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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꾸르 야겜 속 촉수괴물이 되었다-1화 (1/108)

Ep. 1

“아니, 그래서. 지금 저보고 촉수 괴물이 되어라, 그 말씀이십니까?”

“음, 그렇지. 바로 그거네.”

정체불명의 여신이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저는 그냥 쯔꾸르 신작을 플레이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라고요.”

“그대가 원하든 말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여신이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그대가 100년간 내 말에 성실하게 따르겠다는 계약에 동의한 것,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고작 5분이 지났을 뿐이다. 목숨을 바쳐도 된다면 뭐 상관없네만.”

빠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저 망할 계약.

설마 쯔꾸르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실제 이세계로 빨려 들어갈 줄은 몰랐다.

전작 게임에서 최고 업적 스코어를 달성하여 차기작 테스트를 할 수 있게 해준다길래, 냉큼 수락한 것이 패착이었지.

촉수 괴물이 되어서 여자들을 마구마구 따먹는 게임이라길래,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상한 숲속이었고, 여신이 나타나더니 나보고 진짜 촉수 괴물이 되어서 마을, 귀족성 내 등등 이 세상의 여자들을 모조리 따먹으라고 하는 중이었다.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100년간 한 여신을 따르겠냐는 선택지가 나왔었다.

나는 당연히 그냥 게임 속 요소인가보다 하고 예를 선택했지. 그런데, 눈앞에 이 여신은 그걸 빌미로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여신이 다분히 연기성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그동안 아무 여자도 따먹지 못한 그 쓰레기 같은 자지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어차피 쓸모도 없는 그런 안타까운 물건은 버려버리고, 강력한 촉수 괴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수많은 여자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의 강력한 촉수 자지 앞에 무릎 꿇고 애액을 흘릴 것이다.”

“......”

떠억-

저게 과연 자신을 여신이라고 칭한 사람이 할 만한 말인가 싶어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신은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어투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많은 여인을 따먹고, 촉수를 레벨업 시키면 언젠가 인간폼으로 변하는 스킬 또한 얻을 수 있겠지. 그대는 닥치고 많은 여인들을 따먹기만 하면 된다.”

여신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니...... 그런데 왜 하필 촉수죠? 저는 그냥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데......”

진짜로.

왜 내가 촉수 괴물이 되어야 해!

남들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엄청난 치트급 스킬을 받고 이세계에서 떵떵거리면서 살면 안 되냐고!

궁금한 점을 말하자, 여신이 훗 하고 웃었다.

“지금껏 수많은 세계를 창조해왔지...... 언제나 마왕과 용사가 나타나고,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용사가 마왕을 이기기도 하고, 마왕이 용사를 이기기도 하고, 용사와 마왕이 서로 사랑하기도 한다.”

말을 하면서 그녀의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물들어갔다.

“하지만, 다 좋은데......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그것도 슬슬 조금 질려가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꼭 마왕이 세계 최강의 빌런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네?

“하나의 세계쯤은 촉수 괴물이 모든 여자들을 다 따먹고 성장해서 최강의 빌런 노릇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든 거지.”

미친.

그러니까 그냥 기존 세계들에 질려서 호기심 삼아 나를 촉수 괴물로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아무튼, 그대에게 선택권은 없네. 그냥 까라면 까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내 몸을 무언가가 강하게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끄흐윽!”

엄청난 압박감에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촉수 괴물의 몸을 하사해주지. 내가 직접 빚은 육체인 만큼, 성능은 확실할 걸세. 잠재력은 최고 수준이지. 태초의 모습은 굉장히 약할 테지만 뭐...... 알아서 잘해보게나.”

아니!

그런 거 필요 없으니 현실 세계로 돌려달라고!

“행운을 비네. 부디 즐거운 볼거리를 만들어주면 좋겠어.”

하지만, 내 말은 여신에게 닿지 않았다.

돌연 눈앞에 환한 빛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크기를 불린 빛은 시야 전체를 뒤덮었고.

‘시, 시발.’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꾸무울-

꿈틀꿈틀-

‘으윽, 이게 무슨.’

머리가 아프다. 감각이 이상했다.

‘저, 저기요!’

목소리를 내보려고 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내게 입은 있는 걸까?

‘미친...... 이게 뭐야.’

몸을 움직이는데, 마치 몸통으로만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진짜 촉수 괴물이 되어버린 건가?

정말로?

여긴 대체 어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래 살고 있던 원룸이 아니라는 건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여신이 나를 다른 세계로 보낸다고 했던 것도 그렇고, 여긴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닐 확률이 컸다.

바닥이 온통 진흙인 것처럼 축축하고 끈적했고, 바람이 약하게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만으로도, 나는 날라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으, 시발...... 이게 무슨 날벼락.’

어떻게든 바닥에 찰싹 엎드려서 붙자, 그나마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은 슬라임처럼 점성이 있는 듯 내 뜻대로 어느 정도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진짜 이거 실화냐.’

마지막까지도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촉수 괴물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모두 다 꿈이면 좋겠건만, 온몸에 느껴지는 이 생생한 느낌은 결코 꿈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꼬르륵-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아니, 배나 내장이라고 치부할만한 기관도 없는 것 같은데. 일단 그냥 배가 고프다.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 근처에서 풀을 뜯어서 섭취하세요. ]

아...... 네.

메시지의 훈수에 나는 몸통을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배를 채워야 할 것만 같았다.

꾸물꾸물-

눈도 달려 있지 않고, 뭐 외부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지금 땅에 접촉해있는 내 몸뿐이다.

그냥 어디로든 최대한 움직이자.

‘진짜 내가 왜 이런 꼴을......’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냥 운에 의존해서 어디로든 가는데,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인간은 엄청 편한 거였구나.

‘어?’

그래도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지금까지의 진흙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와 맞닿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꾸물꾸물-

‘이건...... 나무인가?’

아무래도 딱딱한 게 느껴지는 것이 나무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좋다. 나무 근처에는 풀이 자랄 확률도 높으니까.

나는 나무를 중심으로 빙 돌며 계속해서 몸을 꾸물댔다. 그러자, 드디어 목표로 하는 풀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으으, 근데 어떻게 먹지?’

이 몸은 입도 없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섭취할지 생각하던 찰나, 아까처럼 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새로운 스킬이 생겨났습니다. ]

[ 자세한 사항은 스테이터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응? 새로운 스킬? 스테이터스?

머릿속으로 스테이터스라는 단어를 생각하자, 눈앞에 활자들이 조립되더니 선명한 창을 형성했다.

------ 스테이터스( Status ) ------

⚫ 기본 정보( Basic Information )

- 진명 : 천유진

- 종족 : 촉수 괴물

- 레벨 : 1

⚫ 육체 능력 평가 : F-

- 근력 : 1

- 민첩 : 1

- 체력 : 1

- 내구 : 1

- 감지 : 1

⚫ 마력 능력 평가 : F-

- 효율 : 1

- 용량 : 1

- 회로 : 1

- 친화 : 1

⚫ 스킬

- 유동적인 몸과 코어

- 진화하는 촉수( 1족 : 소화촉수 )

------ ◦ ------

‘아.’

정말 쓰레기 같은 능력치가 아닐 수 없었다.

다 1이라니.

근데, 그럴 만도 하다. 지금 풀잎이랑 맞닿아 있어서 안 사실인데, 나는 지금 사람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니......

쓸모도 없는 자지 버리고 강력한 촉수 자지로 여자들을 따먹으라면서.

이렇게 작고 약하고 아무것도 없어서야 뭘 어떻게 따먹어!

어쨌든, 지금은 정보다.

스킬을 정보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눈앞에 활자가 조합되며 정보가 떠올랐다.

⚫ 유동적인 몸과 코어

- 몸을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핵이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핵은 2배의 내구 능력치를 지닌다. 핵이 데미지를 입으면 양분을 섭취해 회복할 수 있다.

⚫ 진화하는 촉수

- 레벨이 오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촉수의 수와 그 강함이 상승한다. 현재 1개의 촉수( 소화촉수 )를 사용할 수 있다.

‘아...... 이 소화촉수로 풀떼기를 먹어라, 이건가.’

스킬 설명을 보니, 어떻게 해서 소화촉수를 사용해야 할지 알 수가 있었다. 머릿속에 뭔가 정보가 저절로 떠오른 느낌이다.

몸을 꿈틀거리며 움직이며 묘한 감각을 자극하자, 몸통 위에서 촉수 하나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으음......’

촉수의 끝부분에는 작은 입 같은 게 달려있었다.

‘느낌 이상해.’

그런데 이상해도 뭐 어쩔 수가 있을까. 나는 촉수를 움직여 풀을 뜯어 먹었다.

오물오물-

‘......근데 풀은 생각보다 맛있네?’

몸이 촉수 괴물로 변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미친 건가.

분명 더럽게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숲속의 풀떼기가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아, 어쩌면 혀가 인간과 달라서 그런 걸지도.

[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했습니다. ]

[ 레벨 업! 2레벨이 되었습니다.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

얼마나 상승했나 스테이터스를 열어서 확인하자, 그냥 모든 능력치가 2가 됐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처음보다 훨씬 활기가 넘치고 뭔가 몸이 가볍고 날쌔진 느낌이 들었다.

‘후으. 그런데, 이제 뭐 해야 하지.’

여신은 내게 많은 여자들을 따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따먹기는커녕 딱 밟혀 죽기 좋은 모양새였다.

‘일단 살아야 돼.’

그걸 제1 목표로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생존이 최우선이다.’

인간이 아닌 이상한 촉수 괴물의 삶이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뭐가 되지 않을까.

나는 몸을 꿈틀꿈틀 움직여, 근처의 풀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우선 충분히 양분을 먹어, 레벨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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