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9
엘레나의 단검과 촉수 괴물의 촉수가 충돌했다.
엘레나는 단검을 강하게 잡고, 그녀를 거세게 압박해오는 망치 모양으로 생긴 촉수와 힘겨루기를 했다.
‘강하다.’
단검을 잡은 팔이 저릿했다.
좀처럼 쉽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과연 던전의 보스 몬스터.
인간의 몇십 배는 되어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
몸체 위로 나와 있는 수많은 촉수들.
저 흉악한 생김새는, 그저 위협이나 장식용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마나를 팔에 강하게 두른 채 촉수를 튕겨냈다. 곧바로 다른 촉수들이 그녀를 향해 쇄도했지만, 그마저도 유려한 움직임으로 흘려보냈다.
적은 간격.
한 치의 싸움.
찰나에 생사를 오가는 치열하고도 무거운 공방은, 엘레나에게 있어서 이미 익숙한 전장이었다.
‘생각보다도 더 강한 놈이야. 방심하면 안 되겠어.’
엘레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분노가 차올랐던 머리를 더욱 가라앉히고, 눈앞의 전투만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네비스 숲과 페로스 협곡을 거치며 만난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는 놈이다.
그렇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침착함은 곧 승리.’
육체와 마력뿐만이 아니라, 엘레나는 전투에서도 하늘을 찍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녀는, 언제나 전장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재능이 있었다.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는 자만심도, 방심도 아니었다.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한 강력한 확신.
수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객관적인 평가.
상대는 강했지만, 그녀가 조금 더 강했다.
‘차분하게, 그리고 조금씩 승기를 가져온다.’
엘레나는 촉수 괴물의 촉수들을 모조리 튕겨내면서 호흡을 가라앉혔다.
허접한 상대라면 순식간에 전투를 끝냈겠지만, 상대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한 발자국씩 천천히 전진함이 옳다.
엘레나는 전투의 영역을 조금씩 그녀의 페이스로 끌어당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촉수가 너무 많아.’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에 엘레나가 생각했다.
흐름을 가져오는 데에 있어서, 저 많은 수의 촉수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하나하나의 촉수와 겨루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놈의 촉수는 너무나도 많았다.
대여섯 개면 수월할 텐데, 촉수 괴물의 촉수는 무려 스무 가닥이 넘어갔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모조리 괴물의 팔이며 발이자 동시에 흉기였다.
지금도 수많은 촉수들이 엘레나를 연속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다만, 미리 ‘숨결’을 배치하여 펼쳐둔 베리어가 그 공격들을 모조리 방어해주고 있었다.
‘촉수마다 특성이 다르다.’
엘레나는 촉수 괴물의 공격을 분석했다. 그녀와 힘을 겨뤘던 거대한 망치 모양의 촉수. 그 촉수는 힘이 강했다. 베리어가 부서질 듯했다.
하지만, 모든 촉수가 다 강한 건 아니었다.
어떤 촉수는 속도가 빨랐고, 어떤 촉수는 마력 발사에 특화된 듯했다.
어떻게 보면 만능인 듯했지만, 촉수마다 역할이 나뉘어 있으므로 역으로 그 역할이 아니면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우선은 느린 촉수부터 터뜨린다.’
후우-
엘레나는 숨을 내쉬었다.
마력.
잠자는 시간도 아껴 가면서 모아온 중후한 마력이, 그녀의 숨결을 타고 공기 중에 퍼졌다.
보통 한 번 체내 밖으로 빠져나간 마력은, 다시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엘레나는 가능했다.
그것이 엘레나가 가진 능력.
호흡에 마력을 담고 숨결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
남들과는 다른 특출난 능력을, 엘레나는 전투에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촉수 괴물의 촉수들이 사방에서 쇄도했다.
엘레나는 괴물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숨결을 타고 내려온 마력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지금.’
숨결의 마력이 거대한 화염을 품은 불덩이로 변하였다. 엘레나의 주위를 돌던 불덩이들은 마치 화살처럼 촉수 괴물의 촉수들과 몸체를 향해 발사되었다.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몬스터들을 즉사시킬 위력을 지닌 불덩이들이지만, 촉수 괴물은 그 불덩이들을 쉽게 파훼하였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 놈의 촉수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엘레나의 단검이 순식간에 쏘아졌다.
‘우선은 하나.’
촤아아악-!
촉수 괴물의 촉수가 마치 폭죽 터지듯이 터져나갔다. 뇌전의 마력을 담은 단검은, 그 자체로 휘두를 수 있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굉장히 지능이 높아. 당황의 기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대부분의 멍청한 몬스터들은 상처를 조금만 내도 곧바로 날뛰는 경우가 많은데, 놈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는 높은 수준의 공방이 오가는 싸움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흐름을 알고 있다고 해서,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싸움에도 호흡이 있다.
평소와 다른 환경이 되면 그 호흡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며, 엘레나는 그러한 호흡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파지지지직-!
‘이제는 둘.’
또다시 공방이 오가다가, 엘레나가 그녀의 마력을 이용해 촉수 괴물에게서 틈을 만들어내었다.
화염이 아닌 뇌전이 그녀의 주변으로부터 폭사하듯 터져 나왔고, 엘레나는 놈의 촉수를 두 개째 터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셋.’
스파앗-!
가공할만한 위력을 담은 엘레나의 단검이 괴물의 촉수를 또 뚫고 지나갔다.
연속해서 공격을 허용하면, 전투의 호흡은 더욱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엘레나는 그런 괴물의 전투적 허점을 집요하게 공략했고, 결국 미약한 틈을 후벼파는 데에 성공했다.
‘얼마 안 남았어.’
촤아아악-!
엘레나와 촉수 괴물의 공방은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엘레나는 촉수 괴물의 촉수를 10개 넘게 베어 넘기는 데에 성공했다.
‘과연, 재생 능력도 있는 건가.’
터뜨린 촉수 괴물의 촉수에서는 마치 무언가가 부글부글 들끓으며 새로운 촉수가 돋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엘레나에게 문제가 되지 못했다.
‘재생한다면. 재생하기 전에 더 베어버리면 그만.’
촤아아악-!
마침내 마력을 발사하던 촉수까지 베어버리고, 엘레나는 촉수 괴물을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놈에게는 평범한 촉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저 촉수들은 망치 모양의 촉수처럼 강하지도, 가시가 달린 촉수처럼 재빠르지도 않았다.
엘레나는 슬슬 이 전투를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무리해줄게.’
후우우-
엘레나가 숨을 강하게 들이마셨다.
한계가 닿는 곳까지.
그녀는 폐 안쪽을 공기로 가득 채웠다.
그다음, 그 공기들을 머금고 순식간에 촉수 괴물의 몸통이 있는 곳까지 폭발적으로 도약했다.
후우우-
숨결을 내뱉는다.
왼손에는 화염을.
오른손에는 뇌전을.
화르륵-
파지지직-
각각의 속성을 담은 단검을 휘두르며, 엘레나는 촉수 괴물의 온몸을 난도질하였다. 단순히 한 곳만 공략하는 것이 아니다.
촉수 괴물의 거대한 몸체를 원형으로 돌며, 낼 수 있는 모든 부위에 상처를 냈다. 이제 촉수 괴물에게 남아있는 위협적인 촉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세상이었다.
후아아-
모든 숨결을 토해내며, 엘레나는 미리 배치해둔 숨결을 전부 끌어모았다. 그 뒤에 그녀의 마력이 담긴 숨결을 촉수 괴물의 몸에 난 상처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숨결은 촉수 괴물의 몸에 확실히 자리 잡았으며, 엘레나는 마침내 그 마력들을 한 번에 폭발시켰다.
------!
고막을 울리는 굉음.
거대한 폭발과 함께, 촉수 괴물의 몸이 폭사했다.
상처를 들쑤시고, 그 안에 마력을 집어넣어 한 번에 터뜨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두두둑-
머리 위로, 촉수 괴물의 잔해들이 마치 비 오듯 떨어졌다. 엘레나는 그 광경을 보고,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후으아......”
‘그나저나 이 기술은 역시 너무 무리하게 사용하면 안 돼......’
온몸이 부르르 떨려오며, 약간의 과부하가 찾아왔다.
안 그래도 던전의 환경 때문에 갖가지 디버프를 안고 있는 몸인데, 너무 무리를 해버렸다.
침착한다고 했는데도, 평소 숨결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력을 사용했다. 여동생이 강간당할 뻔했다는 그 분노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다.
‘그래도 끝났어.’
투둑, 툭, 툭......
이걸로 확실한 끝이었다.
촉수 괴물은 그 압도적이었던 크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처참하게 터져 죽었다. 놈의 몸체는 곳곳에 남아있는 보라색 점액질 정도가 끝이었다.
엘레나는 숨을 한번 골라서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곧바로 엘리네를 향해 뛰어갔다.
“엘리네! 무사한 거지!?”
드디어 여동생을 볼 차례였다.
“으응. 무사해...... 헤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네는 방금 촉수 괴물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며 마치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네? 왜 그래, 어디 아파?”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
그러나, 다시 원래의 여동생으로 돌아왔다.
엘레나는 엘리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엘리네...... 보고 싶었어.”
“나도 언니이...... 많이 보고 싶었어.”
“대체 루이즈 숲에는 왜 들어간 거야. 위험하지는 않다고 해도 숲인데, 어?”
“헤헤, 미안.”
“미안하다고 하면 끝나? 언니가 평소에-.”
자연스럽게 잔소리를 하려던 엘레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할 소리가 못 되었다.
“미안해 엘리네. 이런 상황에서도. 어휴, 빨리 풀어줄게.”
“으응, 괜찮아.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
“그래그래.”
엘레나는 얼른 엘리네를 속박하고 있던 점액질을 하나하나 끊어주기 시작했다.
엘리네는 그런 언니를 보고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