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93)

  날아오는 나이프를 염동력으로 튕겨내고 투척자를 탐색한다.

  ―킥킥.

  질 낮은 웃음소리. 보아하니 장난으로 던진 것이었다. 눈이 풀려있는 걸 보니 뽕 좀 투여했나 보다. 그는 내가 나이프를 손쉽게 막아내자, 얼굴을 찡그리며 마약 흡입에 집중했다.

  대가리를 터트려버릴까 했지만, 그냥 흔해빠진 약쟁이였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 같아 무시했다.

  "마, 마녀, 님.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요? 그, 도, 돈은."

  "클락. 사람 죽여본 적 있어?"

  "…한두 번 정도요."

  어린 나이에 혼자 세상을 떠돌아다니면, 미친놈을 안 만나려야 안 만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순수한 클락이라도, 순수한 '악의'를 마주한 적이 몇 번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발적 살해와 고의적 살해는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법.

  하아.

  클락이 잘 견뎌냈으면 좋을 텐데.

  한쪽 팔을 뻗어 주먹을 쥔다. 염동력.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발버둥을 무시하고 손을 크게 들었다.

 그리고.

  "하아… 주제는 파악하고 달려들지 그래?"

  그대로.

  내려친다.

  ――콰아아앙!!!

  

  버러지 새끼가 너무 많았다. 나는 염동력으로 피떡이 되어버린 사내 하나를 건져 올렸다. 기절과 동시에 위장 술식이 풀려버렸다. 아까부터 따라오던 놈인데, 위장 술식까지 쓸 정도면 뒷골목과 깊숙이 연관된 게 분명했다. 납치가 목적일까. 아니면 암살이라든지.

  "클락. 혼자 돌아갈 생각 하지 마. 절대로."

  그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뺨에 튄 피를 닦아내며 앞으로 나갔다. 좌표는…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어난 소동을 들은 것 같았다.

  "속도 높이자 클락. 달릴 수 있지?"

  "네, 네!"

  풍風속성 마법까지 쓰며 속도를 높인다. 클락은 발이 가벼워지자 깜짝 놀라며 내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자.

  뒷골목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요…?"

  클락은 막다른 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좌표는 이곳이 확실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에 마나를 뿌렸다.

  '전원 위장 술식. 다섯 명.'

  따라갈걸 알고 있었던 걸까. 단체로 위장 스크롤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클락을 뒤로 숨기며 속삭였다.

  "클락."

  "네?"

  "지금부터, 내가 살짝 다칠 수 있어. 음. 살짝이 아니라 좀 많이."

  "…마녀님?"

  "놀라지 말고, 눈물 흘리지 말고, 의심하지 말기. 약속이야?"

  "네, 네? 잠시만요. 다, 다친다구요?"

  "약속."

  "…야, 약속할게요."

  "좋아."

  ―…툭.

  나는 발밑으로 굴러오는 회색빛의 구체를 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마석폭열탄. 내가 개량한 폭탄이었다.

  "흐… 죽기 좋은 날씨네. 그렇지?"

  한창 모험가 등급을 올리고 있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피 닦는 것조차 귀찮아 늘 피투성이로 다녔다.

  어차피 또 묻을 거거든.

  사람들은 항상 피칠갑을 하고 다니는 나를 향해 말했다.

  "근데 내가 아니라 너희가."

  붉은 마녀라고.

  ――퍼어어어엉!!!!!!

  용처럼 솟아오르는 화염. 마석폭열탄은 폭발 범위에 일정 시간 후 사라지는 화염을 남기는 마법식이 내재 돼 있다. 이 말인즉슨, 시가지나 숲속에서도 용이하게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마음껏 불타오르다가도 귀신같이 사라지니까.

  "하큭, 큭."

   나는 큭큭 웃으며 클락에게 베리어를 씌워주었다. 뒤로 충격파를 쏘아 클락을 저 멀리 날려 보낸다. 땅을 구른 클락은 연신 두리번거리더니 자리를 잡고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잡것들이 건드릴까 걱정이 좀 됐지만, 베리어도 있으니 웅크리기만 해도 잘 살아나갈 것이다. 애초에 34위계 마법사이기도 하고.

  "약, 해."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전신을 뒤엎는다. 하지만. 페카폴리스보다 약했다. 이 정도 불길 가지고 아크 메이지의 사고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개량한 무기이긴 하나, 양산형에 초점을 두어 술식 자체의 위력은 형편없었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화염을 한데 모았다. 뜨거운 공기가 잦아들며 화염에 휩싸인 마법사 한 명이 드러난다. 옷과 살점이 눌어붙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내 모습이.

  "……!"

  화염을 흡수한다. 사그라드는 불길. 나는 타버린 얼굴을 신속하게 재구축하며 쥐새끼들을 눈에 담았다. 위장 술식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데도 정확히 시선이 맞는다. 그들은 몸을 흠칫 떨며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하…."

  결국. 도구에만 의존하는 머글 새끼란 말이지. 나는 흡수한 화염을 공처럼 말아 허공에 발사했다.

  ―화아아아악!!!

  "아아악!!! 아아아악―!!!!"

  한 놈에게 직격한 불덩이는 쥐새끼를 숯덩이로 만들어버렸다. 흡수한 동시에 위력을 높였다. 보호 술식도 없이 이 위력을 버틸 리 없었다. 위장 술식이 풀리며 시체 한 구가 바닥에 쓰러진다.

  "이런, 씨발!"

  "덮쳐!!"

  오른쪽에 두 명. 왼쪽에도 두 명.

  우선은 가장 가까운 놈부터 처리해야 한다.

  "뒤, 져!!"

  오른쪽에 있던 한 놈이 달려든다. 그는 목덜미를 향해 나이프를 내질렀다. 경동맥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 살수다. 마석폭열탄을 사용하는 걸 보면 군 보급품에서 빼돌린 거 같은데, 그걸 감안하면 못해도 군인 출신이었다.

  어찌 됐든, 맞으면 바로 리타이어다. 나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나이프를 막았다.

  ―콰직!

  맨손으로.

  "하윽."

  손바닥을 관통하는 짜릿한 통증에 입꼬리를 찢어질 듯이 올린다. 나이프를 내지른 놈은 설마 맨손으로 막을 줄은 몰랐는지 황당해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뭐야 씨발! 안 빠져!"

  허나. 손아귀에 힘을 줘 나이프가 잘 빠지지 않았다. 마나까지 이용해 고정했으니까. 나는 손목 아래로 줄줄 흐르는 피를 보며 혈류를 조정했다.

  그 순간.

  나머지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쿵! 달라붙은 놈의 배를 걷어차 날려버린다. 나는 손에 박힌 나이프를 뽑곤 핏물을 잔뜩 모아 사방으로 흩뿌렸다. 쥐새끼들은 가소로운 코웃음을 치며 칼을 뽑았다. 피는커녕 독극물 뿌리기가 매일같이 벌어지는 뒷골목. 알량한 시야 방해다. 

  그러나 저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

  '피가 좀 모자라네…'

  시야 방해를 목적으로 피를 뿌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좀만 더 뽑을까.'

  느려진 사고 속에서. 오른팔을 향해 검을 내리치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각도와 경로를 조정해 정확히 팔꿈치 아래가 베일 수 있게 팔을 내밀었다.

  ―서컹!!

  "하윽, 큭."

  뼈 갈리는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피가 쏟아지며 바닥을 더럽힌다. 검붉은 핏물의 내음은 비릿하다 못해 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통에 입술을 짓이기도 전에 왼쪽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푸욱!

  옆구리. 사선으로 베인다. 살갗을 가를 때의 통증은 약간의 쇠맛을 동반했다. 나는 씹다 못해 터진 입술에서 주륵 흐르는 피를 삼키며 휘청거렸다. 내장이 살짝 삐져나온 것 같기도 하고.

  ―퍼억!

  이번에는. 가장 가운데에 있던 놈이 발길질을 날려 저 멀리 날려버렸다. 명치를 걷어차인 나는 클락이 있는 자리까지 날아가 땅을 굴렀다. 클락의 눈이 미친듯이 흔들린다. 창백해진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무기만 만들더니 실속은 없구만. 퉤."

  "얼굴은 반반한데 한 발 뽑고 가면 안 되나?"

  "제발."

  "얼굴은 그대로잖아."

  "불에 녹아 눌어붙은 보지에 씹질 하느니 벽돌에 박겠다."

  그들은 내가 쏟은 피 웅덩이 위에 서 낄낄거렸다. 기포가 끓는 검붉은 웅덩이. 지금도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있는 불길한 피 웅덩이 위에서.

  "거, 기."

  나는 쇼크로 기절하지 않게 피를 뽑아내며 말했다. 쥐새끼들은 나이프를 굴리며 내게 엿을 날렸다. 승리를 확신한 얼굴이었다.

  "곧 뒤질련이 뭐라냐? 왜 살려달라고?"

  내게 다가오려는 클락을 손을 저어 막는다. 그와 동시에, 눈 위에 베리어를 생성해 시야를 차단했다. 클락은 앞이 안 보이자 허둥지둥 댔지만, 의심하지 말라는 내 말을 기억하곤 얌전히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거기. 서 있으면, 안 된다고."

  한 명은 사정거리 밖에 있지만… 상관없었다.

  "저 애새끼 갖다 팔면 얼마 나오는지 아는 새끼 있냐?"

  "금화 한 장은 받을 거 같은데. 얼굴도 반반하고 여리여리하니 남창으로 팔면 딱이네. 근데 손목이랑 혀는 끊어라 씨발럼아 좀. 저번에 대충 넘겼다 지랄 난 거 몰라?"

  가장 앞에 있던 놈이 대표로 나와 나를 끝장내러 온다.

  "…."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손.

  힘겹게 들어 손가락을 튕긴다.

  ――쩌저적…

  "일단 돈 더 가졌는지부터 확인…"

  콰직.

  "…."

  콰득, 콰직. 쿠득. 크드득. 살과 근육이 뜯기는, 결코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귀를 맴돈다. 원초적인 공포가 몸을 잠식한다. 나이프를 굴리며 내가 걸어오던 쥐새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발을 멈췄다.

  "뒤, 안 돌아. 봐?"

  

  그는 내 말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마른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고개만 돌렸다. 그러곤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아 뒷걸음질 쳤다.

  "저, 저게 뭐야. 씨, 씨발."

  피 웅덩이에서 솟아오른 아귀餓鬼가.

  쥐새끼들의 눈과 입을 막고 자신이 있던 핏물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일종의 소환술식이다. 혈법血法의 한 종류이기도 하고. 아귀는 피를 이용해 '나'를 불완전하게 따라 한 괴물이다. 의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술사의 명령과 본능만을 따라 움직이기에 애초에 저걸 생명체라 부를 수도 없었다. 굳이 비교한다면 아메바, 정도려나.

  ―그어어…

  이쑤시개처럼 얇은 팔다리에 비대하게 솟아오른 배. 그리고 피로 이루어진 몸은 역겨운 냄새를 사방으로 풍겼다.

  아귀는 벌써 두 명이나 먹어 치웠는지, 피 웅덩이에선 살점과 내장 조각이 쉴 새 없이 솟구쳤다. 웅덩이 속으로 끌려간 놈이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계속해서 튀어 오르는 내장 조각을 보면 믹서기마냥 갈리는 것 같았다.

  "후우…."

  마탑에서 읽어본 흑마법 관련 서적을 어설프게 따라해본 결과였다. 정확하게 따라하는 법은 안 적혀있어 내 상상대로 만들어봤는데… 들키면 아마 이단 심문을 받지 않을까 싶다. 성능과 별개로 다시는 안 써야겠다.

  몸을 완전히 재구축한다. 잘린 팔은 물론이고 살에 눌어붙은 옷까지 전부.

  "오랜만이라, 뻐근하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오랜만이었다. 짧게 끝나버려 조금 아쉬웠지만, 클락도 있고 내일 공략도 준비해야 하니 이 정도면 적당했다. 나는 주저앉아 벌벌 떠는 쥐새끼에게 다가가, 곁에 웅크리며 말했다.

  "…너도 저기 들어갈래?"

  ―퐁.

  마침내 세 명을 모두 먹어 치운 아귀는 입에서 돈주머니를 뱉어냈다. 동전은 입맛에 안 맞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거칠게 쏟아냈다. 쥐새끼와 아귀의 시선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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