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아빠랑 뭐하고 싶어?"
"아빠랑요? 으음… 히히!"
에일린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뛰다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너무 신이 나, 가슴이 한계 이상으로 뛴 탓이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 보였다.
"일단 뽀뽀도 해보고, 안아도 보고, 같이 카르드라실까지 달리기도 해보고 싶어요!"
썩어버린 뇌는 정상적인 정보처리를 아니 하였다. 그래도, 조금 전에 교육받았는데 뽀뽀가 뭔지 이해는 하고 있겠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그리고?"
"제가 어른이 되면, 아빠랑 결혼하고 싶어요!"
"…."
눈앞이 새하얘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충격적인 발언은 아니었다. 뇌는 빠르게 이성을 회복했다.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니. 어린애들이 많이 하는 대사 아닌가.
아니라고?
나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섹스도 하구 싶어요!"
취소한다.
충격 그 자체였다.
"파니 언니가 알려줬잖아요!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하는 거라고!"
"세, 뭐― 큽, 큭. 뭐?"
"전 아빠와 엄마 둘 다 사랑하지만, 섹스는 여자끼리는 못하잖아요!"
대체 뭘 배운― 아, 섹스가 나쁘다곤 안 알려줬었지. 에일린의 입에서 근친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파니는 이런 것도 안 가르치고 뭐 한… 젠장. 그런 걸 알려줄 리가 없지.
나는 사레가 들려 한참을 헛기침했다.
"크흡… 그, 그렇긴 한데… 아직 너무 어리지 않을까…?"
"…어른이 아니면 못 하나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전에 근친이 나쁘다고 말해야지.
내가 말을 고르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빠진 찰나, 에일린이 입을 열었다.
"저두 빨리 어른이 돼서 엄마처럼 되고 싶어요!"
몸이 달달 떨린다. 나처럼 살겠다고?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에일린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정신이 깎여나갔다.
"나쁜 사람들 혼내주고, 더 나쁜 악마들도 잡고!"
아 그쪽이었나.
"…아빠랑 결혼두 하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다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복잡한 감정이 가슴 한켠을 차지했다.
그러니까, 에일린도 언제가 나처럼 짝을 찾고 살아갈 것 아닌가. 그게 너무 불안했다. 이곳 남자들은 솔직히 말해서 죄 늑대였다. 슈리엘도 마찬가지지만,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다. 늑대 중의 늑대라 더 좋기도 했고.
하지만 에일린은? 에일린이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몸을 섞는다 생각하니 더 큰 불안이 급습했다.
'…절대 못 주지.'
이 보석 같은 딸을 다른 남자한테 넘기라고? 못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다. 에일린이 무릎 꿇고 부탁하기 전까진 못 넘긴다.
…자꾸만 옳지 못한 생각이 떠오른다.
알지도 못하는 외간 남자에게 에일린을 넘길 바엔.
―…마?
차라리. 차라리.
―…엄마!
셋이서―
"――엄마!"
"어, 음?"
"도착했어요!"
고개를 들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두 사내가 보였다.
* * *
- 벌컥!
"아빠――!!!"
에일린은 폴짝 점프해 문고리를 당겼다. 활짝, 하고 열리는 문. 황소처럼 돌진한 에일린은, 청련단주 하메일을 무시하곤 슈리엘에게 달려들었다.
"뽀뽀! 뽀뽀!"
갑작스레 달려들었지만, 슈리엘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에일린을 안아 들었다. 다만 그 뒤가 문제였다. 방을 나서기 전, 에일린의 폭탄 발언을 잊을 수 없었다. 슈리엘은 이대로 입술을 맞댔다간, 딸이 혀를 집어넣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겼다.
알펜리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 단어가 정의하는 바는 알고 있지만― 예를 들어 '뽀뽀'가 말 그대로 입술만 짧게 부딪히는 '버드 키스'라는 걸 알듯이― 지금의 슈리엘은 모르는 일이었다.
"미, 미안해요 슈리엘!"
"뽀뽀!"
"에일린! 들어가기 전엔 문을 꼭 두드려야지…!"
다행히, 에일린이 억지로 입술을 부딪치기 전, 유진이 들어왔다.
에일린의 관심사가 돌려진다.
슈리엘은 유진에게 해명의 눈빛을 보냈지만, 돌아온 건 없었다.
"하하… 따님이 참 고우십니다. 뒤에 계신 분은 따님분의 언니…?"
하메일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에일린의 난입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괜히 얼굴을 찡그렸다가 계약이 파투 날 수도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필사적인 아부뿐이었다.
슈리엘에게 안긴 여자애는 딸이 분명했고, 뒤에 있는 검은 드레스의 소녀는… 터울 있는 언니인가? 두 소녀는 지나칠 정도로 닮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매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억 소리가 날 정도의 미美를 가졌다는 정도일까.
저 괴물 같은 소녀의 엄마라면, 그리고 저만한 미모의 딸을 두고 있다면, 분명 엘프와 결혼했으리라. 하메일은 두 소녀의 어미를 추측하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
유진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하메일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희 애가 성격이 좀 급해서…"
'저희 애'라니?
하메일은 자신이 얼빠진 표정을 지은 줄도 모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으음… 슈리엘? 바쁘면 그냥 돌아갈까요…?"
유진은 슈리엘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막 끝난 참이다. 이대로 돌아가겠다. 에일린… 그렇게 얼굴을 부비면 앞이 안 보인다."
딸의 기대 어린 눈동자를 무시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정말 일이 끝나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지. 허나 눈앞의 소녀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에일린은 아빠와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자 꺅꺅거리며 품에 매달렸다.
슈리엘은 얼굴을 가린 에일린을 억지로 떼어내 목 위에 태웠다. 목마 자세였다.
"아빠 만세―!!"
유진과 슈리엘은 에일린을 데리고 그대로 돌아갔다.
"…."
테이블 위엔 임시 도장이 찍힌 서류 한 장과… 멍청한 얼굴의 푸른 머리 상단주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
* * *
나와 슈리엘은 한바탕 몰아친 폭풍에 녹초가 되어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아…."
"하아…."
한숨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
나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고, 슈리엘은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슈리엘은.
에일린과 함께 카르드라실까지 논스톱으로 달려갔다. 왕복 거리를 생각하면 마차로 이틀 좀 넘게 걸리는 거리를 반나절 만에 주파했다는 뜻이 된다. 결과만 말하자면, 에일린이 이겼다. 그것도 삼 분 차이라는 기록으로.
처음엔 아빠 노릇을 하는 슈리엘이 웃기기도 했지만, 다섯 시간이 지나 반주검이 된 슈리엘은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혈기왕성한 아이의 체력은, 아무리 슈리엘이라도 이기기 어려웠다.
아비 노릇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겠냐고. 나는 땀을 줄줄 흘리는 슈리엘의 등판을 닦아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우리가 지친 걸 알기라도 한 걸까. 에일린은 우리를 붙들다 말고 돌연 알펜리스를 데려가 저택 밖으로 나갔다.
나는 파니가 놀아주다 지쳐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에일린이 정상적인 상식을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귀쟁이년들."
슈리엘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중얼거렸다.
카르드라실에 도착한 그는, 에일린의 비정상적인 상식이 엘프들 탓이란 걸 알아냈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 세계수에 메테오를 떨굴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정령과 재밌게 노는 에일린을 보자 그런 생각도 싹 사라졌다.
그래, 다 장단점이 있는 거지.
엘프들이 악의를 품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난 좀 쉬겠다."
"푹 쉬세요. 에일린이 돌아오면 자고 있다고 할게요."
슈리엘은 땀으로 흥건한 수건을 내던지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교미를 대비해 만든 킹사이즈 침대.
염동력으로 수건을 회수한 나는, 푹 젖은 천 조각을 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수, 수건 좀 빨고 올게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등을 돌렸다. 부디 목소리가 안 들렸으면 좋겠다. 지금 낸 목소리는, 내가 생각해도 무척 음탕했으니까.
- 끼익.
약간 서늘한 공기의 욕실.
아무도 없었다.
슈리엘은 쉬고 있고, 에일린도 밖에 있다. 하녀들과 병사들은… 늘 그랬듯 외진 곳에서 추잡하게 몸이나 섞고 있겠지.
"…."
나도 슈리엘도, 에일린이 있어서 많이 참았다. 내쪽은 맨정신이라 더 힘들었다.
딸이 보는 앞에서 '발정하지 말 것' 따위의 명령을 내릴 순 없는 노릇. 결국 깡으로 참아야 했다. 암캐처럼 발정하는 몸을 식히고, 붉어진 얼굴을 진정시키기 위해 온간힘을 쏟았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쉬고 있는 슈리엘을 혹사시킬 수는 없으니, 이렇게 혼자서라도 풀어야… 하아. 지금까지 잘 버틴 내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자.
"스흐읍…"
땀으로 흠뻑 젖은 수건을 얼굴에 대고, 힘껏 들이마신다. 진한 땀 냄새가, 거스를 수 없는 수컷의 냄새가 코와 뇌에 스며든다.
"후아아…."
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주저앉았다. 더는 참지 않아도 되자, 그간 쌓인 성욕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금단 증상 끝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댄 사람처럼, 황홀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흐극, 흣."
- 찌이익…!
투명 끈적한 즙이 욕실 바닥을 더럽힌다.
"흐그읍… 후읍…"
다시 들이마신다.
자궁이 움찔움찔 떨린다. 몸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졌다. 이제 두 번째인데, 흐르는 공기에 스쳐도 가버릴 지경이다.
드레스의 끝단이 반투명해질 정도로 많이 가버렸다. 애액으류 축축해진 드레스는 습기를 먹어, 자궁 문신이 새겨진 하복부를 희미하게 비추었다.
"하앙… 흐으긍…!"
찌걱, 찌걱… 한 손으로 열심히 보지를 쑤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땀투성이 수건의 냄새를 맡는다. 눈을 감으면, 거대한 자지로 자궁을 유린하는 슈리엘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감고 배를 까뒤집었다. 코 위에 수건을 올려두고, 오므린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열심히 자위한다.
최근에 '혼자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중증 의존증에 걸린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히잇, 히기익…."
남들에게 보일 수 없을 정도의 천박함.
음탕한 신음이 욕실에 메아리친다.
* * *
협상 장소는 본관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걸어서 십 분 정도일까. 에일린은 내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다녔다.
에일린의 보법은 엘프들의 것과 굉장히 흡사했다. 일단 평범한 원피스로 갈아입혀놓긴 했는데… 귀만 길다면 영락없는 엘프 아이다. 분명 인간의 피만 섞였는데 왜이리 엘프를 닮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엘프로 오해당하는 거랑 비슷한 일이려나.
…엄밀히 말하면 내가 순혈 인간인지는 모르겠다. 초월체가 된 순간부터 종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에일린도 마찬가지겠지. 나와 에일린은 몸의 삼분지 이를 마나로 대체해 살아갈 수 있는, 마치 정령과도 같은 존재다.
'정령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