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7
“훌쩍...... 훌쩍, 훌쩍......”
아리엘은 10분이 넘어가도록 계속 울었다.
펑펑 눈물을 흘리는 아리엘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서글픔이 전염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리엘을 감싸 안으며, 차분하게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으신가요 여왕님?”
“으으응...... 흑, 훌쩍...... 아니...... 훌쩍...... 하, 하나도 안 괜찮단다......”
아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콧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힘내세요.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죠.”
으음, 사건의 주범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리엘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때는 동굴을 청소해야 했음이 옳다.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를 동굴 안쪽에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동굴을 점령하고 있던 뱀파이로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흑, 흐윽, 훌쩍...... 마, 맞아...... 훌쩍, 그건 맞는 말이긴 하단다...... 그런데...... 훌쩍, 훌쩍...... 너무 슬퍼서 눈물이 저절로 나와......”
아리엘은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는 듯했다. 나는 손 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날개로 감싸며, 상냥하게 보듬어줬다.
“그럼 시원해질 때까지 조금 더 우세요.”
“으응...... 훌쩍...... 그렇게 할게......”
아리엘은 내게 토닥토닥을 받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작은 몸체를 꼬옥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진짜로 애를 달래는 느낌이다.
한 10분 정도가 더 지나자, 아리엘은 어느 정도 진정을 되찾았는지 살며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훌쩍......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단다......”
“그런가요?”
“으응...... 훌쩍...... 이전에 어머님도 말씀하셨어...... 식구들을 잃는 건, 훌쩍...... 당연한 일이라고......”
그녀는 어머님의 말씀을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님께서도 이전에 식구를 잃은 적이 많다고 했어......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을 넘겼다고 하면서...... 어머님께서는 비극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만은 말라고 했단다......”
나는 아리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로드와 일반 뱀파이로의 무력 차이는 하늘과 땅 정도의 수준이니까.
전쟁이 나거나 하면, 로드만 살아남고 일반 뱀파이로들은 전멸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전작의 어떤 로드는 자신의 부하를 그저 소모품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도 다 너무 많은 비극을 겪어서 그렇게 변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리엘은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제 조금 괜찮아졌단다.”
여전히 그녀의 눈가는 빨갰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리엘의 정신력은 내 생각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진정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아리엘은 손으로 눈가를 슥슥 닦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쥐의 미소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소에 웃는 느낌으로 웃었다.
아리엘은 얼굴을 조금 빨갛게 물들이더니, 내 가슴팍을 보고는 아, 하고 탄식했다.
“그, 그런데, 가슴에 내 눈물이랑 콧물이 너무 많이 묻었는데, 괜찮니......?”
“이 정도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여왕님이 슬퍼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
아리엘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펑펑 울 때는 몰랐는데, 다 울고 나니 부끄러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너, 너는 혹시 이름이 있니?”
“이름이요?”
“으응...... 나는 어머님께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단다. 보통 뱀파이로들은 이름이 없지만, 너, 너는 조금 특별한 것 같으니 이름이 있는지 궁금해서......”
아리엘이 수줍은 얼굴로 말했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름이라.
생각해보면 나는 촉수님, 촉수신님, 주인님, 서방님 등등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본명으로 불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야 내 아내들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아내들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딱히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나는 아리엘에게 내 본명을 알려주었다.
“유진이라고 불러주세요.”
“유진?”
“네, 그게 제 이름이에요.”
천유진.
이 세계에 와서는 처음 사용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명을 사용할 일이 많아질 수도 있었다.
일단 인간 폼을 얻으면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데, 원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 익숙하고 좋을 테니까.
“유진, 유진......”
아리엘은 몇 번이고 내 이름을 곱씹더니, 내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아, 아까 비극이 있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내 어머니께서 말했잖니?”
“네, 그렇죠.”
“유, 유진은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내가 꼭 지켜줄게......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아리엘의 볼은 여전히 빨갰다. 손가락도 조금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그녀의 순수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설마, 우는 거 좀 보듬어 줬다고 이러다니. 물론, 비행하면서 그녀의 수다를 전부 다 성실히 들어주기도 했다.
“저도 여왕님과 끝까지 함께할게요.”
“으읏, 그, 그러니?”
“네.”
“헤, 헤헤.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야......!”
아리엘은 환하게 웃었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게 바뀌었다.
무언가를 각오한 것 같았다.
“여왕님?”
“나는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 거란다.”
“안쪽에요?”
“으응. 비극이 일어나도 슬퍼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죽은 식구들의 복수는 해줄 거야......!”
터벅, 터벅-
그녀의 눈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눈빛이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리엘은 로드였다. 지배자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전투적인 아우라가 어울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아리엘 옆에 몸을 붙이고 섰다.
“저도 같이 갈게요.”
“헤헤, 고마워.”
아리엘은 나보고 자신 뒤에 꼭 붙어있으라고 한 다음에,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아리엘의 뒤태를 구경하며 걸었고, 아리엘은 주변을 경계하며 차분하게 동굴을 주파했다.
“그, 그런데 몬스터가 전혀 보이지를 않네......”
동굴 안쪽으로부터는 아무런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몬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왔기에 아리엘은 상당히 많은 수의 몬스터가 동굴 안쪽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내가 N-5말고 다른 촉수 수족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기 때문에, 지금 동굴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봐요.”
“으응, 그러자.”
아리엘은 몬스터의 기척조차 없는 동굴에 의아한 듯했지만, 일단 계속해서 끝을 향해 걸었다.
상당히 깊은 동굴이었기 때문에 오래 걸렸지만, 마침내 동굴의 끝자락이 나오자 아리엘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 이건......”
“던전이네요.”
우우웅-
동굴의 가장 안쪽에는, 내가 만든 던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지배하고 있는 던전으로 가는 포탈.
하얀색과 검은색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포탈은, 누가 봐도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 아까 몬스터는...... 이 안에서 나온 걸까?”
아리엘은 침을 꿀꺽 삼키며 포탈을 바라보았다.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어머님이 던전 안은 위험하다고 하긴 했는데......”
몬스터도 던전의 존재는 알고 있다.
저지능체는 모르겠지만, 아리엘처럼 한 종족을 지배하는 고지능체 로드 종족의 경우, 던전 내부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건......”
아리엘은 그녀의 어머님이 해준 말씀을 떠올리는 듯했지만, 이내 각오를 다진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가야 해.”
“위험하다고 해도요?”
“으응...... 안 그러면 로드의 자격이 없는 거란다......!”
아리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던전 포탈 안쪽으로 발을 딛었다.
“유진은 여기 있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나 혼자서 갔다 올게.”
“어떻게 그래요. 저도 여왕님과 함께 갈게요. 아까 끝까지 함께 한다고 했잖아요.”
“그, 그러니?”
아리엘은 감동한듯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함께 던전 안쪽으로 들어왔다.
솨아악-
풍경이 뒤바뀌고, 메마르고 불길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네.’
물론, 겉모습만 그럴 뿐이지 내게는 홈그라운드였다. 던전 안쪽에 발을 디디자마자, 내 모든 능력치가 상승함과 동시에 힘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아리엘은 모든 능력치가 하락하고 지속적으로 체력을 빼앗기는 디버프에 걸렸다.
“읏, 유, 유진...... 괜찮니? 이 던전 환경이 가혹한 것 같아......”
“네, 저는 괜찮아요.”
“후으.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어서 앞으로 가자.”
아리엘은 숲을 걸었고, 나는 그녀를 뒤따라갔다.
“이제부터 바짝 긴장해야 해.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단다.”
“네, 알겠습...... 어? 여왕님. 저쪽에 몬스터가.”
“으응? 몬스터가 있니?”
“네, 저기 공중에.”
“아......!”
아리엘은 내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고, 공중을 날고 있는 S-1을 발견했다.
수많은 촉수를 등 뒤로 꾸물거리며 위협적인 모습을 취하는 S-1.
아리엘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만, 엘레나와 유리 다음으로 강한 특수 수족 S-1이 내뿜는 기세 자체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아리엘은 그런 S-1을 보며, 나를 뒤쪽으로 숨겼다.
“위험할 수 있으니 내 뒤에 숨어......!”
“네.”
아리엘은 나를 뒤에 두고, 전투 준비를 했다.
이전에 N-5를 죽였던 때처럼 손을 뻗어, 새빨간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모든 신경을 S-1에 쏟았고, 나에 대한 경계는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였다.
푸욱-
나는 아리엘의 뒤에서부터 그녀의 옆구리를 순식간에 찔렀다. 몸으로부터 흡혈촉수를 빼네, 그녀가 반응할 틈도 없이 마비독을 주입했다.
주르윽-
“어......?”
아리엘은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통증에, 잠시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를 돌아보았다.
내 몸으로부터 나온 흡혈촉수를 발견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 유진......? 지금 무슨 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