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93)

  지하 결투장에서 윤간당하기를 8시간 정도. 혹은 그 이상 지났을지도 몰랐다. 한 명이 끝내면 다른 한 명이, 그 한 명이 끝내면 쉬고 돌아온 아인들이 세네 명이 더 추가된다. 덕분에, 나는 죽어라 돌려 먹히고 있었다.

  "하으읏…?!"

  ―부르릇! 허연 액체들이 쏟아진다. 아인들의 정액으로 빵빵해진 자궁은 더이상 들어올 자리도 없어 역류하고 말기를 반복했다.

  자연스레 내 식사는 저들의 정액이 되었다. 자지를 빼낸 아인은 머리끄덩이를 집어 정액 웅덩이에 머리를 갖다 댔다. 그러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속삭였다.

  "자아. 죽기 싫으면 잘 먹겠습니다, 해야지?"

  "우으…."

  여덟 시간 동안 고인 정액. 그 속에 들어있는 피와 흙먼지. 도저히 사람이 먹을 게 아니었지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쭉 내밀어 정액 웅덩이에 담구었다. 저들이 시킨 연기였고, 나의 연기였다. 

  "히끅. 아, 아인님들의 정액… 자, 잘먹겠. 습니― "

  물론, 먹는 방식조차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으흡?!"

  얼굴을 그대로 정액 웅덩이에 머리를 처박은 아인은 뒤통수 위에 발을 올리고 연초를 피우기 시작했다. 코와 입 속으로 정액이 마구 들어오며 숨구멍을 틀어막는다.

  ―찌걱!

  "흐븝, 흐그릅…."

  비어버린 보지를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인들의 전용이 되어버린 보지는 날카로운 가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 최적의 조임을 선사했다. 목구멍이 막힐수록 조임이 강해진다.

  발버둥은… 오른팔도 먹혀 칠 수 없었다. 끽해봤자 두 다리인데, 지금 엉덩이를 붙잡고 허리를 치대는 아인 덕에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손발이 경련하며 질내수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사정과 함께 정액 웅덩이에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푸흐아…."

  코와 입에서 정액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추잡하고, 더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온다.

  "큭. 이게 그 도도한 마법사년이라곤 상상도 못 하겠어. 그냥 길거리 창녀… 아니 그보다 못한 인생 끝장난 년이잖아?"

  ―뻐엉! 그들은 부푼 배를 전력으로 걷어차곤 연초를 마저 태우기 시작했다.

  "케흡…!"

  천장 가득 피어오른 매연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걷어차인 나는 구르고 굴러 벽에 닿아서야 멈출 수 있었다. 어지러움과 구토감이 몰려온다. 

  "우웨, 브웨엑―"

  위에 가득찬 정액들이 빠져나오며 바닥을 더럽혔다. 위액과 섞인 정액은 목을 불태우며 통증을 더했다.

  "이년 임신했던가? 배를 걷어차는 맛이 있어."

  "큭. 쓰레기 새끼."

  "별 말씀을."

  "그보다. 슬슬 질리는데 이만 마무리 할까?"

  "앙? 하긴. 거진 하룻밤을 여기서 보냈으니… 바깥 공기 맡을 때도 됐지."

  진정제랑 급속 치료제를 몇 번이나 투여받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렇게 살아남는다 해도, 기껏해야 2년이면 수명을 다하고 죽을 거다. 사제들의 치유를 받으며 요양하지 않는 이상 천수를 누리다 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아쉬운데 다리라도 먹고 가는 거 어때?"

  "정액으로 범벅된 고기를 미쳤다고 먹겠냐?"

  "난 상관없는데…."

  "닥치고 따라와. 네 마누라가 여기 온 거 알면 널 죽이려 들 걸? 이봐, 사회자!"

  날 두 차례 범하고 기력이 다했는지 구석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시렉은, 아인들의 부름을 받고 비몽사몽 한 얼굴로 일어났다.

  "으윽, 머리야… 지금이 몇 시지?"

  "우리는 이만 가볼 테니 이년 좀 잘 처리해주쇼."

  "엥? 아. 맞아… 그년이 있었지… 하아…."

  시렉은 한숨을 쉬며 아인들을 돌려보냈고, 지하 결투장에는 나와 그만이 남아있었다.

  "얌마. 살아있냐?"

  구토를 하다 기력이 다해 얼굴을 처박은 나는 시렉의 손짓에 답할 수 없었다. 위액. 생각보다 따갑네. 먹은 게 정액밖에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는 뺨을 툭툭 치며 생사를 확인했다. 나는 약간의 움찔거림으로 살아있음을 어필해주었다.

  "살아는 있구만."

  그는 이어서 거대한 포댓자루를 들고 와 그 속에 나를 집어넣었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숨이 턱 막혔다.

  "……."

  포댓자루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간다.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머리가 부딪쳐 출혈이 조금 있었다. 조심성 없기는. 그래서 더 좋았지만.

  "읏차."

  잠시간의 부유감이 있고, 퍼석, 하는 종이 더미 위에 올려지는 소리가 났다. 주변을 스캔하면 뒷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쓰레기장이었다. 소각장. 기억났다. 이곳은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모아 싸그리 불태우는 소각장이기도 했다.

  "후우. 오늘은 소각 날이니… 괜찮겠지."

  그는 내가 들어있는 포대를 깔고 뭉개더니 연초를 피웠다. 그렇게 펴놓고서 또 피운다. 질리지도 않나.

  '이대로 소각로에 들어가 산채로 불타는 것도 나름 기대되는 일이지만….'

  그랬다간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죽어버리겠지. 그래도, 즐긴 건 다 즐겼다. 이렇게 장시간 당한 건 손에 꼽을 정도라 더 즐거웠다.

  슬슬. 조사를 해야 했다.

  '폐가 쪽을 중심으로 조사해야겠어.'

  재구축을 진행한다.

  ―투둑! 오른팔을 재생하고 포대 자루를 찢어버린다. 포대 밖으로 손을 뻗자, 손에 잡히는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폭신폭신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꽉 쥐어버렸다.

   "엉? 흐, 흐이익?!"

  시렉의 꼬리였다.

  찢긴 포대 사이로 얼굴이 허옇게 질린 설산 이리의 모습이 보였다.

  꼬리를 잡힌 시렉이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른다. 숨이 트인 나는 재구축 속도를 더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됐겠지. 공간이 협소해 옷을 재구축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알몸으로 나와야 했지만… 인제 와서 알몸에 수치심을 느낄 내가 아니었다.

  "너, 넌. 무무, 뭐야?!"

  에일리언이 알을 찢고 나오듯, 축축한 몸을 이끌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아인들의 뱃속에 들어간 양팔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여기저기 맞고 걷어차인 몸은 평소의 새하얀 피부로 돌아왔다. 아직 클린 마법을 쓰지 못해 정액 범벅인 게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 손가락을 퉁긴다. 머리카락 사이사이 엉겨 붙은 먼지들이 소멸한다. 살짝 벌어진 음부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정액들은 분홍빛 균열이 꽉 다물어지는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으로. 옷을 재구축한다.

  "후으으… 조금, 뻐근하네…."

  나는 팔의 감각을 되살리며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으음. 마법 소녀가 변신하는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괜스레 생각난다. 변신 도중 알몸이 되는 것도 똑같고…. 비교 자체가 실례인가. 분명 마법 소녀에게 실례일 것이다.

  "어, 어떻게―"

  "「조용히 해.」 그리고 움직이지 마."

  간단한 침묵 마법을 걸고 소리 없이 다가간다. 이름이 시렉이라 했던가. 몇 없는 설산 이리의 유전자를 타고난 희귀 종족. 그는 포댓자루를 찢고 나온 나에게 공포심을 느꼈는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고개 좀 숙여보련?"

  "…."

  허튼짓하면 죽일 거야.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잘 전달됐으리라. 지하에서 무참히 강간당하던 여자애가 내뿜을 만한 기운은 아니었으니까. 

  시렉은 내 명령대로 몸을 낮추었다. 땅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별거 없고, 그냥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이리면 고양잇과인가? 아니, 그냥 늑대구나."

  나는 시렉의 정수리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내 의지와 반하는 일을 할 때 폭발하는 술식. 조건은 '지하 결투장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로 발설할 때.' 이다. 내가 맹세한 내용과 같은 내용. 좋아. 이걸로 소문나는 일은 없다. 시렉은 머리에 폭탄이 심어진 줄도 모르고 귀를 쫑긋거렸다. 굳이 말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부드럽다. 아인들의 풍만한 털과 삐죽 튀어나온 귀를 볼 때마다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기분은 좋네. 나는 시렉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지 마. 어차피 만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의 얼굴엔 짬 처리 당한 분노와 짜증이 아주 얕게 잠들어있었다. 내가 이 녀석을 붙잡은 이유는 이놈과 그 관리인 황호족만 맹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 결투장에 관련된 정보를 외부로 발설하면 머리가 터져 죽는 그 맹세. 관객들은 모두 걸린 상태였다.

  "그놈 어딨어?"

  그놈도 머리에 폭탄 심어야지.

  "…?"

  "아, 이제 「말해도 돼.」"

  시렉은 입을 묶은 무형의 힘이 사라지자 헛기침을 하며 경련했다. 참고로 속박 마법은 걸지 않았다.

  "너, 넌 뭐야? 부분명 팔이 찢겼을 텐데?"

  "찢겼었지. 이제는 과거일 뿐인 이야기야."

  "…혹시 일부러 당한 건가?"

  "응. 말도 안 했는데 용케 알았네?"

  "왜?"

  뒷골목 음지에 살아서 그런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혔다. 질의응답 없이 내가 힘숨찐이란 걸 알아차리다니. 뭐 힘을 숨겼다 해도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솔직히 들통 나도 상관없다. 그냥, 앞으로 당할 수많은 '플레이'에 지장이 생길 뿐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니 신경 끄는 게 좋을 거야."

  "미친, 년."

  "자주 듣는 말이야. 그보다 묻는 말이나 대답해. 그놈 어딨어?"

  "…뒷골목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그대로 직진해서 가장 먼저 보이는 파란 지붕으로 들어가면 돼."

  "정보 고마워."

  "찾으면 죽일 건가?"

  싱긋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고 몇 초 고민한다. 죽음이 명시된 경기서 패배한 건 나이지 않은가? 조작된 경기이긴 해도, 패배는 패배고 계약은 계약이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죄는 없다. 후에 강간당한 건 차쿠루를 모욕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아니. 외부에 말 못하게 약간의 금제를 거는 것 말고는, 아마도 안 죽일 거야. 아마도."

   "아마도?"

   "어느 설산 이리가 뒤돌아선 내 등에 칼을 꽂는다면 혹시 모르지. 찌르기 쉽게 표식까지 새길 테니 한 번 해봐도 좋아."

  "…."

   그리고, 분노와 복수심이 생기기엔 턱없이 부족한 일이었다. 이유 없는 폭력은 그대로 돌려주는 편이지만, 그것에 분憤은 없다. 아이가 다친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아이가 새로운 마법을 배운 듯했다. 지하 결투장 구석에서 질펀하게 윤간당할 때였다. 정액을 빼내도 빼내도 끝을 모르게 들어오니 아이는 베리어를 치기보단 다른 방법을 택했다.

  '…분명 재구축은 안 했는데.'

  박히고 찔리고 장난감처럼 다뤄져도 꽉 다문 균열은 늘 그대로였다. 재구축도 안 했는데 말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여덟 시간을 연속으로 강간당했음에도 정사가 끝나는 즉시 처음처럼 되돌아갔다. 그리고. 조임도 전보다 강해진 기분이었다. 신나게 박던 아인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인간들은 다 이렇게 조이는 건가? 

  글쎄. 인간에 대한 선입견을 두 개나 심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인간들에게도 저러는 건 아니겠지. 렉센 구에 올 인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만 미리 애도를 표한다.

  '으음… 빨리 끝내라는 뜻이겠지.'

  아이 나름의 술수로 추측된다. 남자 쪽이 빨리 가버리면 정사가 끝날 확률이 높아지니까. 아으. 부끄럽네. 혹시 벌써 자아를 각성한 건 아니겠지? 뺨을 두드리며 고개를 흔든 나는 시렉을 보며 말했다.

  "따라와."

  "난 왜? 살려준다며?"

  "안내견 역할 해야지?"

  "…그냥 보내주면 안 되나? 주소는 알려줬잖아?"

  "진짜 개처럼 목줄 채워지기 싫으면 잠자코 따라와. 시간 조작한 대가라고 생각해."

  "나는 그런 적―"

  "네 회중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 듣고 센 거니까 발뺌할 생각 말고."

  "…."

  * * *

  "댁은 어쩌다 뒷골목에 들어온 거요? 설마 진짜 강간 당하, 흠. 이건 못들은 걸로 하소."

  시렉은 능숙하게 뒷골목을 빠져나가며 내게 물었다. 나를 향한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자 경계심은 줄어들었다.

  그보다 어쩌다 들어왔냐라. 뒷골목에 들어온 이유 자체는 악마를  찾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결투장을 발견, 보자마자 피학욕망이 끓어 홧김에 투사로 참전해버린 것이고. 굳이 숨길 일은 아니라 그냥 말하기로 했다.

  "악마를 찾고 있어."

  "아, 악마?"

  "상당히 질 나쁜 악마야. 쌍둥이 악마에 관해서 아는 거 없어?"

  "갑자기 그리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주변의 땅들이 마른다든가."

  "아아. 그래. 팔던 꽃이 전부 말라버려 곡소리 내는 아지매는 본 적 있었지. 그것 말고는 잘…."

  "…."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페스커. 그놈 행동이 좀 수상해."

  "페스커?"

  "안경 낀 중년의 황호족 말이오. 나랑 같이 일하던 놈. 사실상 지하 결투장의 주인이야."

  지금 찾아가는 황호족의 이름이었다.

  흥미가 동한 나는 귀를 기울이고 되물었다.

  "왜?"

  "어느 순간부터 결투장 일을 내게 맡기고 다른 데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오. 짬 처리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씨발놈. 어디 가느냐 물어봐도 도통 대답해주지 않으니 원…."

  "오늘은 있었잖아?"

  "막 돌아온 참이오."

  "언제부터 그랬지?"

  "대충 한 주 전부터인가."

  쌍둥이 악마의 미궁이 정지되고 10일 정도 흘렀으니… 이후의 활동 시기와 겹치긴 했다. 우연히 가본 결투장의 관리인이 악마와 연관된 인물이라 단정 짓기엔 다소 성급한 감이 있었지만, 반대로 음지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라 더 수상하게 보이긴 했다.

  "…집에 없을 확률은?"

  그러니 악마와 연관되지 않더라도 구린 일을 할 가능성이 컸다. 마약 제조나 살인 청부라든지.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판을 마련하는 놈이 그런 거라고 못할까 싶다. 인육 공장을 차렸다 해도 이해될 것 같았다. 그게 뒷골목이니.

  그게 아니라면 악마랑 거래라도 했을까. 당장 브리도니아 뒷골목 양아치들만 봐도 파르시히에게 인간 시체를 팔았지 않았던가. 상대가 악마인 줄 모른 채 거래한 것이라 경우가 달랐지만 아무튼. 악마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정상적인 건 아니리라.

  시렉은 골똘히 고민하는 내게 말했다.

  "떠나기 전엔 항상 말하고 가니 괜찮다오."

  ―쿵쿵!

  말하는 사이에 도착한 파란 지붕. 이곳에 페스커가 살고 있다. 

  시렉은 주먹을 꽉 쥐곤 문을 쿵쿵 두드렸다.

  "이봐! 관리인 양반!"

  ―끼익.

  "시렉인가?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문이 열리고 중년의 황호족이 얼굴을 내민다.


0