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0
촤아악-
촉수 괴물의 점액질은 상당히 질겼지만, 당연히 엘레나의 근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엘레나는 손쉽게 촉수 괴물의 점액질을 끊어냈다.
그녀는 엘리네의 팔다리를 고정하는 고정액을 뜯어내며, 엘리네에게 물었다.
“그보다, 이 던전에 다른 몬스터들은 없었어?”
“아, 응. 여기 던전에는 촉수니- 아니, 언니가 해치운 촉수 괴물밖에 없었어.”
“그래? 다행이다.”
엘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를 잡는 데에 상당히 많은 힘을 써버려서, 만약에 보스의 부하들이 강하다면 그녀의 입장으로는 난처했다.
물론, 보스만큼 강한 부하가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다행스럽게, 이 던전은 솔로 보스 던전인 듯했다.
던전 중에서는 휘하의 몬스터 없이 보스 혼자서 운영하는 던전도 존재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보스가 강력하기도 했고.
“아 참, 그런데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의 흔적도 있던데? 그 사람들은 누구야? 괜찮아?”
“아, 응. 우연히 만난 모험가들인데 그 사람들은 거주 구역에 있어.”
“거주 구역? 그렇구나. 무사하지?”
“응.”
엘리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나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엘레나는 엘리네만 홀랑 구해서 갈 생각이 없었다. 구할 수 있으면,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같이 구하는 게 베스트였다.
“후아, 다 풀었다.”
엘레나는 마침내 엘리네를 묶고 있던 점액질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녀는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엘리네의 몸이 무사한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동생의 몸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제야, 좀 동생을 구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고생했어, 진짜...... 엘리네.”
“아니야, 언니야말로.”
엘레나와 엘리네는 눈을 마주쳤다.
“엘리네......”
“언니......”
둘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오랜만에 봤더라도 서먹한 감정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단지, 기쁜 마음이 가슴을 한가득 채울 뿐이다.
역시 다른 친구들 말대로 여동생을 너무 많이 아끼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을까. 엘레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엘리-.”
“언니이.”
“응?”
그렇게 동생의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 엘리네가 돌연 부탁을 해왔다. 그리고 그 부탁은, 엘레나로서 상상하지도 못한 부탁이었다.
“나 안아줘.”
“뭐, 뭐어?”
“나 안아줘.”
“아, 안아달라고?”
“응.”
“뭐, 뭐야아. 뭐 잘못 먹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많이 그리웠나봐.”
“흐, 흐흠. 그, 그렇게나 언니가 보고 싶었어?”
“으응. 많이 보고 싶었어.”
엘레나는 엘리네의 말에 심장이 크게 뛰는 걸 느꼈다. 입가가 씰룩거리기까지 했다.
‘얘가 왜 이러지......!?’
원래는 이렇게까지 어리광을 부리는 애가 아니었다.
보통 같을 때면, 항상 자신이 먼저 동생을 껴안았으니까. 동생은 답답하다고 얼른 풀어달라고 했고.
그런데, 지금은 동생이 먼저 자신에게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것 같았다.
이것은 절호의 기회!
엘레나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지기 시작했다.
평소의 도도한 표정은 사라지고, 기쁘게 웃는 표정이 되었다. 엘레나는 엘리네의 몸을 꼬옥 안아주었다.
동생의 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엘리네 너어, 못 본 사이에 너무 어리광쟁이가 된 거 아니야?”
“헤헤, 그런 것 같기도 해.”
“가슴도 더 커진 거 같고.”
엘레나는 엘리네보다 약간 더 키가 크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둘이 껴안으면, 둘의 가슴이 보기 좋게 눌렸다.
그것으로 가슴 크기를 대략 측정할 수 있었다.
“맞아. 조금 커진 것 같아. 근데 언니는 가슴 그대로네.”
“나는 필요 없어. 가슴 같은 거, 전투에 도움도 안 되고 거슬리기만 해.”
“그래도, 촉수님은 좋아하실 거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엘리네는 고개를 저었고,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응, 언니......”
엘레나의 마음이 오랜만에 너무나도 푸근해졌다.
‘이거야......’
항상 몬스터들과 전투만 하다가, 이렇게 여동생의 몸을 껴안으니 심신이 다 힐링 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당분간 모험가 일은 쉬어야겠어.’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어차피 S클래스 모험가로 활동하면서, 돈은 질리도록 많이 벌었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상상하지도 못할 금액이었다.
이제는 막 써도 될 때.
엘리네랑 둘이서 여행도 다니고, 재밌는 것도 많이 보고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아, 그래.
엘레나는 때마침 엘리네가 옛날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엘리네가 같이 부유섬으로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둘이서 거기로 놀러 가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같이 섬 구경도 하고,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그녀는 행복회로를 천천히 돌려갔다.
같이 길거리도 걷고, 선물도 사주고, 온천에서 목욕도 하고.
그러면 정말로-
콰직-
“어......?”
그때였다.
까드득-
엘레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통증이라서, 잠시 멍한 느낌을 받았다.
한창 여동생과의 여행을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찰나에, 목덜미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으니까.
‘이게 무슨......’
엘레나는 자연스럽게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주륵-
피였다.
그녀의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엘레나는 손바닥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목덜미에 다시 손을 한 번 댔다가, 다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이번에는,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어......?”
순간적으로 잘못 보았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주륵-
여동생의 입술.
여동생의 얼굴과 입가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엘레나는 그런 여동생으로부터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본능적인 뒷걸음질이었다.
“엘......리네......?”
“언니, 미안해.”
미안하다.
엘레나는 엘리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미안한 걸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사과하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한 것에 대해. 그렇다면, 여동생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었다.
여동생이 왜......?
엘리네가 왜? 나를......?
순간의 방심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이건 방심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언니가,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자신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을 할까.
게다가 여동생은 일반인에 불과했다. 자신은 S클래스의 모험가이고.
엘레나는 엘리네의 몸을 껴안으면서, 오로지 바깥 부분만 경계하고 있었다.
혹여 다른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여서.
그럴 가능성이 0%는 아니니까.
안쪽으로는 그저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좀 더 언니의 몸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같이 온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설마 엘리네가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륵-
“......”
목덜미.
목덜미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른다.
통증과 함께 머릿속에서 아까부터 급격한 어지러움이 쏟아져 내렸다.
‘대체......’
시야가 핑핑 돌고, 몸에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빠진다.
‘대체 무슨......’
일단 생각나는 것은 마비독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엘레나는 얼른 마력 회로를 돌렸다. 최대한 독이 몸에 퍼지지 않도록 막았다. 그러나, 독은 그러한 저항에도 꿋꿋하게 온몸을 향해 천천히 퍼져나갔다.
게다가, 효과는 하나가 아니었다.
몸에 힘이 빠짐과 동시에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으읏......”
허벅지, 그 사이가 막 간질간질하고 온몸에 애가 탔다.
굉장한 극독이다.
‘대체 이게 무슨 독이야......’
엘레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몸에 이 정도로 피해를 줄 수 있는 독은 거의 없었다.
저항했는데도 이 정도로 강하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독은, 생전 느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S클래스 모험가의 몸을 마비시킬 독이라니.
그런데 대체 어떻게?
엘리네가......?
솔직히 말해서 엘리네 같은 일반인의 공격은, 농담이 아니라 3일 밤낮으로 맞아도 멀쩡했다.
S클래스 모험가의 몸이라는 게 그랬다.
한없이 발전한 육체는, 그 강도가 이미 인간을 초월해 있었다.
엘리네 정도가 아니라 D클래스 이하 모험가의 공격이라면, 맨몸에 맞더라도 아예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엘레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엘리네는, 기뻐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 엘리네...... 지금 네가...... 나...... 를 공격한 거야?”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응. 미안해, 언니.”
“미, 안하다고......?”
너무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편이 언니도 더 행복할 거야.”
행복하다니.
엘레나는 엘리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꾸물꾸물-
그때였다.
“어......?”
뒤에서 방금 싸웠던 촉수 괴물이 나타났다.
‘죽은...... 게 아니었나?’
놈은 완벽하게 부활한 상태였다. 오히려, 처음보다도 상태가 더 좋아 보였다.
재생 능력.
그래, 놈에게는 재생 능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약한 재생 능력을 가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놈은 초재생 능력을 가지고도, 그 능력을 숨긴 채 자신과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이 상태로는...... 싸우기 힘든데......’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다.
10시간 내내 던전의 환경에 체력을 빼앗기고, 마력을 빼앗기고, 신체 능력이 하락하고.
던전의 보스를 죽일 때 필요 이상의 마력을 사용해서 몸에 무리가 갔는데, 여동생한테 이상한 극독까지 주입받았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어떻게든 맨정신을 유지하면,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 승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여동생 엘리네.
대체 그녀가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엘레나는 엘리네를 사랑했다.
시간을 끌면, 그녀라도 어떻게든 탈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외치려 했다.
얼른 너라도 도망치라고.
그런데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촉수니임-!”
“어......?”
엘리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얼굴을 하면서, 촉수 괴물에게로 달려갔다.
위험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엘리네는 촉수 괴물의 몸체를 꼬옥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아......’
마치 주인님을 맞이하는 강아지같이.
순종적으로.
“헤헤, 촉수님. 저 잘했죠?”
동시에, 촉수 괴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계획이 이렇게 잘 통할 줄은 몰랐는데, 결국 성공했네. 다 엘리네 덕분이야.
“헤헤헤, 제가 말했잖아요. 잘 할 수 있다고요~.”
계획? 성공......?
엘레나는 지금의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래. 차선책이랑 그 후까지도 생각했는데, 한 번에 될 줄이야.
“헤헤, 저희 언니는 저 엄청나게 좋아해서, 맨날 저한테는 완전 방심 상태에요. 그래서 통한다고 확신했어요.”
엘리네는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촉수 괴물에게 이것저것을 자랑했다.
그녀에게 꼬리가 달렸으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을 것 같았다.
- 잘했어, 엘리네. 그나저나 내 촉수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을 텐데, 불편하지 않았어?
“네에, 저는 목덜미를 강하게 문 것밖에 한 게 없는걸요. 이게 다 촉수님의 촉수가 굉장히 강한 덕분이에요.”
- 그래. 역시 몇 시간 동안 정제한 극독을 흡혈촉수로 한 번에 주입하니, S클래스도 정신을 못 차리네.
엘리네는 입을 벌려서 그녀의 입안에 자리하고 있던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생긴 두 개의 이빨을 빼내, 촉수 괴물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 촉수가 다시 괴물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빨이 아니라, 이빨처럼 생긴 촉수였다. 그래서, 엘리네가 자신한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내 여동생 엘리네가 배신을......’
엘레나는 이 상황이 모두 꿈만 같았다.
끔찍한 악몽.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꾸물꾸물-
터벅, 터벅-
커다란 촉수 괴물은 위협적인 촉수들을 내세우며 그녀에게로 다가왔고, 엘리네 또한 마찬가지로 그런 촉수 옆에 딱 붙어서 걸었다.
엘레나는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이 최고로 아꼈던 소중한 여동생이, 촉수 괴물과 사이좋게 있는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