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
촤아악- 촤아아악-!
‘으음.’
계곡을 따라서 한참 몸을 움직이던 나는 감지촉수를 꿈틀거리며 위를 바라보았다.
초저녁.
슬슬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쯤에서 한번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처럼 오늘 밤에도 계속 달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너무 끊임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나도 꽤 힘들었다. 체력 배분은 해야지.
동굴에서 벗어난 지 이틀째.
어제와 오늘 합쳐서 24의 민첩 능력치로 전력 질주하듯 거의 30시간을 달렸다.
체력 능력치가 25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 성인 남성의 체력이 5. 운동선수급 체력이 6~8인 세계이기에, 단순히 달리기를 이어나가는 정도로는 하루를 꼬박 지새워도 문제가 없었다.
처음의 루이즈 마을 근처의 숲에서는 벗어난 지 이미 한참 됐고, 이제 그 뒤의 가이든 산맥에 도착했다. 솔직히, 추적은 벌써 반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까지 왔다.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 계곡으로 다녔으니까.
가이든 산맥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살지 않는 곳이다.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위험한 야생동물도 나타나는 장소.
물론, 그래 봐야 지금의 내 능력치에는 한참 모자란 놈들만 나와서, 그렇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가이든 산맥까지 30시간 걸렸으니...... 앞으로 5일 정도만 더 가면 되겠네.’
험난한 여정이다. 그래도 역시 23레벨을 찍은 촉수 괴물의 몸은 성능이 확실했다. 목적지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5일 뒤에는 도착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계곡 옆으로 몸을 튼 다음, 산속에 엘리네, 피오나, 에이미를 내려놓았다.
“앗.”
“아읏.”
“읏.”
셋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귀여운 소리를 냈다.
물론, 그냥 내려놓지는 않고 근처의 커다란 바위에 피오나와 에이미의 다리와 손을 전부 고정액으로 묶어두었다. 그것도 최대 강도로.
엘리네는 다리 하나만 묶어두면 되지만, 둘은 C클래스 모험가라서 혹시 마나를 품은 검으로 고정액을 잘라낼 수도 있었다.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묶어놓는 게 상책이겠지.
“가, 갑자기 왜 내려놓은 거지?”
에이미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게, 이제 드디어 이동을 멈춘 건가......?”
“아니면, 잠시 쉬려고 하는 걸 수도 있어요.”
피오나와 엘리네가 차례대로 말했다.
피오나와 에이미는 엘리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차분하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이 장소가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듯 보였다.
“하아, 그런데 여기 어디야......?”
“어어, 일단 산속인 것 같은데...... 아마도 가이든 산맥?”
에이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피오나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오...... 멀리까지도 왔네, 진짜. 으으, 이러면 도저히 수색대가 찾을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하필 계곡으로 이동해서......”
“후우...... 우리 이제 어떡하지?”
피오나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고, 에이미 또한 절망적인 얼굴이었다.
하기야. 비록 내게 패배했지만 구조대를 차분하게 기다리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희망이 없어졌으니.
그녀들의 절망은 타당한 것이었다.
아마도 ‘가르토 브류’는 그녀의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라.
꼬르르륵-
“으읏, 그리고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오나의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30시간 동안 굶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중간에 밥을 한 번쯤 줄만 했지만, 일단 숲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 셋을 모조리 굶겼다.
나도 배고프네.
그래도 5시간쯤 달리고 5분 휴식하고를 반복하면서, 계곡물은 마실 수 있게 해주어 생명에 지장은 전혀 없었다.
“진짜, 나도오...... 엘리네씨는 괜찮아요?”
“아뇨...... 저도 배고파요.”
“하으, 어떡하지? 우리 이러다가 굶어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피오나와 에이미는 엘리네와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내 등 위에서 30시간 동안 함께 이동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직은 서로 존댓말을 했지만, 셋은 이동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중에는 쓸데없는 잡담 같은 것들도 많아서, 이미 상당히 친해진 상태로 보였다.
“으윽, 굶어 죽는다니...... 최악이야.”
피오나의 말에 에이미의 표정이 또다시 안 좋아졌다.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몬스터한테 끌려가 성욕 처리용으로 사용되면, 보통 굶어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고블린 같은 몬스터들은 먹을 걸 대충 던져주기는 하지만, 그건 고블린들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 정도. 결코 먹을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건, 그나마 고블린이 나은 경우라는 것이다. 고블린같이 지능이 어느 정도 있는 몬스터가 아닌 다른 몬스터들은 아예 밥을 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리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마 굶어 죽지는 않을 거예요.”
“응? 그건 무슨 말이에요?”
피오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동을 멈춘 건 오늘은 여기서 쉬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촉수님이 아마도 사냥감을 잡아다 주실 거예요.”
촉수님.
그건 엘리네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피오나와 에이미는 엘리네가 나를 그런 방식으로 부르는 게 처음에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듯 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진 모양이다.
“저 괴물이요?”
에이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엘리네는 내가 그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괴물이라고 말하는 에이미의 모습에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동굴에 있을 때도 항상 먹을 걸 잘 챙겨 주셨어요. 판니르를 잡아서 구워 먹을 수 있게 해준다거나...... 그래서 굶어 죽을 걱정은 전혀 없었어요.”
“굽기까지...... 역시 지능이 상당한 놈이었어.”
“응, 전에 남자를 묻어둔 것도 그렇고, 계곡으로 이동한 것도 그렇고......”
피오나와 에이미는 서로 막 이야기를 하며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놨다.
왜 지능이 상당하다는 이야기에서 생긴 게 무섭고 색깔도 이상해 너무 끔찍하다는 이야기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슬슬 사냥이나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가 고픕니다. 어서 동물이나 식물을 섭취하세요. ]
한동안 보이지 않던 시스템 메시지도 나타났다.
그런데, 여신이 나름대로 친절한 건 맞는 것 같다. 이런 메시지도 띄워주고.
이건 날 걱정한다는 소리가 아닐까?
[ 아니면 어서 피오나랑 에이미를 범해 여독을 푸세요. ]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럴 줄 알았다.
어딜 어디 음란 변태 여신이 내 안위를 걱정할까, 그냥 여자들이 내 촉수에 당하는 걸 보고 싶어 할 뿐이지.
아직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추적의 위협에서는 벗어났다.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슬슬 피오나와 에이미를 맛봐도 되지 않을까?
나도 섹스를 하지 않은지 30하고도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여자가 고팠다. 촉수자지가 얼른 엘리네, 피오나, 에이미를 따먹고 싶다고 부르르 떨리는 중이었다.
특히 엘리네는 내 촉수자지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침도 꿀꺽 삼키는 것이, 이미 나와의 섹스에 엄청나게 중독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거의 화간 아니야?
‘그래, 따먹자.’
엘리네한테 자지를 주고, 피오나와 에이미도 슬슬 먹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면, 곧바로 던전 만들기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만들면서 따먹을 수도 있기는 한데, 미리미리 따먹으면서 호감과 복종심을 높여 놓으면 던전 만드는 걸 도와주라고 시킬 때 잘 따르기도 하겠지.
물론, 던전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 확정된 건 없었다.
‘아마 창고에 있겠지? 없으면 나가리긴 한데...... 아마 있을 거야.’
나는 촉수를 꿈틀거리며 산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따먹기는 할 건데, 그 전에 밥 정도는 주고 따먹어야지. 셋 다 배고파 죽으려 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세상에 여자들의 컨디션까지 생각해주는 촉수라니.’
나 같은 스윗 촉수 괴물이 따로 있을까?
밥도 줘, 자지도 줘, 던전이 완성되면 좋은 시설에서 지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여자들은 나를 만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 ? ]
아니, 진짜로.
* * *
끼잉- 끼이이잉-
“어때 풀 수 있겠어?”
“윽...... 아니, 이거 전혀 안 움직여. 아으.”
피오나가 손에 잔뜩 힘을 줬고, 에이미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촉수 괴물이 양쪽 손과 발목에 뿌려둔 이상한 점액질.
솔직히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힘을 주고 마력까지 동원해봐도 꿈쩍도 안 했다.
대체 얼마나 단단한 거야.
애용하는 단검에 마나를 담아 힘을 주면 어떻게든 끊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손 전체가 묶여있어서 단검을 뽑을 수도, 들 수도 없었다.
괴물이 어딘가로 간 틈을 타서 얼른 탈출하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아아...... 진짜 이제 어떡하냐.”
“그러게에.”
피오나가 볼멘소리를 내었고, 에이미가 따라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피오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로샤가 우리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에이미의 희망적인 말에 피오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계곡으로 이렇게 멀리 이동했는데...... 불가능해. 이건 S급이 와도 못 찾아.”
“그건 그래.”
에이미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는 양손과 발이 꼼짝없이 묶여있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평생 괴물의 성노예로 살게 되는 거야?”
“그렇겠지. 아마 질릴 때까지 쓰다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버리지 않을까.”
“아......”
“그래도 살아있다는 게 어디야. 기회를 보다 보면 탈출할 수 있는 때가 언젠가는 찾아오겠지. 그러면, 다 같이 탈출하자. 아! 물론 엘리네씨도요.”
피오나가 엘리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엘리네는 뭔가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아, 탈출...... 네......”
아까부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징그러운 촉수 괴물을 촉수님이라고 부르지를 않나, 같이 탈출하자고 해도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지를 않나.
가장 이상한 건, 촉수 괴물한테 계속 존댓말을 쓰면서, 별로 혐오스러워하는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오나는 그런 의문점을 밖으로 내었다.
“그런데, 왜 계속 그 괴물을 촉수님이라고 존댓말 하면서 부르는 거예요?”
피오나의 의문은 지당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묻지 않으면 도무지 왜 그런지 모를 것 같았다.
피오나의 물음에 엘리네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볍게 말했다.
“어, 으음......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네?”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두 번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같았다. 피오나의 의문과는 다르게, 엘리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피오나는 그런 그녀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친구를 죽여버리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납치해서 실컷 강간까지하는 촉수 괴물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혐오스러워하지 않고 말한단 말인가.
그러나, 피오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찌걱, 찌걱, 찌붑, 찌부웁-!
“하응! 항! 하앙♡! 죠아, 너무 죠아요오♡! 헤엑, 헥, 더 세게♡! 더 세게 박아주세요오♡!”
‘미, 미쳤어......’
촉수 괴물이 사냥해온 야생동물을 먹은 다음, 그 괴물의 자지에 찔려서 발정 난 암컷처럼 허덕이는 엘리네를 보면서.
그녀가 왜 저 괴물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지, 피오나는 본능적으로 이해해버렸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된다.
그러한 모순이, 피오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버렸다.
“피, 피오나......”
에이미가 둘의 정사를 보다가 두려움과 미안함이 섞인 눈빛으로 피오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피오나는 저러한 섹스를 에이미 대신 당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피오나는 도무지 둘의 섹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저게 뭐야......’
엄청난 크기로 엘리네의 보지 속을 들락날락거리는 괴물의 자지. 그리고 그 자지에 보지를 찔린 채 계속해서 신음을 내뱉는 엘리네.
‘저렇게 큰 게 안으로 들락거리는데...... 왜 저렇게 좋아해? 아파 죽을 것 같아야 정상 아니야......?’
게다가 인간도 아니고 혐오스러운 촉수 괴물과의 섹스인데, 엘리네의 반응은 피오나로서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지도 않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오나는 전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열기와 야릇한 냄새. 묘하게 몸이 간질간질하고, 목이 타서 침이 넘어갔다.
그렇게 둘의 정사를 보고 있는데.
‘힉......?’
돌연 촉수 괴물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 눈을 마주쳤다는 착각이 들었다.
애초에 촉수 괴물은 눈이 없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하지만, 피오나는 분명 저 촉수 괴물과 눈을 마주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뭐야......?’
그리고, 그 눈이 말하는 듯했다.
다음은 너라고.
피오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