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193)

  "어쩌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거지?"

  왜 이런 생각을 품게 됐느냐라.

  내가 이 지경까지 떨어진 데에는 정말, 정말 많은 이유가 있었다. 목표 없이 혼자 떠돌아다녔을 때는 선을 넘는 과격한 플레이를 많이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목표가 생기고, 감정도 다채로워졌다. 지킬 것도 생겼고. 심지어 완전 반대 성향인 사디즘마저 각성한 마당에 왜 이런 짓을 묻느냐 물으면…

  "정말 미친 소리 같지만, 저는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할 때 흥분하거든요."

  나는 고통에서 쾌락을 느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의 나는. 매일 같은 주제로 후회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 고통이 아니었더라면. 날 파멸시키는 종류가 아니었다면. 그래, 차라리 사디즘으로 각성을 했더라면. 이렇게 미친년처럼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아버지에게 목을 졸렸을 때일까요. 아니면 길거리에서 빵을 홈치다 죽도록 얻어맞았을 때였을까요."

  "다사多事한 삶이군."

  "그럼요! 정말 다사多死한 삶이었죠. 썩은 밧줄로 목을 매 언제 끊어질까 도박도 해보고, 팔목에 칼을 박아 죽기 직전의 혼미함을 즐긴다거나, 일부러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몸을 박살내기도 했는데요."

  "흠."

  백작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서로 이해가 필요한 관계는 아니니까. 따라서, 백작은 더이상 '왜' 라는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런 짓들을 하고도 용케도 살았구나."

  "대비책이 있었으니까요. 내심 죽고 싶지는 않았던 거겠죠."

  "겁쟁이라고 매도하지는 않겠네."

  진심이 섞인 고백에 연기하던 것도 잊는다. 순간 억지로 올리고 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이미 수습하기는 한참 늦은 것 같아 백작의 반응을 살펴보았으나, 다행히 다시 올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즉시 서릿발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와 같은 얼굴. 눈동자는 생기가 빠져 썩은 동태 눈깔이 되었고, 입꼬리는 바닥을 뚫고 내려가 우중충해졌다.

  "…죽음을 자초하면서 구원 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막상 죽음이 가까워지면 추하게 목숨을 붙드는 주제에, 그 저열한 쾌감을 잊지 못하고 스스로 구렁텅이로 다시 기어가는 꼴이라니."

  백작이 듣든 말든 자조하며 중얼거린다.

  "뭐… 이제 그마저도 질려서 여기에 왔지만요. 혹시 저 같은 사람은 싫어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슬퍼서 자살할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 불과 사 일 전에 부탑주의 추천장을 받아놓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픈 법이잖아요. 음, 그래도 아깝긴 하네요. 아스트라도, 부탑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모두요. 제가 글러 먹지만 않았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제대로 살 수 있었을 텐데요. 하하."

  이건 연기일까, 아니면 내 본심일까. 마지막에 새어 나온 메마른 웃음만큼은 진심일지 모르겠다.

  "후회하나?"

  "…전혀요."

  내가 얼마나 역겨운지 돌이키니 자기혐오가 들끓었다. 체인 링크를 끊고 진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문드문 든다. 정신이 오염되고 있다. 추천장을 받으면 빨리 슈리엘을 만나야겠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새겨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쇳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철컹, 철컹, 하고 울리는 소음에 고개를 돌리자, 고기를 매달 때 사용하는 갈고리가 보였다. 나는 네거티브한 사고를 멈추곤 백작을 향해 물었다.

  "거기 매달리면 되나요?"

  "스스로 매달릴 수 있겠나? 발목에 고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려야 한다네."

  "못할 건 없죠."

  피식 웃으며 속옷 끈을 푼다. 자그마한 유방과 꽉 다물어진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백작은 숨을 죽이며 갈고리 끈을 내렸고, 나는 우아한 몸짓으로 갈고리 앞으로 다가갔다.

  손끝만 대도 핏방울이 흘러나올 정도로 날카로운 쇳바늘.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발목에 갈고리를 찔러넣었다.

  "으극…."

  ―푸슉…!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피가 흘러나온다. 나는 이를 꽉 깨물며 반대쪽 발목에도 갈고리를 걸었다. 흡사 낚싯바늘에 꿰인 모습. 백작은 그 즉시 밧줄을 당겼다. 드르르륵! 도르래가 당겨지며 순식간에 몸이 끌려간다.

  "아큽."

  나는 요상한 신음을 내며 밧줄에 끌려갔고, 그대로 고기 거치대에 거꾸로 매달렸다. 뒤집혀 보이는 백작. 그는 내 팔과 종아리를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쏠려 생각하기가 힘들어질 거다. 원하는 거라도 있나?"

  "하아… 흐, 흐으… 원하는, 거요?"

  "원하는 대로 요리해주지. 무엇이든 말해도 좋다."

  "원하시는, 대로. 하으, 큽…"

  "알겠다."

  백작의 요리에 지체는 없었다.

  시작은 상완근이었다. 보닝 나이프를 갖다 댄 백작은 근육과 지방층의 두께를 가늠하더니, 그대로 피부를 갈라버렸다. 샛노란 지방층이 붙은 피부 껍질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나는 팔이 찢어지는 고통에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질렀다.

  "아끅, 끄흡――?!!"

  "얇구나. 얇고, 부드러워. 이런 황홀한 재료는 처음이로구나."

  "아흐, 흡… 마음에, 크흐… 드셨다니, 후으…"

  "말을 아끼는 걸 추천하지."

  백작은 치부 사이로 흐르는 애액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통에 흥분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몸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반응하는 걸 보면 영혼이 썩은 게 아닐까. 나는 자조하며 백작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각성시키곤 실시간으로 해체되는 팔을 바라본다. 오른팔은 전완 부위를 제외하곤 모든 피부가 벗겨졌다. 시뻘건 근육이 드러난다. 나는 코를 찌르는 강렬한 혈향에 눈을 찡그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 으…"

  재구축을 사용하지 못하니 피가 부족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흐릿해진 시야로 보인 백작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기뻐 보였다. 단언컨대, 저렇게 기뻐하는 백작은 처음 봤고, 앞으로도 없을 미소라 단정할 수 있었다.

  그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왕이면 원형을 유지한 채 요리할 생각이다. 팔은 전완과 상완, 손가락으로 분리해 각각 구이, 크러스트, 꼬치로 만들고, 다리는 발목부터 종아리까지를 통구이로, 넓적다리는 원형으로 오 등분 해 스테이크로 구울 거다."

  "에, 으…?"

  "몸통은 가슴사이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갈비뼈를 조각내 그릴로 굽곤, 남은 내장은 곱게 갈아 햄버그로 만들면 딱 맞겠구나. 머리는… 잘라내어 훈제시킨 뒤 장식물로 사용하면 될 것이고."

  죽음이 이리도 빨리 다가오는 것이었나. 재구축을 사용하지 않으니 벌써 정신이 삐걱거린다. 고작 오른팔일 뿐인데, 백작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고통과 쾌락이 혼재된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경련했다. 흘러나온 애액이 배를 타고 미끄러져 얼굴까지 도달한다.

  "아아, 읍. 흐긋…"

  어느 순간부터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내가 남은 혈류량을 체크하기 무섭게 왼팔이 잘려 나갔다. 이 시점의 나는 언어 능력을 잃어버려 의미 없는 옹알이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고는 멀쩡히 돌아가는데, 육체는 기능을 상실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력감, 절망감. 죽음이 가까워지자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그리운 감각들이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버러지 같은 목숨줄을 부지하려 발버둥 치던 그때의 아련한 기억들.

  "아히으윽――?!!!!"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에 쇳날톱이 살집을 비집고 들어왔다. 드드득!! 뼈와 근육이 끊어지며 뱃가죽이 갈라진다. 찢어진 배때기 속 내장이 뒤집혀 쏟아진다.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시뻘건 액체. 이제 한계였다. 쇼크로 죽지 않은 게 기적이다.

  "끄훕, 읍…"

  나는 피를 토하며 백작을 보았다. 생기가 꺼져가는 희미한 눈동자를 힘겹게 굴려 배를 가르는 백작을 바라본다. 그마저도 얼굴 밑으로 창자가 쏟아져 몇 초 보지 못했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지금 내가 웃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그으으읏?!!!!

  에르제에게 추천장을 받고 돌아오려는 찰나, 소피아는 환청처럼 들리는 비명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열 걸음만 더 나아가면 식사실인데,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저 안개처럼 퍼지는 비명은 내려앉은 고요함을 게걸스럽게 잡아먹더니 기어코 귓가에 도달했다.

  식사실이 위치한 2층은 에르제의 통제로 인해 아무도 없는 상황. 소피아는 샛노란 양피지를 꼬나쥐곤 심호흡을 했다.

  "후우…."

 돌림노래처럼 맴도는 비명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소피아는 이름 모를 명화의 시선들을 느끼며 힘없이 걸어갔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하였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마녀에게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속박당한 상태다. 소피아에게 유진의 명령은 절대적, 그 이상의 것이었다. 신을 방불케하는 힘을 시도 때도 없이 보여주는데 어찌 반항하겠는가.

  금과 은으로 장식된 조명들. 그 휘황찬란한 부의 상징을 지나 도착한 식사실은, 쭉 나열된 식기와 달리 지나치게 조용했다. 소피아는 잘 정돈된 의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빼 앉았다.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꿈틀거리는 음산함은, 마치 뱀처럼 기어올라 소피아의 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혼자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복도에서 들었던 비명은 정말 환청이었던 걸까. 돌아가는 초침 소리와 스스로의 숨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질 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피아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무려 네 시간이 지났음에도 소피아의 허리는 여전히 빳빳했다.

  그때.

  ―끼이익…

  굳게 닫혀 영원히 열리지 않았을 것 같던 '조리실'의 문이 열렸다. 장장 4시간 47분 만의 일이었다. 소피아는 희미하게 퍼지는 고기 냄새에 헛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붉은 앞치마를 두른 올백 머리의 미중년이 지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

  

  소피아는 눈을 가늘게 뜨곤 옅은 숨을 들이쉬었다. 파하르 슈발리에 폰 브리도니아. 그의 몸에서 잊을 수 없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피냄새.'

  인간의 피 냄새가.

  향신료 냄새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강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피아는 비릿한 혈향을 맡으며 다시금 심호흡했다. 유진이 죽어 본체로 돌아갔다고 해도, 연기는 끝나지 않았다.

  사방에 퍼진 피 냄새는 그녀를 당황케 할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과거 던전 마스터로 활동했을 당시 맡았던 악취… 썩은 몬스터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비교하면 향기로운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소피아의 본질은 '악마'였다.

  그녀에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똑같은 고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맛 좋은 별미였다.

  겁쟁이라 인간 사냥을 못 했을 뿐, 인간 자체는 입에 댄 적이 있었으니까. 유진을 만난 이후 성격과 입맛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요리는 다 하셨나요?"

  소피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흔들림 없는 연기였다. 네 시간의 공허한 기다림 동안 돌린 뇌내 시뮬레이션 덕이었다.

  백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접시에 담지 않았다."

  플레이팅.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고 하던가. 백작의 '요리'는 손질부터 조리, 그리고 장식까지 모두 완료되어야 비로소 끝이라 할 수 있었다. 백작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하며 조리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몇 분 후. 

  ―드르륵….

  백작은 커다란 서빙 카트를 끌고 왔다. 트레이 위엔 덮개가 올려진 크고 작은 요리가 올려져 있었다. 저만한 접시가 나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기'를 사용해야 했을까. 쟁반의 수가 너무 많아 눈대중으론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엄숙하고 정중한 몸짓으로 쟁반을 나열했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테이블을 채워가는 요리들은 아직 덮개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소피아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부위별로 나열한 건가요?"

  "눈썰미가 좋구나. 열어볼 텐가?"

  악마 못지않은 잔혹함에 혀를 내두른다. 그녀는 백작이 테이블을 절반쯤 채웠을 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덮개를 잡아 올렸다. 모락모락한 김이 피어오르며 일순 시야를 가린다. 소피아는 김 사이로 아른거리는 형체에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종아리…."

  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부위는 종아리였다. 종아리부터 발까지. 통구이로 구워졌다.

  잘린 단면에서 흐르는 육즙은, 이것이 사람이었노라 말하는 발가락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퍽 먹음직스럽게 보였을 테다. 게다가 발목 부분은 움푹 패여 뼈를 보였는데, 마치 이곳을 잡고 뜯어먹으라 말하는 것 같았다.

  소피아의 눈은 자연스레 가장 큰 쟁반, 몸통 부분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부위.

  '저건 뭐지…?'

  그런데, 부위별로 나열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위치상으로는 골반 쪽이었다. 그러나 그 위로는 둥근 무언가가 자리잡았다. 덮개의 높이도 다른 음식보다 높았다.

  "궁금한가?"

  백작은 마지막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소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이 직접 움직여 궁금증을 해소했다.

  "윽…."

  소피아는 눈을 찡그리며 덮개를 도로 덮었다.

  정체불명의 접시에 담긴 것은 머리였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소피아 클레이드의 머리. 본인과 똑같은 얼굴이 테이블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다. 

  소피아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녀는 백작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탁.

  플레이팅은 몇 분 후 끝을 맞이했고, 베일에 싸인 음식들도 모두 정체를 드러냈다. 통구이로 구워진 종아리, 스테이크가 되어 썰린 허벅지, 반으로 갈라진 몸통을 가득 채운 정체불명의 고기 등…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조리된 고기들은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활기찬 열다섯 소녀를 연기했던 유진의 육체였다.

  소피아는 당장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인간을 먹으려면 먹지,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저 인간의 욕망은 악마보다 더했다.

  "하아…."

  백작은 눈앞의 광경을 눈에 담으며 간드러진 숨만 내쉬었다.

  황홀했다. 식탁 위에 올려진 어린 소녀의 머리를 볼 때마다 그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그 재능 넘치는 소녀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끊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부엌 위에 남아있는 페카폴리스의 추천장은 백작의 변태적인 감성을 자극했다.

  붉은 마녀가 말했듯,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자극이었다. 앞으로 이십 년은 이날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

  백작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소피아는 차마 음식에 입을 대지 못하고 백작의 눈치만 봤다. 뿔이 꺾이고 인간의 몸이 되니 입맛도 바뀌었다. 눈앞의 요리에 혐오감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의 소피아는 인간이 된 몸. 어쩔 수 없는 생리적 거부감이 들었다.

  이어진 침묵을 견디지 못한 소피아가 묻는다.

  "…이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요?"

  "버려야지."

  "네?"

  즉답.

  소피아는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버린다니. 이 긴 시간을 힘들게 요리해놓고, 이렇게 플레이팅까지 하고는, 그냥 버린다니?

  "…먹지는 않나요?"

  "난 사람을 먹지 않아."

  이 새끼는 미쳤다.

  '…이딴게 인간?'

  소피아는 그 사실을 절실하게 체감 중이었다. 

  "…그럼 요리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내키는 대로. 나는 조금만.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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