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193)

  "우릴 죽이려면 진즉에 죽였겠지. 유진이 봐주고 있는 거다."

  파윈도, 라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믿음? 그런 건 내가 불덩이를 소환했을 때부터 차고 넘치게 생겼다.

  이길 수 없다. 알고 있다. 인류를 위한 검은 내게 닿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내게, 절망이나 분노를 느낀 것 같진 않았다. 저들의 표정은, 이런 놈을 아군으로 둘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얼굴, 그런 표정이었다.

  "하아… 그래. 발버둥이라도 쳐봐야지."

  지이이잉! 라엘의 귀고리가 빛난다.

  그는 눈동자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어린 양을 위한 울타리가 있을 줄 믿으니, 저 늑대로부터 피신할 요람을 내려주소서."

  마법과 신성력은 비슷하면서도 공존할 수 없다. 신성력과 마법의 차이가 있다면― 신의 힘은, 때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 그게 될지 안 될지는 오로지 술자에 믿음에만 달렸다. 그래서, 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마법사에게 신성력이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마법사들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신의 기적은 항상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라엘은 순간 굵게 변조된 목소리로, 나를 똑똑히 바라보며 선언했다.

  "――신께서 응답하셨다."

  그것은 라엘이 아닌 신의 대리인의 목소리였다. 방위 지역의 선포. 라엘은 신성력을 방출해 커다란 돔 형태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치이익! 그 안에 있던 얼음 파편들이 순식간에 녹아 액체로 화한다. 

  그제야. 슈리엘과 파윈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입니다!"

  "조급해하지 마! 마력을 감지하면서 싸워!"

  파앗! 축축한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사고를 가속한다.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다가오는 대행자 둘. 나는 진흙처럼 물렁해진 흙을 끌어 올리며 명령했다.

  '모여라.'

  마법사들은 신을 의지하지 않는다. 다만 흉내 내려고 노력한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뛰어넘기 위해 기적을 모방한다. 확실한 게 있다면, 극에 다른 마법은 기적과 구분할 수 없었다.

  ―쿠구궁!

  영체 상태의 내게 진흙이 모여든다. 다리부터 만들어지고, 이어 몸통, 마지막으로 팔, 머리까지. 저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흙은 모여들었고, 이미 형태를 갖춘 뒤였다. 인간의 눈으로는 반응하기 힘든 속도였다. 이 모든 게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골렘.

  흙을 모아 이룬 형상은 20m는 넘어 보이는 골렘이었다. 

  번쩍! 뒤로 블링크를 시전하며 거리를 벌린다. 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려면 충분한 거리가 필요했다. 쿠웅! 바닥에 착지하자 모래 폭풍이 일었다. 개미처럼 보이는 파윈과 슈리엘. 나는 진흙을 굳혀 몸을 단단하게 만든 후, 길쭉한 팔을 뻗어 내리쳤다. 카드드득!!! 라엘의 방위 장막을 깨트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마법이. 신의 기적을 이겼다.

  가장 선두로 내달리고 있는 슈리엘의 머리 위로 수십 톤이 넘는 무게의 폭력이 쏟아진다. 양옆으로 피하기엔 거리가 충분치 않았다. 슈리엘은 칼을 버리고 주먹을 쥐었다. 뿔에 담긴 마나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주먹에 집중한다.

  "크으읍――!!!"

  거인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쿠우우웅!!!!!!

  일순간. 원형으로 퍼지는 충격파에 땅이 들썩인다. 내게 달려오던 파윈이 그대로 튀어 오를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팔은, 부서지지 않았다. 슈리엘의 팔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는 코피를 주륵 흘리며 악을 썼다.

  파윈은 붕 떠오른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앳된 비명을 냈다.

  "꺄아아악―?!"

  "그대로 팔에 착지해!"

  소리를 지르며 날아간 파윈은, 슈리엘의 말을 듣고선 침착하게 낙법을 취했다. 타악! 아직 주먹을 맞대고 있는 바위 팔에 올라탄다. 그러고는 곧바로 머리를 향해 달려왔다. 타다닥! 팔을 들어 내치려 할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신께서―!! 징벌을――!!"

  다시 한번 신성력을 주입해 철퇴의 크기를 키운다. 골렘 못지않게 커진 철퇴. 파윈은 방금 내지른 비명이 부끄러운지 붉어진 얼굴로 철퇴를 찍었다. 콰아앙! 머리가 박살 나고, 몸통이 붕괴한다.

  하지만 영체 상태인 내게 피해를 주진 못했다. 물리 피해에 면역인 탓도 있었지만, 마를 상대하기 최적화된 신성력의 한계이기도 했다. 신은, 죄 없는 이에겐 징벌보단 포옹을 내려주니까.

  인간성을 수호하려던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파윈의 철퇴가 시사해준 바는 그것뿐이었다. 그것뿐이었지만, 비로소 인간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조금의 기쁨을 느꼈다. 모든 마법사의 목표인―― '인간의 이성'과 '마법사의 이성'의 조화. 아직은 미숙하지만, 방향을 잡았다. 이대로만 나아가면 될 것이다.

  콰르르르…! 골렘은 흙먼지가 되어 폭풍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서, 슈리엘은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내상이 있었다. 그 거대한 주먹을 맞받아쳤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커흡…."

  "슈리엘! 부축하겠습니다! 라엘! 치료를 부탁합니다!"

  라엘은. 조금이라도 더 반항해보기 위해 급히 기도문을 읊었다. 그러나 그들을 치료한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끝이야.'

  경계를 뒤흔든다. 감각을, 공간을, 시간을 뒤흔든다. 나는 세상의 '선'을 몇 가닥 당겨 고의적인 혼란을 초래했다.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어느 곳은 느리게, 어느 곳은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한 걸음 내디디면 스무 걸음을 걷게 되고, 앞에서 뱉은 말이 뒤에서 들린다.

  "이게, 대체 뭔 개짓――"

  "――꺄하아악!"

  "…젠장."

  선을 당긴 부작용은 시공간의 부분적인 붕괴였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파헬른을 구원하러 갈 때 시험적으로 경계를 조작했던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단순히 선을 모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기고, 꼬고, 흩어버렸다.

  나는 혼돈으로 치닫는 공간 사이로 천천히 착지했다.

  꼬여버린 선을 그대로 두면 무너지는 시공간이 점차 영역을 넓혀갈 거고, 종국에는 모든 게 바스러져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러면 나까지 소멸하고 만다. 세계수가 이걸 그대로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았고.

  '다시, 돌아와라.'

  의지를 담아 생각하자, 꼬인 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백 퍼센트 내 의지는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힘이 개입했다. 누구인지는 뻔했다. 참 신기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허윽, 헉. 바, 방금은 대체, 뭐, 뭐냐?"

  "…어지럽습니다."

  "쯧…. 끝났군."

  대행자들은 끝을 감지하곤 그대로 누워버렸다. 비교적 멀쩡한 라엘만이 두 다리 멀쩡히 일어설 수 있었다.

  "후아…."

  나는 육체를 재조립하며 라엘에게 다가갔다. 근육과 장기들이 재구축되는 장면은 징그럽기 그지없었으나, 몇 초가 지나자 매끈한 맨살이 드러났다. 꽉 닫힌 치부, 출렁거리는 가슴. 그 매혹적인 몸뚱어리 위로 검은 드레스가 덧입혀지기 시작한다.

  몇 분을 소모해 동기화를 완료하고.

  나는 처음과 같은 상태로.

  오히려 더 깨끗해진 몸으로 라엘에게 다가갔다.

  "만족하셨나요?"

  라엘은 난장판이 된 주변을 쭉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왕도 너처럼 싸우진 않을 거다."

  내가 모든 악마를 무찌를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나는 라엘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믿음을 주었으니 할 일은 끝났다. 지금 이 순간, 내 관심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슈리엘!"

  피를 토하며 헐떡이는 슈리엘. 안 그래도 모든 마나를 다 써서 회복이 힘들 텐데… 조금 힘을 빼야 한 게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괜찮아요?"

  슈리엘은 파윈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렸다.

  "제, 제가 부축할게요."

  파윈은 멍을 때리다, 내 초조한 표정을 보곤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말없이 슈리엘을 넘겨주었다. 엉망진창이 된 몸을 끌어안아 부축한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커다란 소파를 만들었다.

  "끄윽…."

  "말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소파에 앉은 나는, 허벅지 위로 슈리엘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이마에 손을 대고, 상처투성이 몸을 재구축한다. 가슴이 무척 답답했지만, 발정하지 말라는 슈리엘의 명령 때문에 점차 쌓여만 갔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슈리엘은 수상할 정도로 멀쩡해진 몸을 점검하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역시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대행자들과 대판 싸우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계획이 멈추지도 않았고, 나 또한 그들의 믿음을 입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나는 슈리엘이 북부 변경백의 추천장을 얻는 쾌거를 달성한 직후, 곧바로 수도로 뛰어갔다. 본격적인 악마 토벌 전에 귀족위를 따야했기 때문이었다.

  "2 황자는 어땠어?"

  "제 몸 무지하게 훑어보던데요."

  "흐음. 그래서?"

  "기분 나빴어요. 불덩이 날리고 싶은 거 억지로 참느라 힘들었다구요."

  "잘했다."

  "하으… 더 칭찬해주세요. 으읏, 거, 거기도…"

  나는 청문회에서 공식적으로 시험을 하사받았다. 이례적으로 2 황자가 참관해 여러 귀족들에게 이목이 끌렸지만, 딱히 저지른 죄도 없어 탈 없이 지나갔다.

  시험의 내용은 예상하던 바였다. 다만 바라던 것과는 약간 틀어졌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땅을 주겠거니 했는데, 험하다고 소문난 북서부 지역의 악지惡地 '레칸테'를 툭 던져주곤 관리하란다. 마을이 있긴 했는데, 다 헤지고 무너져 폐허에 가까웠다. 사는 놈들이라곤 도적 떼와 언데드밖에 없었다.

  2 황자 놈…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난다. 2 황자 몸으로 계승 순위 4위인 쩌리 주제에, 날 끈덕지게 보는 것도 모자라, 모욕적인 언사까지 하며 데이트 신청을 하길래 딱 잘라 거절했더니, 이 일에 악심을 품고 이딴 땅을 던진 모양이었다. 내가 몸을 팔아서라도 좋은 땅을 얻길 원해 보였나 보지. 착각도 유분수다.

  추가적인 보복은 없었다. 그놈이 워낙 망나니로 소문이 나 있어서 그런지, 이런 치졸한 개입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럴 만한 권력도 없었고. 게다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못생겼다. 배도 나왔고. 주제를 알아야지.

  "힉, 흐긋. 가, 가버려어―…"

  ―찌이익!

  거칠게 희롱당한 보지는 추잡한 씹물을 흘리며 손가락을 조였다. 슈리엘은 손가락을 끊을 기세로 조이는 보지에 질구를 쑤시길 중단하곤 다리 사이에 있던 자지를 꺼냈다.

  펄떡인다. 허벅지 사이로 솟구친 자지는 배꼽까지 닿았다. 치맛자락이 들릴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그렇게 들쳐진 드레스 자락 안에는, 치부가 훤히 뚫린 음란한 디자인의 속옷이 입혀져 있었다.

  클리토리스 위에 보석까지 장식하며 정성스레 구멍을 뚫은 이 섹스용 속옷은, 그 역할을 무척이나 잘해주고 있었다. 슈리엘은 허리를 잡아 번쩍 들고는, 앙다문 분홍 보지에 귀두를 끼워 맞출 준비를 했다.

  "뭐… 아무리 황자라 해도 널 강제로 건드렸다간 제 형들에게 목이 잘리겠지. 안 그래도 3 황자가 그놈을 조지려고 움직이는 모양이다. 길면 오 년, 짧으면 이 년 안에 죽거나 근신 당하겠지."

  "흐아앙…?! 지, 지금 넣으면――"

  "네가 걱정할 건 없다. 아직은 준남작이지만― 내가, 프루카이스가, 앙그리드가 널 지지한다. 안 그래도 사제단을 보냈다. 레칸테에 신전을 건설했다고 들었다만… 그곳에 배치하면 되겠지."

  "히, 히그으으――?!!"

  ―찌브븝!!!

  쿠웅! 자궁구까지 단숨에 들어간다. 노예 오나홀로 개조된 보지는, 질구에 귀두가 닿자마자 천박하게 애액을 흘리며 삽입을 도왔다. 살을 찢고 질벽을 긁는다. 나는 눈앞이 하얘지는 짜릿한 충격에 눈을 까뒤집고 경련했다.

  찌익, 찌익. 가슴 한가운데 뚫린 구멍으로 모유가 새어 나온다. 불과 며칠 전 보인 천지를 뒤집고 시공간을 뒤틀던 위엄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몸에서 물을 뿜는 순종적인 노예 암캐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레칸테의 신전 담당자는 셰멜이다. 자진해서 가겠다 하더군. 막지는 않았다. 임시 부신관은 헬라가 맡기로 했으니 이 또한 걱정하지 말도록."

  "햐앙, 햐아앙… 히윽. 수, 숨이…"

  "그리고 네 모유도 시간 날 때마다 마셔두기로 했다. 네 모유는… 짜증 나게도 마나 증진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야."

  "햐, 햐아아――?!!!"

  ―덥썩! 모유로 번들거리는 젖가슴을 거칠게 쥔다. 압력을 못 이겨 쭈우욱, 하고 흘러나오는 모유. 그는 젖소처럼 가슴을 쥐어짜더니, 끝없이 흐르는 모유를 향해 입술을 뻗었다.

  "힉, 흑, 그, 그마하―…"

  쿵, 쿵. 자궁이 열릴 정도로 심하게 허리를 올려 치는 동시에, 유두를 잘근잘근 씹으며 모유를 탐한다. 나는 뇌를 녹이는 쾌락에 침만 질질 흘리며 슈리엘의 등허리를 끌어안았다. 아기처럼 젖을 빠는 그이의 머리에 코를 박는다.

  "햐, 햐윽… 또, 또 간댜하… 흑, 힛."

  이렇게 진한 수컷의 냄새를 맡으면, 이렇게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버리면, 가버리는 도중에 또 가버린다.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박히고, 잇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가슴을 빨리고, 그런 상태에서 등허리와 엉덩이를 희롱당하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 버틸 수 없게 설계된 몸이었다. 암컷은, 수컷에게 이길 수 없게 설계되었다.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아크 메이지는, 강인한 수컷의 자지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자지가 불끈거린다. 나는 하복부와 골반에 힘을 주어 깊숙이 들어온 자지를 압박했다. 슈리엘은, 그에 질세랴 더 강하게 허리를 내쳤다. 힘이 쭉 빠진다. 나는 혀를 빼물고, 슈리엘의 머리 위로 더럽게 침을 흘렸다. 이 음탕한 힘 싸움은, 항상 내가 지는 결말이었다.

  "아, 암캐 보지헤에… 저, 저핵… 싸쥬, 흣, 으읏… 사쥬세혀어…"

  나는 패배 선언을 외치고 모든 힘을 풀었다. 눅진눅진해진 보지는 곧바로 점점 온도를 높여가며 포근하게 자지를 감쌌다. 슈리엘을 위한 맞춤형 오나홀. 어떻게 하면 정액을 짜낼 수 있는지 몸이 알아버렸다.

  근래에 수십 번이 넘게 몸을 섞은 결과, 그는 더 이상 사정을 참으려 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냐마는, 요즈음은 그럴 기미조차 없었다. 때로는 삼 분도 못 버티고 사정한다.

  조루는 아니었다. 의도적인 속사였다. 한 번 교미를 시작하면 못해도 다섯 번은 싸고, 모유를 마시는 날에는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거뜬하게 정액을 내는데, 고작 한 번의 사정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사정? 한 뒤에 또 박으면 된다. 그런 마인드였다.

  ―부르르릇…!!!

  "햐아아앙―…."

  발끝이 휜다. 발가락 끝에 걸린 구두는 애처롭게 흔들거리다, 떨림을 이기지 못하고 툭, 하고 떨어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고작 첫번째 사정일 뿐인데 자궁 안이 꽉 차버렸다. 나는 가버린 얼굴로 꺽꺽대며 숨을 갈구했다. 배가 조금 부풀었다. 모유를 마시면서 사정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양이 많았다. 

  사 일 전이었나. 다섯 시간을 투자한 끝에 열네 번을 사정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지를 빼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 그때는 정말 임신부 못지않게 배가 부풀었다.영락없이 둘째를 가져야 하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임테기를 사용해봤는데… 멀쩡하더라. 에일린이 내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 걸까.

  ―부륵, 부르릇…

  "가, 감샤하미다하… 흐윽…"

  그래서, 따로 피임하고 있진 않았다. 나는 노예 보지에 사정해준 주인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체위를 바꿔 개처럼 엎드렸다.

  "후우… 북서부에서 꽤 고생 좀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야 원. 루셀리니에 있었을 때보다 편안하구나. 이게 고작 사흘 만에 이룩해낸 도시라니…"

  북서부의 유명한 악지惡地 레칸테는, 내가 도착하고 고작 며칠 만에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바뀌었다. 바둑판처럼 촘촘히 계획 건설된 도시. 현대인의 기억을 조금 살려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물론, 그래봤자 한계가 있어 슈리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건 현장 종사자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었다.

  집은 주택 위주로 지었다. 아파트는 끌리지 않았다. 지을 수는 있고, 또 그런 기술이 없는 건 아니라 고층 건물을 짓는다 해도 오옷 굉장해―!! 이게 아파트구나―!! 하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에서까지 콘크리트 숲을 보고 싶진 않았다. 당장 흑장미만 해도 8층이 넘어가는데 말이다.

  마지막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여기 있는 주민이라곤 치안을 위해 돌아다니는 골렘 일곱과 같이 따라온 병사 열다섯, 전속시녀 파니 알펜리스를 포함한 사용인 스무 명이 다였다. 이틀 정도면 사제단이 합류해 인원이 늘어날 예정이지만… 실질적 거주 인구는 제로였다.

  뭐, 시기상조였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사람이 모일 것이다.

  수도에서도 보기 힘든 매직 테크로 무장한 도시니까. 

  마을 중심부엔 코어가 박혀있다. 나로부터 마나를 흡수해 모든 건물을 유지-보수하는 장치다. 마나가 무한에 가까우므로 사용할 수 있는 편법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세계수가 카르드라실 전체에 반영구적으로 결계를 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세금은… 사실 그런 거 안 걷어도 음식이고 건물이고 무한동력으로 굴릴 수 있었지만, 괜한 의심 받기 싫으면 어느 정도 걷으라길래 걷기로 했다. 그래서야 물가가 개박살이 난다.

  "으응… 영지 관리, 도와줘서 고마, 흐극, 워요…"

  "뭘, 힘든 일은 다 네가 도맡아 했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영지 관리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슈리엘과 그 하인들이 도와줬다. 내가 한 거라곤 슈리엘의 명령에 따라 건물을 짓는 것뿐이었다.

  슈리엘은 루셸리니 령을 떠나, 수도 탈레온부터 이곳 레칸테까지 근 2주 동안 나와 함께 했다. 혼자서 영지 관리하긴 힘드니까,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슈리엘의 결정에, 하이라크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슈리엘이 향하는 곳이 북서부 악지, 레칸테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고생 좀 하라고 보낸 것 같았다.

  실상은 그곳에서보다 편하게 지내고 있지만 말이다.

  "햐으윽, 끄흡… 흐읏…"

  수도도 방문하고, 시험을 받은 뒤 도시도 짓고, 이제 심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니 할 게 없었다. 평가원은 못 해도 한 주 뒤에 온다. 에일린을 만나는 게 더 빠를 지경이니 이렇게 섹스하는 것밖에 할 게 더 있겠나. 너무 금수처럼 지내다보니 걱정이 좀 들 정도였다.

  별개로.

  우리가 온종일 섹스만 하니 병사들과 하녀들의 욕구 불만은 끝도 없이 올라갔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무인 도시다. 그런 와중에 항상 수컷, 암컷 냄새를 풍기니 결국 사고가 났다. 하녀 중에 임신한 이가 나타났다. 보초를 서던 병사를 꾀어 하룻밤을 가졌단다.

  슈리엘은 이곳에 눌러살 거 아니면 당장 꺼지라고 종용 아닌 종용을 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루셸리니의 명령을 받아 나를 위해 일할 뿐인 이들. 이곳에서 살라는 말은 해고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냥 살겠단다. 그 뒤로 관계를 맺은 남녀는 점점 늘어나 종국엔 하녀 열한 명 중 여섯 명이 임신하고 이곳에 살기를 택했다. 나는 쿨하게, 인프라가 구축될 때까지 세금 면제를 걸어주었다. 내 도시의 첫 주민인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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