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3
꾸물꾸물-
‘그나저나 건물 한번 되게 넓네.’
성녀의 성역으로 들어온 나는, 우선 적당한 크기로 몸을 키운 다음 건물 안쪽을 돌아다녔다.
밖에서 볼 때도 크기가 커다랗긴 했는데, 안은 무슨 대성당 같았다.
성녀의 성역 내부 건물은 오직 성녀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건물에는 방이 상당히 많았다.
침실만 무려 다섯 개가 있었으며, 온천이나 오락실도 있었다.
혼자 있는데 무슨 오락인가 싶지만, 성녀는 오락실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오락실에는 먼지가 별로 없었으며, 벽돌쌓기 같은 걸로 구조물을 만들어 놓은 흔적이 있었다.
‘심심했나 보네.’
그동안 작아져 있느라 감지촉수를 아예 닫고 있었기에, 나는 슬슬 감지촉수를 빼내어 감지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그러자, 성녀가 어디 있는지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저기는...... 주방인가?’
그녀는 3층에서 뭔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흐흥, 흥, 흐응~ 흐흐응~.”
성녀의 목소리는 밝으면서도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콧노래가 상당히 사랑스러웠다.
내 여자들과 이야기했을 때의 성녀는 고고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 났는데, 지금은 혼자 있어서 그런지 본래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 요리라니. 방금까지 저녁을 엄청 많이 먹어놓고, 또 먹어?
“이제 설탕물을 위에 얹어주고...... 으음, 냉장고에 30분 정도만 넣어 두면 완성인가?”
아, 아무래도 또 뭔가 식사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디저트를 만드는 듯했다.
나는 성녀가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요리를 꽤 잘하는 모양인지, 움직임이 척척 이어지고 쓸데없는 동작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요리 유튜버라도 보는 기분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녀는 팬케이크와 더불어 푸딩과 과일 음료를 완성했다.
“하우움...... 맛있다.”
소녀 같은 웃음을 짓는 성녀.
진짜로 맛있어 보인다.
후각이 예민해서,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감지촉수를 타고 강하게 들어왔다.
나는 디저트를 완성한 성녀를 보면서,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든 다음 우리 던전의 힐러 겸 요리사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
아무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나는 매우 친절한 마음으로 그녀가 디저트를 다 먹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설거지를 다 마치고, 이번에는 온천으로 향했다.
스윽, 슥, 스윽-
온몸을 가리고 있던 성녀 복장을 벗는다.
“후으, 성녀 복은 의외로 불편하단 말이야.”
머리에 쓰고 있던 베일을 벗고, 스텔라의 상징인 별 모양 펜던트를 푼다.
원피스를 한 번에 내리고 속옷을 풀자, 그녀의 아름다운 순백색의 피부가 드러났다.
‘와, 진짜......’
어떻게 저런 음란한 몸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커다란 가슴은 전혀 처지거나 하지 않고 아름다운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가슴 위에 봉긋하게 나 있는 연분홍색 유두는 그 무엇보다 꼴리는 요소였다.
엉덩이는 당장이라도 코를 박고 싶을 정도로 탱탱했고, 허벅지는 군침이 절로 넘어갈 정도로 맛있어 보인다.
라인이 완벽하게 살아있는 몸매를 하고 있으면서도, 배 쪽에 아주 약간의 살집이 있어서 그런가 만지면 되게 부드럽고 포동포동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
꾸물꾸물-
나는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목욕탕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 * *
“후아......”
이브 세라피아.
그녀는 신성 스텔라 교의 독실한 신자였다.
조상 대대로 신성교의 교리를 따르는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여신 ‘스텔라’를 섬겨왔다.
매일매일 기도를 드리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유지한다.
그녀는 항상 신성교에 와서 기도를 올릴 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녀의 꿈은 어려서부터 성녀였다.
섬기는 여신님의 힘을 이어받아 기적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치유한다. 이 얼마나 듣기만 해도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는 어렸을 적 기묘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 이브 세라피아. ]
- 네, 네에......?
천상의 세계.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광활한 하늘 속에서, 감히 이 세상의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아름다움과 아득함을 지닌 여성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압도되는 느낌.
이브 세라피아는 절로 존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으음...... 너는 싹수가 보이는구나. ]
- 어, 싹수요......?
[ 그래. 계속해서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도록...... 그러면 내 너에게 힘을 나눠주겠다...... ]
- 네? 힘이라고요? 저, 저기- 아! 잠시만요-!
그러나, 그 아득한 존재는 자기가 할 말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이브는 처음에는 그 존재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여신 스텔라.
그녀가 자신의 꿈속에 들른 것이다.
그것도 직접!
그녀에게 싹수가 보인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수행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그 뒤로부터 이브는 더욱 열심히 스텔라를 섬겼다.
매일같이 3시간이 넘도록 기도를 올리고, 마음의 수양을 계속했다.
몸도 당연히 깨끗하게 유지했다.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남자들이 추잡한 시선을 던져오고, 말도 섞지 않은 사람들이 고백해오고, 심지어 신성교까지 따라와 수작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부 쳐냈다.
친구들은 문란하게 놀면서 막 음란한 단어들을 내뱉었지만, 그런 이야기에 섞이지 못해도 좋았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스물넷이 되는 해.
그녀는 다시 한번 꿈을 꾸었다.
다시 천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끝없는 하늘 속에서 아득한 외모를 지닌 여신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브의 몸을 아래부터 위로 찐득하게 훑어보더니 말했다.
[ 아주 맛있게 자랐구나. ]
- ......네, 네에?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에 이브가 묻자, 아득한 존재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 흠, 아니. 잘못 말했군. 아주 잘 자랐구나, 이브. ]
이브 세라피아는 가슴으로부터 환희가 차오름을 느꼈다.
여신 스텔라님이 드디어 자신을 인정해준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래, 성녀란 자고로 그 정도 몸은 가져야지. 솔직히 어떻게 그런 몸을 가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섹......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너는 내 힘을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바로 신성력을 내려주마. ]
여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꿈속에서 물러났다.
이브 세라피아는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꿈속에서 깨어났다.
‘이, 있어......!’
그녀는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녀의 몸 안에.
그것은 따뜻하고도 아름다우며,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신비로운 기운. 이브는 그것이 신성력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곧바로 신성교에 가서 신성력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 28일간 기도를 드리고, 아주 작은 상처를 하나 치료했다.
상처를 치료한 것뿐만 아니라 신성력에는 특유의 기운이 있어서, 그녀는 무사히 성녀의 직함을 받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어려서부터 성녀가 되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루어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브 세라피아님은 네비스 숲으로 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래는 성녀님이 원하는 곳에 성단을 지어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최소 3년은 걸리니까요. 아, 물론 선택은 성녀님의 몫입니다.”
성녀가 되면 통치령이나, 제국, 왕국의 소속이 아닌 신성 교단의 소속이 된다. 그리하여, 중립 구역으로 나와야 한다.
성녀는 성역을 펼칠 곳을 정하고, 교단은 그곳에 성녀만의 성단을 건설해준다.
그렇게 성단이 건설되는 동안은 본래 성녀 활동을 하지 못하고 수행만을 일삼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때마침 7년 전에 도주한 성녀의 성단이 남아있어서, 이브는 그곳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위는 30명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기사 1명과 견습기사 6명, 병사 23명.
너무나 적은 인원이지만, 원래 처음에는 다 이랬다. 이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보수는 1달에 1,500,000제니입니다.”
아직 신입인데도 금액이 상당하다. 보통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액수의 5~6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하지만, 딱히 의미가 없는 금액이기도 하다. 은퇴는 성녀 활동 70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니까. 그전까지는 돈을 쓸 곳도 없었다.
게다가 신성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순백지신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를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지도 못하는 돈이다.
저 돈은, 다 나중에 교단 측에서 기부를 독촉이면서 다시 신성교로 되돌아갈 돈이었다.
그래도, 이브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진짜로 스텔라를 존경하고 성녀가 되고 싶어서 된 거니까.
“으음, 자이언트 아이라니......”
28일간 기도를 드리고, 휴일이 찾아와 숨도 돌릴 겸 기사들을 호위로 데리고 산책을 나서면, 몬스터 때문에 제대로 숲을 둘러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기사는 그렇다고 치도, 견습 기사들은 다 수준 미달이라 도움이 너무나도 안 됐다.
그래도 이브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이 또한 스텔라님이 주신 운명. 열심히 활동하고 기도를 드리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테니까.
그런데.
그런데......
꾸물꾸물-
“으읏, 잠깐만! 모, 몬스터......!?”
지금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녀가 바란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꾸물거리는 촉수.
기분 나쁘게 요동치는 몸.
몬스터.
대체 언제 들어왔는지.
몬스터가 성역 안으로 들어와, 여러 가닥의 촉수를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이상했다.
성역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으니까.
여신 스텔라님의 힘으로 펼친 결계이니만큼, 신성력이 없는 인간은 물론이고 몬스터는 얼씬거릴 수 없는 결계였다.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그리고 몬스터가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대체 왜 눈치채지 못한 거지?
성역 안에서의 이브는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이다. 성역 내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괴물의 존재감은 그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 이브 세라피아지? 흐흐, 저항하지 말고 내게 몸을 맡기도록. 내가 최고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지.
‘마, 말?’
심지어 몬스터는 말까지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브는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몬스터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여신님의 성역에 발을 디뎌?”
그래.
이곳은 신성한 장소.
순백의 성녀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감히 몬스터 따위가 발을 디뎌도 괜찮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몬스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 여신? 아, 그 음란 변태여신을 말하는 건가.
“뭐, 뭐......?”
이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스텔라 말이야. 그 음란한 여신. 얼굴은 예쁘고 성스럽게 생겼으면서, 속은 뼛속까지 변태인 여자. 진짜 그런 게 어떻게 여신이 됐는지, 알 수가 없어.
이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여, 여신님 보고 그런게라니......! 게다가 변태라니......!’
감히 여신님을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이브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고오오오오오-!
이브는 성역 내부의 신성력 덩어리들을 끌어모아, 손에 압도적인 신성력의 파동을 생성해냈다.
성역 내에서 성녀는 신.
성역 안을 돌아다니는 신성력들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성역 안으로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고, 성역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는 몸속에 품은 일부의 신성력이 아닌 이상에야, 신성력이 급속도로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성녀는 성역 내에서 이런 식으로 신성력을 이용해 공격을 가하는 것도 가능했다.
오늘 숲속에서 본 자이언트 아이.
그 정도 몬스터는 찰나의 순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
‘감히 성역 안에 발을 디디다니...... 게다가 여신님을 그렇게 말하다니......!’
성녀, 이브 세라피아는 눈앞의 기분 나쁜 몬스터를 강하게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 몬스터에게로 손안에 모은 강력한 신성력의 파동을 쏘아 보냈다.
스파아아앗-!
분명 맞자마자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성녀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게 감히 여신님을 나쁘게 말하지 말았어야...... 어?’
하지만.
쏘오오옥-
“에?”
몬스터에게 쏘아보낸 신성력의 파동은 정말로 어이가 없게도 그 몬스터의 안으로 흡수되었다.
성녀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