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7
페로스 협곡의 광활한 하늘을 S-1이 일정 주기로 빙글빙글 돌며 비행한다.
상당히 높은 고도여서 평범한 시야로는 아래를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지만, S-1은 가능하다.
‘진화가 좋긴 해.’
이번에 S-1이 촉수 수족 슬라임에서 촉수 수족 글레어라는 종족으로 진화함에 따라, 세 종류의 촉수를 새롭게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세 종류 촉수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 날개촉수 : 특수한 형태의 비행용 촉수.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하고 유연한 촉수 지지대에, 양력을 받을 수 있는 날개가 달려있다. 날개촉수는 1.15배의 민첩과 체력 능력치를 지닌다.
- 흡혈촉수 : 특수한 형태의 공격용 촉수. 촉수 끝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있다. 가시의 모양과 강도는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 대상에게 가시를 꽂으면 대상의 피를 순식간에 빨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대상에게 다른 촉수에서 분비 가능한 특수한 액체를 주입할 수도 있다. 원거리로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흡혈촉수는 1.15배의 근력과 민첩 능력치를 지닌다.
- 망원촉수 : 특수한 형태의 감지형 촉수.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야 촉수에 기생한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물체라도 확대하여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망원촉수는 1.55배의 감지 능력치를 지닌다.
참고로, 이 세 종류의 특수한 촉수들은 진화한 개체인 S-1뿐만 아니라, 본체인 나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특수 수족이 진화하면 그 특수 수족 개체 하나만 강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특수 수족이 진화하고 강해지면서 얻은 능력치 상승은 공유가 되지 않지만, 그에 따라 얻은 새로운 촉수들은 본체인 내게 공유가 된다.
이게 다 ‘촉수 수족’이나 ‘특수 수족’들이 얻은 모든 경험과 지혜가, 내게 집결되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촉수 괴물의 끝없는 장점 중 하나이다.
휘우우우우웅-
S-1이 하늘을 날며 페로스 협곡 아래를 바라본다.
망원촉수의 확대 기능이 발동되면서, S-1의 눈은 마치 망원경처럼 변화했다. 동시에, S-1이 내게 신호를 보내온 이유가 되는 대상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나무 사이를 지나치는 한 명의 사람.
그녀는 여자였다.
나는 조금 더 확대하라고 S-1에게 명령했고, S-1은 그 명령을 따랐다.
위이잉-
주황색의 머리카락.
드센 성격으로 보이는 눈매.
가벼우면서도 깔끔하게 온몸을 무장한 차림.
페로스 협곡을 거닐며 다니는 한 여성은, 거침없고도 당당한 걸음걸이로 협곡을 걷고 있었다.
그 움직임부터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S-1이 내게 신호를 보내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움직임.
‘완전히 내 동굴 쪽으로 오고 있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S-1 또한 그렇게 생각하여,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이리라.
현재 그녀의 위치는 내 던전이 있는 동굴로부터 대략 20km 정도 떨어진 지점. 대상의 이동 속도로 보았을 때, 3시간 안에는 던전에 도착할 가능성이 컸다.
나는 여성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여성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여성은 명백한 강자였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도 이제 완전한 ‘강자’의 반열에 들어온 만큼, 다른 강자의 냄새를 느낌으로써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만생의 주인’을 발동했다. 내가 떠올린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함이다.
내 눈앞에 여성의 스테이터스가 떴다.
그리고......
‘......’
여성의 스테이터스를 바라본 나는, 그 괴물 같은 능력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본 스테이터스 중에서 가장 높은 능력치였다.
레벨업을 많이 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한 내 능력치와도, 비교되지 않는 능력치이다.
그러나 그렇게 압도적으로 높은 능력치와는 다르게, 내 심장은 다른 의미로 뛰고 있었다.
왜냐하면......
‘가능성이 맞았네.’
그녀의 ‘진명’에 ‘엘레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엘레나.
엘리네의 언니.
엘리네는 내가 처음으로 범한 여성이다. 그런 만큼,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내 여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엘리네와 내가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나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취향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뭐든 간에.
나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중 섹스를 제외하고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그녀의 언니, 엘레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엘리네는 자신의 언니를 내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어떻게 생겼으며,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성격은 어떠한지.
나는 엘리네에게 엘레나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히 자주 들었다.
취향이나 취미, 심지어 왼쪽 가슴에 점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S클래스 모험가.
자랑스러운 언니.
엘레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은 이후로, 나는 엘레나가 그녀의 동생인 엘리네를 찾아 이곳까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야, 서로를 그토록 좋아하고 아끼는 자매니까.
그래서 질문했다.
- 엘리네.
- 네, 촉수님.
- 만약 네 언니가 너를 찾으러 오면 어떻게 할 거야?
- 제 언니가요?
- 응.
내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 질문을 할 당시의 ‘엘리네’의 음문 진척도가 대략 60% 정도.
과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클지, 나에 대한 복종심이 더 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로샤와 유리가 내게 합류하기 전이고, 피오나와 에이미의 음문 진척도가 40%대에 머물고 있었다.
아직 진척도 60%가 얼마나 내게 강한 복종심과 사랑을 느끼는 단계일지 몰랐다.
그때 엘리네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헤헤, 당연히 언니도 저랑 같이 촉수님을 따르라고 해야죠.
- 그래?
- 네에, 언니도 촉수님의 자지에 푹푹 찔려서 암컷의 행복을 맛보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솔직히 이 대답만으로도 엘리네가 내게 얼마나 빠져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다시 질문했다.
- 그래도 돼? 언니를 배신하는 게 될 텐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배신이 아니에요, 촉수님.
- 그럼?
- 오히려 언니를 구원하는 거죠. 언니에게도 촉수님의 암컷이 되는 기쁨과 행복을 알려준다면, 분명 지금 모험가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함을 느끼며 저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엘리네는 내게 이런 말을 하면서,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엘리네의 음문 진척도가 60%.
반면 지금의 엘리네는......
{ 각인된 여성 : 엘리네( 96% ), 피오나( 84% ), 에이미( 87% ), 로샤( 65% ), 유리( 92% ), 이브 세라피아( 69% ) }
무려 96%.
허접 고양이 보지 유리한테 거의 따라잡힐 뻔했지만, 그래도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동굴이 있는 방향으로 걷고 있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명백히 내가 상대하기 벅찰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엘리네가 내 손에 있어.’
엘리네는 더 이상 언니 엘레나를 최고로 두지 않는다.
그녀가 아니라, 촉수 괴물인 내 말을 진리로 여기고, 나를 가장 사랑한다.
그 사실을 엘레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명백하게 엘리네를 아낀다. 그건, 엘리네의 말만 들어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할만할 수가 있다.
아니, 승기는 내게 있었다.
- 보, 보스...... 눈빛이 무섭다......
엘레나와의 전투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히나가 옆에서 말했다. 내 긴장감이 눈빛으로 나온 모양이다.
- 넌 어떻게 그런 건 귀신같이 잘 알아채냐.
- 후훗, 내가 좀 보는 눈이 좋다.
나는 히나의 말에 피식 웃고는, 그녀에게 언질을 주었다.
- 곧 있으면 사람 한 명이 이 던전을 습격해올 거야.
- 습격......? 그보다 한 명?
- 그래. 엄청나게 강하니까, 나도 질지도 몰라.
- 지, 진다고? 아, 안 된다......! 보스는 절대 지면 안 된다......
히나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되게 귀여운데 말이야.
- 걱정하지 마, 농담이니까. 절대 안 져.
- 그, 그렇지? 보스는 던전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 던전 때문이 아니라, 따먹어야 돼. 습격해온 여자 되게 예쁘거든.
히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믿을 수 없는 색마’를 바라보는 눈빛이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렴.
촉수 괴물은 섹스를 위해 싸울 때 가장 강해지는 법이다.
자매 덮밥?
절대 못 참지.
그렇죠, 여신님?
자매 덮밥 성공하면 보너스 많이 주세요?
[ 으음, 물론이지. ]
어쩐 일로 칼답장을 준 여신님이다.
나는 엘리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이 싸움에서, 결코 질 생각이 없었다.
엘리네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미리 보지 좀 따뜻하게 데워놓고 있으라고 해야겠다.
* * *
터벅, 터벅, 터벅-
“동굴......”
성역으로부터 나온 모험가들의 흔적을 쫓아왔다.
엘레나는 마침내 동굴에 도착했다.
이곳으로부터 나온 다른 흔적은 없었다.
몬스터들이 동굴을 오간 흔적들은 있었지만, 적어도 ‘사람의 발자국’이 향한 마지막 장소는 이 동굴이 끝이었다.
“후우......”
엘레나는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답지 않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여동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러는 것이다.
후우-
엘레나의 호흡에 마력이 담긴다.
마력은 숨결을 타고 이동하고, 마침내 그녀 옆으로 네 개의 도깨비불이 떠올랐다.
화륵-
도깨비불이 어두컴컴한 동굴 안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엘레나는 그 빛을 따라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네......’
동굴 안은 정말 무섭도록 조용했다.
다만, 이곳저곳에서 나는 피 냄새가 지독했다. 동굴 곳곳의 벽면에는 피가 덕지덕지 발려 있었으며, 살점도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다.
터벅터벅-
엘레나는 동굴 끝까지 들어갔다.
발자국은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던전인가......”
엘레나는 타원형으로 시공간이 일그러진 포탈을 발견했다.
이건 명백한 던전이었다.
보통 던전을 발견하면, 모험가는 신고부터 한다.
던전에는 강력한 보스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혼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하지만, 엘레나는 아니었다.
만약 던전이 100개가 있다면, 그중 97개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엘레나는 강했다.
운이 안 좋아 만약 고등급의 던전을 만나면 혼자서 처리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엘리네, 언니가 지금 갈게.’
엘레나는 던전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얼른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눈앞 풍경이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