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썩. 깜짝 놀라 주저앉는다.
에일린은 사내의 꼴사나운 모습에 쿡쿡 웃었다.
"우뭄… 전 에일린이에요!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에일린은 황금 사과를 씹어먹으며 물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사과였다. 신기한 건, 분명 딱 스무 개만 가져왔는데 사과의 수가 줄지를 않았다. 언제나 스무 개인 상태였다. 에일린은 세계수 아줌마가 또 장난을 쳤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메일은 그 사과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먹을 건 이미 다 빼앗기고 남은 것들조차 버려졌다. 그런데 이 바위투성이 험지에서 사과가 있다는 건, 챙겨둔 식량이 있다는 뜻이었다. 굶으면서 걸어가야 하나 싶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하메일이라 부르면 됩니다. 호, 혹시. 식량이 있으시다면…"
"단장. 그것까지 요구하기엔…"
"…역시 그렇나."
…역시 무리겠지.
기절해 있어 목도하진 못했으나, 눈앞의 소녀가 산적을 쫓아냈다는 사실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식량까지 요구한다니? 나중에 값을 치른다 해도 너무 염치가 없었다.
"음. 사과라도 먹을래요?"
"오, 오오…!"
하메일의 표정이 밝아진다.
"여기!"
"가, 감사합니…"
밝아졌다가, 다시 창백해진다.
"……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과.
소녀가 지금도 씹어먹고 있는 저 사과는, 일반적인 사과와 다르게 강렬한 빛이 났다. 표면 위로 감도는 푸른 일렁임… 틀림없이 마나의 흐름이었다.
이건 마력과魔力果였다.
"이, 이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하멜일은 소녀의 복장을 눈에 담으며 머리를 굴렸다.
자연적으로 열린 마력과는 두 달 전, 죽음의 아가리라 불리는 북부의 얼음 협곡 쉬렌, 그곳의 정상에서 발견된 작은 열매 하나가 끝이었다.
초보라고 해도 상인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엘프의 전통 의상인 하니쉬. 그걸 입은 소녀가 마력과를 내밀었다는 뜻은, 저것이 50년에 한 번 열리는 엘프들의 보물―― 황금 사과라는 말이 됐다.
에일린은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세계수 아줌마가 줬어!"
"허억…!"
"하나로 부족해?"
"괘, 괜찮습니다!!! 그, 그보다! 세계수라면, 카르드라실을 말씀하시는…?
"응응!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지만, 그래도 착한 아줌마야!"
하메일은 기절할 것 같았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황금 사과였다. 마나를 각성하지 못한 범인이라도 알 수 있었다. 아니――, 황금 사과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이 정도면 못해도 금화 팔백 장, 아니. 이천 장을 넘을 수도 있는 최고급품이었으니까.
- 꼬르륵…
그렇지만.
이 마력과를 팔아넘기는 게 옳은 선택일까.
그는 죽음 끝에서 동료를 걱정할 정도로 이타적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상인의 자질이 없었다.
"아저씨! 마차도 고쳤어요!"
"뭐라, 구요…?"
"저, 저! 저거 타보고 싶어요!"
하메일이 고민하는 사이.
에일린은 주변 바위를 끌어모아 거대한 돌 마차를 만들었다. 재료는 바위였지만, 무게는 나무보다 가벼웠고 강철보다 단단했다. 에일린의 치유로 인해 말들의 상태도 최상이었다.
"허어…."
하메일은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사과를 쥐었고―
- 아작!
―그대로 씹어먹었다.
'…이런 거 팔았다간 감당 못 해. 그냥 없애버리자.'
그는 뒷일이 무서웠다. 이게 정말 황금 사과라면 엘프에게 죽을 수도 있다. 잘 팔아넘긴다 해도 마력과를 노리는 이에게 납치당할 수 있고. 그런 일을 겪기엔 상단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사실, 꿍친다 해도 소용없었다. 사과를 나눠 받고 몰래 숨겨둔 이가 있었지만, 세계수가 곧바로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멀쩡히 마력과를 먹은 하메일은 그나마 운이 좋다 볼 수 있었다.
"…태워드리겠습니다."
"와아! 고마워요!"
마차는 총 두 대, 단원의 수는 일곱이었다.
에일린을 포함해 네 명씩 가른다.
그들은 곧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에일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혹시 레칸테가 어딘지 알아요?"
"레칸테, 말입니까?"
"네네! 엄마가 거기 있거든요!"
소녀의 엄마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메일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졌다.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뒤에 있는 마차를 향해 크게 소리친다.
"방향을 틀겠습니다―! 목적지는 레칸테입니다―!"
"와아아! 태워다주는 거예요?!"
"…생명의 은인인데 뭘 못하겠습니까."
레칸테는 소문 난 악지惡地였지만… 소녀가 가고 싶다는데 악으로라도 가야지 별수 있나.
그런 악지에 사는 엄마라면, 분명 드래곤이겠지. 하메일은 피식 웃으며 고삐를 당겼다.
- 히이잉!
바퀴가 굴러간다.
* * *
그리고 하루 뒤.
"여, 여기는…?"
"…단장. 여기 레칸테 맞아요?"
"나도 모르겠다. 하아…."
청련단이 맞이한 레칸테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레칸테에 도착한 에일린과 청련단원은, 저 멀리 보이는 빛기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레칸테가 악지라고? 하메일은,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면 아가리를 후려칠 것이라 마음먹었다.
도시를 자동으로 유지·보수하는 유진의 마나 코어.
그 주변에 솟은 정체불명의 마천루들.
누가 봐도 도시였다.
동부 못지않게 깨끗하고, 발달한 도시.
가는 길이 이상하리만치 깨끗하다 싶었더니,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딴 험지에 도로를 포장하는 미친놈이 어딨냐는 말인가. 아니, 아니었다. 그 전에 선후관계를 따져야 했다. 이런 험지에 '도시'를 건설하는 미친놈이 어딨냐는 말인가.
"여기가 맞는 거 같아요! 엄마의 마나가 느껴지니까요!"
에일린과 공명하는 마나의 흐름.
그녀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뛰어가고 싶었지만, 유진이 만남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에일린도 긴장했다. 이렇게 훌쩍 커버린 자신에게 어색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하고. 만약 그렇다면,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에일린은 부모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었다.
"저곳이 정문인가…?"
- 히이이잉!
하메일은 평탄한 지역에 마차를 세웠다.
"일단, 내리겠습니다."
돌로 포장된 도로를 밟는다. 그는 이 도시에 들었을 돈을 가늠하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성벽 밖도 이렇게 깔끔한데… 안은 대체 어떠냐는 말인가.
그는 고개를 들어 높이 솟은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감탄했다. 저 웅혼하기 짝이 없는 성벽의 재료는 파르늄이었다. 그것도 순도 백 퍼센트 파르늄.
보통 다른 재료에 섞어서 만드는데… 그걸 통짜로 쓴다고? 이 거대한 성벽을? 재료야 구할 수 있다 쳐도, 돈이 천문학적 단위로 깨질 텐데. 하메일은 이 도시의 주인이 정말 드래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읏차."
폴짝. 에일린은 가볍게 점프해 마차에서 내렸다.
도시 전체에서 엄마의 마나가 느껴진다. 이곳 레칸테는, 에일린에게 있어 카르드라실보다 편안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 에일린은 스태프를 꼬나쥐며 하늘을 보았다.
유진과 에일린의 마나에 이끌린 정령들이 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반짝거리는 빛 가루를 뿌리며, 풍만한 마나의 기류를 전존재로 받아들였다.
"우와! 저기 골렘도 있어요!"
고개를 내린 그녀는 성벽을 둘러보다, 저 멀리서 기괴한 모습의 돌덩이를 발견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뭉툭했고, 다른 생명체라기엔 너무 딱딱했다.
―인간 발견.
그건 골렘이었다.
골렘은 에일린과 시선이 맞자, 코어를 시퍼렇게 빛내며 다가왔다.
―신원 미상. 조사를 시행합니다.
쿵, 쿵. 2미터를 훌쩍 넘기는 강철 골렘이 다가온다. 유진이 만들어낸 자율 방어형 골렘. 코어가 붉게 변한다.
하메일은 골렘의 존재에 허리를 바짝 세우고 긴장했다. 마도학자들이 가끔 골렘을 만들긴 하지만, 보통 몬스터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혹여 저것이 공격이라도 한다면 농담 안 하고 한 방에 죽을 자신이 있었다.
"…헛것은 아니겠죠?"
"헛것 아니에요! 이건, 엄마가 만든 인형이라구요!"
"어, 엄마가?"
―신분과 관련된 서류가 필요합니다.
하메일은 기계적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 저는 유랑 상단 청련단의 주인 하메일입니다! 여기, 상인 협회에서 인증받은 문서도 있습니다."
―확인 완료. 레칸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쿠구구궁…. 굳게 닫힌 성문이 열린다. 에일린은 이 모든 게 신기해서 놀랄 뿐이었지만, 하메일과 단원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놀랐다.
레칸테의 편린을 조금 본 것뿐인데 소름이 우수수 돋는다. 그들은 도시의 압도적인 스케일에 전율했다.
도시의 크기가 그리 커다래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기술력은 가히 제국 으뜸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것들 투성이었고, 범인의 이지理智로는 이해 못 할 것도 많았다.
다만 그들의 뇌리에 확실하게 박힌 건.
'이건 기회다.'
기회였다.
"아저씨, 아저씨!"
에일린은 폴짝폴짝 뛰며 소리쳤다.
"저 먼저 가도 돼요? 빨리, 빨리 만나고 싶어요!"
저기 중심부에 엄마가 있다. 에일린은 확신했다. 스태프로 길을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필히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 전에 혹시, 이곳의 영주님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당연히 엄마죠! 전 이만 가볼게요! 재밌는 거 태워줘서 고마워요!"
정령들이 모여든다. 에일린은 발에 오러를 두르고 힘차게 점프했다. 타악! 마법 도시 레칸테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뛰어오른다. 엄마가 만든 창조물을 하나하나 느끼며 질주한다.
"가자, 얘들아!"
하메일은.
"…우리도 따라갑시다."
정령들의 발자취를 쫓으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슈리, 하윽. 엘 저, 정액 좀 빼줘요."
짐승같은 교미는 알펜리스의 폭탄 발언에 급히 종료되었다. 자궁까지 닿은 자지를 빼내고, 정액을 부푼 배를 짜낸다. 나는 자지를 빼내는 순간까지도 칠칠찮게 가버리며 경련했다.
"히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