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93)

   슈리엘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회랑 끝.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는 무언의 기다림이었다.

  "잠시, 이쪽으로."

  나는 세르티의 손을 이끌고 슈리엘과 함께 젖을 짰던 곳으로 이동했다. 바닥엔 나도 모르게 흘린 침과 애액, 모유가 몇 방울 남아있었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세르티는 귀신같이 알아내 후후 웃었다. 그녀는 난간 위에 랜턴을 올려놓고 기대되는 표정으로 손을 모았다.

  나는 말없이 상의를 벗어 던졌다. 세르티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갑자기 옷을 벗을 줄을 몰랐던 걸까. 나는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속옷 끈을 풀어 탐스러운 유방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슈리엘의 손자국이 위로 희미하게 보인다.

  "어머, 혹시 유혹하는 건가요?"

  "…한 번 눌러보실래요? 그러니까, 이쪽을 잡고, 꾹 누르시면 돼요."

  "대담하기도 하셔라. 그럼…?"

  그녀는 말을 따라 가슴을 눌러봤고, 이윽고 샛노란 우유가 흐르며 유두 끝에 고였다. 세르티는 바닥에 모유가 뚝, 하고 떨어지자 입을 가리며 놀랐다.

  "모유… 그것도 초유네요. 혹시 아이를 벌써…?"

  "그건 아니에요. 세계수를 만난 뒤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때를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더라고요. 방금처럼 누가 짜주지 않으면 속옷 너머까지 적셔버려서…"

  호르몬 장애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과다한 체내 마나량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마나를 보충하는 사기적인 몸뚱이. 아무리 많은 양의 모유가 밖으로 배출된다 한들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내는 꼴이다.

  몸의 마력 회로를 차단하거나 가슴으로 통하는 마력원을 끊어버린다면 해당 증상 또한 고쳐질 터이지만, 전자는 폐인 되기 딱 좋았고 후자는 코어에 영향을 주어 전체적인 마력 운용량이 내려간다.

  고작 모유 하나 멈추려고 이딴 짓을 해야 하는 게 참으로 불편하나 불행하게도 그게 사람 몸이다. 인간의 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아크 메이지의 몸이라면. 내 몸은 보통 마법사보다 마력 회로가 수백배는 많다. 범인과 비교하면 최소 수천배 이상은 날 것이다.

  결정적으로, 온오프가 상당히 불편하다. 서로 이어진 수십 수만개의 통로를 하나하나 닫고 열어야 하는데, 닫아도 문제 없는 회로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했다. 별개로, 재구축을 하면 그 짓거리를 다시 해야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고작 모유 하나 멈추려고 그런 귀찮은 짓을 할 수는 없지. 가뜩이나 마탑도 올라야 하는데….'

  이왕이면 실력 행사에 문제 없는 방법을 쓰고 싶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지위를.

  내가 원하는 건 압도적인 명예였다.

  "잠시만요."

  세르티는 손가락에 몇 방울을 흘려 자신의 입에 넣었다. 눈동자가 커진다. 상당히 맛있는 모양이었다. 난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호평일색이니 기분이 묘하다. 그것도 모유인데.

  그녀는 내게 속옷을 채워주며 말했다.

  "임신중 모유 분비는 그리 드문 증상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나오는 건 저도 처음 보네요. 가슴에 뭘 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하아…."

  "모아볼 생각은 없나요?"

  "모유, 를요?"

  "마법사의 초유는 그 자체로 귀하거든요. 마법사 대부분은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으니까요. 만약 가진다 하더라도 초유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있고, 이를 모아 팔려는 마법사는 더욱 적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모르겠는데요."

  "이게 돈벌이엔 더 좋을 걸요? 유진은 모험가라고 했죠? 마법사이기도 하고."

  "…딱히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제 걸 실험 재료로 쓸 생각은 더욱 없고요."

  모유를 모아서 판다고…? 차라리 몬스터를 때려잡으며 돈을 벌겠다. 그 정도로 돈이 궁한 건 아니다. 돈을 못 벌 정도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세르티는 말을 흐리며 작게 말했다.

  "유진같은 여성 분들을 위한 해결 방법이 있긴 한데…"

  "…한데?"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것만 아니면 뭐든지 할 생각이 있다. 몸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코인이 무한한 나는 몇 번이든 기회가 있었다.

  "잠시 따라오세요. 제 방으로 안내할게요. 슈리엘! 조금만 기다리세요!"

  신관의 명령인데 대행자가 어찌 거절하리. 슈리엘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세르티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방으로 당도했다.

  안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그녀의 분홍빛 침실. 세르티는 서랍에서 무언갈 뒤적거리더니, 금색 귀고리 한 쌍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성황청의 상징인 금색 종이 새겨진 예쁜 귀고리였다.

  "자! 이거에요!"

  "귀고리…?"

  "으음. 귀고리라뇨?"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그녀는 옷을 벗으며 직접 '사용법'을 보여주었다.

  "이건 귀가 아니라…"

  네글리제를 가볍게 벗어 던지고 속옷 끈을 푼다. 우윳빛의 가슴이 굴곡을 그리며 탱글거린다. 세르티는 금색의 '귀고리'를 들어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곳에 쓰는 거랍니다? 아읏…. 시간이 지나면 착용을 해제하고 짜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걸 끼고 있는 동안엔 밖으로 새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입을 벌리고 쭈뼛거렸다. 저게 왜 인기가 없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저건 피어싱이었다. 유두에 핀을 꽂은 세르티는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별론가요? 이거 말고도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한데…"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피어싱은 진짜 아니었다. 나는 도의적으로 '망가지는 걸' 좋아하는 거지, 나 스스로가 부도의해질 생각은 없었다. 원래 '추락'은 높이 있을 때의 충격이 제일 큰 법이었다.

  "그럼 몸에 성흔을 새기셔야 해요. 조금 복잡해서 아마 오늘은 머무르셔야 할 거예요."

  "성흔?"

  "축복의 일종이에요. 몸에 축복을 새기는 거죠. 본래 소수의 성기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힘을 대가로 고통을 동반한다는 위험도 있어 그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은 아니지만, 근래에 들어선 종류도 다양해지고 위험도 많이 사라졌답니다? 뭐, 조금의 부작용은 아직 남아있지만요."

  "…심각한 건 아니죠?"

  "생리 주기가 변한다거나 감정기복이 심해질 수 있어요. 다시 물을 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정리하면 호르몬 관련 시술인 것같았다. 이 세상에 호르몬에 관한 지식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나, 대충 비슷한 기술은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미약이나 배란제 같은 게 뒷골목에 천지인데 있을 법도 하지.

  "좋아요! 그럼 대행자에게 말하기 전에, 성흔을 새길 부위부터 정해볼까요?"

  그런데.

 "가슴은 심장과 직결되어있어 함부로 새기기가 힘들어요. 얼굴은 미관상 좋지 않고, 손이나 팔은 원활한 마법 운용에 방해되니…"

  그녀가 정한 부위는.

  "여기가 좋겠네요. 가뜩이나 마력 회로가 복잡하게 꼬여있어, 이곳 말고는 새길 곳도 없어보이구."

  "여, 여기라고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미관상으로는 문제없으니까요. 오히려, 남자들이 좋아 죽어할 걸요?"

  "…."

  …자궁 위였다.

  신의 기적이 이리도 음탕한 것이었나.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민에 빠졌다. 피어싱이나 자궁 문신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냥 마력 회로를 폐쇄하고 폐인으로 사는 게 더 나을 정도로 한심한 고민이었다.

  그래도. 문신이 낫지 않을까. 둘 다 겉으로 티가 나는 종류는 아니었으나, 굳이 고른다면 문신이 나을 것 같았다. 피어싱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민감도… 라고 해야 하나. 여기서 더 쉽게 가버리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피어싱으로 끝낼 자신이 없었다. 보다 자극적인 걸 추구하는 내 모험 특성상, 언젠가 자의로 개짓거리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피어싱에 끈을 단다거나, 다른 부위에도 피어싱을 추가한다던가 말이다.

  "…성흔으로 할게요. 얼마나 걸리나요?"

  "성흔이 안정적으로 새겨지려면 하룻밤은 지새워야 해요. 대행자에겐 제가 말해둘까요?"

  "괜찮아요. 제가 말할게요."

  "좋아요. 그럼 전 성흔을 새길 준비를 할게요. 유진도 다 끝나면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주실래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다. 습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비는 아직 그칠 기미도 없이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정원 문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슈리엘이 보였다. 그의 찰랑이는 금발은 물기와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그 몽환적인 자태에,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잠시 바라볼 뿐이었다.

  "슈리엘."

  빗소리에 파묻힌 목소리. 하지만 들렸다. 이 희미한 목소리를 귀에 담은 슈리엘은 팔짱을 낀 그대로, 고개만 까딱 돌려 무심한 눈빛을 보냈다.

  "말해라."

  어두운 밤. 비와 달이 내리는 서정적인 분위기에 꺼내긴 많이 부끄러운 주제였지만, 내 얼굴은 하늘 보기 부끄럼 한 점 없었다. 이런 거로 부끄러워하기엔 너무 오래 붙어있었다. 나나 그가 부끄러워하려면 그때처럼…. 음. 아니다. 이건 굳이 생각하지 말자.

  "해결법을 찾았어요."

  "뭐를?"

  "모유가 흐르는 거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 쌓인 거 짜줘서."

  "하. 그런 일에 감사를 받아봤자 기분만 나쁠 뿐이다. 그래서 그 해결법이란 게 뭐지?"

  "몸에 성흔을 새길 거에요. 그게, 음. …아니에요. 무시하세요."

  "성흔?"

  …자궁 위에 새긴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새벽밤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 굳이 쓸데없는 말을 붙여서 분위기를 과열시킬 생각은 없다. 반응이 조금 기대되긴 했지만, 그건 루셸리니로 돌아가서 확인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성흔이라고?"

  묘하게 화가 난 듯한 목소리. 그는 세르티의 방으로 향하려는 나를 멈춰 세우고, 손목을 틀어잡았다.

  "하아… 그년이 드디어 돌아버렸구나."

  "…슈리엘?"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나를 데려갔다. 이동 술식이 있는 방향이었다. 나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 몰라 황당한 얼굴로 끌려갈 뿐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내가 손을 뿌리치고 발을 떼길 주저하자, 슈리엘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왜 그러는 거예요?"

  슈리엘은 가벼운 턱짓을 하며 내게 물었다.

  "성흔에 대해 아나?"

  "…몸에 새기는 축복이라고 들었어요. 아닌가요?"

  "아니. 아니다."

  작은 웃음소리. 그는 못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헛웃음까지 지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이윽고, 슈리엘은 어딘가 차분해진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그건 저주야."

  "저, 주?"

  "성흔은 확실한 힘을 내리지만, 그만한 대가를 가져간다. 그렇다고 도중에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어떤 성흔이든 몸에 새겨지면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아. 영원히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그런데 고작 모유가 흐르는 걸 막기 위해 성흔을 새긴다고?"

  "…정 심하면 도려내고 재구축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다고 성흔은 지워지지 않아. 신관이나 네가 원한다고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르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년은 숨기는 걸 좋아하니까."

  그러고보니 미약을 안정제라고 구라친 것도 세르티였다. 덕분에 부끄러운 기억을 많이 얻었었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손만 쭈뼛거렸다. 그래도. 세르티가 그런 심한 짓을 내게 할 것 같진 않았다. 확실한 대비책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세르티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

  "차라리 내가 가겠다."

  슈리엘은 나를 지나쳐 세르티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를 그냥 보냈다간 대판 싸움이 날 것 같아, 지나치려는 슈리엘을 멈춰세웠다.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손목을 잡고 살짝 비튼다. 짜증스런 눈길이 날아왔지만, 나는 그 속에 걱정이 담겨있음을 알았다.

  "그럼 같이 가요.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으니까요."

  "…넌 너무 착해빠졌어. 때로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칭찬 고마워요. 그래도, 삭막한 세상에 저 같은 사람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성격으로는 높은 지위는커녕―… 아니. 됐다."

  "…방 들어가고 제가 입 열기 전엔 말하지 마세요."

  "…."

  슈리엘을 설득시킨 나는 그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세르티의 방으로 향했다.

  조금 걷자, 입구부터 분홍빛으로 점칠 된 방문이 보였다. 세르티의 방이었다. 하트 모양으로 장식된 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내 뒤에 있는 슈리엘은 입가를 부르르 떨며 거부감을 내비쳤다.

  "세르티. 저 왔어요."

  세르티는 침대 위에 여러 영문모를 도구들을 올려놓고 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가슴에 시선을 돌리니 반대편 유두에도 피어싱을 해놓은 상태였다. …저거 왜 꽂고 있는 거지. 모유도 안 나오잖아. 그냥 한 건가?

  "어머. 유진. 어서 와요. 대행자에게 허락은 맡았나요?"

  "…글쎄요."

  "잘 안 풀렸나 보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이해해요. 그이는 성흔에 안 좋은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가려고 했는데…"

  내가 그게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 슈리엘이 거칠게 방문을 열어젖히고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티와 시선이 맞는다. 그는 흡사 살기에 가까운 살벌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일개 대행자가 신관에게 내비칠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어머, 뭐를요?"

  "앙그리드의 대행자가 망가지는 걸 봤음에도 성흔을 새기려 하십니까."

  세르티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때랑 지금은 달라요. 기술도 많이 안정됐고, 부작용이랄 것도 크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제 탓일지언정 앙그리드의 탓이 아니에요. 그가 대행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알아요? 그는 당신같이 처음부터 초인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이런 불안정할 기술을 써야 할 정도로 그는 간절했어요."

  "저는 그때를 아직도 후회합니다."

  "후회하셔야죠. 저도 아직 후회 중이랍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을 때. 나는 둘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야를 막았다. 자궁 문신 새기러 온 것뿐인데 주제가 지나치게 무거워졌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둘 사이의 싸움을 제지한 나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둘이 무슨 얘기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결론만 내주실래요?"

  이거 위험한 거야, 안전한 거야. 하나만 해라. 둘의 의견이 엇갈리니 나도 헷갈린다. 당연히 슈리엘은 위험하다며 나를 뜯어말렸다. 그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세르티를 향해 의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죠?"

  "안전해요. 제가 보장해요."

  "…."

  "정 못 미더우시면 제 몸에 실험해봐도 좋아요. 그래도 싫으시다면, 깔끔히 포기할게요."

  세르티는 날카로운 은제 칼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며 히히덕거렸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목을 그으며 특정한 문양을 새겼다. S자로 이어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핏방울이 떨어진다. 세르티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웃는 그대로 작업을 이어갔다. 그 꼴에 식겁한 나는 세르티를 뜯어말리며 진정시켰다. 다행히, 성흔은 새겨지지 않았다.

  "흐응… 조금만 더 새기면 됐는데…."

  아쉬운 콧소리. 그녀는 칼을 내리고 상처를 회복했다. 아물어가는 상처. 신관이라 그런지 손쉽게 치유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제 몸에 성흔을 새기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세르티?"

  "목이라도 맬까요? 아니면, 알몸으로 밖을 돌아다니다 죽을 때까지 강간이라도 당할까요? 으음, 뭐든지 좋아요."

  "그런 좋… 지 않은 짓을 시킬 생각은 없어요. 그냥, 상응하는 책임을 지라는 소리에요."

  "좋아요! 물론이에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좋다고 할 뻔했다. 그랬으면 아마 목을 매는 건 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사인은 자괴감으로 인한 자살이다. 슈리엘은 이런 나를 못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앙그리드의 꼴을 봤다면 그딴 소리는 내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 그래도 성흔을 새길 거라면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

  "보, 본다구요? 저, 저기, 음. 슈리엘."

  "…음?"

  그의 말을 듣자,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에 가려져 있던 본론이 다시 기억났다. 모유를 멈추게 하려고 자궁에 문신을 새긴다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내용. 그런데 그걸 직관한다고? 

  "…그게, 아, 아니에요. 세르티? 옷 벗고 누우면 되나요?"

  "네! 준비는 되어있답니다?"

  말을 얼버무린 나는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눈은 감았다. 아마 성흔이 다 새겨지기 전까지 뜨일 일은 없을 거다. 슈리엘은 내가 허둥지둥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시선은 세르티를 향해서. 허튼짓을 하면 곧바로 제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유진. 조금 따끔할 수 있어요. 신성력으로 보조할 테니 그리 아프진 않을 거예요."

  알몸이 되어버린 나는 하복부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몸을 움찔 떨었다. 순간, 파르시히에게 산채로 해체됐을 때가 기억났다. 허벅지와 자궁이 잘려나가 식재료로 쓰였었지. 그리 오래됐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아련해진 기억이다.

  세르티에게 조심하라느니, 지켜보겠다느니 재잘재잘 얘기를 이어갔던 슈리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수가 줄어들었다. 하긴 자궁에 문신을 새기는데 할 말이 많으면 그거대로 이상하긴 했다.

  성흔을 새기는 작업은 칼로 살을 째는대도 아프지 않았다. 따끔함에 움찔거리는 일은 있지만 한순간일 뿐. 세르티의 도움 덕분일까. 그리고, 눈을 감고 있어 작업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문양은 하트 모양으로 추측됐다. 내심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정말 하트 문신이 새겨진다 생각하니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이딴 배덕감 따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아.

  "이제 신성력을 불어넣기만 하면…"

  그 후, 작업이 마무리되고 피가 흐르는 부위에 손을 얹은 세르티는 짧은 기도문과 함께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포근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칼로 짼 살들도 금세 아물어 본래의 깨끗한 피부로 돌아왔다. 그러나, 피부 위로 새겨진 피처럼 붉은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 떠볼래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눈을 뜬다. 일단 몸에 이상은 없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다는 말처럼 조금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리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양의 크기는 성인 여성 주먹만 했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제 모유가 안 나온다는 거지? 나는 양손을 써 가슴을 꾹 눌러봤다. 아읏, 하고 터지는 야릇한 신음.

  그런데. 

  "세르, 티?"

  "네?"

  "그래도 나오는데요…?"

  찔끔 흐르는 샛노란 액체. 모유였다. 얼굴이 굳은 나와 달리, 세르티는 후후 웃으며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누가 의도적으로 빨거나 누르지 않는 이상 새어 나올 일은 없으니까요. 의도한 거니 안심하세요. 태어날 아이에게 먹일 밥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거였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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