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파츠츠츠츠-
피오나의 자세에서 나오는 기세는 명백한 강자의 것이었다.
비대한 촉수 괴물의 몸통에 그녀의 살기가 따갑게 느껴졌다.
‘오오, 과연 모험가.’
처음으로 내가 살인을 했던 그 일반인 남자와 대치했을 때와는 정말로 차원이 다른 위압감이다.
하지만, 차원이 달라진 건 상대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나도 엄청나게 강해졌다.
엘리네를 범하고 21레벨이 되었으며, 요 5일 동안 동물들을 잡아먹고 엘리네와 계속해서 섹스를 하면서 레벨을 23까지 달성했다.
사실, 한 번의 섹스로 레벨업을 워낙 많이 해서 경험치 버프가 없어도 섹스만 하면 금방 100레벨도 돌파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여성과 섹스를 하면 최초의 한 번만 많은 양의 경험치를 주고, 그 후에는 같은 여성과 섹스해도 조금의 경험치만 주는 모양이다.
어쨌든 능력치로 봐도, 종족적으로 봐도, 내가 그녀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
칼날과 같은 피오나의 기세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후우. 에이미, 보조를 부탁해! 내가 공격을 막을게.”
“으읏, 알았어!”
피오나가 에이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쪽으로 총총 뛰어갔다.
‘동료인가.’
나는 둘의 움직임을 보며 에이미와 피오나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합을 맞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전에 둘은 분명 스스로를 C클래스 모험가라고 말했지.
능력치로만 보면 아직 C클래스 모험가로 승격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긴 했지만, 움직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은 그녀들이 베테랑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너희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나는 속으로 방긋 웃으며, 몸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을 꿈틀거렸다.
보통 몬스터는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험가들은 대놓고 자신들의 전술을 육성으로 크게 말하며 몬스터들과 대치하고는 한다. 전작에도 있던 설정이다.
하지만, 나는 일반 몬스터들과 다르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라고 했지.
일단 간을 좀 봐볼까.
나는 곧바로 피오나를 향해 가시촉수를 뻗었다.
촤아아악-!
“피오나! 괴물이 공격해와!”
“알아! 대놓고 쓰면 안 맞아!”
채태앵-!
가시촉수가 날아오는 걸 보며 에이미가 소리쳤다. 피오나는 단검 두 개를 교차하며 내 가시촉수를 튕겨내고는 곧바로 내게 돌격했다.
그녀가 쇄도하는 움직임은 굉장히 날렵했다.
과연 20대 중반의 민첩 능력치다. 내가 전력을 다해 빠르게 가시촉수를 뻗지 않으면, 나는 그녀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죽어! 이 괴물!”
피오나가 빠르고 위협적으로 내 몸통을 향해 단검을 뻗었다.
후웅-
그러나 아무리 민첩이 높다고 하더라도, 저런 뻔한 공격을 맞을 리가 없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나도 진짜 날렵하네.’
촉수 괴물의 몸은 재생 가능하며 통각도 없기 때문에, 딱히 공격을 피하거나 막지 않고 맞아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재생하는 데에는 그동안 코어에 열심히 저장해둔 영양분이 쓰인다.
열심히 모아둔 영양분. 즉, 아까운 쉴드가 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아직 멀었어!”
타다다닥-!
피오나는 다시 한번 내 몸통을 노리며 도약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보였다.
언뜻 보면 나의 몸에 상처를 내기 위해 칼을 휘두르려는 듯한 그녀의 움직임이, 사실은 페이크라는 것이.
방금전 공격도 그랬다.
언뜻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녀의 공격에는 살기가 없었다.
아마 그녀는 나를 공격하려는 움직임만 취하다가, 깊게 들오는 척만 하고 오히려 스탭을 반대로 밟아 빠질 것이다.
내 몸에서 뻗어 나온 많은 촉수들이 나의 몸통을 방어하거나 그녀를 공격하는 데에만 쓰이도록 어그로를 끄는 것이다.
“불이여! 내 부름에 응답할지여니-.”
고오오오-!
내 생각이 맞았는지, 피오나가 돌진하자마자 에이미가 그녀의 뒤쪽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으로부터 빠져나온 마나가 대기 중에 넘실넘실 아지랑이를 피우기 시작했다. 피오나는 이쪽이라는 듯 몸에서 투지를 훨씬 짙게 발하며, 내 품속 깊숙이로 파고드는 듯했다.
촤아아악-!
나는 가시촉수를 피오나에게 연속으로 뻗으며 그녀를 공격했다. 둔기촉수는 혹시 모를 그녀의 공격을 견제하듯이 두며 내 몸을 방어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느려!”
챙, 채앵, 챙-!
피오나는 날카로운 눈매를 치켜올리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전투에 돌입하면 살짝 흥분하고, 말이 좀 많아지는 타입 같았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자 기쁜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뜻대로 풀려간다. 그러한 표정이었다.
“에이미! 얼마나 남았어?”
“한 30초 정도!?”
“알았어!”
이제 피오나는 가시촉수를 거의 다 쳐내고, 내 품 안쪽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가벼운 공격만 하고 곧바로 빠지려는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가만히 놔둘 내가 아니지.
피오나가 몸을 돌리려는 그 순간.
떠어엉-!
“크흐윽-!?”
나는 둔기촉수를 강하게 휘두르며 피오나를 밀어냈다.
‘됐다.’
그녀는 내 공격에 반응해 양팔을 교차하며 막았지만, 타박상과 함께 공중을 훨훨 날았다.
지금이었다.
촤좌좌좌아악-!
그 순간 나는 몸속에 숨기고 있던 네 개의 기본촉수를 순식간에 밖으로 뻗어 한창 주문을 외우고 있던 에이미를 노렸다.
“어? 에이미......!? 에이미!!”
“어? 어어......!?”
공중에 떠 있는 무방비한 자신이 아닌 에이미를 노린다는 것에, 피오나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에이미도 설마 갑자기 자신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짓는다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지.
촤아아아악-!
“꺅, 꺄아악!”
“에이미......!! 아, 안돼!!”
나는 순식간에 기본촉수들로 에이미의 몸을 휘감았고, 네 개의 기본촉수로 각각 두 팔과 다리를 하나씩 맡았다.
피오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에이미!!”
그녀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에이미를 내 촉수로부터 구하려는 듯 빠르게 쇄도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갯수보다, 내 촉수의 수가 훨씬 많았다.
챙, 채재재쟁-!
“치익......!”
한 번에 많은 촉수를 움직이는 건 과연 나도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에이미를 묶어두면서 피오나를 상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가시촉수의 민첩 보정 능력치를 제대로 이용하기 시작하고, 둔기촉수를 간간이 섞어주자 피오나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으윽! 어떡해......!”
피오나는 입술을 꽉 물었다.
“에이미! 젠장! 풀고 나올 수 있겠어......!?”
“으으! 아, 아니! 끄으응! 이 촉수 힘이 엄청 쎄......! 아무리 움직여도 안 풀려.”
“후으, 역시. 마법은?”
“이 상태로는 주문도 못 외워. 미, 미안해......”
에이미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와 같은 몬스터에게 사지를 속박당하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었다.
주문을 외우다가 방심해서 속박당했다.
마법사의 입장에서 최악으로 허무한 일이지만, 그녀만 탓할 수는 없었다. 어그로를 잘 끌어주는 게 바로 피오나의 역할이었으니까.
그저 상대가 좋지 못했을 뿐이다.
“피오나...... 나, 나 그냥-.”
에이미는 거의 포기한 듯한 목소리였다.
아마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했지만,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피오나는 그런 에이미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결의에 찬 눈빛을 보냈다.
“에이미, 아니야!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반드시 구해줄게. 반드시.”
“피, 피오나......!”
얼씨구.
괴물을 눈앞에 두고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 정말로 눈물 나는 동료 사이의 우정이다.
하지만, 피오나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결의만 가득할 뿐이다.
에이미는 전투 불능 상태이고, 피오나는 혼자서 내 상대를 할 수가 없으니까.
그걸 아는지, 피오나도 말은 자신감 있게 했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듯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아아앗-!”
그녀는 몇 번이고 내게 발악하듯 돌격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는 여유롭게 그녀의 공격을 막아대며 간간이 반격했다.
챙, 채재쟁- 챙-!
그리고, 이제 슬슬 약효도 돌기 시작했다.
‘마비독.’
가시촉수에서 생성된 마비독은 고래처럼 커다란 생물조차도 몸 하나 까딱 못 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독이다.
피오나 정도로 몸을 단련하고 마력을 수련한 초인이라면 어느 정도 저항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으윽!”
“피, 피오나......! 괜찮아?”
“어, 괜찮......! 으윽, 왜, 왜 이러지?”
아직 20대의 능력치로 내 마비독에 저항하는 건 무리다.
피오나는 연신 내게 돌격하며 단검을 휘둘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크게 느려졌다.
그리고 종래에는, 아예 돌격 자체를 하지 못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처음에 기습에 성공하면서 그녀의 피를 타고 그녀의 안으로 흘러 들어간 마비독이, 피오나의 몸 전체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피오나!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으윽......! 치익, 모르겠어. 머리가 어지럽고...... 모, 몸이 안 움직여.”
피오나가 몸을 비틀거리면서 혼란스러운 얼굴로 에이미의 말에 답했다.
이제는 끝났네.
피오나는 어떻게든 저항해보려는 듯 애써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내 독에 저항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피, 피오나!”
“미안해, 에이미...... 으윽, 괜히 내가 싸우자고 해서.”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처음에 신나서 같이 의뢰를 받자고 했으니까......”
여전히 둘은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나는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꾸물거리며 피오나 앞으로 다가갔다.
피오나는 바닥에 쓰러져 겨우겨우 앞을 보는 듯했다. 내 유동적인 몸을 바라보며, 그녀는 분하다는 눈빛을 했다.
“젠장...... 루이즈 숲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알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커다란 피해가......”
나는 가시촉수를 그녀의 미간에 대고 조준했다. 마치 지금 바로 죽이겠다는 듯.
피오나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안타까움만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나를 해치우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내 날카로운 가시촉수를 바라보았다.
‘오.’
피오나의 눈빛을 본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신력이 상당한 여자였다.
하긴, C클래스 모험가부터는 베테랑이라고 불린다.
모험가 활동을 오래도록 해온 만큼, 죽음은 진작부터 각오했겠지.
아마도 내가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내고 고통을 준다고 해도,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그래. 오히려 좋아.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피오나의 정신력을 본 나는 오히려 기쁜 마음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저 도도한 얼굴을 무너뜨리고 싶다.
쾌감에 물들어 허덕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음란 변태 여신이 만든 촉수 괴물의 본능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지.’
강한 여자를 무너뜨리고 싶은 것은, 비단 촉수 괴물뿐만이 아니라 인간 남자에게도 깊게 각인되어있는 수컷만의 본능이었다.
나는 가시촉수를 거두고, 에이미를 묶고 있던 기본촉수 하나를 풀어서 피오나의 몸통을 휘감았다.
“읏......!? 무슨......?”
피오나는 내가 그녀의 몸통을 감싸자 놀라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을 죽이지 않는지. 갑자기 몸통을 휘감아서 뭘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둘을 들고 동굴의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