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93)

  * * *

  병사들의 무기는 석궁과 숏소드로 통일돼 있었다. 굴 형태의 미궁에 진입해야 하는 이상 리치가 긴 무기는 쓰지 못했다. 분진 때문에 마석폭열탄도 쓰지 못했고. 미궁 공략은 제약이 많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과 입을 열 수 없는 긴장감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으윽!"

  "베였나?"

  무엇보다.

  "죄송합니다!"

  "간단한 응급처치 후 바로 전진하겠다."

  우리를 방해하는 날카로운 풀.

  몬스터는 카미에르와 내가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부로 진입할수록 얇아지고 날카로워지는 풀들에 자칫하면 크게 베일 수 있었다. 특히나 하관절 부위가 문제였다. 로브 밑으로 들어온 풀이 가리지 못한 관절을 베면 그대로 기동력을 상실한다.

  "우와… 무, 무섭네요… 수풀도 많구요. 좀 제거하면서 갈 순 없나요?"

  "저것들은 타지도, 잘리지도 않아. 얼려서 깨트리거나 흙째로 뽑아버려야 하지."

  "히익…"

  나뭇잎 끝에 손가락 대자 곧바로 핏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병사들의 체력과 카미에르의 마나를 생각하며 미궁까지의 위치를 계산했다.

  '…그리 멀지는 않아.'

  짙어지는 마기.

  얼마 남지 않았다. 

  "힘들면 참지 말고 말해. 다치기라도 했는데 말 안 하고 버티면 화낼 거야."

  "…네, 네!"

  내 옆에 딱 붙어 요리조리 풀을 피한다. 발밑에 난 덩굴을 폴짝 뛰어넘기도 하고, 내려앉은 가지를 숙여 피하기도 한다. 클락은 이 짓에 재미라도 들렸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병사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고맙게도, 클락의 보폭에 맞춰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우으…."

  장거리 행군은 소년에겐 너무 가혹했다. 나는 점점 지쳐가는 클락을 보며 약간의 후회를 느꼈다. 새장 속에 두어 세상의 악의에 노출되지 않게 했더라면, 앵무새처럼 내가 원하는 말만 지저귀게 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허나 생각은 생각으로만. 난 누군갈 속박하는 취향은 없다. 파멸의 길로 유혹하되 강제성은 철저히 배제한다. 그게 묘미니까. 나는 땀을 줄줄 흘리는 클락의 이마를 쓱 닦아주며 말했다.

  "카미에르, 잠시만 휴식해도 괜찮을까요?"

  행군을 멈추고 휴식 요청을 한다. 카미에르는 주변에 위험한 몬스터가 없는지 눈에 힘을 주고 부라렸다. 이윽고, 아무런 위험 요소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손을 들어 병사들을 멈췄다.

  "알겠습니다. 몇 분이면 되겠습니까?"

  "오 분이면 돼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마법사는 귀중한 전력이니까요. 필요할 때 체력이 없어 힘을 쓰지 못한다면 저희만 손해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마법사다. 얼핏 들으면 자화자찬으로 들릴 수 있었다. 본인도 그걸 깨달았는지 머쓱한 얼굴로 칼을 집어넣었다.

  "오 분 휴식!"

  나는 카미에르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클락의 손을 잡았다.

  "어디 가십니까?"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제때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체력 보충을 하려면 그것만 한 게 없지.

  "하아으…? 으음? 어디 가는 거예요?"

  클락을 이끌고 외진 곳으로 향한다. 클락은 갑자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불안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나는 클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나를 흩뿌렸다. 감히 몬스터가 접근할 수 없게 살기를 담은 마나가 사방을 뒤엎는다.

  "힘들면 말하지 그랬어."

  "버틸 만, 해요."

  "거짓말하면 나쁜 아이야."

  "저, 정말인데…"

  변명은 필요 없다. 나는 옷 단추를 풀고 부드러운 가슴을 내보였다. 젖가리개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핑크빛 유선. 양손으로 살덩이를 집어 솟아오른 유두를 내민다. 클락은 목에 모터라도 단 듯 빠른 속도로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마나를 흩뿌리면서 주변 생명 반응을 모두 확인한 뒤다.

  "…우유 먹고 기운 차려야지?"

  "우으…"

  죽어가는 신음을 내는 것도 잠시. 내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짓자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유두를 잘근잘근 씹으며 우유를 탐한다. 모든 힘을 빼고 몸을 온전히 내게 기댄 채 젖 빨기에만 집중한다. 클락은 얼굴로 가슴을 짓누르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으응…"

  질내를 가득 채운 정액은 완전히 끈적끈적해져 하얀 슬라임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조금 움직인다고 빠져나오진 않았지만, 괴생명체가 자궁을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클락에게 젖을 물리면서 속옷 사이를 더듬었다.

  속옷을 살짝 당기자, 하얀 덩어리가 밑으로 삐죽 튀어나온다. 나는 손가락으로 정액을 밀어넣고 속옷을 입었다. 지금 빼기엔 아직 아쉬웠다.

  안 그래도 카미에르가 조금 눈치를 챈 상태였다. 그는 달라진 걸음걸이를 신경 쓰고 있었다. 정액이 새어 나오지 않게 부자연스럽게 걷다 보니 싫어도 알게 된 것이다. 주기적으로 코를 킁킁대기도 했는데, 어쩌면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것 또한 물증일 뿐이다. 평소대로 날 대하는 걸 보면 모르는 거일 수도 있고. 

  "다 마셨어?"

  "네에…."

  모유를 맛있게 마신 클락은 힘이 나는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돌아왔다. 클락의 입가를 닦아주던 나는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향해 뒤돌게 했다.

  "마녀님?"

  "잠시, 이것 좀 볼래?"

  장난스레 치마를 들치고 정액으로 질척해진 속옷을 보여준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속옷을 살짝 내려 꾸물꾸물 내려오는 정액을 보여준다. 클락은 꾹 닫힌 보짓구멍 사이로 흘러내리는 자신의 정액을 보며 폭발할 것마냥 얼굴을 붉혔다.

  "흐흥."

  "…."

  다시 정액을 집어넣고 속옷을 입는다. 클락은 어버버거리며 내 손을 잡았다. 확 퍼진 비릿한 정액 냄새가 코를 떠나지 않았다.

  "카미에르, 돌아왔어요."

  "음. 딱 맞춰 오셨군요. …흠?"

  "…네?"

  "어디서 달달한 냄새가… 아니, 음. 살짝 비릿하기도 하고, 흠?"

  "기, 기분 탓일 거에요."

  "종잡을 수 없는 냄새군요. 칼날숲의 나무에 진액이라도 있는 건지…"

  우리는 다시 합류하자마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커페이스에 능숙한 나는 금방 태연한 척을 할 수 있었지만, 클락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허둥지둥하기 바빴다.

  카미에르가 눈치채기 전에 뒤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조금 의심스러운 얼굴로 클락을 주시했다.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하지만 군주의 어깨에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미에르는 이내 눈을 거두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마, 마녀, 님. 그. 제 저, 정…"

  "쉿."

  "아으…"

  클락은 음란하기 짝이 없는 치태를 되뇌며 고장 난 기계처럼 걸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앞의 칼날 풀도 보지 못할 정도였다. 흐으. 재밌어라. 당황해 어푸푸거리는 클락을 보는 건 질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치지 않게 손을 잡아 길을 이끌어주었다.

  미궁에 도착하면 빼긴 해야 하는데… 타이밍이 잘 잡힐지 모르겠다. 여차하면 그냥 돌아갈 때까지 안에 담고 있어야겠다.

  "다시 움직이겠다!"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모유를 마신 덕분인지 클락도 지치지 않고 잘 따라왔다. 나와 카미에르는 점점 검게 변하는 풀을 보며 미궁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점점 많아지는 몬스터, 검다 못해 죽어가는 풀과 나무들.

  그렇게 정확히 서른넷의 몬스터를 해치웠을 때.

  일행은 미궁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돌무더기와 고목들이 잔뜩 쌓여있는 한적한 장소였다. 밑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에서. 탄생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몬스터가 흉측한 몰골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카미에르는 새끼 드레이크를 발로 으스러트리며 중얼거렸다.

  "…모두 정지하고 물자를 점검하겠다."

  이제부터 로브는 필요 없다. 카미에르와 병사들은 두껍고 답답한 로브를 벗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저들도 참았을 뿐이지 힘든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클락과 나도 마찬가지로 옷을 벗는다.

  "이 정도면… 열흘은 버틸 수 있겠군요."

  열다섯 명이 10일은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짐꾼이 최소한의 식량으로 버틴다면 최대 2주도 노릴 수 있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카미에르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쥐었다. 그가 강력한 마법사이긴 해도 결국 마나를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초짜였다. 수십 년간의 병사 생활이 그의 정신을 붙들고는 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손을 휘휘 저어 수신호로 대답했다. 카미에르가 피식 웃는다. 들어갈 준비는 이미 끝낸 지 오래다.

  "미, 미궁…."

  클락은 미궁의 포스에 압도당해 내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오오…

  불길한 바람 소리가 메아리친다. 희미하게 보이는 내부는 대각선으로 깊게 파여있어 등반 장비가 없다면 쉽사리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와 카미에르는 몰아치는 마기를 떨쳐내고 미궁 근처로 다가갔다.

  수직 동굴을 떠올리게 할 만큼 경사가 급하다. 나는 마나를 흩뿌려 내부 깊이를 확인했다. 바닥까지 내려간 마나의 길이를 측정한다.

  '120m…?'

  미친. 왜이렇게 깊어? 다시 말하지만, 입구부터 바닥까지의 길이다. 밑으로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상당히 깊숙하군요. 내려가는 도중 실족이라도 한다면…"

  "계단."

  "네?"

  "계단이 필요할 것 같네요."

  카미에르를 치우고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양 손바닥을 바닥에 대었다. 모두가 나를 지켜본다. 흡사 기도자가 떠오르는 자세였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쿠구구…

  흔들리는 지면.

  땅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으윽?!"

  "마, 마녀님?"

  갈라진 땅 사이로 푸른 빛이 솟아오른다. 땅 깊숙이 침투한 마나는 땅을 가르며 미궁으로 향했다. 나는 주변 일대를 통제하에 두고,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마나의 격류. 난폭한 소음이 발생한다. 쿠구그, 쿠궁, 카가각 하는 소리가 주변 일대를 뒤엎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는 소리였다. 미궁 근처에 있던  돌무더기와 고목들은 두둥실 떠오르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미궁 안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판단해, 땅을 통째로 들어 미궁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

  카미에르는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내 의지대로 깎이고 조립되는 흙계단. 미궁 아래서부터 울리는 난폭한 소음은 계단이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나는 120m에 다다르는 깊은 입구에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

  눈을 뜨면, 거대한 계단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우리를 환영했다. 밋밋할 것 같아 계단 사이사이 소용돌이 문양도 새겨넣었는데, 하필 미궁 입구라 그런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후으. 이제 내려갈까요?"

  오랜만에 힘썼더니 땀이 절로 났다.

  "…."

  "…."

  헌데 클락도, 카미에르도.

  입을 벌린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곧 소란은 사라지고 감탄만이 주변을 에워쌌다. 병사들이 반전된 상황에 열렬한 환호를 보낸 것이다. 장비로 힘겹게 내려갈 생각에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계단이라니. 나를 향한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붉은 마녀를 데려오길 잘했다느니, 이런 마법은 살면서 처음 본다느니 카미에르의 인맥을 찬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별 감흥은 없었다. 칭찬을 바라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따위 것에 심경이 변하기엔 너무 뒤틀려 있었다. 클락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는 게 몇 배는 더 보람찼다.

 주먹만 한 광원 구체를 만들어 공중에 띄운다. 나는 병사들에게 턱짓하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가, 같이 가요!"

  클락은 허겁지겁 짐을 챙기며 따라왔다.

  미궁에 계단을 세웠다 해도 가파른 경사까지 해결할 수는 없었다. 밑을 내려다보면 여전히 깊고 깊은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나는 클락에게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손을 꼭 잡았다.

  "클락. 지금부터는 수신호만 사용해서 얘기할 거야. 종류는 기억하고 있지?"

  한쪽 손을 흔들어 대답한다.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까먹기라도 하면 종이에 글 쓰고 나한테 보여줘. 알겠지?"

  끄덕끄덕. 손아귀에 힘을 주며 바짝 따라붙는다. 본래라면 계단을 만든 방법을 집요하게 캐물을 게 분명했는데, 겁을 잔뜩 먹었는지 경직된 몸으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나는 클락이 진정할 수 있게 꼭 안아주었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게 해주고, 등허리를 꽉 끌어안자 곧 떨림이 잦아들었다. 클락은 얼굴을 떼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진정된 모양이었다.

  클락을 풀어주자 카미에르와 병사들의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나와 클락의 관계를 정확히 모르는 저들로선 그냥 사이가 좋나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자, 용기 내서 가야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총 길이 120m. 밑으로는 대충 1,700개 정도의 계단이 깔려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숫자. 구태여 말하진 않기로 했다. 깊이와 계단 수를 말해주면 긴장이 풀릴 수도 있으니까. 적당한 긴장감이야말로 어느 무구보다 안전하게 목숨을 지켜준다.

  "어둡네요… 으으, 조금 춥기도 하고… 아. 음. 죄송해요. 수신호로 말해야 하는데…"

  "괜찮아. 아직 입구잖아."

  하지만, 과한 긴장은 독이 되는 법이다.

  "―으아악!"

  칠백 번째 계단에서 기어코 발을 헛디딘 사람이 나왔다. 짐을 메고 있는 병사였다. 그는 빗방울이 고인 계단을 밟고 쭈욱 미끄러졌다.

  "조심, 하세요."

  염동력으로 뒷덜미를 붙잡아 일으켜 세운다. 짐도 다행히 건졌지만 물통이 몇 개 떨어졌다. 병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카미에르에게 꾸중을 듣곤 축 처진 어깨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이런 사소한 이슈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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