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덜 깨 아직 몽롱한 목소리. 그녀는 원피스 자락을 들어 아랫도리를 보여주었다. 정액으로 약간 볼록해진 배, 그리고 보지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
나는 자진해서 치부를 보여주는 소피아의 행동에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자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이 정도로 순수해야 내 뜻대로 주무르기 쉽지. 암.
나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다시 착한 일을 할 때까지 끼고 있어. 그렇게 다시 정액을 채우면, 마개 꼽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러면 늘 끼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맞아. 잘 이해했어."
"불편한데에…"
"하아…"
아직 교육이 덜 됐나 보다.
소피아는 한숨 쉬는 나를 보자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끼고 있겠다! 맹세하겠다!"
"그런 거 아니야. 소피아?"
"왜 그러는 것이냐, 인간, 아, 아니! 언니야…!"
"됐어. 그보다 여기 말고 딱히 지낼 곳 없지?"
당연히 없겠지만, 한 번 물어본다.
살아있는 오나홀로 만들기까지 남은 작업이 많이 남았다. 최종 목표는 클락에게 알아서 복종하고 다리를 벌리게 만드는 것. 안 그래도 브리도니아 백작을 만나러 갈 때 나 혼자 갈 생각이었다. 단둘이 남았는데 아무 짓도 안 하며 시간을 축낸다? 집주인으로서 참을 수 없었다.
"…어, 없다."
소피아는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공포에 떨며 신음했다.
"내가 자, 잘못이라도 한 것이냐? 말해다오! 꼬, 꼭! 고치겠다! 그, 그러니까아…"
"그러니까?"
"버, 버리지 말아주세요오…"
피식. 하얀색 머리칼을 헤집으며 뺨을 간질인다.
"걱정하지 마. 안 버려."
"고, 고맙다…!"
"하지만."
내 집에 얹혀살려면 명령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내 말 잘 들어야 해? 어떤 것이든, 뭘 명령하든."
"알겠다! 무조건 따르겠다!"
"정말?"
"정말이다! 무엇이든 하겠다! 그, 주, 죽는 것만 빼고오…"
'무엇이든'이라는 말 만큼 위험한 말이 없는데… 이 가녀린 악마가 그걸 알 리가 있나. 나는 말의 책임을 다하라는 의미에서,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그럼 배 까뒤집고 짖어. 개소리는 멍 말고 왕으로."
"뭐, 뭐라―"
"싫으면, 당장 나가."
싸늘한 표정으로 포탈을 연다. 1층으로 내려가는 포탈. 그 너머로 책을 읽고있는 페카폴리스가 보인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또 무슨 개지랄이냐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털썩!
소피아는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었다.
거처 없이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악마 특성상, 이런 안전한 거주지는 꿈에도 그리는 것이었다. 괜히 가올리스가 얼음 궁전을 만들고, 아르타니아가 지하 궁전을 세운 게 아니었다.
"하, 하겠다! 제발, 내쫒지 말아다오…"
포탈을 닫는다. 그녀는 명령대로 뒤로 누워 배를 까뒤집었다. 볼록한 배와 마개 끼운 보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우물쭈물한다. 나는 소피아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짖어."
"…왕."
나는 개소리가 영 만족스럽지 않자, 냉랭한 눈길을 보내며 다시 포탈을 열었다. 떨리는 눈동자. 소피아는 눈을 질끈 감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왕!"
"다시."
"왕! 왕!"
"이제 개처럼 팔다리 들고 헥헥대봐."
소피아에게 책임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해준다. 그녀는 명령을 헌신적일 정도로 잘 수행했다. 쭈그려 앉아 손을 내밀라면 내밀고, 네 발로 방을 한바퀴 돌라하면 빠른 속도로 기어간다.
"…왕! 왕!"
"좋아, 잘했어."
"헤, 헥… 언니, 야…? 이건 언제까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쭈그려 앉아 옷자락을 입에 물고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그녀는 침울한 얼굴을 지으면서도 착실히 명령을 수행했다.
그런데.
―끼이익…
다시 방문이 열렸다.
"하아우으… 끄응… 마녀, 님?"
클락이 깨어났다.
눈을 비비적거리며 나오는 클락. 소피아는 애처로운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 부끄러운 자세를 유지해야 하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지켰다.
"으음, 어, 어…?"
"…"
시선이 맞는다. 터질 것 같이 달아오르는 소피아의 얼굴.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좋아, 이제 마음대로 움직여도 돼. 다른 명령은 없으니 긴장 풀고."
"하으, 으으…"
"그리고 오해하지 마? 이것도 인간을 기쁘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니까."
"이, 이게…?"
"정말이야. 클락? 잠시만 방에 들어가 줄래?"
나는 부끄러움에 발을 못 떼는 클락을 방으로 돌려보내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에게 보지를 보여주고, 개처럼 짖는다. 그걸 보고 안 기뻐할 인간이 있을까?"
"보, 보지를 보여주고… 개처럼 짖는다아…"
"그리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착한 아이'는 부탁이나 명령을 거절하지 않아. 어떤 명령이든 복종하며 순응하지. 기억해. 복종, 순응."
"복종, 순응…"
"완벽해. 클락? 이제 나와도 돼."
소피아의 어깨를 두드리고 클락을 부른다.
아무리 악마라도 기본적인 성지식이 있기 마련인데, 얘는 정말 태어나고 평생 혼자 떠돌아다녔는지 기초적인 성지식도 없었다. 덕분에 이렇게 잘 가지고 놀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순수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클락이 나온다. 그는 부푼 자지를 감추며 쭈뼛쭈뼛 방을 나섰다.
"조, 좋은 아침에요, 마녀, 니임…"
"클락도 좋은 아침. 아침밥은 먹었어?"
"아, 아니요! 그, 그리고. 어젯밤 일은 죄송해요. 멋대로 흥분하고, 그, 소피아도, 덮치고오…"
그거라면 미리 써둔 편지가 있지. 조금 각색됐지만, 대충 소피아의 정체가 악마고 모종의 일로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원래 성별은 여성이었던 것으로. 또 감히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뉘앙스까지 남겨둔다.
이를 위한 처녀 개통이었다. 한 번 박았으니 죄책감도 덜하겠지. 세상사가 다 그렇듯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나름 쉬운 편이다. 게다가, 그간 교육 덕에 소피아가 알아서 유혹까지 할 텐데 뭐가 걱정이랴.
나는 품에서 편지를 하나 꺼내 클락에게 전달했다.
"됐으니까 이거 받아."
"…편지?"
"무조건 혼자 읽어야 해. 소피아한테 말하지 마."
"네, 네?"
"읽어보면 알 거야. 소피아?"
구석에 쭈그려 있던 소피아가 고개를 든다. 나는 정말 별거 아닌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어디 나갈 일 없지?"
"…인간들 세상 말이느냐?"
"응. 밥 먹으러 간다거나, 거리를 구경하러 간다거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 아, 그리고 그거 알아?"
길거리에서 난 싸움을 목격한 행인처럼. 일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함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일을 설명하는 듯한 평탄한 어조로.
"이번에 마족 혼혈 세 명이 이단 심문관한테 걸려서 처형당했다는데…."
"…처, 형?"
"별건 아니고, 그냥 알고 있으라고."
나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바들바들 떨어대는 소피아를 지나치며 말했다.
"클락, 케이프랑 로브 좀 줘."
"나가시나요?"
"추천창 받으러 영주 만나러 간다고 했지? 그거 때문이야."
"저도 준비할까요?
"아니, 이번엔 나 혼자 갈 생각이야."
약간 아쉬운 표정. 그 내려간 입꼬리를 보자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소피아가 있지 않은가. 나는 가볍게 윙크 하고 소피아를 가리켰다. 얘랑 찐득하게 놀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클락은 소피아의 볼록한 배를 보며 바지를 부풀렸다. 애써 가리려 했지만 이미 들켰다. 그래도 부끄럽기는 한지 내 로브를 들고 바지춤을 가렸다. 나는 클락이 가져다준 로브 낚아채 몸에 둘렀다.
팔찌에 마나를 주입한다.
"갔다 올게. 연구실 잘 지키고 있어."
"네! 마녀님!"
"소피아 심심하지 않게 잘 놀아주고."
"네에…."
* * *
페카폴리스는 내가 영주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친히 저택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브리도니아가 사는 저택의 위치는 도시 안이 아닌 근처에 있는 산속 한가운데였다.
나는 지도를 따라 길을 거닐었다. 아무리 도시 밖이라 해도 영주가 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관리가 엄중했다. 길은 매끄럽게 포장됐고, 근처에 병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연병장이 보였다. 이 모든 게 산속이란 점만 빼면 영주가 사는 곳으로선 더없이 훌륭했다.
'…미친놈인가.'
그냥, 내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굳이 이런 위험한 곳에서 살 필요가 있나? 아무리 영주가 서류 놀음하는 구청장 비스름한 역할이라 해도, 그마저도 꼬봉들 부려 도장만 찍으면 되는 위치라 해도, 안전하고 풍족한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의외로 멀쩡하게 생겼다 들었는데.'
페카폴리스는 마탑 문제로 브리도니아의 얼굴을 몇 번 본 적이 있다며 인상착의를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갈색 올백 머리의 미중년, 이라고. 그게 페카폴리스의 평가였다.
그때.
"멈추시오!"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자, 철제 울타리를 지키는 병사가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신분부터 밝히소."
모기에게 물렸는지 목을 벅벅 긁는 보초. 그는 만사 귀찮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신분패를 꺼내는 대신, 소매를 걷어 팔찌를 보여주었다. 불꽃처럼 격렬한 빛이 일렁이는 적색마탑의 팔찌. 보초의 눈이 크게 뜨인다.
"마법사? 마법사 나리가 왜?"
"영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보초는 한숨을 퍽퍽 쉬며 머리를 긁었다. 마탑 문제는 일개 병사의 관할이 아니었다. 그는 창을 거두곤, 안으로 들어가라며 턱을 주억였다.
"들어가이소. 괜한 말썽은 부리지 말고."
"…이대로 쭉 가면 되나요?"
"대문 앞에 도착하면 이래 종을 치소. 댕 하고 울리면 시녀장님이 올 겁니더."
"시녀장?"
"일없는 관계라 물어봐도 대답은 잘 못 해주오."
병사는 대문 앞에 있는 황금색 종을 치라고 말했다. 시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안내해줄 거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길을 걸었다.
후드는 벗었다. 귀족 앞에서 얼굴을 덮으면 썩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귀족처럼 안전에 민감한 놈들이 없으니까. 산속에 집을 짓는 브리도니아가 그딴 걸 신경 쓸지는 몰라도, 추천장을 따야 하는 나로선 사소한 예절이라도 지키는 게 나았다.
나를 지나친 병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도장을 찍었다. 산속, 그것도 수컷투성이의 성역에 가녀린 암컷이 들어왔으니 관심이 갈 법도 했다. 하지만, 몰려드는 관심은 이제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내 외모를 보고 추근대는 불한당은…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없다. 다른 말로는, 질려버렸다.
'여기가 대문인가.'
길을 따라가자,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제 울타리가 보였다.
울타리엔 강력한 구마술식이 걸려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울타리에 닿자마자 픽 쓰러질 테지. 하지만 나는 보안에 감탄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황금색 종….'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녹이 슨 황금 종이 보였다. 나는 대문 너머로 보이는 백작저를 보며 종을 울렸다.
―대앵…
청아한 소리를 내며 떨어댄다.
나는 '시녀장'이 나오길 기다리며 백작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석조 저택. 벽을 타고 자라는 풀은 장식용인 듯 보였다. 높이를 가늠하면 5층 정도. 면적은 건물을 제외하고 땅만 따진다면 축구장 두 개를 합친 크기였다. 보아하니 주변 산을 통째로 깎아 기반을 다졌다. 역시 괴짜라 불려도 백작은 백작일까. 규모가 남다르다.
―솨아아…
그런데, 내가 저택의 풍채에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을 때, 뒤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나의 흐름이 흔들린다. 누군가 이쪽을 향해 블링크를 사용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돌렸다.
―….
공기의 떨림이 느껴지고,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의 흙이 살포시 눌렸다. 누군가 투명화를 사용한 채 저곳에 서 있었다는 소리였다.
"…."
나는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 상태로 다시 한번 '눈'을 뜨자, 마나의 선이 보이며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시녀장.'
시녀장이었다. 그리 생각한 이유는, 그녀가 전형적인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올림머리가 인상적인 미인. 또 펑퍼짐한 메이드복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거대한 가슴 두 덩이, 그리고 잘 빠진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절세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