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193)

  샤레이드. 용의 머리와 뱀의 몸을 가진 미물. 그 크기가 3미터에 육박해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땅이 아닌 물에서 살기도 했고, 워낙 재빨라 한 명이 퇴로를 막아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메리는 입을 떡 벌리고 샤레이드의 머리에 눈을 떼지 못했다. 유진이 게시판에서 토벌 임무를 뜯어간 지 세 시간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서 샤레이드의 서식지를 가려면 못해도 40분을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데, 왕복 시간임을 고려하면 한 시간 좀 넘는 짧은 시간 만에 샤레이드를 잡았다는 소리였다. C급 인원 세 명 기준 몬스터를, 단 한 명으로.

  "저, 정말 혼자 잡으신 게 맞나요?"

  유진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샤레이드를 잡고 나서는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해, 오크 군락지를 쳐부수러 갈 것이다. 아직 번식기가 아니라 수가 적은 게 아쉬웠지만, 군락지 토벌만큼 기여도를 쌓기 쉬운 게 없었다.

  "다음은 오크 군락지 토벌로 할게요. 신청 기간인가요?"

  "기간이 아니더라도 신청 자체는 가능해요. 보, 보통 병사들과 연계해서 가긴 하는데… 설마 또 혼자는 아니죠?!"

  메리는 유진이 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녀가 실력 있는 모험가임은 틀림없었지만, 이렇게 무리하면서 실적을 쌓다 죽어 나간 모험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유진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조금 속물적인 고민이기도 했다. 메리가 유진에게 임무를 넘기고, 유진이 그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면 접수원으로서 실적이 쌓인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더 있었다. 메리는 유진이 반가웠다. 여성 모험가는 드물고, 이렇게 예의 바르고 실력 있는 모험가는 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등을 돌릴 뿐이었다. 접수원은 임무를 반려시키는 권한이 없기에, 무어라 말하며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섯 시간이 지나고.

  슬슬 교대 시간이 찾아왔을 때.

  ―저, 저게 다 몇 개야?

  ―저게 전부 오크 머리통이라고?

  유진은 사내 다섯을 데리고 모험가 길드를 찾아왔다.

  '…도중에 파티를 만났구나!'

  유진은 마법사니까, 전위를 담당하는 전사들이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주기만 한다면 토벌 자체는 쉬웠을 거다. 번식기도 아니라 기습하기도 편했을 거고.

  그들은 손에 오크 머리통을 다섯 개씩 들고 있었다. 줄에 꿰인 오크 머리들. 총 스물다섯 마리였다. 메리는 빵긋 웃으며 정산 준비를 시작했다.

  "머리 하나당 동화 서른 장으로 계산할게요! 분배는 어떻게 하실 거죠?"

  유진은 몸에 묻은 피가 찝찝하지도 않은지, 핏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통들을 내려놨다. 부산물은 없었다. 머리통은 어딘가 묻히거나 불태우는 등의 식으로 폐기될 것이다. 증거 이상의 가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머리통의 상태도 안 좋았다. 어딘가 타거나 꽁꽁 얼려져 있었는데, 연금술 재료로도 못 쓸 정도였다.

  그렇게 메리가 오크 머리통을 없앨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

  유진은 무표정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혼자. 전부."

  모두의 관심 속에서, 피투성이 얼굴로 담담하게 선포한 그 차디찬 말은 주변 모험가들을 동요에 빠트렸다.

  ―오크 스물다섯을 혼자서?

  ―당연히 구라겠지 병신아. 저년 나가고 다섯 시간밖에 안 됐다고. 보나 마나 호구 새끼 통수친 거야.

  ―그럼 저 멀대 새끼들은 누군데?

  ―…시발련. 저년 얼굴 안 보이냐? 딱 봐도 그거야 그거.

  "저, 저기. 동료분들?"

  그럼 같이 온 사내들은 누구지? 어느 예의 없는 모험가의 말처럼 몸으로 유혹해 성과를 독차지한 것일 수도 있었다. 믿고 싶진 않았으나,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메리가 봐도 유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고맙수다."

  오크 머리통을 들고 온 다섯의 사내는 메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유진에게 동화 몇 푼을 받곤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전형적인 짐꾼이었다. 

  허나 의문은 의문으로. 합의된 것이라면 정산 자체는 해줘야 했다. 저렇게 기여도를 쌓아봤자 나중에 승급 시험에서 좌절한다. 메리는 경비들을 시켜 오크 머리통을 저 멀리 치워버린 뒤 토벌금액을 정산하기 시작했다.

  "으, 은화 일곱 장에 동화 오십 장… 저기, 모험가님?"

  "동화는 필요 없어요. 다음 임무는―…"

  하지만.

  그것이 매일같이 일어난다면.

  "…저 왔어요."

  다음 날. 유진은 실크 베어를 잡아 왔다.

  털이 없는 대신 두껍고 매끄러운 가죽을 지닌 실크 베어는 상품으로써 그 가치가 굉장히 높았다. 다만 그 흉포함은 병사 셋이 달라붙어도 당해내기 힘들 정도였으니 일각에서는 실크 베어를 실력의 척도로 보기도 했다. 포획한 가죽에 손상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실력을 가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크 베어를 가죽에 어떤 손상도 없이 잡아냈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말이다. 마력 저항도 없이 커다랗기만 한 곰의 몸 내부를 뒤흔드는 것쯤은 유진에겐 손쉬운 일이었다.

  "…무두질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면 은화 열 장이에요."

  "고마워요."

  돈을 받고, 다시 게시판에 가 토벌 신청서를 찢는다. 그렇게 찢긴 종이만 열 장이 넘어갔다. 종이 한 장에 길어도 여섯 시간을 넘지 않았다.

  돌아올 때는 항상 피투성이.

  팔이 부러지고, 눈이 터진 채 돌아온 적도 있었지만, 결코 죽어서 돌아오진 않았다. 내일만 되면 멀쩡히 돌아와 종이를 찢으니까. 심지어 어느 때는 내장을 질질 흘리면서 돌아왔을 때도 있었다.

  유진이 모험가로서 활약하길 삼 일째.

  메리는 더이상 그녀가 반갑지 않았다.

  "…다음 토벌은 이걸로 할게요."

  "네, 네."

  무서웠다.

  메리는 유진의 전담 접수원이 된 지 오래였다. 다른 접수원들은 유진을 만나기를 꺼렸다. 접수원으로서 실적을 쌓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였으나, 기계처럼 임무를 받는 모습이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이 있나? 사파이어처럼 푸른 마력이 퍼져나가더군.

  ―맞다네. 사체를 옮길 때 한 번 봤었는데,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지.

  유진이 의도한 대로, 그녀는 고작 며칠 만에 유명 인사가 되는 데 성공했다. 고위험 임무를 하루에 서너 건을 해결하니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으로 유혹해 실적을 독차지한다는 뜬소문도 그 유명세에 덮일 정도였다.

  유진은.

  항상 피투성이였다.

  피 냄새가 마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가 다쳐서 돌아올 때면,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돈을 노리고 유진을 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유진은 더 많은 피를 묻히고 돌아온다.

  조금 의욕이 과했던 걸까. 유명세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모험가들은 항상 피를 달고 사는 그녀를 보며 입을 모았다.

  ―마녀가 따로 없군.

  마녀라고.

  ―붉은 마녀가 이번엔 B급 몬스터를 잡았다더군. 산맥에 기생하는 용충龍蟲 쿠룸바를 혼자서 잡았다 하는데… 내가 봤을 땐 이미 B급은 훌쩍 넘었어.

  ―…그거 영주가 토벌하려다 실패한 거 아니야? 저번에 토벌령 내려진 놈. 그런데 그걸 혼자서? 그런 괴물이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내가 아나? 어디 산에 처박혀 수련만 하던 마법사인가 보지.

  붉은 마녀라고.

  ―그 마녀. 시험 없이 A급으로 올리려는 논의가 진지하게 오간다는 거 아나? 내 지인 중에 길드장과 인맥이 있는데…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유진이 금색으로 빛나는 패를 품에 넣었을 때.

  그녀는 유진이라는 이름 대신 붉은 마녀라고 불리게 되었다.

  * * *

  브리도니아에 도착하고 닷새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동하는 데 나흘이 걸렸으니 합쳐서 아흐레인가. 그동안 미친 듯이 몬스터를 잡았다.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재구축으로 옷을 다시 만들었음에도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실력이 있으니 그만한 자리에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F급에서 B급까지 오 일 만에 올라갈 수 있었다. 모험가 길드가 창설된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

  성취감은 없었다. 남들은 나를 붉은 마녀라 부르며 시기, 동경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얻어야 하는 걸 얻은 느낌. 얻었다기보단 되찾았다에 가까웠다.

  '벌써 의욕 떨어지면 안 되는데….'

  아, 젠장. 또 정신병이 도지려고 한다. 슈리엘이랑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럴까.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널브러졌다.

  '슈리엘은… 지금쯤이면 대회의를 준비 중이려나.'

  제국 수도 탈레온, 마드리아 대회의장. 네 명의 마탑주와 세 명의 대행자. 그리고 다섯 신관이 모두 모이는 유일한 날. 그곳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에 따라 제국의 정세가 흔들린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비대칭 전력이 모두 모인 만큼, 어떤 얘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대귀족들도 참여하기에 정치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다. 대행자가 입을 여는 순간은 회의 극후반에 가고 나서야라나 뭐라나.

  "흐으…"

  나는 이불보를 뒤집어 쓰고 허벅지를 배배 꼬았다. 자궁 위로 새겨진 문신이 희미하게 빛난다. 모유가 흘러나오지 않는 건 좋았지만, 가끔 성욕이 늘어날 때가 있었다. 세르티가 말한 대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는 있는 정도.

  붉어진 얼굴로 속옷에 손을 집어넣는다. 근데 굳이 무시할 이유는 없잖아. 단순한 손장난에도 풀리는 미약한 성욕이기도 하고… 참아봤자 득 될 건 없었다.

  그런데.

  ―끼익.

  "으음…?"

  나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다, 희미하게 들리는 발소리에 숨을 죽였다. 야심한 새벽에 들리는 발소리. 누가 온 지는 모르겠다만, 의도가 불순할 확률이 높았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있는다.

  ―철컥.

  누군가 문을 땄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간다. 마침 무료했던 나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무슨 짓을 하는지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돈을 목적으로 온 건가.'

  여관은… 항상 같은 곳에서만 묵었더니 특정 당한 것 같았다.

  불청객은 탁자 위에 올려진 돈주머니를 들고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하긴 내가 닷새 동안 번 돈만 금화 한 장에 육박한다. 눈이 돌아갈 만 했다. 근데 다소 싱겁네. 강간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돈만 가지고 도망친다니.

  '내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라서.'

  다리부터 부러트리고 시작해볼까.

  나는 눈을 뜨고 불청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돈 내려놔."

  그 소리에 뒤돌아본 불청객은 곧바로 도망치려 했으나, 푸른색으로 빛나는 손끝을 보자 나이프를 들고 달려들었다. 저놈은 마법 발동의 트리거를 알고 있었다. 아니면 도망치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전자가 아닐까 싶다. 브리도니아에서 날 모르는 모험가는 없다시피 했다. 내 별명은 붉은 마녀도 있지만, 손끝으로 퍼지는 마나가 사파이어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청옥공주靑玉公主도 있었다.

  …별명 지은 놈 알아내면 꼭 불구로 만들 것이다.

  '급소.'

  사고가 느려진다. 

  불청객은 정확히 목을 노리고 나이프를 내질렀다.

  '…그냥 맞을까?'

  순간 참고 있었던 욕망이 들끓었다.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것도 흥분됐으나,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흥분되지는 않았다. 내뿜는 악의 자체가 다르니까. 몬스터가 생존을 위한 악의라면, 인간은 물욕과 육욕을 위한 악의였다. 그나마 고블린들이 인간과 비슷하긴 한데… 걔들이랑 어울리기엔 체급이 너무 커져버렸다.

  저놈의 머리를 터트리려 했던 나는 손을 내리고 불청객이 내지르는 나이프를 향해 목을 내밀었다.

  ―콰득!

  "흐끅, 끅."

  지방과 근육, 내부의 경동맥이 끊기며 쇼크 반응이 온다. 급소 중의 급소. 사람을 담가본 적이 있는 걸까. 어디를 찔러야 한 번에 죽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끊어질 뻔한 정신을 간신히 유지하고 그대로 손을 뻗었다.

  급소를 노린 건 좋았지만, 이래서야 삼십 초도 못 가서 죽어버린다. 이왕이면 팔다리를 잘라버리지 그랬어. 그러면 어울려줬을 텐데.

  야밤의 불청객을 위해 준비한 마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끅?!"

  ―콰직!

  차가운 빙설의 창이 불청객의 심장을 관통한다. 피가 튀며, 찢어진 살 조각이 바닥을 더럽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꺽꺽대다, 곧 한심한 표정으로 쓰러져 죽어버렸다.

  나는 목에 박힌 나이프를 뽑아버리고 급속 재구축을 전개했다.

  "하아…"

  뇌에 무리가 갔나. 살짝 어지럽다. 

  시체가 되어버린 불청객을 치우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성흔은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

  시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래로 가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하읏…."

  나중에.

  나중에 치우면 되잖아.

  "하윽, 흣…."

  하지만.

  자위행위는 날이 밝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절정 후 찾아오는 현자 타임은 유독 심했다. 시체를 옆에 두고 신나게 가버렸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걸까. 극심한 자괴감이 몰려든 나는 시체 치우는 것도 잊고, 눈을 감아 체감 시간을 빠르게 만들었다.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하던가.

  한 시간 있었는데 실제론 일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든가, 혹은 그 반대라든가. 나는 그것이 가능했다.

  잠을 자는 행위가 의미가 없는 내겐 유용한 기술이었다. 자아가 불안정할 땐 쓰지 않는 기술이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그 짧은 시간 안에 앞으로의 계획을 다듬는다.

  "하아."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다. 나는 피투성이 이불보를 집어치우곤, 시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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