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193)

  "츄읍… 후읍…"

  "흐응…"

  출정 시간을 감안하면 그냥 이대로 빨게 해두는 것도 좋아 보였다. 체력을 충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흐으응…."

  나는 클락의 정수리에 코를 들이대고 진한 수컷 냄새를 들이켰다. 성흔이 붉게 빛날 정도로 강한 수컷 냄새. 클락은 이미 하나의 수컷이 되어버렸다.

  "하아… 흐읏."

  아침 해가 밝으려면 못해도 세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자극하는 수컷 냄새를 참지 못하고, 또 젖을 빨아대는 쾌감을 버티지 못하고 질구에 손가락을 넣어 자위를 시작했다.

  내가 아침 해를 맞이한 건.

  질퍽거리는 소음에 눈을 뜬 클락과 세 번 섹스하고 나서였다.

  "클락, 옷 단단히 껴입고, 후드랑 입가리개도 챙기고, 장갑이랑 목도리도 챙겨."

  "너무 덥지 않을까요?"

  "칼날숲이잖아. 맨살이 드러날 부위는 전부 가리는 게 편해. 베리어를 두르고 다니기엔 너무 좁으니까."

  나는 미궁 공략에 나서기 전 필요한 물품들을 꼼꼼히 점검했다. 배낭에 옷가지를 꾹꾹 눌러 담으며 클락의 짐을 챙겨준다.

  좀 과하게 챙기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클락은 34층에 머무는 마법사이긴 해도, 전투는 영 꽝이었다. 마탑에서 하는 일도 보면 무기 개발이 주를 이루었고, 굳이 따지자면 마법사보다 마도 공학자가 더 어울렸다.

  그런고로, 칼날숲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지 않게 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나머지 위협은 내가 지켜줄 수 있으니까.

  꽈악! 배낭끈을 조이고 클락에게 건네준다. 옷 단추를 잠그고 배낭을 맨 클락은 빠진 게 없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두리번거렸다.

  "가자. 곧 출정이야."

  "…네!"

  후드와 케이프를 두른다. 클락은 조금 긴장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위험하다고 소문 난 칼날숲을 뚫고 미궁으로 향한다. 그것도 최전방에서. 일단 내가 권유해서 따라오긴 했지만, 앞서 말했듯 클락은 전투에 재능이 없었다. 나는 문을 열기 직전 클락에게 말했다.

  "괜찮아. 긴장 풀어."

  "으… 카, 칼날숲엔 목 없는 괴물이 살고 있다 들었는데…"

  "목 없는 짐승 간칸. 하지만 소문일 뿐이야."

  "그래도오…"

  "안아줄까?"

  클락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곧 얼굴 전체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아무런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는데도 '안아줄까?' 한마디에 저리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필히 오늘 밤 있었던 격렬한 정사 때문이리라.

  자존심도, 책임도 모두 내려놓은 응석 부리기 섹스. 오래 갈 필요도 없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아침 대딸을 받은 상태였다. 클락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방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나는 왜인지 햄스터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러곤 클락의 등허리를 염동력으로 끌고와 내게 다이브시켰다.

  ―풀썩!

  발을 헛디딘 클락이 가슴에 얼굴을 처박는다. 나는 묵직한 감각에 등을 뒤로 젖히며 클락을 끌어안았다.

  "뭘 고민하는 거야?"

  "으읏?!"

  "내가 했던 말 잊은 거야?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땐…"

  "자, 잠깐―"

  "…마음대로 응석 부려도 된다고 했잖아."

  클락의 바지춤에 허벅지를 겹친다. 옷 위로 부풀어 오른 물건이 허벅지를 찌른다. 덫에 빠진 클락은 잠시 어푸푸거리더니, 끈적한 속삭임을 듣곤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진정될 때까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게 내버려 뒀다. 엄밀히 따지자면, 진정보다는 뇌를 비우게 하고 있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안 무섭지?"

  "…네."

  "잘했어. 그러면 가자. 이러다 늦겠다."

  클락을 떨어트리고 문을 연다. 클락은 한껏 발기해 움직임이 조금 어정쩡했지만, 이내 잘 참아내고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 * *

  파헬른 성문 앞.

  클락의 손을 잡고 성문 밖으로 나가자, 병사들과 말들이 평원 위로 오와 열을 이루어 땅을 박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는 말을 제외하고 대략 오십 정도 되어 보였다. 상당히 많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궁 공략 적정 인원은 코어 파괴를 기준으로 숙련된 병사 열 다섯일 텐데. 그래도 칼날숲을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긴 했다.

  "모두 준비해라!"

  저 멀리 카미에르의 힘찬 호령이 들린다. 저쪽이구만. 그보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날린다. 나는 후드와 머리칼을 뒤로 날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카미에르!"

  "…음?"

  병사들의 진형을 짜 맞추고 있던 카미에르의 시선이 돌아간다.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얼굴에 준 힘을 풀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셨군요. 준비는 되셨습니까?"

  "물론이에요."

  "유진 님과 조수는 저를 포함한 병사 여섯과 칼날숲을 돌파할 겁니다. 먼저 출발해야 하니 어서 오시지요. 말은 타실 줄 아십니까?"

  "으음…"

  모른다.

  나 혼자였으면 카미에르 등 뒤에 탔을 텐데. 그도 그걸 기대하고 있는 듯했고. 하지만 클락이 걸렸다. 안 그래도 겁 많은 아인데 나랑 떨어지면… 음. 과보호인가. 그래도, 내 옆에 딱 붙어있으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벌써 갈라질 수는 없었다.

  "대충, 은요."

  결국 거짓말을 한다. 카미에르와 클락의 희비가 교차한다. 카미에르는 무척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클락은 '역시 마녀님!' 이라며 나를 칭찬하기 바빴다.

  '마법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

  타는 법 정도는 안다. 모는 법을 모를 뿐이지. 기계도 아니고 생명체를 다루는 것이라 걱정이 밀려들었지만, 말 따위의 가축들이 이상할 정도로 내게 온순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카미에르는 클락을 향해 말했다.

  "클락. 말 타는 법을 아나?"

  "음, 아니요!"

  클락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흠…."

  카미에르는 턱에 손을 올리며 고민했다. 클락이 내 조수로 활동하면서 별다른 힘을 쓴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잉여전력이란 건 절대로 아니었다. 마법사는 마법사다. 그것도 최전방에 나갈 마법사. 아마 그는 클락을 자기 뒤에 태워야 하나 고민 중일 것이다.

  하지만.

  "클락."

  "네?"

  카미에르의 턱에서 떨어지고,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나는 클락의 손을 붙잡아 내 뒤로 빼돌렸다. 카미에르의 눈이 반쯤 접힌다. 나는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내 뒤에 타."

  카미에르는 걱정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덩치도 작은데, 뒤에 누굴 태워봤자 지탱은커녕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니냐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를 만류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출발이 코앞이다.

  "선두는 들어라―――!!!!"

  주변 풀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외침. 병사들의 허리가 바짝 올라간다. 카미에르는 자신이 끌고 온 말을 타며 다시금 외쳤다.

  "삼 분 후 출발하겠다!! 후발대는 십 분 후 보급 부대와 함께 출발하도록!!!"

  ―예!!

  우리는 후발대가 수월하게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했다.

  "클락. 우리도 빨리 가자."

  "네, 네! 전 뒤에 타면 되나요?"

  "응."

  카미에르가 준비해준 말을 한 번 쓰다듬은 뒤 기승대를 밟고 올라탄다. 다리가 짧아 조금 힘이 들었으나, 말이 고맙게도 등허리를 낮춰 올라타기 쉽게 해주었다. 똑똑한 놈 같으니라고. 보니까 수컷이었는데… 음. 아니겠지. 설마.

  "읏, 차!"

  등자쇠에 발을 걸고 말을 몰 준비를 끝마치자 클락이 마저 올라탄다. 그는 높아진 시야에 덜덜 떨며 내 등을 껴안았다. 나는 마나의 실을 풀어 클락의 하반신을 꽉 묶어주었다.

  "마, 녀님? 떨어지는 건 아니겠죠?"

  "허리 꼭 잡고 있어. 실로 고정했다고 안심하지 말고."

  솔직히 바른 자세같은 건 모르겠고, 나도 클락처럼 마나를 써 억지로 몸을 고정한 상태였다. 고삐를 쥐고 말의 허벅지… 를 두드리려 했으나 이 또한 다리가 짧아 허리를 두드리는데 그쳤다.

  ―히이잉!!

  권승. 말이 평원을 둥글게 돌기 시작한다. 말은 사실상 처음 모는 거라 조금 긴장됐지만, 다행히 내 의지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나는 고삐를 들고 약하게 내려쳤다.

  "가자!"

  이랴.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부대의 말들을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뒤처지면 텔레포트까지 쓸 의향이 있었다.

  ―꽈아악…

  그래도.

  "히, 히익―!"

  이렇게 등허리를 껴안는 클락을 보면 잘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 * *

  ―다그닥, 다그닥…

  흙먼지를 뿜으며 평원을 가로지르는 일곱 마리의 말. 나는 엄청난 속도감에 눈을 찡그리고 방향 조절에 온 힘을 쏟았다. 말이 뛰어난 건지, 내가 잘 모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들을 따라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전방에 고위험군 몬스터 발견!"

  "계속 달려! 내가 해치운다!"

  "예!"

  어지간한 몬스터는 카미에르 선에서 정리됐다. 그는 말을 타면서도 정교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사 이전에 병사로 활동한 이력이 길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손을 뻗어 손바닥 위로 마법진을 생성하자, 차가운 한기가 우리를 감쌌다. 그는 전방에 진을 치고 있는 오크무리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쩌저저적…!!!

  프리즈.

  간단하지만 술사의 실력에 따라 위력과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마법. 경로를 가로막던 오크 무리가 단체로 얼음 조각상이 되어버린다.

  "유진! 부탁합니다!"

  처리한 건 좋았지만, 얼음 마법 특성상 사체가 그 자리에 남는다. 화염계나 전격계 마법이었다면 몬스터가 이리저리 뒹굴면서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겠지만… 뭐 됐다. 나는 내 역할을 다하면 되는 거다.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외쳤다.

  "그냥 그대로 부딪히세요―!!!"

  ――쨍그랑!!!

  나는 질주하는 말들이 오크에게 부딪히기 전 베리어를 씌워주었고, 꽁꽁 언 오크들은 가공할만 한 속도로 다가오는 베리어에 직격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얼어버린 내장조각과 오크의 머리통이 베리어를 긁으며 주변으로 흩어진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앞을 막는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따라붙는 들개 따위는 병사들 창질 몇 번에 나가떨어졌고, 오크나 그리핀같은 고위험 몬스터는 카미에르의 마법 한 방에 눈가루가 되어버렸다.

  나는 얼어버린 사체에 걸리지 않게 베리어를 씌워줄 뿐이었다.

  "곧 칼날숲입니다―!!!"

  병사들의 외침. 지평선 너머로 회색빛 숲이 보인다.

  칼날숲.

  자생하는 모든 식물이 칼날처럼 날카롭다는 숲. 스치기만 해도 깊게 베일 수 있어 칼날숲이란 이름이 붙었다. 색마저 도검마냥 회색빛을 띠니 적절한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클락, 버틸 만 해?"

  "으, 으으…"

  겁 많은 클락은 내 배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벌벌 떨었다. 다행히 울렁증 없는 듯하였지만, 얼굴색이 창백한 걸 보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자, 응?"

  "아으, 네, 네헤."

  한 손으로 고삐를 몰고, 다른 한 손으로는 클락의 손을 쥔다. 화들짝 놀라는 클락.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보았다. 나는 후흐 웃으며 몸을 돌렸다. 앞이 아닌 뒤로, 클락이 앉아있는 곳을 향해서.

  "아, 으. 마녀님!! 앞!! 앞!!"

  "앞에 아무것도 없어. 진정해."

  말의 속도를 약간 늦춰 가장 뒤로 간다. 카미에르와 병사들은 앞을 보고 전진하느라 우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 말, 똑똑하니 괜찮을 거야."

  나는 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게 승마의 재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말이 알아서 가던 거였다. 말은 내가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울음소리를… 이 놈 진짜 뭐지. 지성이 있는 놈인가.

  "그, 그래도!! 사, 상식, 적으로!! 고삐를 놓으, 면!!!!"

  "후후."

  "웃지만 말고 제발 제대로 몰아주세요!!!"

  주변 몬스터는 씨가 말랐는지 보이질 않았다. 앞으로 십 분 정도만 달리면 칼날숲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벌벌 떠는 클락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으으…!!""

  말 위에서 휘청거린 클락은 헛숨을 들이키며 가슴 위로 얼굴을 묻었다. 보아하니 도착할 때까지 얼굴을 떼지 않을 생각이었다. 상관없었다. 위험 요소는 전부 배제된 상태였으니까.

  이대로 젖을 물리기엔…

  들키려나. 음. 역시 안 되겠다.

  "제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제발…"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다음이 아니라, 지금…!!"

  칼날숲에 가까워질수록 흐릿한 마기가 느껴졌다. 카미에르나 다른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악마를 여럿 족쳐본 경험이 있는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끈덕지고, 혐오스러운 감각. 잊을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훑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능구렁이가 척추를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기 때문은 아니지만, 바닥에 자란 풀들은 푸른색에서 점차 잿빛으로 변해갔다. 칼날숲의 영역에 접근했다는 소리였다.

  "곧 도착이야. 내릴 준비 해 클락."

  "후으…."

  칼날 풀에 발굽이 베이지 않게 속도를 늦춘다. 전진할수록 땅이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이윽고 사방에 칼날 풀밖에 보이지 않자, 카미에르는 말을 멈춰세우고 주변을 경계했다. 아직 칼날 풀의 경도가 낮은 초입 부분에서 진을 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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