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93)

  벌써 아침이다. 오전 여섯 시쯤 되려나. 나무판자에 스며든 핏물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말라 비틀었다. 부패한 시체가 풍기는 냄새는 고약했지만, 돈만 주면 알아서 치워줄 것이다. 아마도.

  ―끼익, 끼익.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소리가 났다.

  "…."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여관에 숙박해있던 손님들이 아침밥을 처먹고 있었다. 수는 대략 여섯 명.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만석을 이루었다.

  그리 유명한 여관도 아니고, 구석진 곳에 있음에도 이렇게 사람이 몰린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붉은 마녀가 항상 묵는 여관. 그렇게 소문나지 않았을까.

  그 인원만큼 종류도 다양했다. 청옥공주의 얼굴을 보러 온 사람도 있었고, 붉은 마녀를 스카웃하려는 종자들도 있었다. 당연히 다 거절했다. 저런 허접한 데 시간을 낭비하기엔 내가 너무 아깝다.

  만약. 잔혹한 성정이라 소문났으면. 이런 날파리들 따위 꼬이지 않았을 텐데. 매사 조용한대다 짐꾼을 부릴 땐 항상 경어를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존댓말을 쓰는 모험가는 별로 없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어, 어…."

  "…크흠."

  얼굴과 몸에 피를 잔뜩 묻히고 내려왔으니까.

  몸에선 약간의 시체 냄새도 났다.

  하긴 조용하게 처리하긴 했지. 문까지 닫혔으니 그 소란을 못 알아차릴 만도 했다.

  "하아으…"

  묘하게 야릇한 소리가 나왔다.

  몽롱한 얼굴로 여관 주인에게 다가간다. 그는 겁을 먹었는지 자꾸만 내 눈치를 봤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품속에서 은화 세 장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부했한다.

  "…시체 좀 치워주세요."

  "시체, 라고?"

  "야밤에 누가 칼 들고 달려들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죽였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미, 믿겠네! 그래서, 이 돈은?"

  "난장판 만들어서 죄송해요. 수고비에요. 잔돈은 안 받을게요."

  시체.

  그 소리가 나자 움찔거리는 손님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뒤진 그놈의 동료로 추측됐다.

  여관 주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에 묵는 동안 씀씀이가 좋아서 그런지, 나와 여관 주인은 두터운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오직 돈으로 이루어진 관계였지만, 더없이 충분했다.

  밥은 먹지 않았다.

  "…."

  시체라는 말에 움찔거렸던 사내들을 한 번 노려본다. 그 후 무심하게 등을 돌려 거리로 나섰다. 경고를 했으니 쫓아오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지. 나는 내게 칼을 들이대지 않는 이상 죽이진 않는다.

  몸에 묻은 피는… 어차피 또 피투성이 될 텐데 그냥 내버려 두자. 거리에 피 묻히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동부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일지 몰라도 여기는 서부다. 마법과 모험의 도시 브리도니아. 다른 말로 야만과 폭력의 브리도니아.

  모험가 길드는 모험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지 않은 날이 있었던 것 아니지만. 아무튼.

  "자자 여러분~ 오늘부터 고블린 집중 토벌 기간이니 모두 사냥에 힘써주세요~!!"

  오늘의 메리는 아침반이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웃으며 목소리 내기 쉽지 않을 텐데 직업 정신이 참 투철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무서워하는 듯했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놓고 티 내진 않았다.

  "아, 유진 님!"

  그리고 메리는. 날 유일하게 '붉은 마녀'가 아닌 유진이라 부르는 인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빵긋 웃으며 손짓했다. 이리로 오라는 걸까. 나는 거의 감은 눈으로 좀비처럼 걸어갔다. 현자 타임 때문인지 살짝 무기력했다.

  북적이던 모험가들은 내가 다가가자 모세의 기적이라도 되는 듯 양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늘따라 활기차네요. 새로운 임무라도 있어요?"

  "유진 님도 평소처럼 피투성…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새로운 임무에요! 그런데…!"

  "…그런데?"

  메리는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한 눈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누런 싸구려 종이가 아닌, 새하얗고 매끄러운 종이였다. 위로는 붉은 봉랍까지 붙어있어 어딘가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봉랍을 떼기 전, 메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며 또 다른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신이었다.

  "지명 의뢰에요!"

  "지명 의뢰?"

  "승급 시험을 겸한 지명 의뢰에요! 무려 영주님 주관이에요! 이번 임무를 완수한다면 유진 님은 A등급 모험가에요! 제국에서 백 명 언저리라는 A등급! 제가 일하는 곳에서 A등급 모험가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끈이 풀어지며 두루마리가 펼쳐진다. 그 순간 메리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가슴을 부풀린다. 이윽고,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파하르 슈발리에 브리도니아의 입을 대신해 전한다! 마법사 유진, 그대가 보여준 무위武威는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의 인정을 받을 만하다. 나 또한 그대의 활약상을 익히 들은바, 이러한 인재를 방치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니 그대에게 걸맞은 임무를 내리도록 하겠다."

  지명 의뢰. 그것도 승급 시험을 겸한. 주변 모험가들은 저마다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얘기를 나눴다.

  ―결국 A급을 가는구만.

  ―붉은 마녀 정도면 그럴 만도 하지.

  ―시발롬. 아는 척하기는. A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나?

  ―왜 꼽을 주고 그러나? 염병. 그럼 자넨 A급 모험가 발톱이라도 본 적 있나?

  ―….

  웃긴건, A급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잡히는지 자기들끼리 A급이면 이정도니 뭐니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A급은 미지의 존재였다.

  "앞으로의 활약을 고대하며 글을 마치겠다. 이상, 파하르 슈발리에 브리도니아."

  어차피 A급 찍으면 마탑으로 가긴 할 건데, 알아서 생각하라지. 나는 고개를 45도로 꺾은 채 메리의 말을 귀담았다. 이제 영주의 말이 끝났으니 의뢰 내용이 나올 차례였다. 그녀는 종이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상입니다! 이번 임무는 적색 마탑과 브리도니아 백작가가 주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인에게 들어주세요!"

  적색 마탑까지? 도대체 무슨 임무를 내리려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임무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모든 모험가가 위로 올라가려는 이유는 결국 혜택 때문이다. 받는 게 없으면 모험가라는 위험천만한 직종을 고를 이유가 없었다. 만약, 승급 시험이 시간을 과하게 잡아먹는다면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혜택은 B급으로도 충분했다. 어디 가서 절대 무시당할 자리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설명을 요구했다.

  "안내인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오는 건가요?"

  "아, 그건 동봉된 편지를 참고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편지를 한 장 줬었지.

  나는 편지를 품에 넣고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리의 역할은 이걸로 끝이었다. 더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다고 하거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무슨 임무이길래….'

  자리를 옮긴다.

  모험가 길드 주변 뒷골목.

  나는 술에 곯아 드르렁대는 노숙자들을 무시하고 편지 봉투를 뜯었다. 붉은 봉랍이 떨어진다. 봉투를 뒤집어 톡톡 털자, 엽서처럼 작고 깔끔한 디자인의 종이 한 장이 손에 들어왔다.

  '…공용어가 아니야.'

  엽서는 북동부 가드리슈어로 적혀 있었다.

  과거 황궁에서 쓰던 언어가 지금까지 내려와 전해진 것인데, 현재 통용되는 제국 공용어와 비교해 과하게 어렵고 어법도 달라 사장된 언어였다. 지금으로선 소수의 귀족과 기사들만이 사교용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엽서에 적힌 내용은 승급 시험과 무관한 내용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펠른 남작령이 몬스터의 대량 발생으로 고립되었다 하니 신속한 구원이 필요하다. 나 파하르 슈발리에 브리도니아는 기사와 마법사를 포함한 서른의 병력을 보낼 것을 약속한다.」

  이게 승급 시험이 맞는지도 헷갈렸다.

  모험가보다는 직속 병사들에게나 내려올 만한 공문이었다.

  잘못 보낸 거 아니야?

  '출정일은… 미친. 오늘이잖아.'

  나는 얼굴을 와락 구기고 엽서를 품에 넣었다. 이거 승급 시험을 빌미로 징집하려는 거 아니야? 그냥 포기하고 마탑이나 들어갈까. 파헬른 남작령이면 마차로 반나절을 가야 한다.

  하지만.

  쉽사리 엽서를 버릴 수 없었다.

  '…아니, 아니야. 의외로 좋을 수도 있어'

  공을 올리기 가장 좋은 곳은 전장이었으니까.

  마탑 도장 깨기도 나쁘진 않지만, 가장 확실하고 성능 좋은 방법은 역시 귀족과 연을 맺는 것이다.

  슈리엘은…내 편을 들어주고는 있지만, 하이라크가 반대하고 있어 위치가 조금 어중간했다. 이번에 공을 세워 주목받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브리도니아는 루셸리니와 같은 백작위다

  '집결지는 시에라 바위 지대.'

  아직 출정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그래도 바로 가는 게 낫겠지.'

  나는 엽서를 구기고 불태워버렸다. 슈리엘과 다니며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이런 민감한 내용의 공문은 들고 있어봤자 좋을 거 없었다. 내용은 모두 기억했으니 괜찮았다.

  * * *

  시에라 바위 지대는 계절과 상관없이 항상 건조한 기후를 유지하는 곳이다.

  이곳은 이상하리만큼 비가 내리지 않아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기도 했다. 어차피 불모지라 개발 가치도 없었지만, 아무튼. 그 탓에 이곳에 오려면 마스크는 필수였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모래와 회색빛의 바위들.

  사막도 아닌데 정말 기이할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실제 사막지대와 생태가 비슷하다고 한다. 아마 지맥의 마나 흐름이 꼬여서 그런 것 같은데… 굳이 알고 싶진 않았다.

  그런 곳을 마스크와 로브를 끼고 걸어 다니니 서부극의 한 편을 찍는 기분이었다. 나는 모래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눈 위로 마나 베리어를 펼친 뒤 저 멀리 보이는 막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보니 출정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버렸다.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모래 먼지를 피해 막사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막사로 다가가 의도적인 발소리를 냈다.

  ―퍼석.

  모래가 짓밟히는 푸석한 소리. 나는 막사 앞에서 가만히 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안에 있는 건 확실했다.

  "누구지?"

  예상대로 발소리를 내자마자 반응이 왔다.

  막사가 열리고, 대머리 거한이 한 명 튀어나와 나를 반겼다. 키가 매우 컸다. 셰멜이랑 덩치가 비슷한 것 같았다. 다만 이쪽은 남자라 그런지 더 커 보였다.

  나는 그와 거리를 벌리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지명 의뢰를 받아 찾아온 마법사 유진이라고 합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 붉은 마녀로구나! 반갑다! 난 콜린이라고 한다! 이 부대의 대장이지."

  "예, 콜린 경."

  "정말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편지는 어디 갔지?"

  "읽고 태웠습니다."

  "남에게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허, 잘했다. 소문이 나도 상관은 없지만, 모험가 중에 너만 뽑았다는 얘기가 돌아버리면 조금 곤란해지거든."

  형평성 문제였다. 물론 E~D급 모험가들이 형평성을 제기한다 한들 들어줄 리는 만무했지만, 그래도 전장을 나서고 싶어 하는 모험가는 많았으니까.

  나는 그와 함께 막사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런데 왜 저입니까? 승급 시험을 빌미로 끌려온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돌직구를 던지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거부권은 내게 있었다. 따라서 굽힐 이유가 없었다. 가는 건 좋은데 이유라도 들어보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요즘 마법사가 필요한 일이 많아서 말이야. 영지에 주둔하고 있는 마법사들은 함부로 쓸 수가 없어. 마탑 놈들은 연구만 한다고 나오지도 않고. 젠장. 마침 실력있는 마법사가 길드 임무를 싹슬이 하고 있다길래 영주님한테 한 번 찔러봤지."

  "…이번 임무에 적힌 몬스터 대량 발생과 관련이 있나요?"

  "정확해. 브리도니아라고 다르진 않지. 모험가들로 고블린 따위의 피라미들을 억제하고는 있지만… 트롤이나 오거 같은 거물급 놈들이 부쩍 많아졌더라군. 저급 모험가로는 해결할 수 없어."

  그는 바닥에 가래를 뱉으며 투덜거렸다. 그 경박한 모습은 기사가 아닌 한량을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분명 오러나이트의 것이었다.

  "…상황이 안 좋아. 누가 몬스터들을 일부러 자극이라도 하는 건지."

  최근 발생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집단 폭주.

  파헬른 남작령은 몬스터 웨이브로 상행길이 막혔다고 한다. 자력으로 뚫으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규모가 워낙 작아 빈번히 실패해 결국 이곳까지 구원 요청을 보냈다.

  내가 있는 부대는 제 3차 구원대였다. 

  '…악마 짓인가?'

  이것도 악마와 관련이 있는 걸까. 비단 서부뿐만 아니라, 세르티의 말을 들어보면 북부와 동부 또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단정 짓지는 말자.'

  대회의 기간이라 대행자가 파견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진짜 악마라면.

  조금 많이 곤란할지도 몰랐다.

  콜린은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종이를 뒤적였다. 그는 파헬른 주위를 간략하게 표시해둔 간이 지도 한 장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엿 같은 드레이크 같으니라고. 그놈들이 고지를 먹고 있어. 협곡에서 사는 놈들이 대체 언덕길엔 왜 온 거지? 그 탓에 뚫기가 쉽지 않아. 사방에 몬스터가 깔려있어서 우회해서 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나는 종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파헬른 남작령으로 진입하려면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그 언덕이 몬스터에게 먹혀버린 상황이었다. 듣자 하니 오 일 만에 교역량이 7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우회 교역로를 통해 억지로 식량을 보급하곤 있지만, 다른 길은 워낙 위험한 탓에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막대하다.

  빈약한 내수시장이 교역로마저 끊기자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다. 상인들은 고립됐다. 물가는 점점 올라가고, 돈 있는 자는 사재기를 하기 바빴다. 영주를 향한 원성이 자자하니 폭동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작 오 일이었다. 아직까진 자체 생산력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만, 그 전에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해결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게 안 되니 우리를 부른 거겠지. 파헬른은 영주라면 하나씩은 있다는 마법사는 물론이고 기사조차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