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5
‘식구들?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나는 속으로 눈앞의 여자가 한 말을 곱씹었다.
대뜸 내게 자기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은 인간 여성형 몬스터는, 헤헤 웃으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뇌를 굴렸다.
일단 내 외형이 뱀파이로였기 때문에, 뱀파이로에 관해서 물어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뱀파이로라고 뱀파이로의 얼굴을 구분할 줄 알면서, 자기 밑으로 들어오지 않을 거냐고 물어보는 건.’
아.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한 줄기 전류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의 머리 위로 뻗어있는 은빛 뿔과 검은색 날개.
인간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인간 같은 외형을 하고 있는 몬스터.
로드.
이 세계에는 ‘로드’라고 불리는, 몬스터들을 통솔하는 상위 종족의 인간형 몬스터들이 있었다.
알려진 건 몇 종족 없고, 로드가 어디에 살며 어떻게 탄생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는 전작에서도 거의 풀리지 않은 ‘비경’에 대한 떡밥 중 하나이다.
눈앞의 여자는 뱀파이로 로드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 하필 여왕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오다니...... 내 명도 여기까지구나...... ]
[ 크윽, 두고 봐라 몬스터. 비록 지금은 네가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있지만...... 우리 여왕님께서 돌아오시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여왕님은 우리들의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 ]
내가 청소한 동굴에 있던 수많은 뱀파이로들의 로드가 아닐까 추측된다.
그녀가 비행하던 방향도 그렇고,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녀는 명백히 페로스 협곡 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만생의 주인을 발동해, 그녀의 스테이터스를 살펴보았다.
------ 만생의 주인 / 시야 대상 스테이터스( Status ) ------
⚫ 기본 정보( Basic Information )
- 진명 : 아리엘
- 종족 : 뱀파이로 로드
- 성별 : 여성
- 나이 : 20세
⚫ 육체 능력 평가 : C
- 근력 : 83
- 민첩 : 84
- 체력 : 81
- 내구 : 79
- 감지 : 82
⚫ 마력 능력 평가 : C+
- 효율 : 93
- 용량 : 96
- 회로 : 98
- 친화 : 95
⚫ 스킬
- 로드의 아우라( 뱀파이로 )
- 드라큘라 혈류
⚫ 프로필
- 신장 : 155.4cm / 몸무게 : 43.7kg
- 신체 : B78( U66 )-W57-H83
- 음문 진척도 : 0%
⚫ 성감대 및 경험
- 성감대 : 뿔, 목덜미, 겨드랑이, 엉덩이, 항문, 자궁구, 클리토리스
- 경험인원 : 0명 ( 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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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드가 맞았어. 능력치도 상당하네.’
나는 그녀가 내가 청소한 동굴에 있던 뱀파이로들의 로드라고 확신했다. 그녀가 바로, 유언을 들어준 뱀파이로가 말했던 그들의 ‘여왕님’이었을 것이다.
로드들의 능력치는 하나같이 다 괴물 같다.
혹시 그녀의 능력치도 나보다 높지 않을까 해서 긴장감이 올라왔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아마 어려서 그렇겠지.
로드들은 가볍게 몇백 년을 넘게 사는데, 이 ‘아리엘’이라는 로드는 고작 20살밖에 되지 않았다.
능력치가 로드치고 상대적으로 낮지만, 어리다면 이해가 갔다.
성인이지만, 다른 로드들과 비교하자면 아직 어린아이인 느낌?
그래도 이 정도 능력치라면, 능히 여러 뱀파이로들의 신임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원래 리더라고 생각했던 뱀파이로도, 육체 능력치는 30대 중반에 머물러 있었다. 아리엘 정도면 그에게 커다란 신뢰를 얻고 있었던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리엘은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니? 아! 혹시 고민이 되는 거니?”
로드긴 하지만, 어린 나이와 성격이 합쳐져서 그런지, 그녀는 마치 풋풋한 대학 새내기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헤헤, 고민할 필요 없단다! 내 밑에 들어오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야!”
뭔가 새하얀 도화지 같다고 해야 할까.
“같이 사냥할 친구들도 많고, 나와 함께 이야기도 할 수 있단다?”
아리엘은 해맑게 웃으며 자신 휘하에 들어오면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나열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녀에게 약간 측은한 감정이 드는 걸 느꼈다.
과연 그녀가 나에 의해서 완전히 청소된 동굴을 보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같이 사냥할 친구들도 내가 다 죽여버렸는데.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뱀파이로의 모습도, 아리엘이 기르던 식구들의 시체로 중첩 포인트를 모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으응...... 아니면 혹시 대답할 마음이 안 드는 거니?”
그런 사실도 모르고, 아리엘은 나를 영입하는 데 열중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펴졌다.
“부끄러워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네 종족의 로드야. 막 마음속에서 나를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로드는 그 존재 자체로 자신의 하위종인 몬스터를 지배할 수가 있었다.
완전 지배는 아니고, 방금 아리엘의 말처럼 그들이 스스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스테이터스창에 있던 ‘로드의 아우라( 뱀파이로 )’라는 스킬이 그것일 것이다.
내 ‘사랑과 복종의 음문’이나 ‘음란과 숭배의 음문’의 하위 호환 격 스킬이라고 보면 된다.
대신, 나처럼 섹스해야 효과를 보거나 강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시 발동형 스킬이다.
“아닙니다. 로드님을 처음 봐서, 너무 놀라서 그랬습니다.”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뱀파이로의 언어로 정중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슨 말투로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너무 다물고 있는 것도 수상할 테니까. 어차피, 뱀파이로들도 다 말투에 개성이 있을 것이다.
뒤에 키릭, 키릭 하는 소리를 덧붙여주면 완벽하겠지만, 내가 유언을 들어준 뱀파이로도 그렇고 특출난 개체는 말을 유창하게 한다. 오히려 이러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뱀파이로 변신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음’을 쓰지 않고 그냥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아리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러니!? 헤헤, 내가 오해할 뻔했구나! 반가워! 나는 너희 종족의 로드인 아리엘이라고 한단다?”
아리엘은 손을 뻗어서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스윽스윽-
으음......
내가 쓰다듬는 것도 아니고 쓰다듬을 당하다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역시 미소녀라서 그런가.
나는 아리엘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키도 그렇고 전체적인 체구가 조금 작았다.
아마 내 아내들중에서 가장 작지 않을까.
하지만, 몸에 비해서 그래도 가슴은 어느 정도 있었다.
비율과 몸매가 좋고, 얼굴도 너무 예쁜 게 나무랄 곳이 없었다.
귀엽고 예쁘고 순둥순둥한 상이라고 할까.
막 섹시한 얼굴은 아닌데, 누구에게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한, 그런 매력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마 지구였다면,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늑대 같은 남자들이 수두룩했겠지.
강한 여자가 많은 이세계 만세......!
어쨌든, 나의 ‘암컷 스카우터’로 아리엘을 판단해본 결과, 그녀는 내 ‘아내’가 되기에 충분했다.
능력치, 몸매, 외모.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최상급의 암컷이다.
나는 아리엘의 쓰다듬을 받으며 가만히 있었다. 아리엘은 30초 정도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손을 떼고는 내게 말했다.
“어때? 막 기분이 좋아지지 않니? 내 밑으로 들어오면 아주 가끔......! 자주는 아니지만, 잘한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이렇게 쓰다듬어줄 수도 있단다?”
아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어때? 끌리지 않니? 와 같은 사족을 덧붙였다.
나는 그녀의 그런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리엘님.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어, 정말이니!? 헤헤, 고마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녀는 너무나도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내 성기 촉수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아직 자지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불끈불끈 힘이 솟는 느낌이다.
‘나야말로 고맙지.’
나는 그녀를 한번 즐기고 다음을 위해 찜만 해둘 보지가 아닌, 완벽한 나의 암컷이자 아내로 만들 생각이다.
‘음란과 숭배의 음문’이 아닌, ‘사랑과 복종의 음문’에 어울리는 여자다.
지금 당장 그녀를 칭칭 휘감아 범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먹잇감을 사냥할 때는 거미줄에 걸어두고 확실히 사냥하는 편이 좋다.
그녀가 내 던전이라는 덫에 완전히 빠져들기 전까지는, 잠시 장단에 맞춰주도록 하자.
“이제 아리엘님을 따라가면 됩니까?”
“응, 그렇단다! 아, 그런데 참! 나랑 반대편으로 비행하고 있던 것 같은데, 원래는 어딜 가는 도중이었니?”
“보금자리를 찾던 도중이었습니다.”
사실은 작은 시골 마을에 마력석을 털러 가는 길이었지만, 뱀파이로가 마력석을 사용할 일이 뭐가 있을까.
대충 둘러댔다.
“아,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는 내 보금자리에서 함께 지내면 된단다! 얼른 같이 가자!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단다? 조금만 비행하면 돼!”
“네, 아리엘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아리엘은 활짝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내게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으...... 아, 아직은 아니지만, 호, 혹시 괜찮다면 아리엘이 아니라 여왕님이라고 불러도 좋단다!?”
“네, 여왕님.”
“에헤헤헤......”
여왕님이라고 말해주자, 아리엘이 귀엽게 웃었다.
“너는 대답도 참 예쁘게 하고, 말을 되게 유창하게 잘하는구나! 원래라면 무리를 이끌만한 리더가 될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펄럭펄럭-
아리엘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고,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