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죽음 직전까지 몰려있었다.
'일단, 코어를 수복하는 것부터…!'
손을 교차시켜 바닥에 내리꽂자, 수면 위로 수백만 개의 푸른 실선이 빼곡하게 생겨났다. 모두 유진의 마나 회로였다. 에일린은 당황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손상된 회로는 서른두 개.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지만, 그녀는 무리 없이 회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회로를 고치자, 유진의 몸은 마침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 적어도 코어가 폭발해 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일린은 손가락을 튕겨 수백 개의 물방울을 허공에 띄웠다.
"강제로 의식을 깨울 거예요. 반발이 심할 수 있어요…!"
이제 정신을 억지로 각성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직 자아는 멀쩡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유지조차 못하고 흩어졌을 테지만, 아크 메이지라 그런지 정말 죽지 않는 이상 자아가 사라질 일은 없었다.
정신을 깨우기만 한다면 재구축은 알아서 할 것이다. 엄마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그 긴박한 순간을 좋아하는 거지, 죽음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다.
"하나…."
심상세계가 흔들린다.
"두울…!"
한 번 가라앉은 자아를 억지로 띄우는 건 쉽지 않았다. 분명 세계수 아줌마는 팔 한 번 휘두르는 걸로 간단하게 했는데…
"세에엣…!"
수백 개. 수천 개. 수십만 개의 물방울이 하늘을 향해 떠오른다. 저 물방울 하나하나에 에일린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깨어나세요, 엄마…!"
그녀의 원념遠念이 실체가 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 * *
정신을 차리면, 수술대처럼 작은 판 위에 올려져 있는 상태였다. 손발은 묶여있었다. 다만 전처럼 수갑처럼 묶는 방식이 아니라, 판 모서리에 팔과 다리를 하나하나 묶어놓았다. 나는 그 탓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케흑, 끅, 크흡…?!"
그 순간.
버티기 힘든 구토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나는 바닷물을 한가득 들이마신 사람처럼 입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뱉었다.
"우읍, 으베엑…"
피였다. 썩고 고인 피가 목구멍을 통과해 마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았, 어?'
한바탕 피를 쏟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마나 회로가 파괴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위험했어… 다음에도 이러면 진짜 죽어버릴지도 몰라.'
민감도가 수백 배 올라간 채, 뇌를 망가트리는 섹스를 하는 것도 흥분됐으나, 안타깝게도 죽기 싫으면 관둬야 했다. 대처할 틈도 없이 한순간에 가버린다. 조금 다른 의미로 말이다.
'…슈리엘은 어디 갔지?'
사지가 묶여있어 주변을 보기가 힘들었다. 일단 뱃속 가득 정액이 찬 건 알 수 있었다. 그야 흘러나오지 않게 마개까지 끼워뒀으니까. 마개 크기만큼 벌어진 분홍빛 보짓구멍. 마개가 빠지지 않게 실까지 묶어놨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나?"
슈리엘이었다.
시선이 닿지 않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수상할 정도로 날이 서 있는 검을 들고 있었다. 아니, 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크로스 가드도 없었고, 단방향 날에 검날은 직사각형이었다. 손잡이는 레이피어의 것을 닮아 있었지만, 직각으로 각이 져 수직으로 들기 불편했다. 전투용으로 써먹으려면 쓸 수는 있겠지만, 다른 무기들과 비교해서 검술적인 메리트가 전혀 없는 무구.
"어, 으?"
나는 그걸 톱이라 불렀다.
"더럽게 피나 토하고 말이야… 뭐, 앞으로 수십 배는 더 흘려야 할 테니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는 톱을 들고 무릎과 팔꿈치 사이를 어루만졌다. 밧줄을 풀었음에도 아직 가시지 않은 피멍 자국을 쓰다듬으며, 어디를 잘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연기라 해도 좀 과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겁을 먹긴커녕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가슴을 뛰며 흥분했다.
애초에 슈리엘이 무른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다면 감도 상승 미약도 먹이지 않았을 테지. 박는 것만으로 뇌가 타버리는 위험한 물약을 모르고 썼을 리도 없고….
청각은 어느 때보다 예민했다. 방은 어둡고, 희미하게 빛나는 랜턴 빛만이 몸을 겨우 비추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린다. 톱날이 어딘가 부딪혀 챙,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서늘한 쇳소리가 귀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약간의 먹먹함을 동반한 적막 속에서.
슈리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팔다리가 있어봤자 자신이 가축임을 자각조차 못 하겠지."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톱날을 바라봤다. 거친 마찰 자국을 보아하니 어디서 갈고 온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적극적이네. 그런 장난스러운 생각이 머리에 들기도 잠시. 슈리엘은 얼굴에 물을 뿌려 핏물을 흘려냈다.
"케흡, 흡?"
입가에 잔뜩 묻어있던 토혈은 두 차례 쏟아진 물에 모두 쓸려나갔다. 마침 찝찝했는데 잘 됐다.
물론, 그에게 신사적인 의도는 당연 없었다. 단지 입에 무언가 물리기 방해가 되니 씻겼을 뿐이었다.
"으븝! 흐브흡…!"
입을 닫을 틈도 없이 입에 무언가 들어온다. 나는 간단한 언어조차 구사하지 못하고 바보같이 침만 흘려댔다.
그렇게 입을 꽉 싸맨 천이 침으로 흥건해질 무렵. 슈리엘은 예고도 없이 절단을 시작했다.
"흐큽, 흐으으끄으윽―?!"
시작은 오른팔이었다. 팔꿈치가 접히는 부위에 날을 갖다 댄 슈리엘은 앞뒤로 왕복하며 팔을 썰어 재꼈다. 나는 눈을 뒤집으며 발작했다. 살이 잘리는 고통에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했지만, 입을 꽉 묶은 재갈에 막힌 침과 숨은 거품이 되어 입가를 더럽혔다.
콰득, 꾸드득. 처음엔 지방층이 썰리는 다소 뭉툭한 소리가 났지만, 점차 중심부로 파고들수록 뼈와 근육이 썰리는 난폭한 절단음이 들려왔다.
"하급, 큽, 끄으…"
―끼기긱… 톱날은 바닥에 깔린 철판을 긁었고,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절단의 끝을 알렸다.
불행하게도 깔끔하게 잘리지 못했다. 오러를 담아 일순간에 자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일부러 오러를 담지 않았다.
덜 잘린 핏줄과 끊기지 못한 피부에 달라붙은 지방이 덜렁거린다. 그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팔을 억지로 잡아 뜯었다.
투둑, 하고 울리는 끔찍한 소리.
"끄그윽…"
나는 이가 부서져라 입을 다물었다. 팔이 뜯긴 반동으로 뺨에 핏방울이 튄다. 그대로 날아간 팔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고, 슈리엘은 다음으로 자를 부위를 살펴봤다.
하지만 정말 천박하게도.
팔이 썰릴 때마다, 아랫도리에선 음란한 물을 만들어냈다. 피가 없어 몽롱한 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천박하게 애액을 흘려댄다. 얼마나 허리를 비틀었으면 보짓구멍을 틀어막은 마개가 빠지려 할 정도였다.
찍, 날아간 애액은 슈리엘의 하복부에 도달해 얼룩 자국을 냈다. 그는 시선을 내려 이 추잡한 추태를 확인하더니,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정녕 이런 것에 흥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번 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 같았다. 착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통과 쾌락에 솔직한 몸은 자괴감을 느끼기도 전에 먼저 가버렸다. 하아. 글러 먹은 몸뚱이 같으니라고.
"흡, 끅."
사지는 오른팔로 시작해 역시계 방향으로 차례대로 잘려 나갔다. 점점 가라앉는 의식. 살기 위해 피를 만들어낸다. 나는 죽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했다. 목에 걸린 개목줄은 아직 그대로. 슈리엘이 줄을 당기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죽어버릴 것이다.
"하아…"
오러도 없이 생사람 몸을 자르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절단한 슈리엘은 어깨가 뻐근한지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팔다리가 잘린 몸.
완전 오뚝이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다. 잘린 부위는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 적어도 허우적거릴 팔다리는 남아있다는 게 소소한 위안거리였다. 상자 안에 갇혔을 땐 발버둥 칠 팔다리도 없었다.
"개새끼가, 되고 싶다고. 했지."
톱을 내던진 슈리엘은 또다시 이상한 물건을 가져왔다.
"내 친히 너를 개로 만들어주마."
구속구였는데, 살짝 이상한 구조였다. 특정 부위를 감싸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구조. 들어가는 구멍은 있지만 나가는 구멍은 없었다. 마치 헬멧처럼. 하지만 헬멧이라기엔 너무 작았다.
그 순간, 나는 저 기묘한 구속구의 활용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건 SM 도구였다. 팔과 다리를 접힌 상태 그대로 고정하는 도구. 보통 줄이나 타이트한 옷으로 고정한 뒤 끼우는 물건이지만,
"…영광으로 알도록."
팔다리가 잘린 내겐 생살 그대로 끼우기만 하면 됐다.
"으, 븝."
저런 물건이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이지?
분명 사람들이 마구 죽어 나가는 암울한 세계가 아니었던가. 저런 물품을 만들 정도로 여유가 있는 놈들이라면, 귀족과 부유층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치이익…
그런데.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으극…?"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돌린다. 시선이 향한 곳엔 시뻘겋게 달구어진 구속구가 있었다. 슈리엘이 왜 갑자기 손에 오러를 두르나 했더니, 용암처럼 뜨거운 구속구를 집기 위함이었다.
"으, 으."
저걸 끼우면 절단면과 착용 부위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게 뻔했다. 나는 몸에 닿는 뜨거운 열기에 반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덜컹, 덜컹. 공포로 만들어진 요란한 소리.
허나 발버둥이 너무 격했는지, 흔들리는 무게중심을 못 이겨 철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쿵!
얼굴부터 떨어진 나는 코뼈가 부서졌다. 아프다. 다시 흐르는 코피. 일단 떨어진 건 좋았으나, 팔다리가 없어 움직이질 못했다.
"도망치는 모습이 추하구나."
낄낄거리며 다가온 슈리엘은 망설임 없이 구속구를 끼웠고―
"하그으으윽―!!!!"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구속구가 고정됐다. 심지어 그냥 고정된 것도 아니었다. 끼워지는 순간 철심을 박아 팔다리를 자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뺄 수 없게 하는 구조였다.
"으극, 큭."
오른팔과 왼팔. 그리고 두 다리까지. 아마 구속구를 벗는다 해도 눌어붙은 살들과 노릇하게 익은 절단면이 날 반길 것이다. 대신 구속구를 벗지 않는 한 외적인 혐오감은 거의 없어 보기 흉하진 않았다.
"개처럼 기어 다닐 시간이다."
그는 목줄을 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당장 개처럼 기지 않으면 당겨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 담겨있었다.
"우, 으으…"
그러나.
탈진해버린 몸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야 팔다리가 잘리고 산채로 살이 익었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슈리엘은 천천히 목줄을 끌어당기며 재촉하기 바빴다.
"으큭, 큽. 흑…."
나는 필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 절단면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아크 메이지의 정신은 코어와 뇌가 멀쩡한 이상 끊어질 일이 없었다.
두 다리로. 아니, 네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은 정말 개와 같았다. 가뜩이나 팔다리가 잘려 길이도 짧은데, 기어 다니기까지 하니 정말 개새끼가 따로 없었다.
나는 살이 짓뭉개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슈리엘에게 기어갔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아프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이를 꽉 물었다. 슈리엘의 발치에 도착했을 때는 입에 문 재갈이 끊어져 있는 상태였다.
"와, 왈…."
당연히.
도착하자마자 픽 쓰러졌다. 어쩌다 보니 발목에 앵긴 고양이 꼴이 돼버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단 개처럼 짖긴 했지만, 고양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츄흡…"
나는 보짓물을 흘리며 슈리엘의 발목을 핥아댔다. 수컷을 만족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모유를 질질 흘리는 두 덩이의 가슴이 발등 위로 올려진다. 슈리엘은 엉덩이를 살랑대며 자신의 발목을 핥는 나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천박하긴."
―목줄을 당겼다.
"흐긱, 끄이이익―?!"
머리가 터질 듯한 충격의 전격 마법. 나는 코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졌다. 정액으로 부푼 배를 내밀고, 애액으로 흥건한 다리를 벌리며 부르르 떤다. 슈리엘의 말대로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윽…"
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네 다리를 이용해 기어갈 때면, 그는 바지를 내리고 우람한 자태의 페니스를 꺼내든 상태였다. 정수리 위에 올려진 묵직한 무게의 자지. 나는 황홀한 눈으로 자지를 올려다봤다.
내가 기절한 사이 몇 번을 싼 걸까. 아직 정액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평소라면 거부감을 느끼며 마지못해 펠라치오를 했을 터이지만, 자궁 위 새겨진 성흔의 도움 덕에 어떤 조미료보다 감미로운 냄새로 느껴졌다.
"하븝…."
눈동자에 감정이 새겨진다면 필히 하트가 새겨졌으리라.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자지를 물었다.
목구멍 깊숙히 들어온 자지는 목젖을 자비 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첫 번째처럼 기절 직전까지 몰리진 않았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라.
"흐븝… 후읍…."
혀로 기둥을 움켜쥐고, 이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목구멍 전체를 이용해 자지를 감싼다. 침은 쇄골을 타고 유두 끝에 이슬처럼 맺혔고, 반쯤 감긴 눈은 퍽 매혹적이었다.
"큭…."
―부르륵! 슈리엘은 삼 분도 버티지 못하고 사정해버렸다. 서큐버스가 빙의한 것처럼 맛있게 자지를 빨아대자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정액을 꿀꺽꿀꺽 삼켜대며 애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게 귀두 끝을 혀로 굴려대기까지. 완벽한 봉사였다.
"…이쯤이면 됐다."
사정을 마친 슈리엘은 나를 거칠게 밀어내며 자지를 빼냈다. 삼키지 못하고 떨어진 정액들이 발치에 떨어진다. 나는 아쉬운 눈으로 떨어진 정액들을 바라봤다.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