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쯔꾸르 야겜 속 촉수괴물이 되었다-78화 (78/108)

Ep. 78

휘청-

아리엘이 내 마비독을 맞고 몸을 비틀거렸다.

흡혈촉수를 통해 혈관 속에 직접 주입한 마비독의 위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중하위권 수준의 S클래스 모험가 엘레나조차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나의 마비독.

그때 내 레벨이 67이었고.

지금은 92이다.

최대 강도로 마비독을 주입하자, 아리엘은 몸에 힘이 쭉 빠져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아리엘이 지배자의 피를 이어받은 로드라고 해도, 지금은 아직 A클래스 최상위권 모험가 수준에 불과했다.

내 마비독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진...... 하아, 하아...... 나,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나를 바라보는 아리엘의 눈은 명백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쯔릅-

“하읏......”

나는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던 흡혈촉수를 회수했다.

살을 파고들었던 가시가 빠져나오고, 피가 튀어 흐른다. 상처의 고통에 아리엘이 눈살을 찌푸리며,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비독이에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다른 효과는 없고,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될 뿐이니까.”

아리엘의 눈빛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마비......독? 그, 그러니까 유진...... 나한테 왜 그런 걸......”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야 여왕님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죠.”

“내, 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아, 하아...... 아, 안돼 어서 풀어주렴...... 안 그러면 위험하단다...... 괴물이 우리를 공격......”

“괴물? 얘 말이에요?”

아리엘의 말에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아리엘 또한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펄럭, 펄럭-

거대한 특수 수족 S-1이 날개를 펄럭이며, 내 바로 앞에 착지하는 모습을.

아리엘은 어떻게든 마비독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했지만, 나는 S-1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몸체의 길이는 4m.

날개 전체를 펴면 가로로는 10m가 넘어가는 거대한 촉수 글레어는, 앞에서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압감을 풍기는 몬스터였다.

물론, 내게는 그저 귀여운 한 마리의 애완동물일 뿐이다.

S-1은 키에에에엑-! 하고 한번 크게 울더니, 이내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스윽-

종.

마치 주인님을 만난 종과 같이.

“어...... 어?”

완전히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S-1의 머리를, 나는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리엘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얘는 처음부터 제 부하였어요. 여왕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배치해둔 놈이죠.”

“부......하?”

“네, 참 듬직하죠?”

스윽, 스윽-

나는 S-1의 머리와 몸체를 쓰다듬으며 실제로 듬직함을 느꼈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전부 S-1 선에서 처리가 되었다.

내가 요즘 엘레나나, 아리엘처럼 괴물 같은 여자들만 던전에 끌고 와서 그렇지, S-1 정도면 실제로 굉장히 강력한 몬스터였다.

“아, 아니야...... 저, 저 몬스터가 네 부하일 리가 없어......”

아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유, 유진...... 너는 뱀파이로잖아...... 내 식구잖아...... 그렇지......? 지, 지금 연기하는 거지? 아니니......?”

이렇게까지 보여줬는데도, 아리엘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아무래도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겠지.

나는 S-1을 향해 명령했다.

“바닥을 뒹굴어.”

“키르윽-!”

쿵- 드드드-

S-1은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을 뒹굴었다.

“이번에는 공중을 세 바퀴 돌아.”

펄럭, 펄럭-!

곧바로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서 곡예를 하듯 세 바퀴를 돌았다.

“어때요. 말 참 잘 듣죠?”

“......”

S-1은 내 수족.

나의 명령이라면 자살하라는 것도 단 0.1초의 망설임 없이 수행할 몬스터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몬스터를 부릴 정도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믿고 싶지 않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가 쏟아져 나오면 그게 현실이었다.

아리엘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S-1한테 명령했다.

“둘만 있고 싶으니까. 이만 나가봐. 본래 네 임무로 돌아가.”

펄럭, 펄럭-!

S-1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본래의 임무.

페로스 협곡의 정찰을 위해 던전 밖으로 나가, 다시 공중을 날아다닐 것이다.

“이제 믿을 수 있겠어요?”

내가 아리엘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가 물었다.

“그, 그럼 설마 아까 동굴에서 조우한 몬스터도...... 네 부하인 거니......?”

“네, 맞아요. 걔도 제 부하예요. 아쉽게 죽긴 했지만.”

“지, 지금까지 나를 속여온 거야......? 서, 설마 식구를 죽인 것도......”

“다 저죠. 이 던전의 주인이 저라서. 동굴에 있던 뱀파이로들은 싹 다 죽였어요.”

“아......”

아리엘은 탄식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변신을 해제했다.

촤아아아악-!

뱀파이로의 박쥐 모습을 이루고 있던 몸이 갈라지고, 안에서 보라색 몸체가 떠오른다.

수많은 보랏빛 촉수들이 몸체로부터 치솟고, 그 크기가 한없이 커진다.

S-1이 날개를 편 것도 귀여워 보일 정도.

내 몸체는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마치 풍선처럼 계속 크기를 키워갔다.

92레벨이 된 내 몸은, 이제 빌딩도 우습게 볼 만한 수준으로 몸체가 커졌다.

“......”

아리엘의 눈에서 물기가 차올랐다. 내 모습을 보고,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녀가 전부 속아왔다는 것을.

“나, 나는...... 나는 너를 새 식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엘이 눈물 섞인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고...... 다른 뱀파이로들이랑 다르게 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기본촉수를 통해 아리엘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몸을 칭칭 휘감듯 끌어안고, 전음을 통해 말했다.

- 특별한 존재 맞아. 다른 뱀파이로들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지.

“하아, 하아, 거짓말쟁이......”

아리엘이 눈물이 맺힌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다...... 나를 속이고, 뱀파이로들을 죽인...... 내 식구들의 원수야......”

그녀가 한탄하듯 말했다.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았어...... 세상에는 위험한 존재들이 많으니...... 나, 나는 아직 어리다고 나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동굴로 오며 아리엘이 말해주었다.

본래 로드는 엄마와 함께 50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다가, 1인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갖춘 다음 독립하게 되어 있다고.

기본 수명이 몇백 년인 로드의 나이 개념으로 볼 때, 50살이 딱 인간으로 20살 정도일 것이다.

“흑, 흐윽...... 죽일 거면...... 빨리 죽여.”

아리엘이 눈물을 흘리며,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순수하고 여리기 짝이 없는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다니. 나도 참 악질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 안 죽여. 소중한 여왕님인데.

“그, 그럼 뭘 하려고...... 죽이려면 진작에 죽일 수 있었잖아......”

뭘 할 거냐고?

나는 곧바로 성기촉수를 꺼내 아리엘 쪽으로 가져갔다.

“......?”

아리엘은 잠시 내가 꺼낸 촉수가 뭔지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몸을 흠칫 떨었다.

“읏, 자, 잠깐만...... 이거 설마......?”

- 그 설마가 맞아.

아리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로, 로드인 나를 성욕 처리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거니......?”

- 애초에 죽이는 거나 성욕 처리 용도나 똑같은 거 아니야?

“으읏......”

아리엘이 새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고,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 너무 걱정하지는 마. 성욕 처리용으로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해 줄 테니까.

말하면서 아리엘한테는 그게 그거처럼 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였다.

단순한 성욕 처리용은 음란과 숭배의 음문이고, 사랑해주는 건 사랑과 복종의 음문이었으니까.

사용하다가 잠시 내팽개쳐둘 보지가 아닌, 아내로 만들어주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기본촉수로 아리엘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쓸어주었다.

- 우리 동굴을 같이 걸을 때 말했잖아, 난 너랑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뱀파이로 상태에서 여왕님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한 걸 떠올리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다...... 다 거짓말이었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리엘이 나를 노려보았다.

- 거짓말 아니야. 나는 너한테 거짓말 한 적이 없어.

맨 처음에 그녀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 것 빼고, 실제로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뱀파이로 모습을 취한 상태로 그녀를 내 던전으로 유도했을 뿐.

끝까지 함께 하겠다거나.

유진이라는 본명을 알려준 거라든가.

여왕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든가.

전부 진실이었다.

- 행복하게 해줄게, 아리엘.

내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몸을 더 꼬옥 감싸 안았다.

“뭐, 뭘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니...... 내 식구도 다 죽이고...... 거짓말하고...... 나, 나를 속여서 공격해놓고......”

아리엘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를 잠시나마 최고의 식구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같아......”

아리엘의 표정은 마치 실연당한 여자 같았다.

“너는...... 너, 너는 정말로 최악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리엘을 놔주지 않았다.

- 일단 치유부터 해줄게.

그녀의 옆구리에 내가 흡혈촉수를 박으며 낸 상처.

구멍이 뚫려 피도 많이 흐르고, 아파 보였다.

나는 치유촉수를 꺼내 그녀의 상처 바로 앞에 가져다 대었고, 신성한 힘을 통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주었다.

“이, 이런 걸 낫게 해준다고 해서...... 내가 너를 좋게 생각할 것 같니......?”

전혀 아니다.

이건 단순히 치료였을 뿐.

진짜 행복하게 해주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소화촉수를 꺼내, 그녀의 입 쪽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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