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193)

  슈리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한숨을 내뱉었다. 성흔의 부작용이 그리 심하지 않아 다행스러워 그런 건지, 아니면 기껏 지켜본 게 자궁 문신을 새기는 과정이어서 현타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다 끝났나?"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하트 문신, 보면 볼수록 음란한 느낌이 들었다. 대놓고 남자를 유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몸도 더 쉽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잠시만요, 대행자!"

  "…또 뭡니까."

  "성흔이 안정적으로 새겨지려면 하룻밤 정도 여기 있어야 해요. 유진을 데려가려든 내일까지 기다리시던가, 아니면 혼자 돌아가세요."

  "…."

  그리고 더 곤란한 건.

  "…묵고 가겠습니다."

  "어머머. 죽어도 여기 안 머무르시겠다는 인간께서 처음으로?"

  …이 상태로 슈리엘과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

  어둡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을 비춘 등불은 사그라지고, 비 내리는 창문마저 닫혀 빛 한 점 들지 않는 밀폐된 공간. 나는 셋은 가볍게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침대 위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 차마 뒤돌기 무서워 정면으로 눕지도 못하고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이불 위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분홍색 아지랑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흔. 신성력에 반응해 빛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자궁 위에 새겨졌다는 것과 모양이 하트라는 정도일까. 사실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래. 눈 감으면 안 보이는데 무시하고 자면 되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 옆에 슈리엘이 누워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급진 비단의 감촉을 느끼며 웅크렸다. 우리는 세르티의 배려로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고위층 손님을 위한 귀빈실이었다. 세르티의 방에서 밤을 보내도 됐지만, 성흔을 새기는 과정에서 피가 흐른 것도 있었고, 또 슈리엘이 죽어도 그곳에 있지 않겠다는 강력한 요청 덕에 얻은 방 '하나'였다.

  그렇다.

  인원은 둘인데 방은 하나다.

  항의는… 하지 못했다. 고작 하룻밤 보내는 건데 방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귀빈실은 둘은 물론이고 다섯이 보내도 문제없을 정도로 커다란 방이었기 때문이다. 가구들도 고급진 것들뿐이었고. 다만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킹사이즈라곤 하지만, 방의 넓이에 비해 과하게 작아 보이는 침대. 세르티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슈리엘. 자고 있어요?"

  "…."

  슈리엘이 아닌 반대쪽 벽을 향해 말한다. 그가 잠에 들었는지, 아니면 자는 척을 하는지 모르겠다.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러기가 주저됐다. 가뜩이나 속옷이 다 비치는 네글리제를 입고 있어 얼굴 보기가 창피했다. 세르티용 네글리제였는데, 사이즈도 맞지 않아 거의 속옷차림과 다름 없었다.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옷이 아닌 것 같았지만, 착의와 방 배정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져 옷을 갈아입을 틈이 없었다.

  "…깨어있다."

  "그, 그래요?"

  "무슨 일이지?"

  헛숨을 들이키고 몸을 움찔 떤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 한 명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어 서로의 몸이 밀착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 상태로 뒤돈다면 슈리엘의 얼굴이 보일 것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냥, 고마워서요."

  "…."

  "아, 아니에요. 무시하세요. 그보다, 성흔. 있잖아요. 앙그리드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나는 횡설수설하며 입을 열었다. 노골적인 주제 전환이었다. 슈리엘도 그걸 눈치챈 듯했지만, 다행히 넘어가주었다. 동시에, 짧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슈리엘이었다. 분명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중이리라.

  "…파윈 앙그리드. 앙그리드의 다섯 번째 대행자."

  다섯 번째.

  슈리엘이 루셸리니의 아홉 번째 대행자라는 걸 생각하면, 앙그리드의 역사는 다소 짧은 듯 보였다. 아니면 이전 대행자들이 오래 살았다거나. 내 추측은 전자였다. 앙그리드는 세 개의 악마 사냥 가문 중 가장 늦게 세워진 가문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파윈은 본래 앙그리드의 적녀로 내 형과 결혼할 예정이었다. 아니, 했었지."

  "그렇― 케흑, 큭. 뭐― 뭐요?"

  갑자기 형수가 왜 나와?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잠자코 듣기로 했다.

  슈리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정략결혼이다. 같은 악마 사냥꾼 가문끼리 친선도 다질 겸, 그리고 정치판에서의 파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이유지."

  "그런데 왜 대행자가…?"

  "그게 문제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당일, 전대 대행자가 작전 도중 사망했다더군.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구나. 코프탈. 조금 재수 없는 남자였지."

  "…그래서?"

  "급하긴. 코프탈은 적자였다. 최우선 계승권을 가진 놈이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거지.

  결혼식 당일 장남이 죽었다. 이것도 나름대로 충격적인 얘기였지만, 나는 머릿속을 채워가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거긴 루셸리니처럼 차남을 대행자로 두지 않았나요? 음, 슈리엘을 깎아내려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도 안다. 웃긴 건 장남 이전에 차남이 또 뒈졌다더구나. 참고로 앙그리드는 자식이 세 명 뿐이다."

  장남과 차남. 그리고 적녀 파윈 앙그리드. 차남이 죽고 장남이 대행자를 이었지만, 장남마저 죽어버리니 남은 직계 혈통은 파윈 뿐이었다.

  "…대를 끊을 순 없으니 급하게 첩을 들였지만, 그렇게 가진 자식은 겨우 네 살. 대행자를 잇기엔 터무니없이 어렸지. 앙그리드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한 거다. 성황청으로부터 오는 모든 이권을 포기하고 일반 가문으로 돌아가거나, 어떻게든 대행자를 만들어 악마 사냥꾼 가문으로서의 이름을 잇던가."

  "…후자를 택했군요."

  "그래. 파윈은 반강제로 대행자가 됐다. 파윈을 제외한 직계 혈통들이 모두 죽은 이상, 일반 가문으로 돌아가 봤자 전과 같은 위세는 꿈도 못 꿀 테니까."

  결혼을 준비하던 꽃다운 나이의 여인에게 대행자라는 짐이 내려졌다. 당연히, 슈리엘이나 다른 대행자처럼 검기를 뿜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묘기를 하루아침에 선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성흔이다. 다행히 앙그리드의 핏줄을 이어서 그런지, 신성력으로 육체의 힘을 강제로 끌어 올리는 게 가능했다. 오로지, 직계 혈통이라 가능한 일이었지. 아니, 아니다. 정정하겠다. 다행히 아니라 불행이구나."

  "…결혼은 어찌 됐죠?"

  "명목상으로는 유지 중이지. 하지만 사실상의 파혼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그리고 이 모든 건 앙그리드의 독단적 결정이었다. 그래서 앙그리드와 루셸리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혼을 파토낸 것도 모자라 하나뿐인 장녀를 대행자로 개조했으니 가는 눈이 고울 리 없었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에 새겨져 있는 그 끔찍한 문신들… 밤이 찾아오면 붉게 빛나며 정신을 갉아먹는 저주스러운 인장. 그건 더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어. 언제가 터질 폭탄이지."

  슈리엘은 부들부들 떨며 침대 위를 뒤치닥거렸다.

  "…나와 관련된 이상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다. 앙그리드의 대행자든, 프루카이스의 대행자든."

  그는 곧 대회의를 가질 예정이라며 모든 대행자가 수도 탈레온에 모인다고 말했다. 회의 내용은 요즘 들어 난폭해진 악마들의 동향… 그리고 유사시를 대비한 전력 증강에 관한 내용까지. 슈리엘은 정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더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래서 부인이 보이지 않았던 건가….'

  슈리엘의 형 하이라크 루셸리니.

  결혼했다 들었으나 저택엔 늘 혼자였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뭐… 이런 걸 안다 해도 내 인생이 변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슈리엘이 성흔에 발작하는 이유를 알아낸 것 하나는 좋았다. 그게 자궁 문신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나는 시선을 내려 새겨진 문신을 보았다. 여러 문양이 겹쳐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얄짤없이 하트 모양이다. 하아. 문양이라도 다른 걸로 할 걸 그랬나. 색이 붉은 건 성흔의 공통점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보다.

  슈리엘은 성흔을 새긴 자는 밤마다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하트 문신이 붉게 빛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까. 세르티의 말대로 그리 심한 부작용은 없는 것 같았지만, 묘하게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니,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뭔가 턱 막히는, 그런 무언가가 몸에 가득 찬 느낌이다.

  '괜히 의식해서 그런가….'

  침 삼키는 것도 의식하면 답답하지 않은가.

  비슷한 기분이었다.

  답답했다.

  그것도 아랫도리가.

  "으응…."

  나는 네글리제 속에 손을 집어넣어 아랫배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자궁 문신이 새겨져 있는 곳이었다. 문신은 누를 때마다 희미하게 빛을 더해갔지만, 답답함이 해소되는 쾌감에 몸을 떨고 있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읏, 흐으…."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계속해서 누른다. 손의 위치는 점점 내려가, 어쩌다 보니 자위를 하는 꼴이 되었지만, 이 속 시원한 기분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비틀고, 체중을 이용해 하복부를 압박하는 등 슈리엘이 깨어날 수도 있는 과격한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하으, 흐. 흐읏."

  성흔이 붉게 빛난다. 

  ―…봐.

  아랫도리를 문지를 손짓이 더해질 때마다 붉게 물든다. 방을 비출 정도로 밝게 빛난다. 성흔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게 빛나 멀리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었다.

  ―…봐!

  "하앙, 흐극. 흣, 흐으…."

  나는 그 빛도 보지 못하고, 맹한 얼굴로 가랑이 사이를 비볐다. 누르는 것도 아니다. 손끝을 이용해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질 안을 긁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자위였다. 이불보를 깨문 입에선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고, 유두를 꼬집은 손가락 끝에는 새어 나온 모유가 흥건했다. 이런 음란한 소리를 내면 슈리엘이 깨버리는 건 당연지사였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이봐!"

  "하극, 흐기기익―?!"

  빛과 소음에 깨어난 슈리엘이 어깨를 잡고 내 몸을 억지로 뒤집자, 잔뜩 민감해진 몸은 그 단순한 접촉에도 부르르 떨며 물을 뿜어냈다. 속옷과 침대 시트가 애액과 침으로 촉촉해진다.

  "유진. 몸에 문제라도 있나?"

  "마, 만지면, 안. 안대에… 흐잇, 하읏…?!"

  나는 반사적으로 슈리엘의 품에 파고들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이미 생각하기도 전에 달려든 상태였다. 이미 속옷은 자위하느라 풀어진 지 오래. 모유와 애액으로 범벅이 된 알몸이 슈리엘의 몸과 밀착한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그를 밀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과 몸이 닿자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

  남은 것은 이상할 정도로 민감해진 몸뚱어리 하나.

  스치기만 해도 가버릴 것만 같았다. 

  "헤윽, 후으. 흐으…."

  "진정해라.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성흔 때문인가?"

  그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잔뜩 화난 표정. 세르티를 찾아가 한마디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 가지 마. 하으. 세요."

  "…."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성이 끊길 것만 같았다. 슈리엘 말대로 성흔 때문인가? 세르티는 분명, 생리 주기가 변한다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

  이런 말은,

  한 적.

  없었…

  잖….…

  ….

  

  "후으… 가지마아아…"

  ―쿵.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슈리엘은 내가 뒤에서 껴안아버리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그대로 슈리엘의 위에 올라탔다. 내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올라탄 상태로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야릇한 신음을 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려 해도 쉽사리 끊겨버린다. 마치 구멍 난 필름처럼,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성흔은 어느 때보다 붉게 빛나고 있었다.

  "흐응… 흐읏…"

  "유, 진?"

  슈리엘이 가까스로 몸을 뒤집자, 그에 질세라 다시 올라탄다. 체위는 얼떨결에 기승위가 되어버렸다. 나는 슈리엘의 목 뒤로 팔을 걸어 내 쪽으로 당겼다. 얼굴과 얼굴이 맞닿는다.

  "후으으… 으븝, 츄으…."

  나는 일순간의 고민도 없이 혀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시금 가버리기 시작하는 몸. 부푼 자지와 맞닿은 음부는 어서 박아달라는 듯 끊임없이 애액을 흘리고 있었고, 그의 가슴팍에 짓눌린 유방은 압력 덕에 모유를 찔끔찔끔 흘리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발정난 암캐. 온몸으로 물을 흘리며 수컷을 유혹한다.

  

  ―끼익.

  "누구, 지?"

  "하윽. 더, 더어어…"

  그순간 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온 자는 세르티였다. 새침한 얼굴로 랜턴을 쥔 그녀는 다소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나는 슈리엘의 몸을 탐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그는 아직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아직은. 아마.

  "어머, 벌써 시작했나요?"

  "이게, 무슨. 개짓거리. 입니까."

  

  슈리엘은 달라붙은 나를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눈동자만 돌려 세르티를 노려봤다. 그녀는 후후 웃으며 랜턴을 내려놓았다.

  "제가 말했잖아요. 성흔이 안정적으로 새겨지려면 하룻밤은 있어야 한다고. 원래는 제가 상대할 생각이었는데, 대행자께서 자고 가신다 하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큭…."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부푼 기둥 사이로 가랑이를 비비며 헤헤 웃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음란한 표정으로, 진심으로 기쁜 얼굴로.

  성흔의 동기화가.

  시작된다.

  내 몸짓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야해서,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대행자라 하더라도 쉽게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의 몸 위에서 고양이처럼 그르릉대며, 엉덩이는 높게 치켜들어 어서 박아달라 재촉까지 하는데 어떤 남자가 이를 무시하고 지나칠까. 성기능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남자니까.

  세르티는 딱 붙어 앙탈 부리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조용히 뒤로 빠졌다. 끼익, 문 열리는 소리. 방을 나간 그녀는 문틈 사이로 얼굴만 삐쭉 내밀어 말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다음부턴 이럴 일 없으니니까 걱정 마세요. 오늘만 이렇게 심한 거고, 다음부터는 아주 살짝 몸이 달아오르는 정도? 일상생활엔 지장 없을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으음. 안들릴려나?"

  말해봤자 더는 소용 없다 짐작한 세르티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가면서 손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얄미운 표정이었다.

  "아흐, 빨리이… 슈리에엘…."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덮치지 않는 슈리엘이 더 얄미웠다. 바지를 찢을 기세로 부풀어 오른 슈리엘의 페니스. 엉덩이골 사이로 느껴지는 커다란 존재에 암컷즙을 마구 흩뿌려대며, 빨리 그 커다랗고 두꺼운 흉기를 꺼내라고 재촉한다.

  "…비켜라."

  "꺄, 흑?!"

  

  슈리엘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반동에 뒤로 넘어진 나는, 침대 난간에 약하게 머리를 찧으며 미약한 신음을 냈다.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그리고 절망어린 눈빛으로 슈리엘을 올려다본다.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몸이 답답하다.

  그러니 빨리.

  도와줘. 내가 이렇게 원하잖아. 처음으로 이렇게 애원하고 있잖아. 마음 구석진 곳에 창피함과 수치심을 몰아넣고 엉덩이를 살랑이고 있는데, 어찌 이리 무심할 수가 있을까. 여차하면 머리를 박아서라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정말, 땅에 머리를 박아서라도 부탁해야 했다. 판단은 신속했다. 나는 바닥에 애액을 뚝뚝 흘리며 천천히 뭄을 움직였다.

  뇌를 녹여버릴 정도로 강렬한 수컷 냄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아랫도리가 흥건하게 젖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슈리엘 앞으로 기어가, 시선 아래로 그의 발등이 보이자 움직임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았다.

  "…제, 제발."

  나는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어 흐르는 애액을 과시했다. 꽉 다물어진 균열 사이로 꿀처럼 진득한 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하지만, 상체와 머리는 땅에 밀착해, 누가 우위에 있는지 각인시켜주었다. 물론 내가 아래였다. 지금 나는 나약한 암컷이었다. 수컷에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범해질 뿐인 암컷.

  알몸 도게자와 비슷했지만, 성적인 강조가 더 심했다. 애액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바닥에 짓눌린 유방은 모유를 끊임없이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물을 흘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저, 저.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막, 목을 조르거나. 때려도 돼요."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발을 보았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거절할 경우를 대비해 발치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발이라도 핥아서 애원할 생각이었다.

  "카, 칼로 마구잡이로. 난도질해도 좋아요. 화풀이 용도로, 써도 되니까아…"

  그의 발등을 바라보니 다시 몸이 달아오른다. 코 끝을 맴도는 진한 체취. 끔찍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빨리 누가 쑤셔주지 않으면 미쳐 날뛸 것 같앗다. 슈리엘은 이런 애원에도 불구하고 찰나의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히끅."

  순간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떨어진 천 쪼가리. 묵직했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고개를 들었다. 머리에 떨어진 것은 슈리엘의 바지였다.

  바지가 머리에서 떨어지고, 마침내 시야가 트였을 때. 나는 침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짧은 그림자. 세르티가 두고 간 랜턴의 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그것'의 형상은 무척 커다랗고, 두꺼워서, 저게 안으로 다 들어갈지 의문이 드는, 그런―

  "히극, 흐읏, 하익―?!"

  다가가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전기 충격을 맞은 사람처럼 경련하며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찍, 하고 터져 나오는 애액.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주저앉은 다리 사이로 웅덩이가 고일 정도였다.

  "하우, 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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