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프리지아 대연합, 하카피아 통치령.
하카피아의 3대 도시 중 한 곳 ‘샤온’에는, 프리지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모험가 길드의 본부가 있다.
그 희귀하다는 A클래스 모험가가 10명도 넘게 포진해 있으며, S클래스의 모험가 또한 3명이나 몸을 담고 있는 커다란 길드.
5층이 넘는 건물의 높이, 옆으로 길게 뻗어 마치 성과 같은 크기를 자랑하는 길드 하우스의 본부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 길드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길드 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다.
비교적 등급이 낮은 길드원들은 자유롭게 임무를 수행하거나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상위 등급의 길드원들은 특별 작전을 수행하거나 던전을 공략하며 지낸다.
상위 등급의 길드원들에게 개인적인 시간은 별로 없다.
그만큼 치열한 세계이지만, 길드 하우스 내부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넘쳐났다.
작전의 실패는 없다시피 했고, 언제나 뒤에는 커다란 보상이 따랐으니까.
등급이 낮은 길드원들도, 자신이 이런 명망 높은 길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오늘을 제외한다면.
“......정말 이렇게까지 막아서야겠어?”
길드 하우스의 1층 로비.
평소와 완전히 다른 공기를 내뿜고 있는 로비의 분위기는, 지금 살얼음판처럼 차가웠다.
“미안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야. 네가 없으면 우리는 결코 공략에 성공할 수가 없어.”
“여동생이라고! 지금 내 여동생이 실종됐어. 어디서 어떤 몬스터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도 모르는데, 나더러 지금 한가롭게 던전이나 돌고 있으라는 거야?”
주황색 단발의 머리카락을 한 여성이, 으르렁거리며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금발의 여성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근처에서 뇌전(雷電)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여성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내 여동생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기세에 입구를 막고 있는 금발의 여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옆에서 보라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지팡이를 잡으며 둘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 그래도 죽인다니...... 엘레나, 너 지금 길드장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
“너도 죽여줄까?”
“......히끅.”
엘레나라고 불린 여성이 순간적으로 돌아보며 살기를 발산한 탓에,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몸을 떨며 딸꾹질을 해댔다.
가령 강자라고 취급되는 B클래스의 모험가라 하더라도, S클래스 모험가가 쏘아내는 살기는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중 엘레나의 살기를 받고도 멀쩡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문을 막고 있는 금발의 여성밖에 없었다.
“끼어들지 않아도 돼 히나. 지금 엘레나는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야.”
“그, 그래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길드의 룰을-.”
“여동생이 실종된 거잖아. 충분히 날카로워질 수 있어. 봐줘야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면...... 내가 그녀를 막을게.”
금발 머리를 한 여성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엘레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를 막겠다고? 꽤 자신이 있나 봐?”
“나도 너랑 같은 S클래스야. 그리고 그건, 네가 A클래스일 때도 그랬지. 절대 지지는 않아.”
금발 여성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엘레나가 양 허리춤에 있는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강력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엘레나의 행동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 금발의 여성 또한 자세를 살짝 낮추고, 그녀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꿀꺽-
팽팽한 실이 끊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로비 전체에 일렁였다.
자칫 잘못하면 S클래스끼리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서로의 기세가 부딪쳤을 뿐인데, 길드 하우스 건물 전체가 진동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1층에 모인 다른 길드원들은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둘이 부딪치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는 없었다.
“하아, 시발 진짜.”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둘 중 누구의 검도 뽑히는 일은 없었다.
엘레나가 단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러자, 금발의 여성 또한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좋은 선택이야. 우리가 부딪치면 그야말로 파멸이야. 올라가서 좀 쉬어.”
“쉬기는 뭘 쉬어! 난 지금 1분 1초가 아까워. 빨리 비켜. 나도 싸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비켜주지는 못하겠어. 나도 욕심인 걸 알지만, 네가 없으면 우리는 이번 던전 공략전에서 10할이면 10할 패배해.”
금발 여성의 말에 엘레나가 버럭 소리쳤다.
“아니, 시발 그놈의 공략전! 지금 내 여동생이 실종됐다니까!?”
“머리를 좀 식혀 너도! 지금 텔레포트가 모조리 막혀있잖아. 여동생이 실종된 마을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2주가 넘게 걸려. 그때까지 그녀가 무사하길 기도하면서 달려가기라도 할 거야?”
금발 여성의 말에 엘레나가 이를 까득, 물었다.
그 말이 맞았다. 사실, 이미 여동생이 실종된 지도 벌써 3일이 흘렀다.
실종신고가 들어온 건 3일째. 오늘 아침.
여동생이 그녀의 친구와 함께 피크닉을 나가고 3일이 지나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통신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온 것이다.
텔레포트가 막혀있는 지금 마을까지 뛰어간다면 아무리 빨라도 실종 2주가 넘는다. 그러면 늦어도 단단히 늦을 수밖에 없다.
“텔레포트가 막힌 이유는 던전의 몬스터 웨이브 때문이야. 던전 공략은 빠르게 끝내면 10일 안에는 마칠 수 있지. 차라리 빠르게 공략을 하고 텔레포트로 여동생을 찾으러 가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야.”
금발 여자의 말에 엘레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하는 발언에는 무엇 하나 틀린 점이 없었다.
“그리고, 통신을 받자마자 네 여동생이 실종된 마을 근처 모험가 지부에 이미 모집의뢰를 보내놨어. 파격적인 조건으로 토벌과 수색 의뢰를 냈으니, 의뢰를 받은 모험가들이 출동해 줄 거야.”
“......”
“너무 걱정하지 마. 루이즈 마을이라면 근처에 몬스터가 없기로 유명한 마을이잖아. 숲속에 깊숙이 들어가 길을 잃었거나, 기껏해야 특이하게 무리 지어 있던 슬라임들한테 당했을 가능성이 커.”
금발의 여성이 말을 이었다.
“슬라임들은 사냥감을 죽이지 않고 녹여 먹지. 그들의 소화액은 굉장히 약하니까. 인간을 전부 녹이는 데에는 시간이 몇 주나 걸려. 며칠 안에 발견한다면 후유증은 있겠지만, 가벼운 화상 선에서 끝날 거야.”
그녀가 엘레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 수색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하자.”
“......”
엘레나는 도무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몸으로는 당장 여동생을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머리로는 길드장 말이 맞다는 걸 다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엘레나는 주먹을 꽉 쥔 손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엘레나?”
“......알았어.”
“잘 생각했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자자, 다들 들어가자!”
길드 하우스에서 있던 소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왁자지껄-
“흐으음. 수색 및 토벌 의뢰라고?”
“가격이 엄청나게 좋은데? 평범한 의뢰의 3배 정도나 되잖아?”
“그런데, 실력이 확실한 사람을 모집하나 봐.”
“추적에 능한 C클래스 이상의 모험가만...... 실종자 찾기치고는 좀 많이 낭비 아닌가? 애초에 몬스터도 안 살잖아, 루이즈 마을에는. 토벌은 무슨 토벌이지?”
“그러게, 떠오르는 거 하면 슬라임인데...... E클래스나 D클래스 모험가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하카피아 통치령의 가장 외각 부분.
페드로스 도시 옆의 아무스 호수에는, 커다란 모험가 지부가 존재한다.
하루에도 거의 천명에 달하는 모험가가 오가는 지부는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정보, 몬스터 부산물의 거래뿐만 아니라, 개인 의뢰 또한 굉장히 많이 들어온다.
F클래스부터 S클래스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모험가의 등급에 따라, 모험가 지부에서 일하는 지부원은 각 모험가가 맡을 만한 개인 의뢰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에 막 모든 맴버가 C클래스로 승급하며 자신감을 붙이고 있는 3인조 여성 모험가 피오나, 에이미, 로샤는 지부원이 추천해준 5개의 의뢰서 중 하나를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때? 의뢰도 간단해 보이고, 난 이거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깨보다 살짝 더 내려오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피오나가 에이미와 로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에이미가 곧바로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나도 찬성~!”
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로샤로 향했다.
로샤는 피오나와 에이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도도한 얼굴을 조금 떨떠름하게 구겼다. 그녀는 푸른색 머리카락을 꼬며 둘에게 역으로 물었다.
“......확실히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우리 이제 C클래스 찍었으니 2주 정도는 쉬기로 하지 않았어? 의뢰 또 받게?”
그녀의 물음은 지당한 것이었다.
그제 막 D클래스에서 C클래스로 승급하고, 어제는 다 같이 축하의 술 파티도 벌였다.
오늘은 다 함께 맛있는 걸 먹자고 레스토랑을 찾고 있었는데, 에이미가 모험가 지부의 밥도 맛있다면서 지부 밥을 먹자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의뢰까지 받아서 하게 되다니! 이건 계획에 전혀 없던 거였다.
로샤의 말에 피오나가 답했다.
“나도 딱히 의뢰를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솔직히 이건 너무 좋아 보이잖아.”
“맞아, 맞아. 그냥 사람만 찾아주면 되는 거 아니야? 루이즈 마을에는 몬스터도 없으니까 그냥 산책나가는 마음으로 하면 돼!”
피오나의 말에 에이미가 의견을 거들었다.
둘의 눈빛은 굉장히 간절해 보였지만......
“미안, 난 패스. 좀 쉴래.”
로샤는 고개를 저었다.
“헐, 진짜로?”
“응, 하고 싶으면 너희 둘이서 해. 보니까 둘이 해도 충분하겠다. 난 2주 동안 쉬면서 충전 좀 해야겠어. 으으, 요즘 너무 힘들었어.”
로샤가 그렇게 말하자, 피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건 둘이서 해도 충분해 보이니까...... 어때, 에이미는 할 거지?”
“응! 당연하지.”
“오케이, 그럼 지금 바로 하겠다고 말한다? 로샤, 너 진짜 안 할 거야? 우리 둘이서 보수 다 먹는다?”
“그래에~ 난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으련다.”
로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결국 피오나와 에이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의뢰 창구로 가서, 지부원에게 의뢰서를 보여주며 계약 지장을 찍었다.
“여기, 실종자 두 명의 사진입니다. 의뢰에 기간은 없지만, 실종 사건인 만큼 최대한 빠르게 해결 부탁드립니다.”
전형적인 사무원처럼 생긴 남자가, 둘에게 의뢰서와 사진 두 장을 넘겨주며 말했다.
실종된 사람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여자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한 상당히 예쁜 사람이었다.
피오나와 에이미는 둘의 사진을 살펴보다가, 이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