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쯔꾸르 야겜 속 촉수괴물이 되었다-76화 (76/108)

Ep. 76

“그래서 있잖아? 내가 확! 하고 말해버린 거지.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이야.”

펄럭, 펄럭-

돌아올 때는 왕국령으로 갔을 때보다 비행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아리엘은 내가 비범하긴 하지만, 그저 한 마리의 뱀파이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평소의 속도대로 비행하지 않고, 뱀파이로의 수준에 맞춰서 그녀의 비행 속도를 더 낮춰 주었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비행하는 내내, 나는 아리엘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묻자, 아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뛰쳐나왔단다! 얼른 날아서 다른 지역으로 향했지. 어머님께서 나를 찾으러 오셨지만, 그때는 이미 일주일이 흐른 후였단다.”

지금은 아리엘이 어떻게 혼자서 자립하게 되었는지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꽤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리엘이 자기도 엄마처럼 여왕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는 반대했다.

결국 둘의 의견 충돌이 말싸움으로 번졌고, 결판이 나지 않아 아리엘이 홧김에 가출했다는 소리였다.

으음......

이거 완전히 사춘기 온 불량청소년.

“일주일이요? 그럼 더 혼나셨을 것 같은데.”

“원래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그 일주일 동안 30마리의 뱀파이로들을 무사히 식구로 만들며 내 능력을 입증했단다. 그래서, 어머님도 내 자립을 인정해준 거지.”

“대단하시네요. 그 뒤로 1년 동안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 거죠?”

“응! 그런 거란다.”

아리엘이 아이처럼 웃었다.

그녀는 참 순수한 몬스터인 것 같았다.

나에 대해서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님에 관해서까지. 본래라면 들을 수 없는 정보를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주었으니까.

하긴, 한평생을 동굴 안에서 지내 온 몬스터인 만큼, 순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리엘의 저 순수한 백색 도화지 같은 모습을,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펄럭, 펄럭-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내 보금자리가 나온단다. 비행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니?”

“네, 괜찮았습니다.”

8시간이 지나고, 나와 아리엘은 페로스 협곡의 중간 지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아리엘이 헤헤헤 하고 웃었다.

“너는 능력도 정말 뛰어난데, 내 말도 참 잘 들어주는구나! 다른 뱀파이로들은 내가 말하면 집중하지 못하거나 금세 자리를 뜨는데...... 너랑은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리엘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실제로, 그녀는 비행하면서 다른 뱀파이로들은 나처럼 말을 잘 안 들어준다고 몇 번이나 푸념했다.

뱀파이로가 똑똑한 고지능 몬스터이긴 해도, 그래 봐야 몬스터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리엘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집중력을 가진 개체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저는 여왕님 이야기 듣는 게 좋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이야기해주세요.”

“헤헤헤, 물론이란다!”

아리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10분 정도를 더 비행하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땅에 착지했다.

이곳에, 바로 동굴이 있었다.

“자! 다 왔어. 여기가 내 보금자리가 있는 동굴이란다. 같이 들어가도록 하자!”

“네.”

털썩-

나는 아리엘을 뒤따라 땅에 착지했다.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생긴 입구.

어두컴컴한 안쪽.

역시.

아리엘이 말한 동굴은, 내가 점거한 페로스 협곡의 초거대 동굴이었다.

처음 그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부터 99% 확신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그녀가 직접 동굴 앞에 서고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니, 우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엘은 동굴의 입구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그러더니, 동굴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얘들아! 내가 왔단다!”

생글생글 웃으며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장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온 엄마와 같은 느낌이 있었다.

“새로운 친구도 한 명 데리고 왔단다! 오래 기다렸지!?”

아리엘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으응? 왜 대답이 없지?”

아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아리엘은 뱀파이로들이 전멸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 다시 소리쳤다.

“얘들아! 내가 왔다니까!?”

- ......

이번에도 동굴 안쪽은 묵묵부답.

아리엘은 삐진 듯 입술을 비죽거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으, 으으. 아무래도 애들이 자고 있는 것 같아. 일단 들어가 보자!”

“네.”

나는 아리엘의 말에 대답하고는 그녀와 함께 동굴 안쪽을 걸었다.

터벅, 터벅-

‘음, 이럴 때는 괜찮네.’

나는 일부러 뱀파이로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하여, 이전에 얻은 ‘초음파 탐지’를 이용해 어두운 동굴 내부를 감지하며 걸었다.

아리엘은 동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얘들아!”

- ......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얘들아! 내가 왔다니까......!”

- ......

계속해서.

“얘들아! 내가 새로운 식구를 데리고 왔어! 이제 나와보렴!”

- ......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얘들아......?”

처음에는 삐진 티를 내던 아리엘의 표정이,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불안하게 변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와 걸은 지 좀 됐는데도, 뱀파이로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적막함이 적응되지 않는지, 아리엘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시, 식구들이 다 어디 갔지......? 원래는 여기부터 나와야 하는데......”

“없어졌나요?”

“으, 으응...... 잠시만? 얘, 얘들아! 장난치지 말고 이제 슬슬 나와보렴!”

그녀는 마지막으로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얘들아아! 계속 안 나오면 나도 삐지는 수가 있단다! 자, 장난치지 말고 어서 나와봐!”

촤좌좌악-

그러자, 동굴 안쪽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엘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 온다! 역시 장난치는 거였구나. 너희들 내가-”

꾸물꾸물-

하지만, 그녀의 앞에 선 몬스터는 뱀파이로가 아니었다.

“어?”

박쥐의 날개 대신 여러 가닥의 촉수가 달려있고.

검은색 몸체 대신에 보라색 유동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괴물.

나의 피조물, 촉수 수족 N-5.

내 명령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 촉수 수족 슬라임은, 곧바로 아리엘을 노려보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모, 몬스터......? 우리 동굴에는 내 식구들 말고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데......!”

아리엘의 의문에, 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혹시 침입한 거 아닐까요?”

“그, 그래도. 내 식구들은 수가 아주 많단다. 게다가 뛰어난 개체도 있어서, 절대 다른 몬스터의 침입을 허락할 리가 없어. 그런데......!”

아리엘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N-5를 바라보다가, 이내 비장한 표정을 하고는 N-5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그녀의 손끝에서 새빨간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영역에 침범한 이상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단다!”

아리엘은 손끝에 모으던 새빨간 기운의 크기를 순식간에 키우더니, 엄청난 빠르기로 내 촉수 수족 슬라임을 향해 그 구체를 발사했다.

촤아아악-!

‘오......’

아리엘이 쏘아 보낸 새빨간 구체는 N-5가 반응할 틈도 없이 놈의 몸에 적중했다. 그리고는 그 몸체를 집어삼켰다.

드드드드드-!

그대로 바깥쪽으로부터 N-5의 몸을 짓뭉개버리는 새빨간 구체.

‘파괴’의 힘이 들어있는 기술인지, N-5는 순식간에 구체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사했다. 아예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치이이익......

‘역시 로드는 로드야. 강하다.’

촉수 수족 슬라임도, 나처럼 ‘코어’가 존재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영양분을 이용해 살아날 수가 있지만, 아리엘의 기술이 워낙 강력하여 그대로 코어와 함께 재생조차 하지 못하고 사망해버린 것이다.

N-5는 초기에 만든 개체고, 아리엘은 마력 능력 평가가 C+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쑤우욱-

N-5에 남아있던 양분은, N-5가 죽는 즉시 아무도 모르게 내게로 흡수되었다.

촉수 수족은 나의 분신체나 다름이 없기에, N-5의 모든 경험 또한 내게로 전수되었다. 아리엘이 쏘아 보냈던 구체의 위력을, 정확히 알 수가 있었다.

일전에 내가 전투한, 이제는 내 아내가 된 엘레나와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아리엘은 충분히 A클래스 최상위권 급 강자였다.

그러나, 흠잡을 곳이 있다면 바로 멘탈.

“어, 어어......?”

아리엘은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동굴 벽면에 있는 어느 ‘흔적’을 눈에 담았다.

N-5는 일부러 벽면에 배치하였다.

그녀가 전투하면서 흔적을 볼 수 있도록.

내 계산대로 아리엘은 N-5를 죽이자마자 벽면에 있는 흔적을 발견했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발견하게 한 흔적은 분명히 ‘피’의 흔적이며, 뱀파이로의 로드이자 ‘드라큘라 혈류’라는 스킬을 가진 아리엘은 이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이건...... 서, 설마......”

어느덧 아리엘의 옆쪽으로 다가간 내가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전투의 흔적 같습니다. 누군가가 이 동굴을 침입한 것 같네요. 혹시, 방금 여왕님이 해치우신 그 몬스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

아리엘은 떨리는 손으로 동굴 벽면을 쓸더니 곧장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럼 혹시......”

“여왕님이 처음에 식구들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는 건, 대답할 뱀파이로가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겠죠. 전멸한 것 같습니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단다. 아무리 그래도 전멸은......!”

“저길 봐주세요.”

“저기? 어딜...... 아......”

나는 그녀가 바라본 벽면의 옆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리엘은 내 손을 따라 벽면을 보더니, 순식간에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건...... 대체......”

그 벽면은 정말로 피를 물감으로 쓴 것처럼, 온 군데에 뱀파이로들의 피가 남아있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굳어버린 뱀파이로의 살점들이 벽에 붙어서 말라비틀어져 있기도 했다.

명백하게 뱀파이로들이 학살당한 흔적이었다.

“아......”

아리엘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흐끅.”

흐끅?

“으흑, 흑, 흐끅......”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해맑던 얼굴에 습기가 찼고, 예쁜 눈매에 물기가 방울방울 고인다.

“얘, 얘들아아...... 으흑, 흐끅, 어, 어떻게......”

아리엘은 몸을 들썩거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다가.

“흑, 흐끅, 흐윽, 흐아아아아아앙.”

이내 시원하게 울어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