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93)

  "왜 안 먹는 거야!"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자 던전 마스터가 열불을 낸다. 나는 한쪽 눈만 떠 팔을 묶은 구속구를 보여주었다. 이거 때문에 먹기는커녕 집는 것조차 못한다. 그렇게 어필했다.

  "그렇게 애, 애원해도 안 풀어줄 거야!"

  그럼 어쩌라고. 흐 웃으며 눈을 감는다. 간칸이 10분을 전속력으로 달려야 올 수 있는 거리니까, 대충 이틀 밤이면 카미에르의 구조대가 올 것이다. 그동안 잠시 인질을 연기하고 있어야겠다. 다리는, 음. 재구축해두는 게 낫겠지. 나는 어떻게 해야 더 자연스러운 인질을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그, 그럼! 내가 먹여주겠다!"

  던전 마스터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

  …내가 뭘 들은 거지.

  고개를 바로 세우고 눈을 뜬다. 던전 마스터는 땅에 떨어진 흙투성이 고기를 손으로 조각조각 뜯어, 내게 내밀었다. 

  "입을 벌리도록 해라! 이 열등한 단명종아!"

  

  아니, 흙 잔뜩 묻은 고기를 먹으라고 하면― 아, 음. 참나. 하. 모르겠다. 먹고 죽는 것도 아니고. 설마 저 멍청한 악마가 독을 발랐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냠."

  "드디어 먹을 생각이 든 것이냐?"

  입을 벌려 고기를 담는다. 텁텁한 흙과 생고기 특유의 비릿하고 질긴 식감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열심히 고기를 씹었다. 본의 아니게 흙을 처먹게 되었지만

  이렇게 열심히 고기를 먹으면.

  "다, 다음 것도 먹어라!"

  또다시 고기를 찢어 내게 내민다.

  던전 마스터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기를 먹였다. 그 미소가 너무 순진무구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 해도 믿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괴리감이 장난이 아니다. 열심히 생고기를 목 너머로 넘기던 나는 우물우물거리며 물었다.

  "…착하네."

  "무, 뭐?!"

  "이렇게 밥도 먹여주고, 바로 죽이지도 않고."

  몬스터랑 강제로 교미시킨 일은 쏙 빼놓고 말한 거지만 아무튼. 실험 재료에게 밥 먹여주는 악마가 어딨다고. 돼지죽 던지고 찾아오지도 않은 가올리스와 비교하면 선녀였다.

  "난 착하지 않아!"

  "…풉."

  "웃지 마! 죽여버릴 거야!"

  "정말?"

  "으으… 이거나 먹기나 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던전 마스터는 단단히 삐졌는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고기만 뜯어 입에 욱여넣을 뿐이었다. 누가 이기나 경쟁심리가 붙은 나는 그가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저기."

  "…."

  "왜 미궁을 세운 거야?"

  고기를 뜯던 손이 흠칫한다. 역린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더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런 걸 세워봤자 금방 토벌당하고 말 텐데."

  "…."

  "내가 죽으면 병사들이. 병사들이 안 되면 기사들이. 기사들이 안 되면 군대가."

  "…."

  "너를 죽이러 올 텐데."

  확정된 파멸. 모든 미궁이 다 그렇듯 경제적 이용 가치가 없으면 인간들에게 신속히 토벌당한다. 음지와 오지에 미궁이 넘치는 이유였다. 들키지 않고 최대한 힘을 키운 뒤 인간들을 덮친다. 그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던전 마스터는 너무 빨리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미궁이 완성도 안 됐는데 토벌대가 꾸려질 정도라니 말 다 했지. 파헬른에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정도면 꽤 버틴 것 같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나, 난."

  드디어 입을 연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섭지 않아?

  "…으."

  "미궁 세우기 전엔 뭐 하고 살았어?"

  던전 마스터는 고민했다. 마른 입술을 핥고 고기를 쥔 손을 쥐었다 편다. 그는 거진 삼 분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미 불안의 씨앗은 심장에 파고들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잡아먹힐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던전 마스터도, 악마도, 그 무엇도 아닌 '소년'은. 우물쭈물하며 내게 물었다.

  "아, 안 놀릴 거지?"

  "…내 처지가 이런데 누굴 놀려."

  다리가 잘린 채 강간당했는데 네가 날 안 놀리면 그게 더 다행인 거지. 소년은 내 장난스러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이나, 토끼. 사, 사냥하면서. 으…"

  "…인간은?"

  "시, 시체 정도만. 먹으면서. 숨어서 지냈, 는데."

  이걸 왜 말하고 있는 거야! 소년이 소리친다. 그는 침울한 얼굴로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나는 가만히 소년을 지켜봤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끄적이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었다. 오늘 일과는 이걸로 끝인 것 같았다. 내게 밥도 줬고, 실험도 끝마쳤다. 그가 할 일은 더 없어 보였다.

  그는 내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살 수 있을까?"

  그 연약한 소리는 죽음마저 욕망에 가려진 악마가 내뱉을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놀리는 기색 없이 소년에게 되물었다.

  "…너 진짜 악마 맞아?"

  소년은 발끈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소악마야."

  "소악, 마?"

  소악마.

  나는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직 욕망을 구체화하지 못한 악마."

  "그게 그냥 악마랑, 뭐가 다른데?"

  "악마는 욕망의 크기만큼 강해져. 하지만, 난, 난… 원하는 게 없어. 그냥, 목표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밖에 못 해."

  "…."

  "미궁을 세우면 뭔가 달라지나 했는데… 이것도 아니야."

  소년은 실험실 가운데 박혀있는 코어를 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거 줍는 게 아니었는데."

  그가 불쌍하진 않았다. 그는 몬스터 웨이브로 죽어나간 파헬른의 시민들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래도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냥, 생각일 뿐이다. 이 소년의 행위를 정당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인간마저 마기에 침식되면 악마로 타락하는데, 그 반대는 안 될까. 뿔을 꺾고 모든 마기를 지워버리면 그건 인간과 다를 게 있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흑…."

  소년은 우울감을 참지 못하고 훌쩍였다.

  "…."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참을 수 있을 리 없잖아.

  가학심이 들끓는다. 이 소년을 내 뜻대로 주물러 파멸시키는 그림이 그려진다. 소년에겐 업보가 있기에 뒤탈도 없었다. 클락처럼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내 방식대로.

   "…도와줄까?"

  그를 파멸시키면 된다.

  "도와, 준다고?"

  소악마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내민 제안에 신뢰성은 코빼기도 없었지만, 차마 도와준다는 그 한마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나나 소악마나 상황이 절박한 건 매한가지였다. 적어도 소악마의 시선에선 말이다. 소악마는 구미가 당기는지 촉촉한 눈매를 닦고 고개를 들었다.

  "어떻, 게?"

  다리도 잘리고 마법도 못 쓰는 열등한 단명종.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는 것이냐.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힘을 숨긴다면 말이다.

  "하, 흐…"

  나는 절망적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광인의 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미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이의 메마른 웃음이었다. 난 멀쩡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놀랍게도.

  소악마의 눈이 흔들린다. 악마의 본능이 당장 이 인간을 죽이라 경고했지만, 이미 한참 늦었다. 도망칠 수도 없다. 그는 미끼를 물었다. 나는 눈물로 흐릿해진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 도망칠 속셈이잖아. 나, 난 안 속아…!"

  "도망?"

  ―투둑.

  쇠사슬에 마나를 주입해 단번에 끊어버린다. 자유로워진 두 팔. 허망하게 갈라진 구속구는 힘을 잃고 쓸모없는 쇳덩어리로 돌아갔다.

  다리를 재구축한다. 붕대가 감긴 절단면에 기포가 끓는다. 이윽고, 그 위로 근육과 핏줄이 생성되더니, 끝내 새하얀 다리가 만들어졌다.

  "도망치려면 진작에 도망쳤어."

  막 재구축한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발목도 꺾이고, 무릎도 접힌다. 좋아. 아무 문제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몸에 묻은 불순물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자궁을 가득 채운 정액도, 입가를 더럽힌 흙과 고기 조각도, 이곳저곳에 묻은 핏방울도.

  "어, 어…?!"

  소악마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동안 옷을 재구축한다. 새하얀 맨다리 위로 천조각이 모이고 짜여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조금 꽉 조이는 가터벨트, 속옷 사이로 바람이 마구 들어오는 짧은 프릴치마. 나는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소악마에게 다가갔다.

  방금까지 다리 잘리고 밥도 제대로 못 먹던 년이 두 다리 멀쩡히 다가오니 코즈믹 호러가 따로 없었다. 소악마는 뒷걸음질 치며 괴상한 신음을 냈다. 하지만 뒤로 빠질 공간이 없자 두려움에 찬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오, 오지마아―!"

  ―후우웅…!

  날카로운 바람 폭풍이 정면으로 날아온다. 마탑으로 비유하자면 25층 정도의 낮은 공격 마법. 마나는 30층 마법사보다 많았지만 사용 효율은 그보다 더 낮았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악마였다.

  바람 폭풍의 지배권을 빼앗는다. 어려울 것도 없이, 검지를 드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지배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나는 지배권을 빼앗고 폭풍의 위력을 키웠다. 주변에 쌓여있는 물건이 날아간다. 강한 바람이 굴 안을 채웠다. 작지만, 강력한 소용돌이였다. 나는 칼날 폭풍을 창처럼 가늘게 만들어, 소악마의 얼굴 바로 옆에 던졌다.

  ―파아아앙!!!!

  날카로운 바람이 벽을 뚫고 들어간다. 소악마는 자신의 옆에 생긴 구멍의 깊이를 가늠하며 몸을 떨어댔다. 얼굴에 맞았다면 바로 뇌수를 흩뿌리며 수박처럼 터질 게 분명했다.

  "히, 힉."

  "이제 믿을 만 해?"

  상냥하게 협조한다 말은 없었다.

  나는 소악마 앞에 쭈그려 시선을 맞췄다.

  "가, 간―"

  "간칸 부를 생각이라면 접는 게 좋아. 간칸?"

  내 부름에 뒤따라온 간칸. 그 회색빛 말을 향해 오른손을 내민다. 그러자 간칸은 나를 따라 오른 발굽을 내밀었다. 왼손을 내밀면 왼 발굽을. 이 강아지같은 모습에 소악마의 눈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대, 대체 왜 이러는… 아, 으?"

  새하얀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우고, 훤히 드러난 창백한 피부에 이마를 맞댄다. 소악마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소악마의 이마는 악마답지 않게 적당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 으?"

  "잠시만, 가만히. 있어."

  손을 들어 소악마의 뺨을 어루만진다. 식빵처럼 말랑말랑했다. 클락과는 다른 신묘한 감촉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틀이면 토벌대가 널 죽이러 올 거야."

  "히끅…."

  "살고 싶다고 했지?"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올려 관자놀이를 더듬었다. 머리칼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뿔을 건드린다. 치명적인 급소. 그리고 마기와 마나가 모이는, 악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중요 부위.

  소악마는 뿔을 만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작했다.

  "뭐, 뭐하는 짓이야! 이, 이거! 놔, 놔아…"

  "…."

  "놔주세요오…."

  하지만 몸을 비틀기도 잠시. 내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자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깔았다. 나는 살기를 거두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

  이번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못 해도 수십 명이 죽었다. 기록되지 않은 모험가들을 합치면 최소 오십은 죽었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람이 죽는 건 비극적일 정도로 흔한 일이라 정보 전달 외의 감정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 그건."

  말을 끊는다.

  "변명이라도 하게? 그래, 무엇 때문일까. 대악마가 되고 싶어서?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탈피를 끝내고 강력한 악마가 된다면 더 많은 인간을 죽일 건가? 나처럼 인간 여성을 납치해 몬스터의 씨받이로 쓸 생각이야?"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이번에는 목으로. 손톱 끝에 강철 가시를 만들어 소악마의 목을 긋는다. 아주 얇게, 그리고 정교하게.

  "미안해. 널 살려둘 이유가 없어. 네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바로 목을 잘라버리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일 테고."

  핏방울이 소악마의 옷을 적신다.

  "아니면 산 채로 잡아다 성황청에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 영원을 사는 악마인 만큼 귀중한 실험 재료가 될 거야. 피를 뽑히고, 살점이 잘리겠지. 네 목숨줄이 붙어있는 한 영원히. 빛 한 번 못 본 채, 영겁의 시간을."

  소악마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뺨 아래로 눈물이 비처럼 흐른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파리한 입술을 핥아댔다.

  나는 옷소매를 잘라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살짝 찍어 맛을 보자 신맛이 느껴졌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악어의 눈물이로구나. 네가 진정으로 슬퍼한다면 머리를 박고 죽은 자를 향해 애도해야 했을 테지.

  "태어나길 악마로 태어난 가엾은 아이야."

  동정심을 연기한다. 나는 침통한 얼굴로 소악마를 끌어안았다. 못 먹어 마른 몸은 내 품 안에 모두 들어왔다. 커다랗고 부드러운 가슴이 소악마의 가슴과 맞닿는다. 나는 뜨거운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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