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193)

  "끄읏…"

  ―쯔브븝…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괴물 같은 자지를 욱여넣었다. 살이 찢어지고 재구축되기를 반복한다. 배는 한계 이상까지 들어온 자지에 기형적으로 부풀었다. 뱃가죽 위로 툭, 하고 튀어나온 자지. 음욕적이고, 배덕적이었다.

  이는 내 마지막 기회였다. 슈리엘이 십 초 안에 절정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정신이 붕괴한다.

                       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아, 아으…."

  

            정신이

      끊어―

  "…좋다, 「가도 된다.」"

  정신 붕괴까지 정확히 2초가 남았을 때. 슈리엘은 흡족해하며 절정을 허락해주었다. 몰아치는 쾌락의 파도. 나는 코피를 터트리며 세차게 물을 뿜었다. 그러나. 이렇게 심하게, 꼴사납게 가버렸음에도 절정은 멈추지 않았다. 가고, 가고, 또 가버렸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가버린다.

  "힉, 가, 간다――"

  절정 지옥.

  쌓인 쾌락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나는 슈리엘 품 안에 쓰러져 고장 난 인형처럼 맥없이 떨기만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미약한 떨림이었지만, 감히 표현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쾌락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이건, 죽는다. 가버리면서 죽어버린다.

  숨 쉬는 것만으로 가버리는 음란하기 짝이없는 몸이 '가버리지 못했다'라는 시점부터, 처참하게 망가질 운명이 예정된 것이었다.

  "아, 으, 힉…."

  속으로 가기 싫다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뇌가 타는 듯한 기분이다.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잡하게 물을 흘리는 보지와 바들바들 떨리는 근육의 움직임만이 느껴졌다.

  바보가 돼버린다. 가버리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가 돼버린다. 

  "큭… 적당히, 가버려라…!"

  ―꽈아악… 자지를 끊어버릴 기세로 보지를 조인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가버리고, 또 가버린 탓에 근육이 한계까지 수축했다. 슈리엘은 급격히 강해진 조임에 이를 꽉 물며 사정을 견뎌냈다. 자지를 꽂아 넣은 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다.

  "자, 자모. 하이익, 하읏, 해, 써여…"

  침을 질질 흘리며 잘못을 빈다.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와중에도 주인의 심기가 거슬리는 일이라면 금세 제정신을 되찾는다. 물론 사과를 하고 나서는 다시 가버리는 추잡한 모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슈리엘이 움직이지 않은 덕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가 정말 사정할 것 같아서 움직임을 멈춘 건지, 아니면 강한 조임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건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그가 허리 흔들기를 멈추었다는 사실은 내게 크나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대충 일곱 번은 가버린 것 같았다. 만약 계속해서 허리를 흔들었다면 코피가 터지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 하익, 흐…"

  나는 코피를 쏟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노예의 각인은 정신과 육체, 영혼의 뿌리마저 철저하게 노예로 바꿔버렸다.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노예의 본분. 주인님의 기쁨이야말로 노예의 참된 바람. 언제 어떤 때라도, 주인님이 요구하면 온몸을 사용해 만족하게 만든다. 노예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상식이었다.

  '이런 거…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해 고통을 자초하는 것이라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노예가 되어 삶의 의미를 부여받는 게 나았다.

  노예가 되어 주인에게 복종하기 위한 삶. 적어도 죽지 못해 사는 삶보단 나았다. 그리고, 그리고… 슈리엘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쯧…."

  경멸과 한심함이 역력한 슈리엘의 시선이 따갑게 내려온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 가버렸나?"

  "네헤, 네에… 가버렸, 어요. 하윽, 힉. 또, 또 간다아. 졔, 졔성. 힉, 또 가버, 려어…졔송, 햐, 햡니다, 으긋.."

  소용없었다. 배꼽 위로 한 뼘이나 튀어나올 정도로 큰 자지는, 담고 있는 것만으로 크고 작은 절정이 계속됐다. 슈리엘은 짜증 가득한 한숨을 쉬며 허리를 붙잡았다.

  "…이 음란한 암캐년 같으니라고. 내버려 두면 가버리기만 하다 실신할 게 분명하겠지. 안 되겠구나."

  "네으, 에?"

  "네년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소리다."

  삽입한 채로 벌떡 일어난다. 나는 절정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에 중심을 잡지 못했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러나 허리를 붙잡고 있는 슈리엘 덕분에 허리가 꺾이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자지에 처박힌 채 허리를 붙잡아 들린 내 모습은. 영락없은 오나홀과 주인이었다.

  "힉, 히긋…?!"

  허리를 뒤로 당기자 자지가 뽑히기 시작한다. 좁고 빡빡한 보지는 수차례 절정으로 자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지만, 슈리엘은 네 따위가 어딜 날 막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더 강한 힘을 주었다. 쯔브브븝… 속살이 딸려 나오며 부푼 배가 정상적으로 줄어든다.

  절정으로 풀린 눈동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가고, 테이저건에 맞은 것처럼 손발이 꺾였다. 또, 또 가버린다. 이 좁디좁은 보지에 저 커다란 자지를 욱여넣는 데 일곱 번. 그렇다면 빼는 데에는 또 얼마나 가버릴까. 나는 슈리엘의 몸에 애액을 흩뿌리며 허우적거렸다. 이 지옥같은 절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슈리엘은 날 비웃으며 허리를 흔들었다.

  ――찌걱!!!!!!

  "학, 큽――?!!!"

  쿵. 자궁구를 두드리며 격한 인사를 건네온다. 순간 눈앞이 새하얘졌다. 나는 고개를 뒤로 떨구고 혀를 쭉 내밀었다. 입을 닫을 힘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오나홀처럼 박히기만 할 뿐이었다.

  "히으, 흣…."

  찌걱, 찌걱. 허벅지와 엉덩잇살이 맞부딪히며 자아내는 음란한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지 크기에 맞춰 늘었다 줄어들었다 하는 배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 오나홀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오직 슈리엘만을 위한 오나홀. 이 괴물같이 커다란 자지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보지. 전용 육변기가 되는 것이다.

  "하읏, 흑…."

  나는 그 사실이 자못 기쁘게 다가왔다. 이렇게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와중에도, 나만이 슈리엘을 만족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더없이 기뻐진 것이었다.

  슈리엘은 허리를 붙잡고 끊임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모유가 질질 새어 나오는 가슴 두덩이를 바라보며 정액을 뿌릴 준비를 한다. 실로 흥분되는 광경이었다. 눈앞의 소녀가 흘리는 모유는, 다름 아닌 자신이 이룩해낸 업적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안에 아기씨를 뱉으려고 한다.

  나는 암캐처럼 헥헥대며 애원했다.

  "아, 안헤. 싸쥬, 세혀. 하흣… 젼부, 싸서허… 흣… 또, 이, 임신, 힉. 할 게여허… 슈리, 헬이. 원하는 만크음…"

  다리를 들어 허리를 휘감는다. 나는 사정이 다가오자 '속마음'을 드러내며 보지를 조였다. 허리를 쥔 손에 힘이 가해진다. 어린 소녀가 임신한 채로 모유를 흘리며, 얼마든지 애를 낳아주겠다고 선언했는데 반응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라는 걸 알기에, 더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음란한 년…!"

  "헤윽… 흣, 흐잇…!!"

  사정이 다가온다. 나는 더 강하게 보지를 조이며 아기씨를 담아낼 준비를 했다. 슈리엘은 피부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강하게 허리를 쥐었다. 허리가 활처럼 튕긴다. 뿌리까지 박힌 자지는 자궁구에 귀두를 대고 쿠퍼액을 흘려댔다.

  "……크윽!"

  더는 서로.

  버틸 수 없었다.

  ――부르르릇…!!!!

  "히읏, 햐아앙……!!!"

  마침내 찾아온 사정은 정말, 정말로 세차고 난폭했다. 호스를 튼 것처럼 쏟아져나오는 정액은 배를 볼록하게 부풀렸다. 소피아와 같은 원리였다. 정액을 모두 담을 수 있게 자궁을 개조했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끄후으… 다, 다 담았다아… 헤, 헤흐…"

  나는 사정이 끝나고, 정액으로 부푼 배를 자랑스레 과시했다.

  "하아…."

  슈리엘은 정액과 애액으로 엉망이 된 바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도, 기분은 좋았지만 항상 뒤처리가 문제였다. 그래도 팔이나 다리를 자르지 않고 플레이를 끝냈다는 점에선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쯔봅. 자지를 빼내고, 녹초가 된 나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나는 개구리처럼 움찔거리며 정액을 토해냈다. 끈적이는 백탁액이 아랫도리 사이로 마구 쏟아져나온다.

  "유진. 잘 듣도록."

  나는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지쳐있었지만, 감히 주인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루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힘겹게 굴린다. 슈리엘은 다시 소파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네가 정말 내 노예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나마 네 피학성향을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너를 노예로 만들 생각이다."

  "하흐, 흐…"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움직여 네발로 긴다. 나는 정액을 뚝뚝 흘리는 저속한 모습으로 소파 밑으로 기어갔고, 정액으로 더럽혀진 자지에 다가가 혀를 대며 핥아댔다. 슈리엘의 자지는 아직 단단했다. 한 번 사정하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 그래, 이참에 나도 소피아처럼 되는 거다. 이 커다란 자지를 전부 삼킬 수 있게 목까지 오나홀로 만들어버리자.

  "쳐, 쳥소… 하께여…"

  "…듣고 있는 건가?"

  아예, 쓸모없는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진짜 오나홀로 가공 당하는 것도 기쁠 것 같았다. 전용 케이스에 담겨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박힐 수 있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왕 그렇게 될 거면, 키도 더 줄여버리는 게 나아 보였다. 케이스가 크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등에 메기 딱 적당한 정도면 충분해보였다.

  "하웁… 츄흡…"

  "하아… 마음대로 해라. 각인은 청소가 다 끝나면 풀도록 하지."

  뿌리부터 귀두까지 올려 핥으며 정액을 삼킨다. 크기가 워낙에 커 펠라치오를 할 수 없는 게 한이었다. 대신, 대딸을 하듯 양손으로 자지를 쥐고 찌꺼기를 청소했다. 이 정도면 사정까지 충분한 자극이 갈 것이다.

  "흡…!"

  사정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뷰르릇…!!

  분수처럼 쏘아진 정액은 머리 위로 쏟아져 얼굴을 더럽혔다.

  "츄흡…"

  뺨과 손에 묻은 정액을 핥아 먹곤 다시 더러워진 자지를 청소한다. 그런데 청소에 담긴 정성이 무색하게, 일정량의 자극이 가해지면 다시 정액을 뿜어댔다. 필연적으로 봉사 시간이 길어졌지만, 슈리엘은 딱히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편안한 얼굴로 봉사를 받아들였다.

  나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은 정액을 먹고 나서야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청소호… 다, 다해습니다아…"

  청소를 끝마치고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는다. 꼴사납게 가버리더라도, 주인 앞에 보여야 할 예의를 잊지 않는다. 나는 이마에 손을 대고 곧바로 도게자를 박았다.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고 흐르는 정액을 보여주며 말한다.

  "아, 암캐 노예 보지, 사용해주셔허… 감사함미다…."

  슈리엘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흥분의 증거였다. 그런데, 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플레이가 끝났으니,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스스로와 약속한 것이었다. 그는 알몸으로 엎드린 내 앞에 다가와 주인만이 할 수 있는 맹세를 읊었다.

  "――주인, 슈리엘. 노예 유진의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을 맹세한다."

  하지만.

  이번엔 돌아가지 않아도 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이 충직한 암캐는. 주인님의 영원한 노예가 되기로 맹세 했으니까.

  "…유진.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라."

  슈리엘은 맹세를 읊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가장 유력한 의심 후보인 나를 향해 추궁했다.

  "고개를 들어도 좋다."

  나는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에… 노예, 계속. 하고 싶어서어…"

  "하고, 싶어서?"

  "다시는, 모, 못 바꾸게에…"

  여기까지 들은 슈리엘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갈았다. 요컨대, 자신의 허락도 없이 계약 조건을 바꾼 거란 말이냐. 화를 내는 포인트가 지극히 슈리엘다웠다. 허나 이것이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너, 넌… 정말이지…."

  나는 다시 바짝 엎드리며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저, 저. 잘할 게요.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네, 네? 주, 죽으라면 죽을게요. 지금도 할 수 있어요. 저,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그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이미 노예가 된 몸. 내가 쓸모없어지면, 죽음으로서 사명을 다하면 되는 거다. 그걸로 좋았다. 적어도. 죽는 순간까지 주인의 명령을 다 하고 죽는 거니까. 혼자 의미 없이 죽는 게 아니니까.

  나는.

  생각보다 더.

  살아가는 이유에 더 집착했다.

  그나마 유일한 동아줄이 에일린이었지만,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한 에일린은 내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로서 해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끝없는 절망에 휩싸였다. 얼굴 보기 부끄러운 바보같은 엄마.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직 에일린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컸다. 다음에 만날 때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을 현실화하는 멍청이 같은 사고방식 때문에, 날 미워할 것이라 확정 지었기 때문이다.

  손을 뻗으면 유리 조각처럼 부서질 세상은 더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세상을 구해 영웅이 되는 것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뭘 해도 공허했다. 사람들은 광인의 취미를 가진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가고 싶었다. 뭐라도,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슈리엘의 노예라도 좋았다. 그렇다고 생각없이 주인을 고른 것은 또 아니었다. 슈리엘과는 오랫동안 만났고, 광인인 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주니까. 그런 너라면 전부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오…"

  슈리엘이 나를 노예로 만든다고 했을 때, 이것이 일종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지 못하는 내게 관계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썩은 밧줄이었으니까. 그래서 비겁하게도, 영구적으로 종속되어 나를 버리지 못하게끔 한 것이다. 차라리 이런 관계가 좋았다. 버려질 때가 되면, 웃으면서 자살할 수 있는 관계가 좋았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관계는 너무 두려웠다.

  둘이서만 다녔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불안감 따위도 없었다. 그게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슈리엘과 헤어지고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잔혹했다. 세상에게 나는 위험분자였고, 자해하길 좋아하는 미친년일 뿐이었다. 지레 겁을 먹어 다시 고개를 돌려봤지만, 서로 이미 먼 곳으로 떠난 뒤였다.

  나는 착잡한 눈으로 한숨만 쉬는 슈리엘에게 필사적으로 빌었다.

  "하, 항상 주인님이라고 부를게요. 고개 들라고 하기 전까진 숙이고 다닐게요. 으, 음식도 찌꺼기만 먹을게요. 짜증 나면, 막 두들겨 패도 돼요."

  혹여 모멸감을 느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극도로 불안해졌다. 나는 울먹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허락 없이는 나가지도 않을게요. 말도 안 할게요. 평생 좁은 방에 가둬놓고, 쓰고 싶을 때만 써도 돼요."

  쿵, 쿵. 미약한 뇌진탕 증세가 올 정도로 머리를 박는다. 눈물은 먼지와 섞여 얼굴을 더럽혔다. 슈리엘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요…."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 음란한 몸뚱아리는 사랑할 수 있잖아. 너는 내가 무정에 말라 죽어갈 때마다, 물을 주듯 따듯한 말을 던져주면 된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게 일방적인 착각일지 몰라도 당장의 내게는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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