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한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리엘. 손 좀 모아서 내밀어 볼래요? 그래요. 그렇게 그릇처럼 모아서…"
"해결 방법이라도 찾은 건가?"
"아니요. 저도 한번 마셔보고 싶어서요. …조금 이상하려나?"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긴 했다.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떡해.
슈리엘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착실히 내 기행에 어울려주었다. 가슴을 모아 우유를 짜듯 꾸욱 눌러 슈리엘의 손에 담는다. 슈리엘은 모유가 밑으로 흘러내리기 전에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단숨에 고개를 숙여 후루룩, 하고 들이켰다. 모유를 입에 담은 나는 고개를 들어 맛을 음미했다. 미처 넘기지 못한 모유 방울이 쇄골을 타고 흐른다.
"으음…."
"맛은 있나?"
"제 몸에서 나온 마나인데 맛이 있을 리가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맛도 안 느껴지네요. 말 그대로 맛이 없어요. 무無맛이에요."
"그런가? 나는 조금 달콤했다만."
"흐음? 이게요?"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딱히 뭔갈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이거 진짜 어쩌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아이를 만나기까지 삼 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모유를 뚝뚝 흘리면서 마탑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 나름 생각해둔 컨셉도 있는데,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마실래요?"
나는 새하얀 젖가슴을 내밀며 속삭였다. 조금 부끄럽지만, 버리는 건 조금 아깝잖아. 내가 마셔봤자 아무 맛도 안 나고… 이왕 먹을 거면 맛있다는 사람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슈리엘은 무릎 위에서 젖가슴을 내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말 뜻을 이해하곤 하반신을 크게 부풀렸다. 마차 내부에 진동하는 암컷 냄새 때문에 사고가 느려진 듯했다.
'이렇게 싸놓고 또 세운다고…?'
…이쯤되면 무서울 지경이었다.
* * *
성황청에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당연히, 그 긴 시간 동안 제국엔 온갖 소문이 다 퍼져있었다.
쌍둥이 악마가 핏빛 달을 떠오르게 해 수많은 아인들을 죽게 했다는 소문 말이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지만, 성황청은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었다. 타국에서 일어난 일을 굳이 부풀려 보도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백성들의 불안감을 부추길 사안이라면 더더욱.
"대행자 루셸리니. 살아 돌아왔군요."
"제가 어디서 죽을 놈으로 보이십니까?"
"하아…"
검은 머리 신관 세르티는 해후를 풀지도 못하고 남몰래 밀회를 가져야 했다. 시각은 야심한 밤. 이유는 당연 슈리엘 머리에 나 있는 뿔 때문이었다. 공개적으로 우리를 맞이하기엔 주변 사제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뿔도 뿔이었지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슈리엘은 그곳에서 보고 겪었던 것을 상세하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부족장들의 시험을 통과해 망치를 얻은 일부터, 쌍둥이 악마를 발견해 제압을 시도한 일까지. 그는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딱 필요한 정보들만 콕 짚어 전달해주었다.
"삼두묘 쿠드가… 나타났고요."
"해는 끼치지 않았습니다."
"알아요. 그런 마물이니까. 제가 할 말은, 애초에 대행자 선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었어요. 위험한 일을 맡겨서 미안해요. 쿠드가 나타날 줄이야… 제 오판이었어요.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됐습니다. 그보다, 악마들의 동향을 아십니까? 감이 좋지 않습니다."
슈리엘은 살짝 젖은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수배 중인 주요 악마들의 정보였다. 내가 처리한 가올리스, 아르타니아부터 겁화의 악마 플뤼톤, 미혹과 장난의 악마 파파쿠로쿠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악마까지. 수십이 넘는 악마가 서류에 적혀있었다.
"바르페우고스를 제외하면 대체로 활동량이 늘긴 했어요. 전과는 달라요. 난폭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 마왕이라도 부활하려는 건지…"
"하아. 불길한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악마는 당연 전쟁의 악마 바르페우고스였다. 바르페우고스는 다른 악마들이 날뛰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이상했지만 마땅히 내세울 대책이 없었다.
"플뤼톤이 북부 변경백의 영토를 불태웠다고 해요. 워낙에 건조한 곳이라 화재 피해가 상당해요. 앙그리드의 대행자를 파견해 저지하긴 했지만… 사살하지는 못했어요."
"…악마가 대회의를 가졌다고 보십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주축도 없이 회의를 여는 놈들은 아니니까요. 그저, 악마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짐작돼요."
"부추긴다라?"
세르티와 슈리엘은 악마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옆에서 관망하고 있는 나로선 그저 심각한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들어봤자 사전지식도 없는 내겐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었다.
둘의 이야기는 수 시간을 넘을 정도로 오래 이어졌고, 그 긴 시간만큼이나 격렬했다. 말과 말이 오간다. 정보를 나누는 것뿐인데 칼을 휘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유… 슬슬 새어나오는데에….'
솔직히 말해서, 속옷 사이로 흐르는 모유가 더 신경 쓰였다. 나는 속옷 너머까지 적시려는 모유를 보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렇게 이야기가 종장을 맞이하고 둘의 정보 교환이 끝났을 때. 주제는 자연스럽게 슈리엘의 뿔로 옮겨지지 시작했다.
"세계수가 달아준 뿔, 이라고 했죠."
"…예."
"이게 대체 무슨, 하아. 유진?"
한참 슈리엘과 이야기를 나누던 세르티는 갑작스레 나를 지목했다. 멀찍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세르티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출렁거린다. 모유가 한 방울 밑으로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네, 네?"
"이 뿔이 마나를 빨아들인다고 했죠? 그것 말고 다른 기능도 있나요?"
"…죄송해요. 그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 아. 슈리엘. 그거 말했나요?"
슈리엘은 눈을 치켜뜨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뭘 말이지?"
"뿔이 생긴 이후로 심마가 없어졌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 말인가."
슈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기를 측정했다.
"그러고보니 아무런 마기도 느껴지지 않네요. 일종의 정화 작용인가? 흐음. 흐음…."
세르티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흑발은 오늘따라 더 어두워 보였다. 세르티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무언가 깨달았는지 휙 하고 고개를 들었다.
"조사 좀 해봐도 될까요?"
"뗄 생각이라면 접는 게 좋을 겁니다. 카라반으로 긁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놈입니다."
"만져보기만 하면 돼요."
몸을 낮춰 뿔을 만진다.
세르티는 손에 뿔이 닿자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좋아요. 뭔가 알아낸 것 같기도 하네요. 얘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해요. 당신의 복귀 소식은 아마 내일쯤 기록될 거에요. 그럼, 맘 편히 돌아가면 돼요. 루셸리니 령으로 향하는 이동 술식은 준비해뒀어요. 뿔에 관한 정보는 우편으로 전해줄게요. 그리고, 셰멜을 만나면 안부 인사나 해줄래요?"
"…알겠습니다."
물어볼 게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우편으로 전해준다 하니 참는 슈리엘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슈리엘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으음. 슈리엘. 끝났나요?"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나?"
"아니요. 아니에요. 음. 비슷하긴 한데, 좀. 말하기 곤란해서."
세르티의 시선이 스쳐지나간다. 심히 궁금해보였지만 사적인 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 그게 모유가…."
모유 좀 짜달라는 소리였다. 쉴 새 없이 나오는 모유였지만, 그래도 짜면 한동안 멈추긴 한다. 하지만 내 가녀린 힘으로는 제대로 짜지질 않았다. 슈리엘의 도움이 필요했다.
슈리엘의 옷자락을 잡곤 으슥한 회랑으로 향한다. 때마침 비가 오는지 복도 천장엔 투둥투둥, 하고 추적한 빗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우리는 회랑 양옆에 패인 조그마한 공간으로 들어가 몸을 밀착했다. 약간 서늘한 밤공기. 뺨을 스치는 서릿바람은 뜨거운 몸을 식히지 못했다.
달 뜬 숨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마저 비에 파묻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고요가 찾아왔을 때. 나는 주변 눈치를 보곤 상의를 훌렁 벗어 던졌다.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가슴, 모유로 젖어버린 속옷. 그 후 능숙하게 속옷 끈을 풀자, 자꾸만 샘솟는 모유로 번들거리는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슈리엘은 나를 뒤돌게 하고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마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젖을 짜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슈리엘이 가슴을 움켜쥐기 직전 소리를 내어 젖 짜기를 저지했다.
"으음… 잠깐만요."
"왜 그러지?"
"바닥에 뿌리면 더럽잖아요. 그래도 성황청인데…"
밖은 비가 오기도 했고, 야간조가 순찰을 돌고 있어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따로 모유를 담을 병도 없고, 더럽게 복도 바닥에 흩뿌릴 수도 없으니….
내가 내뱉은 말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냥, 마셔서 없애버리자는 것이었다.
"…마셔볼래요?"
"하아…."
그 한숨 소리를 듣고 나서야 말뜻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속옷을 차려고 했다. 세르티한테 배웠던 '유혹하는 법'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이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싫으면 말구요. 그럼 다른 장소를― 흐꺗?!"
"누가 싫다고 했나?"
나를 번쩍 들어 올린 슈리엘은 나를 장식용 난간에 앉히곤 얼굴을 들이댔다. 두 손은 가슴을 움켜쥐고, 입은 솟아오른 유두를 향해서. 이마저도 높이가 부족해 가슴을 쥐고 위로 당겨야 했다. 키 차이가 머리 하나 반이나 차이가 나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아응, 흣. 흑."
"…."
유방이 당겨짐과 동시에 딱딱한 이가 가슴을 짓누른다. 나는 따끔한 통증에 몸을 부르르 떨며, 다리 사이로는 저도 모르게 애액을 분비했다. 슈리엘은 정말 젖소의 우유를 짜듯 가슴을 쥐어짰다. 그새 모인 모유는 그리 강하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찌익, 하고 뿜어져 슈리엘의 입안을 채워갔다.
"하아으. 하윽."
"반대쪽도 필요하나?"
"네, 네흐. 네헷…."
모유를 짜는 건 아이를 가진 여성이라면 꼭 거쳐 가는 자연의 섭리이지만, 이렇게 젖이 짜질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마구마구 들었다. 쾌락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다고 만족감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았고.
이건 배덕감일까. 아이에게 가야 할 젖을 그저 흥분의 도구로 쓴다고 생각하니 저열한 쾌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반대편 젖을 마시기 시작하는 슈리엘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변태같은 웃음이었다.
"하으으으…"
젖을 빨아들이는 힘이 더해질 때마다 얼굴은 풀리고 말고를 반복했다. 유두 끝에 혀가 닿는 순간에는 녹아내릴 듯 몸에 힘이 풀렸다. 그에 더해, 우악스럽게 젖통을 쥐어짜며 이빨로 잘근잘근 씹기라도 하면, 이젠 가슴이 아니라 꾹 닫힌 가랑이 사이로 물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나고, 슈리엘이 힘차게 가슴을 빨아준 덕에 모유는 더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쥐어짜지 않는 이상 한동안은 잠잠할 것이다. 그는 모유로 더럽혀진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곤 거리를 벌렸다.
"…이 정도면 됐나?"
"후으, 후으읏…"
나는 고개를 젖히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보이는 팬티는 약간 축축해져 있었다. 섹스도 아니고 그냥 젖을 빨린 것뿐인데, 그에 준하는 음란한 모습이었다.
슈리엘은 내가 정신도 못 차리고 허둥지둥하자 직접 속옷을 차주었다. 커다란 가슴을 속옷 사이로 집어넣고 끈을 묶는다. 그의 하반신은 이미 부푼지 오래였지만, 다행히 서로 때는 가릴 줄 알아 부푼 채로 내버려뒀다. 나는 슈리엘이 건네준 옷을 입곤 마지막으로 목에 케이프를 둘렀다.
"고마워요 슈리엘. 음, 음. 맛은 있었어요?"
"…그건 왜 자꾸 묻는 거지?"
"이렇게 많이 마셨던 적은 처음이니까요. 느끼하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아니면 속이 안 좋다거나?"
그는 입술을 할짝였다. 미처 닦지 못한 모유는 그대로 입안으로 사라졌다. 슈리엘은 짐짓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며 입을 열었다.
"뭔가… 몸이 활력이 도는 느낌이다."
"활력?"
"그래. 일전에 피로해소제를 먹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야."
"으. 그 맛대가리 없는 초록색 물약이요?"
"효과는 확실하니까. 이제 됐나?"
나는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마나 함유량이 미치도록 높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내 몸에서 나온 모유이기도 하고, 애당초 초유는 영양분이 높기도 했으니까. 모유에 담긴 마나가 일종의 피로해소 작용을 한 것 같은데… 이거 원래 에일린 밥이잖아.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에일린을 만나려면 출산을 해야 하나? 세계수의 도움으로 이미 완성된 육체까지 있다고 하는데, 애는 어떻게 낳아야 하는 거지? 순간 에일리언처럼 배를 찢고 나오는 에일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젠장. 이름도 비슷하잖아?
"후으. 이제 돌아가요. 아침이 밝으면 여러모로 안 좋으니까요. 칼버드는 미리 돌아간 거 맞죠?"
"누구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는지 잊은 건가? 네 음란한 몸뚱어리가 계속……"
"…왜 그래요?"
슈리엘은 말을 하다 말고 끊어버렸다. 곧 죽어도 자기 할 말은 하고 죽는 남자가 이렇게 말을 끊었다는 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거나, 급한 용무가 있을 때였다. 나는 슈리엘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그의 눈동자가 어디론가 향하는 걸 보았고,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
"…."
손 들린 랜턴 빛을 받아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흑발의 미녀. 그녀는 외설적인 디자인의 속옷이 다 비치는 반투명한 네글리제를 입고 있었다. 성황청에서 저런 대담한 옷을 입고 돌아다닐 여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창녀, 유일한 검은 머리 신관.
세르티였다.
"혹시나 싶어 이동술식을 살펴보니 한 명밖에 안 갔더라고요? 정황상 그 백발의 기사 같아서, 나머지 둘은 어디서 짝짜꿍 하나 살펴봤더니… 어머? 이런 으슥한 곳에서 대체 뭘 하는 걸까요?"
그녀는 우리의 붉은 얼굴을 바라보며 킥킥 웃었다. 암흑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검은 눈이 우리를 꿰뚫어본다. 세르티는 이상할 정도로 다리를 오므리는 나와, 묘하게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슈리엘을 번갈아 쳐다봤다.
"흐음. 야외에서 하다니 조금 대담하네요. 저도 할 때는 방 안에서 하는데…."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신관에게 차마 욕지거리를 날릴 수 없었던 슈리엘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변명했다. 사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긴 했다. 딱히 섹스를 한 것도 아닌지라. 그래도, 말하기 부끄러운 짓을 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긴 했다. 다 큰 성인에게 젖을 빨리며 가버렸다곤 죽어도 말 못한다.
"이 냄새는 분명 한바탕 거사를 치른 남녀의…."
"…."
"흐음?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신관으로 선택받기 전, 그녀는 흑장미의 에이스였다. 남녀 간의 일어나는 모든 일에 빠삭한 그녀였기에, 지금 나는 냄새의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르티는 슈리엘의 몸에 코를 대며 킁킁거렸다.
"정액 냄새가 안 나네요? 그렇다고 애무를 한 것 같지도 않고."
"…신관님. 제발 체통을 지키십시오. 이곳은 흑장미가 아닙니다. 용무가 끝났으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유진! 따라와라."
"자, 잠시만요! 대행자! 아이참! 유진? 유진?!"
슈리엘은 그녀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하루빨리 포탈로 이동하려 했지만, 반대쪽에서 세르티가 손을 잡는 바람에 양쪽으로 팽팽히 당겨지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두, 둘 다! 손 좀 놓으세요!"
삼류 시트콤에서나 볼 법한 일을 직접 겪으니 기분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둘은 내가 고통을 호소하자 동시에 손을 놓았고, 그 반동에 나가떨어진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이를 찧고 말았다.
"아야…"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든다. 슈리엘과 세르티는 내가 넘어지자 약간 당황하면서도, 서로에게 잘못을 넘기기 급급했다.
"대행자! 억지로 끌고 가려니까 유진이 다쳤잖아요!"
"이게 왜 제 탓입니까? 저와 유진은 처음부터―"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 한심한 꼴을 직관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만!"
회랑을 울리는 호통. 슈리엘은 말과는 달리 정작 자신이 체통을 지키지 못했음을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했고, 세르티는 랜턴 손잡이로 입을 가리며 표정을 다듬었다. 나는 구겨진 치맛자락을 바로 피며 말했다.
"그냥, 개인적인 문제에요."
"…복도 구석에서 이런 음란한 냄새를 내야 할 정도의 문제라니, 신관 이전에 흑장미의 검은 드레스로서 심히 궁금하네요. 혹시 몰라요? 제가 해결할 수 있을 문제일지도요?"
이것만큼은 들어야 한다는 듯 완강히 밀어붙인다. 그러나 남의 문제를 파고드는 걸 실례라는 건 아는지 랜턴을 쥔 손은 소극적이었다. 아마 내가 거절하면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나겠지.
"…."
말해도 되나 고민이 일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 부끄러운 증상을 고칠 수 있을지 혹시 몰랐다. 그래. 이왕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낫겠지. 여성의 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슈리엘. 말할게요."
"하아…. 마음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