품이 너무 좋아서, 그녀도 모르게 더 울어버렸다.

“이, 이제 조금 괜찮아졌단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식구들이 죽어서 슬프지만, 그래서 이 뱀파이로라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뱀파이로를 얻은 것 같았다.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줄 뱀파이로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을 금방 진정시킬 수 있었다.

오히려 정말 안 되는 생각이지만, 식구들이 죽은 것보다 그녀와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는 뱀파이로를 찾았다는 사실이 조금 더 기쁘기도 했다.

“아, 아까 비극이 있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내 어머니께서 말했잖니?”

“네, 그렇죠.”

“유, 유진은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내가 꼭 지켜줄게...... 알았지?”

“저도 여왕님과 끝까지 함께할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리엘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그가 뱀파이로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속에 절망이 찾아왔다.

“나, 나는...... 나는 너를 새 식구라고 생각했는데......”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고...... 다른 뱀파이로들이랑 다르게 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옆구리에 상처를 내고 마비독을 주입하고, 그녀의 식구들을 모조리 죽인 게 바로 그였다.

뱀파이로가 아닌, 빌딩보다도 커다란 몸체를 가진 촉수 괴물이 바로 그녀가 운명이라고 느낀 뱀파이로의 정체였다.

아리엘은 거대한 촉수 괴물의 몸체를 보았다.

경이로울 정도의, 도무지 저항할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이 느껴졌다.

“흑, 흐윽...... 죽일 거면...... 빨리 죽여.”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존재가,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 안 죽여. 소중한 여왕님인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커다랗고 흉측한 물건을 꺼냈다.

“읏, 자, 잠깐만...... 이거 설마......?”

아리엘은 성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가끔 뱀파이로들이 교미하는 현장을 목격하곤 했다.

일반 뱀파이로들과는 비교도 안 될만한 물건이지만, 아리엘은 단번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물건인지를 알아보았다.

“로, 로드인 나를 성욕 처리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거니......?”

아리엘은 유진이 그녀를 단순히 속인 것도 모자라, 단순히 성욕처리용도로 사용하고 버리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또다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 너무 걱정하지는 마. 성욕 처리용으로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해 줄 테니까.

- 우리 동굴을 같이 걸을 때 말했잖아, 난 너랑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으읏......’

아리엘은 그가 내뱉은 사탕발린 말에 잠시라도 두근거린 그녀의 심장이 미웠다.

‘사랑’과 ‘함께’라는 말.

둘 다 그녀가 너무나도 원하는 단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 다 거짓말이었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리엘이 촉수 괴물을 노려보았다.

- 거짓말 아니야. 나는 너한테 거짓말 한 적이 없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니......!’

하나 촉수 괴물은, 아리엘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을 이었다.

- 행복하게 해줄게, 아리엘.

행복.

워낙 외로움을 느끼느라 겉으로만 밝게 있던 아리엘은, 독립하고 나서 진정으로 행복하게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뭐, 뭘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니...... 내 식구도 다 죽이고...... 거짓말하고...... 나, 나를 속여서 공격해놓고......”

“너를 잠시나마 최고의 식구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같아......”

“너는...... 너, 너는 정말로 최악이야......”

아리엘은 어떻게든 촉수 괴물의 사탕발린 말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에도 달콤한 말로 유혹한 다음 거칠게 그녀를 사용하고 버릴 게 뻔히 보였기 때문에.

아리엘은 두 번 상처받기는 싫었다.

하지만......

“우움-! 자, 잠깐 뭐 하는...... 움-!”

촉수 괴물이 그녀의 입술을 쪽쪽 빨아주기 시작했을 때.

“우움- 츕, 츄룹, 쭙, 쭈웁, 쪽, 쪼옥......”

아리엘은 벌써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이거 뭐야아...... 이상한 느낌이 드는......’

“우움, 츄룹, 쭙, 헤움, 헤웁, 츄룹, 쪽......”

따뜻하고, 달콤하다.

뇌가 두둥실 뜨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포근하게 위로받는 느낌도 들었다.

분명 자신을 배신하고, 식구들을 죽인 원수 같은 몬스터인데.

자신을 속이고 가지고 논 나쁜 몬스터인데......

그런 몬스터와 나누는 키스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애초에 저항이란 불가능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까.

- 아리엘, 너무 예뻐.

“헤움, 츄룹, 쭙, 쭈웁, 쭙, 쪼옥......”

‘치, 칭찬하지 마렴......’

심장에서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 내가 잔뜩 기분 좋게 해줄게. 알았지?

“우움, 쭈웁, 쪽, 쪼오옥, 츄룹, 쭙......”

‘이, 이런 걸로 기분 좋아지지 않는단다라고 해야 하는데......’

너무 기분이 좋다. 뭔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다.

- 식구들을 죽인 건 미안해. 그렇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대신에 나랑 새롭게 식구가 되자? 내가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츄룹, 쭙, 쭈웁, 쪽, 쪼오옵, 츄웁......”

‘평생...... 행복......’

그건 평생동안 옆에 있어 준다는 소리인가?

순간 촉수 괴물의 말을 생각해봤던 아리엘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달콤한 키스와 더불어, 그가 속삭이는 말에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아리엘은 이미 식구도 잃고, 외로움도 최고치인 상태였다.

“하움, 츄룹, 쭙, 쭈우웁, 츄웁...... 꿀꺽...... 꿀꺽......”

지금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고는 촉수 괴물이 그녀의 혓바닥을 쪽쪽 빨면서 주는 달콤한 타액과 머릿속을 울리는 말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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